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20: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마 8:14-2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6-11-02 00:00
조회
881
마태복음 강해 20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마 8:14-27)
2016. 9. 11.


프롤로그

-우리교회의 사명선언문은 이렇다.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제자가 되어 도시복음화,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예수 생명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교회 사명선언문은 마태복음 28:19-20을 기초로 하고 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복음만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교회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교회 개수를 늘리는 운동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럼 뭐라고 하셨는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하셨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게 우리 교회의 사명이고 모든 지상 교회의 사명이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 사역이다.
십자가와 부활 사역이었다.
화목제물 사역이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역이 무엇이었을까?
제자훈련 사역이었다.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래 계실 수 없었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제자를 키우는 일에 온 힘을 쏟으셨다.

-어떤 사람이 제자인가?

-먼저 국어사전을 살펴보자.
1.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
2. <기독교>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

-국어사전이 제자의 뜻풀이를 잘해 놓았다.
제자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다.
제자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반쪽 제자이다.
그는 학생이지 온전한 제자라고 할 수 없다.
제자는 잘 따르기 위해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제대로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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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제자인지를 시간 있을 때마다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을 제자라고 하셨다.
우선순위의 문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중요한 일은 긴급하지 않으며, 긴급한 일이 중요한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인생이나 전쟁 혹은 다른 어떤 것에서든 하나의 최우선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을 이 하나의 목적에 종속시킬 때만 성공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한 말이다.
그는 미국 34대 대통령을 지낸 군인출신의 사람이다.
그는 누구보다 시간관리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고, 그의 시간관리 매트릭스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시간관리에 효과적인 지침을 주고 있다.

-그의 매트릭스는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중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긴급성이다.
중요성과 긴급성을 두 축으로, 모든 일을 네 영역으로 배치하는데, 중요할수록 위쪽에 배치하고, 긴급할수록 왼쪽에 배치한다.

① 중요하고도 긴급한 일이 있다.
②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는 일이 있다.
③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는 일이 있다.
④ 중요하지도 긴급하지도 않는 일이 있다.

-여기서 가장 고민되는 일이 ②번과 ③번이다.
왜 ②, ③번인가?
①, ④번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②번은 아주 중요한데도 당장 급하지 않기 때문에 미루기 쉽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이뤄가야 하기 때문이다.
③번은 긴급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다가 분주병환자로 살 수 있다.
그 사람은 언뜻 보면 바쁘게 사는 것 같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여 사는 사람이다.
알맹이 없는 삶을 산다고나 할까...

-①번을 최우선순위라고 한다.
우리에게 있어 ①번이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①번이다.
예수님을 ①번으로 여기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이다.

-돈을 ①번으로 여기는 사람은 돈의 제자이다.
돈의 제자란 말은 없으니까 돈의 종이다.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이 제자이다.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여길 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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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제자라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의외의 가르침이다.

-일본 에도시대의 사람으로 반케이(盤, 1619~1690)라는 스님이 있었다.
어느 해 여름에 강습회를 열게 되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묵은 합숙소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골몰한 끝에 마침내 범인을 알아냈다.
그는 다름 아닌 같은 청강생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되자 그들은 바로 반케이 스님에게 몰려가서 부탁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오니 그자를 내쫓아 주십시오.”
-스님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며칠이 지났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그리고 도난 사건은 계속 일어났다.
스님이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해서 다시 스님을 찾아갔다.
도둑을 제발 좀 쫓아 달라고 스님에게 애원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스님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며칠이 지났지만, 역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스님 앞에 대들 기세였다.
“저희들이 여러 차례 부탁을 드렸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 주시지 않으니,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 놈을 내쫓아 주시 않으신다면, 차라리 저희들이 하산하겠습니다.”
-그 때 반케이 스님이 그들에게 말했다.
“정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여라. 제군들과 같이 정직한 사람들에게는 내 가르침이 필요 없을 듯 하니... 내가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람은 바로 도둑 같은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해 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야.”
이 말을 듣고, 도둑질한 자도 마침내 회개했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제자이다.
서로 미워하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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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를 맺는 사람을 제자라고 하셨다.

-물론 아무 열매나가 아니다.
좋은 열매이다.
모든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엉겅퀴가 포도를 가시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다.
주인은 우리를 관상수가 아닌 유실수로 심었다.
관상수는 보기 위해서 심지만 유실수는 열매를 얻기 위해 심는다.
유실수가 좋은 열매 맺지 못하면, 자리만 차지하는 것이다.
주인에게 영광은커녕 저걸 베야 되나 나둬야 하나 근심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가?
-빛의 열매이다.
일상 속에서 맺어야 할 생활의 열매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이다.
삶 속에서 맺어야 할 인격의 열매인 것이다.

-전도의 열매이다.
삶의 현장에서 맺어야 할 증인의 열매인 것이다.

-열매 맺는 사람이 제자이다.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좋은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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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제자라고 하셨다.
가장 일반적인 정의이자 가장 선명한 정의이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제자의 위대함은 따르는데 있다.
베드로의 위대함은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다는 데 있다.
베드로는 왠지 진득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끝까지 우직하게 따랐다.

-베드로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위기 중 하나가 본문에 소개되고 있다.
베드로는 제자 중에 유일한 기혼자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다.
늘 합숙만 하지 않았겠지만, 장모까지 모신 입장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데 쉽지마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나 장모의 적극적인 반대가 있었다면, 제자의 길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가정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은혜를 받았어도, 바로 생업을 접고 신학교에 들어가면 안 된다.
모든 가족의 동의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배우자의 동의는 있어야 한다.
믿지 않는 배우자를 뒀을 경우, 항존직을 받기 전에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역을 무리없이 감당할 수 있다.
가족의 협조 없이는,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힘들다.

-교우들이 목회자의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 가족의 협조 없이는 목회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데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내의 공이 컸다고 봐야 한다.
적극적인 협조는 못 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장애물이 되지는 않았다.
사실 베드로가 제자로서는 수제자였는지 몰라도, 남편으로서는 빵점에 가까웠다.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장모가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집에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장모가 열병으로 오늘 내일 해도 연락이 안 된다.
베드로 아내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대가 아니니 연락할 방법도 없고, 혼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럴 때, 남편에 대해 야속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예수님이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 “잠시 어디 좀 갔다 올 때가 있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런데 좀 가다보니 다른 곳이 아닌 베드로의 집이다.
베드로가 집을 떠난 지 오래 돼서, 가끔 가족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혼자만 빠지기가 뭐해서 참아왔는데, 예수님이 자기 속을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 집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심심하여 차나 한 잔 하러 다니는 그런 분이 아니기에, 혹시 자기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와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생각해봐도, 특별한 날인 거 같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집에 사람들이 와 있지....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지 며칠이 되었다.
그래서 이웃들이 걱정이 되어 찾아온 것이다.

-정작 사위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도 없으니, 그들이 속으로 한 마디씩 안 했겠나...
만일 그렇게 장모가 죽었으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계속 따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도착하자, 그곳에 와 있던 사람들이 더 반색을 했다.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구한 것으로 나온다.
막 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눅 4: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베드로 집에 온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예수님께 구했다.
그런 것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건강했을 때, 이웃들과 잘 지냈던 모양이다.
그녀가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살았다면, 그럴 때 누가 찾아오겠는가?

-교회에서도 할 수만 있으면, 교우들의 경조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인생이 별 건가?
일종의 풋앗이 아닌가?
우리교회가 규모가 큰 교회도 아니고, 경조사가 자주 있는 교회도 아니고, 교회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동참해야 한다.
그게 다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 상황에서 베드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야 할지 앉아야 할지 가시방석 같았다.
한쪽에서 연신 식은땀을 훔치고 있었다.
장모의 열병이 무서운 병이지만, 예수님이 온 이상 걱정은 안 됐다.
단지 아내한테 미안하고, 아픈 장모한테 죄송할 따름이었다.

-예수님이 앓아누워 있는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셨다.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처음엔 손이 불덩이 같았으나, 예수님의 손이 닿자, 열이 금방 내려가고 정상이 되었다.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들었다.
그제서야 베드로의 얼굴이 밝아졌다.
베드로는 그 동안 그저 묵묵히 예수님만 따랐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그의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제 베드로의 체면도 섰다.
베드로의 아내도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예수님과 함께 갔던 제자들도, 덕분에 그날 저녁 후한 대접을 받았다.

-저녁도 잘 먹었겠다 좀 여유가 있으려나 했는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이 왔다는 소문을 어떻게 들었는지,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 병든 자들을 데리고 몰려왔다.
저녁이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나아왔다.
제자들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우리 팔자에 쉬는 게 사치지’ 하며,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을 도왔다.

-그런데 치유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왔다.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예수님이 육신을 가지신 분이다.
우리와 다른 점은 죄만 없을 뿐이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시겠는가?
저녁에 쉼을 가져야, 또 내일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했다.
그러나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서 탈출구마저 막아버렸다.

-그 때 한 서기관이 나아왔다.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서기관이 나아오니 무리들이 비켜줬다.
에워싸여 이리저리 떠밀리던 예수님이, 비로소 숨 쉴 여유가 생겼다.
이럴 때는 서기관이 고마웠을 것이다.
보통 예수님을 찾아온 서기관들은, 논쟁을 하기 위해서나, 뭔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왔다.
그럼 이 사람은 일명 착한 서기관이다.

-그가 한 말을 통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참 이런 귀한 서기관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제자 중에 서기관 같은 사람도 한 명 정도는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아니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서기관은 예수님이 자기를 덥석 받아 주리라 기대했을지 모른다.
제자 중에 자기만한 사람은 없다.
실제로 자신이 예수님께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이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스타일의 랍비라서, 한 번 따라다녀 보고 싶었다.

-예수님은 대놓고 “안 돼” 하지 않았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서기관은 안정된 자리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뜨내기에 비유하셨다.
예수님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분이었다.

-서기관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나름 운명을 바꾸는 결정을 하고 비장한 각오로 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그래도 따르겠다는 말이 없다.
실망하여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서기관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신다.
저 하늘의 것을 얻기 위해 이 땅의 것을 포기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과 서기관의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혹시 좀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예수를 믿는가?
자기 삶을 지금보다 개선하기 위해 예수를 믿는가?
신앙은 생명의 문제이다.
예수 믿으면 살고 예수 안 믿으면 죽는다.
예수 믿으면 영생이고 예수 안 믿으면 영벌이다.
신앙을 생명으로 여기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다.

-예수님은 재미있는 분이시다.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자원한 서기관한테는 사실상 안 된다고 하더니, 제자 중에 먼저 가서 자기 아버지 장사하게 해달라는 부탁에 그냥 따르라고 하셨다.
물론 여기서 실제 초상이 난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아버지가 별세를 했는데, 예수님이 못 가게 했을 리가 없다.
짐작하기는 아버지가 고령이거나, 아니면 좀 편찮은 거 같다.
사실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있어야 유산을 얼마라도 받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예수님은 안 된다고 하셨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계속 따랐다면 제자가 되었을 것이고,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갔다면 제자로서 탈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왕 초상 이야기가 나왔는데...
초상 중에 주일이 겹칠 수 있다.
우리는 미리미리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초상이 주일과 겹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금요일에 죽으면 4일장을 치러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초상이 나서 상가가 먼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상복을 입은 채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라.
초상을 핑계로, 주일예배 드리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에게 저녁을 잘 대접받았지만, 치유 사역으로 인해 지친 몸을 이끌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셨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다.
제자들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 이렇게 대접을 잘 받은 날도 드물다.
그렇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제자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밝았다.
특히 베드로는 싱긍벌글이었다.

-배가 출발한지 얼마나 됐을까, 갑자기 큰 놀이 일어났다.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배가 물결에 덮일 정도로, 큰 놀이 일었다.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조차도, 배를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배가 물속에 침몰할 것만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태연하게 주무시고 계신다.
예수님이 그만큼 피곤하셨다는 증거이다.

-제자들이 분명히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이 그 배에 타고 계신다.
그런데도 큰 문제가 생겼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똑같은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우리에게는 문제의 해결을 부탁할 수 있는 분이 계신다.
그분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 앞에서 찾아갈 대상이 없으면 힘들다.
죽음 밖에 생각이 안 든다.
그래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는 다녀도, 극한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이 안 보여서 그렇다.
문제는 너무 큰 데 하나님이 안 보여서 그렇다.

-문제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이다.
내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문제가 없으면 내 믿음을 확인할 길이 없다.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내 믿음의 현주소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문제 때문에 죽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문제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할 기도가 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물론 1절만 하는 게 더 좋다.

-조금 숨 쉴만 하면, 이 문제를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 문제를 허락하셨습니까?”
“하나님 왜 우리 가정에 이 문제를 허락하셨습니까?”

-그리고 정신이 들면 문제를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하나님, 제가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이 문제를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세요.”

-최종적으로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이게 문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믿음으로까지 자라가기 바란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사람만이 진정한 제자이다.

-E. W. Blandy의 고백이 제자인 우리의 고백이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