마태복음 강해 34:누가 진정한 가족입니까(마 12:46-5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7-01-29 00:00
조회
1237
마태복음 강해 34누가 진정한 가족입니까(마 12:46-50)2017. 1. 29. 프롤로그

-최근 우리 사회는 개인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또한 결혼과 출산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커져가면서, 1인 가구, 2인 가구의 증가도 빨라지는 추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자의든 타의든,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반려동물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전에 비해 타인과의 소통 및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데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누군가의 다정한 손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반려동물을 찾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이 지속될수록, 반려동물 인구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바야흐로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반려동물 양육자들이 동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또 하나의 친구와 가족이 생긴 것 같다(63.8%·중복응답)는 것으로, 특히 젊은 세대가 많이 공감했다.
반려동물로 인해 △웃을 일이 많아지고(43.6%) △외로움이 달래지며(35.6%) △가족 분위기가 활기차진다(32.1%)는 평가도 많았다.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27.6%) △성격이 보다 온화해지는 것 같다(26.8%)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실제 반려동물의 양육과 관련한 태도를 살펴본 결과, 양육경험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반려 동물을 가족과 다름없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경험자의 84.7%가 반려동물은 나의 가족과 다름이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아무래도 과거 경험자(79.8%)보다는 현재 양육자(91.9%)가 이런 인식을 훨씬 많이 내비쳤다.

-애완견에 유산을 남긴 유명인들도 있다.
호텔업계 거물 리오나 헨즐리는 2007년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애완견에게 1200만달러의 유산을 남겼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첫 여성회원으로 2013년 타계한 뮤리얼 시버트는, 애완견에게 10만달러의 유산을 물려줬다.

-현재 미국에는 플로리다, 뉴저지, 오리건,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뉴욕주 등 6개 주가, 애완동물 주인과 애완동물을 같은 묘지에 묻는 것을 허용하고 있고,
매사추세츠와 루이지애나주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검토중에 있다.
뉴저지주는 사람 묘지가 아니라 애완동물 묘지에 합장을 허용하고 있고,
플로리다주는 유해를 분리해서 매장하는 것은 허용한다.
펜실베이니아는 묘지에 사람 묘역 뿐만 아니라 애완동물 묘역을 허용했고,
버지니아는 사람과 애완동물이 나란히 묻힐 수 있는 특별 구역을 허용했다.

-배우자가 차지했던 반려자의 자리를, 이젠 애완동물이 차지하고 있다.
사랑은 받고 싶고 또한 주고 싶은데, 사람은 자기 맘대로 안 된다.
나는 받고 싶은데 주지를 않고, 나는 주고 싶은데 받지를 않는다.
그러나 애완동물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사랑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 배신의 칼을 내밀 때 치가 떨린다.
극단적인 생각이 다 든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애완동물에게는 그럴 일이 없다.
배신 당할 위험이 없다.
상처 받을 걱정이 없다.
내가 사랑을 준만큼 사랑이 돌아온다.

-그럼 그 사랑이 진짜일까?
동물 사랑으로 사람 사랑을 대체할 수 있을까?
집에 반려 동물이 있으면 가족은 필요 없는 걸까?
어디까지나 동물은 동물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가족처럼 여기는 동물이 있어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
유산을 물려받는 동물이 있다고 해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이다.
사람으로 구성된 가족만이 참된 가족이다.

-나는 가족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보통 때 내편을 들어주던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 가족이 없었다면 내 삶은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가족은 삶의 울타리이다.
가족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비빌 언덕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위기의 시대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인 가구나 2인 가구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결혼한 뒤 이혼 또는 사별 기타 이유를 포함해서, 아예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않아 혼자 사는 이른바 1인 가구가,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27.2%로 가장 많다.
인구 구성만으로도 520만명,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을 넘는다.

-1인 가구도 가족일까?
엄격하게 말해 독거 생활 아닐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퇴임할 때까지 56%의 지지를 받아,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그는 8년 동안의 백악관 생활을 회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흰머리가 늘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똑같은 사람이다. 아내 미셸과 두 딸, 가까운 친구들이 내가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이다”

-오바마는 일 주일의 5일은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했다고 한다.
오바마의 전직 수행원 레기 러브는 이렇게 전했따.
“가족 저녁식사가 꼭 상황실 회의 같았다. 대통령은 오후 6시 반만 되면 하던 일을 대담하게 끊고 식사하러 갔다.”
오바마가 이 약속을 칼같이 지켰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재작년 12월 백악관 인턴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 마지막 순간 기억할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내 답은 대통령으로서 한 어떤 일도 아니다. 딸의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해 지는 장면을 감상하며, 딸이 탄 그네를 밀어준 것이다”.

-작년 3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공식 만찬에서조차, 오바마는 딸 생각을 했다.
“딸들이 너무 빨리 자라버렸습니다. 올가을 말리아가 대학에 가지요. (잠시 말을 끊고) 제가 목이 메었네요. 중요한 건 우리가 권력을 위해, 명성을 위해, 재산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그리고 모든 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퇴임 한 달여를 남긴 작년 12월 5일은, 신 코데 마요로 멕시코 국경일이다.
그날 미국과 멕시코의 협력관계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날 오바마의 연설이 시작되자 참석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4년 더”를 외쳤다.
오바마는 그 상황을 이런 말로 유쾌하게 받아 넘겼다.
“헌법도 헌법이지만 아내 미셀이 허락하지 않을 걸요.”
그의 남다른 가족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월 7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이 미국 시카고 맥코믹 플레이스 밖에서 길게 줄을 섰다.
이유는 오바마의 대통령 고별 연설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백악관은 오전 6시 이전에 줄을 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의 열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오전 4시부터 입장권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7시 직전, 시카고 경찰은 이런 내용의 트위터 메시지를 전송하기도 했다.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퇴임 열흘을 앞두고, 자기의 정치적 고향 시카고에서 고별연설이 있었다.
역시 연설의 대가답게 명연설이었다.
그 중 아내에 대한 부분의 영상만 감상하겠다. (동영상)

-탄핵 당한 식물 대통령을 두고 있어서인지 무척 부럽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퇴임하고 검찰에 안 붙들려 가면 다행인데 말이다.
나는 남의 나라 대통령이어서 그런지, 그의 업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의 남다른 가족애에 관심이 있다.
어떻게 그 바쁜 양반이, 그 정도의 가족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리고 답을 어렵지 않게 얻었다.

-그가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서 이렇게 밝혔기 때문이다.
“자식을 나 몰라라 하는 생부(生父)의 무책임함과 의붓아버지의 서먹한 태도, 외할아버지의 실패와 좌절이 모두 내게 생생한 교훈이 됐다. 나는 자식들에게 믿음직한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역기능적인 가정을 재생산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잘못을 과거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잘못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자 한다.
현재가 과거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불행했던 과거가 현재의 행복을 삼키지 못하게 하라.
현재의 행복으로 과거의 불행을 지배하고 이겨내라.
불행했던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행복한 가정천국을 재설정하라.-------------------------------------------------------

-예수님은 안식일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치열한 논쟁을 하셨다.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과 팽팽한 샅바 싸움이 있었다.
1라운드, 2라운드가 지났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안식일 성수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컸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보기에 바리새인들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붙든 종교생활이었다.

-그러니 둘 사이에 쉽사리 합의가 될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합의할 의사가 없었는지 모른다.
바리새인들은 기득권을 사수해야 하고, 예수님은 진리를 사수해야 하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두 사이에 낀 백성들만 헷갈린다.
전문 종교인이 아니고서야 판단이 쉽게 안 선다.
그러다보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관망하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났다.
사람들이 예수님한테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
백성들은 누가 진짜냐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예수님은 그를 고쳐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게 하셨다.
백성들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자존심이 상한 바리새인이 딴지를 걸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 일이라고 깎아 내렸다.
예수님은 발끈하셨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부인하는 그들을 향해 성령 모독죄를 적용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한 말에 대해 심판 날에 심문을 받게 될 것을 엄중하게 선언하셨다.

-종교지도자들은 표적을 듣고도 믿지 않았고 보고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표적을 요구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선을 그으셨다.
사실 말씀을 듣고 믿지 않으면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말씀 중에, 그런 내용이 있지 않은가?
부자가 죽어 음부에 갔고, 음부에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한다.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아브라함이 뭐라고 대답했는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자기 형제들이 완악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거듭 부탁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브라함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가족 구원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가, 마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 땅에서 가족으로 살다가, 죽어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면, 영원히 상봉할 수 없는 이산가족이 된다.
다른 것에 다 실패해도, 가족 구원만은 성공해야 한다.
우리는 물질을 유산으로 남기려고 하기 보다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믿음 없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고 치자.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아무래도 좋은 직장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좋은 직장에 다니다,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루었다 치자.
그러면 끝인가?
그러면 부모로서 할 일이 끝났는가?
그러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다 한 건가?

-인생의 황혼에 자식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우면, 진짜 믿음 있는 부모라면 차마 눈이 감기지 않을 것이다.
그 때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 때 땅을 쳐도 아무 소용없다.
가족 구원보다 급한 것은 없다.
가족 구원은 여유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다.
재물보다 친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재물과 가족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가족 구원을 위해서, 어떤 것도 쓸 수 있어야 한다.
가족 구원을 위해서, 어떤 것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부모님이 가장 잘한 일은, 예수 믿은 일이다.
우리 부모님이 그 다음으로 잘한 일은, 나를 예수 믿게 한 일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잘한 일은, 부모님을 따라 예수 믿은 것이다.
내가 그 다음으로 잘한 일은, 믿는 사람 만나 믿음의 가정 꾸린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은, 세 자녀가 믿음 안에서 반듯하게 서고, 주의 몸된 교회의 선한 일꾼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목사로서 교회사역을 잘 감당했다고 해도, 가족 구원에 실패하면 나는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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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나이 서른이 되기까지, 아버지 요셉의 가업을 물려받아 목수 일을 하셨고, 어머니 마리아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피셨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사셨다.
그러나 서른이 되자, 주님은 공생애를 위해 가정을 떠나셔야 했다.
혼자인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을 두고 떠날 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공생애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대속의 십자가를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긴 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 했다.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세례를 받고 시험을 통과한 후, 본격적인 사역에 나섰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리고 자기와 동역할 제자들을 부르셨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마태 등

-주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어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요란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도 달랐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도, 얼마든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또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서, 각색 질병과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다.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다.

-이 소문은 온 이스라엘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깎아 내리다 못해, 위험한 인물로, 율법을 범한 자로, 심지어 귀신들린 자로 몰아세웠다.
그것도 모자라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하기까지 했다.

-이런 소문은 어머니 마리아에게까지 들려왔다.
그런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을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동생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그 무렵만 해도 예수님이 유명인사여서 찾는데 어렵지 않았다.
예수님은 어느 때처럼 그 날도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마리아와 동생들은 예수님이 한참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불쑥 들어갈 수 없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도 많으니, 이들도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했는데,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어떻게 왔어요?”-그랬더니 깜짝 놀랄 답이 돌아왔다.
“내가 예수님의 어머니예요, 이들은 그 동생이고요.”
“아이고 그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얼른 가서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한사코 말렸다.
“그러실 거 없어요. 시간이 넉넉하니 기다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셔도 되겠습니까? 늦어질 수도 있는데...”

-마리아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예수님의 말씀 길어졌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던 사람은, 갔다 오겠다는 눈짓을 하고는, 예수님 쪽으로 갔다.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잠시 예수님이 물 마시는 틈을 이용하여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순간 모인 회중들은 술렁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으니, 오늘 집회는 사실상 끝이다.
멀리서 자기를 찾아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밖에 세워둔 채, 계속하여 말씀을 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예상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예수님이 모두의 예상을 깨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했다.
마치 혈연관계를 부인한듯한 말씀 앞에,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 말을 전한 사람도 무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은 잘못이 없다.
자기도 부모형제가 있고 멀리서 자기를 찾아왔다면, 모든 걸 제쳐두고 만날 것이다.

-사실 가족이 왔다는 것을 알려줬으니,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는 4차원적인 말씀을 하시니, 다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처음엔 조용했는데, 점차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게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진짜 혈연관계를 부정하는 뜻으로 한 말일까?
아니면 무슨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
믿음의 가족을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한 말일까?

-다들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주님이 입을 여셨다.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분명히 제자들을 가리켰다고 했다.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은 아직 밖에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 곁에 제자들이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이다.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행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키며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어머니뻘 되는 여자가 없었다.
정식으로는 여자 제자도 없었다.

-그럼 예수님이 상징적인 의미로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다.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가족을 설명하는 중에 제자에 대한 설명까지 되었다.
예수님이 생각하는 제자가 어떤 사람인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이다.
예수님만 따라다닌다고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 곁에 머물러있다고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라야 진정한 제자라는 것이다.

-또한 제자란 예수님의 가족이다.
예수님의 제자이긴 한데 예수님의 가족은 아닌 경우는 없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라면, 예수님의 가족은 교우와의 수평적인 관계이다.
수직 수평 두 관계가 모두 원만해야 좋은 제자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두 개의 공동체가 든든해야 한다.
가정과 교회이다.
그 어떤 공동체도 가정과 교회에 비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도 가정도 불안정하다.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약하다.
그러다보니 떠돌이 교인들이 많다.
뼈를 묻어야 할 항존직 직분자들마저 교회를 옮겨다닌다.

-가정에 대한 소속감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이혼을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
자기 속으로 낳은 애도 버리는 일까지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정과 교회는 디딤돌과 같다.
디딤돌이 흔들리면, 그 위에 아무리 멋진 건물을 지어도 헛일이 되고 만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