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야곱) 강해 10: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창 29:31-35)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4-19 09:02
조회
573


구약인물(야곱) 강해 10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창 29:31-35)
2021. 4. 18.


프롤로그

-야곱은 원치 않게 두 여인과 결혼을 했다.
↳원래 야곱은 라헬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가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라헬을 얻기 위해 머슴 생활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
↳하지만 라반의 교활한 수에, 그는 레아를 첫 아내로 맞이해야 했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7년을 더 고생해야 했다.
↳실로 라헬을 향한 야곱의 집념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야곱의 가정은 한 남편에 두 아내로 시작했기 때문에, 언제라도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있었다.
↳불안한 동거인 셈이다.

-더군다나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대놓고 더 사랑했다.
↳그러니 자매는 경쟁자를 넘어,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다.
↳칼만 빼들지 않았다 뿐이지,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었다.
↳서로 내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둘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날 수 있는 싸움이다.
↳야곱도 중간에 끼어, 나름 심적인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이런 것 볼 때에, 참 부모노릇 잘해야 한다.
↳자녀를 적당히 출가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잘못된 판단으로, 자녀를 평생 불행하게 할 수도 있고, 자식들로부터 평생 원망들을 수도 있다.
↳라반은 어떻게든 딸을 치우기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럼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실상 그의 관심은 야곱의 노동력을 이용해먹는 것이었다.
↳라반은 딸들의 장래보다는, 자기 재산 늘려 가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다.
↳참 못된 애비, 못난 애비가 아닐 수 없다.
↳딸들도 이를 나중에 눈치를 채고,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갖게 된다.
↳아무튼 이번 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레아였다.
↳앞으로 레아가 자기 앞에 닥친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레아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엔 성공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결혼은, 어떻게 보면 안 하니만 못하다.
↳레아는 아버지가 불러서, ‘동생 대신에 네가 야곱에게 들어가라’고 했을 때, 자기를 생각해 주는 아버지에 대해 무척 감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심 이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일 거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자식 낳고 정들면, 남편 사랑도 자연스럽게 자기 것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계산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한 지 불과 7일 만에, 아버지가 야곱에게 동생 라헬도 아내로 준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자매가 한 남자를 두고 서로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그건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전쟁 같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레아가 라헬을 제치고, 남편의 마음을 차지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외모를 중시하는 야곱에게, 레아는 처음부터 눈에 차지 않았다.
↳더군다나 라헬은 야곱의 첫사랑 아닌가?
↳라헬은 외모나 성격까지, 어머니 리브가를 쏙 빼 닮았다.
↳또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아내가 된 레아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레아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좌절감만 싹트고, 상처만 더 깊어갔다.

-누가 봐도 레아는 실패자이다.
↳그럼 레아는 그렇게 실패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게 레아의 운명인가?
↳레아는 그렇게 살도록 팔자지어진 것인가?
↳아니다. 레아에게 희망이 있다.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희망의 빛줄기가, 레아를 향해 비춰왔다.

-그 희망의 빛줄기가 무엇인가?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레아를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한 레아였지만, 하나님은 그런 레아를 긍휼히 여기셨다.
↳사람한테도 사랑받고, 하나님께도 긍휼을 입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그게 우리의 이상이고, 우리 자녀들에게 바라는 꿈이다.
↳그런데 만약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하나님께 긍휼을 입는 것인가?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인가?

-같은 아내였지만,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라헬에 비해, 눈에 띤 차별을 받았고, 노골적인 차별을 당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야곱이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장면을 누군가 보고 있었다.
↳바로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이 레아의 딱한 사정을 보시고, 그녀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아내의 기본 권리마저 무시당하는 레아를 보시고,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런 차별대우를 받고도 오갈 데 없는 가련한 레아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겨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켜보시는 분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을 보실 뿐만 아니라,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백성을 보시는 분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생업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먼저 보신 분이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하는 것을 보신 분이다.
↳더 나아가 곤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민중들을 보신 분이다.

눅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불쌍히 여기사”의 원어 ‘에스플랑크니스데’는, ‘창자까지 뒤틀려지는 것’을 의미 한다.
↳우리의 정서로 표현하면, ‘가슴앓이를 하다’는 뜻이다.
↳주님이 과부를 보신 게, 언뜻 보신 것이 아니다.
↳계산적인 시각으로 보신 것이 아니다.
↳끙끙 가슴앓이를 하며 보셨다.
↳뭔가 도움이 되어 주려고 보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보고 계신다.
↳우리가 딱한 사정에 처해 있을 때, 가까이서 보고 계신다.
↳우리가 차별대우를 받고 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계신다.
↳우리가 너무나 괴로워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 가슴앓이를 하며 보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적절하게 개입하시어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레아의 경우를 보라.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어떤 긍휼을 베푸셨는가?
↳그녀의 태를 열어주셨다.
↳대신에 언니도 몰라보고,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했던, 라헬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라헬의 태를 잠시 닫아두셨다.
↳하나님이 속도조절을 하신 것이다.

-만약 그 상황에서 라헬이 첫 아들을 낳았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레아는 라헬의 등살에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살 소망이 끊어졌을지 모른다.
↳레아가 먼저 임신한 것이, 하나님의 공평이라고 본다.

-야곱이 들어가도, 레아보다는 라헬에게 자주 들어갔을 텐데, 라헬에게는 기미가 없고, 레아가 먼저 임신을 했다.
↳야곱이 레아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레아에게 들어갔을까 의문이 들 수 있다.
↳아마 결혼한 이상,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남편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가끔씩 레아에게 들어가는 날에도, 야곱은 질투심 많은 라헬의 눈치를 살펴야 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야곱도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레아는 라헬의 시샘을 뒤로하고, 첫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했다.
↳야곱 집안에 정식으로 장남이 태어난 것이다.
↳장남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는가?
↳‘르우벤’이라고 지었다.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로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레아는 혼자말로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아이를 갖기 전에, 그녀가 얼마나 스스로 괴로워했는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에 목말라했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에게 사랑의 샘물을 넉넉하게 퍼주지 않았다.
↳레아는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나아갔다.
↳자기의 괴로움을 하나님께 호소한 것이다.
↳그 기도 응답으로 맏아들 ‘르우벤’을 얻은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레아가 기도하기 전부터, 그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러나 레아가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개입하셨다.
↳레아가 적극적으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실행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우리가 무릎 꿇을 때에,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레아는 장자를 얻고 난 후에, 이런 말을 한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온, 레아의 한이 서려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레아의 생각일 뿐이었다.
↳야곱이 자기를 더 사랑해주지는 않았고, 대신 라헬의 질투는 더 매서워졌다.
↳레아는 더 큰 실망과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 레아가 또 임신을 했다.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레아는 둘째 아들을 출산했다.
↳하지만 라헬에겐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라헬도 약간은 초조해졌을 것이다.
↳남편이 자기를 대하는 것도,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남편이 레아 방에 들르는 횟수가 잦아졌고, 거기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자, 라헬의 얼굴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뭐라고 지었는가?
↳‘시므온’이라고 지었다.
↳‘시므온’은 ‘들으심’이란 뜻이다.

-누가 무엇을 들으심인가?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이 부분을 공동번역성서로 다시 읽어보면...
“내가 차별대우를 받아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레아가 남편에게 차별대우를 받을 때, 하나님 앞에 하소연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보면, 큰딸이 마음 씀씀이가 조금 나은 것 같다.
↳레아는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곧바로 남편을 공격하거나, 라헬과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지 않았다.
↳자신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가지고 갔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한편으론, 레아가 너무 말을 아낀 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있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니면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좋은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말을 해서 좋을 수도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게 나중에 지나고 보면 더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그만한 인격이 되지 않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마저 하나님께 맡기면, 그 사람을 옮기시든지, 나를 옮겨주시든지 할 것이다.

-레아는 하나님이 자기의 고통을 들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둘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짓고, ‘이제는 남편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겠나’ 하고 기대했지만, 야곱의 라헬을 향한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레아는 또 한 번 깊은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레아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은 계속 되었다.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아브라함 집안에 아들이 귀했는데, 연속으로 아들 셋을 낳았다.
↳셋째까지 낳은 레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야곱, 당신은 결국 내 품으로 돌아오고 말 거야!’
↳레아의 그런 마음이 셋째 아들의 이름에 담겨 있다.
↳셋째 아들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는가?
↳‘레위’라고 지었다.
↳‘레위’는 ‘…연합하리로다’는 뜻이다.

-레아의 소원은 소박했다.
↳그녀가 남편에게 뭐 대단한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거창한 것을 구해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레아는 남편과 연합하는 것을, 자기 평생의 소원으로 여겼다.

-남의 남편이 아니다.
↳동생의 남편이 아니다.
↳내 남편, 곧 자기 남편과 연합하는 것이다.

-가정의 불행이 별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 남편과 연합하지 못하는 아내가 불행한 것이다.
↳자기 아내와 연합하지 못하는 남편이 불행한 것이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연합하지 않는 부부들이 의외로 많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부부가 아닌 동거인(同居人)으로 사는 것이다.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연합이 먼저인가? 동거가 먼저인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다.
↳‘동거’ 이전에 ‘연합’이란 말이다.
↳부부가 되는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합’은 반드시 ‘동거’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부부의 연합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고전 7: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별거하여 연합함은 불가능하다.
↳연합하여 동거해야 정상적인 부부이다.

-사실 레아는 야곱과 동거했다.
↳분명히 한 지붕 아래서 살았다.
↳그러나 남편과 연합하지는 못했다.
↳기본적으로 야곱과 잠자리도 같이 했다.
↳그러나 남편과 마음까지 연합하지는 못했다.
↳레아의 남편과 연합하고픈 갈증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레아의 소박한 소원은, 남편과 연합하는 것이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남편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아보는 거였다.
↳참 너무나 안쓰럽고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레아의 소박한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연년생으로 낳았다고 해도 4년 아닌가?
↳아무리 옛날이라고 하지만, 4명을 연년생으로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2년에 한 명씩 낳았다고 해도 8년의 세월이다.
↳결코 짧은 날들이 아니다.
↳레아도 끈질기고, 야곱도 끈질기다.
↳서로 팽팽하게 사랑의 줄다리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로 레아는 네 번째 아이를 출산한다.
↳넷째 아들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는가?
↳‘유다’로 지었다.
↳‘유다’란 ‘찬송’이란 뜻이다.
↳앞의 세 아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지은 이름이다.

-그렇담 레아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넷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렸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제 레아의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다.
↳상처받을 대로 받았다.
↳오직 남편만 믿고 의지하려고 했었던, 자신의 지난 삶에 회의가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다.
↳자기 마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말씀을 잘 보자.
↳레아가 넷째 아들을 낳으니까, 야곱이 ‘그 동안 내가 당신한테 너무 무심했던 거 같소’ 하면서, 레아에게로 돌아왔는가?
↳아니다. 그러니까 레아가 남편이 자기에게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찬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환경이 바뀌어서 찬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레아 앞에는 여전히 눈물의 환경이 있다.
↳아내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고통스런 현실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레아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은혜를 받아도, 환경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설사 달라진다고 해도, 답답할 정도로 서서히 달라진다.
↳우리에게 처해진 현실이, 갑작스럽게 바뀌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내 마음을 달리 먹어야 한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의 시에, 주숙일씨가 곡을 붙인 <예수를 생각하고>라는 찬양이 있다.
↳노랫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부를 때, 더 은혜가 되는 찬양이다.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나의 가난함도 슬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남의 부유함도 부럽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오직 감사한 마음이 넘칠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몸의 환난도 괴롭지 않고 괴롭지 않고
그 행복도 사모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오직 평강과 만족만 있을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치 않고 실망치 않고
그 성공에 뛰며 기뻐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오직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여전히 가난하다.
↳그런데 예수를 생각하고 감사해한다.
↳여전히 몸에 환난이 있다.
↳그런데 예수를 생각하고 만족해한다.
↳여전히 일의 실패가 있다.
↳그런데 예수를 생각하고 승리를 믿는다.

-예수를 생각하기 전에는 가난 자체를 보았다.
↳남의 부유함을 보았다.
↳감사는 없고 불평만 가득했다.

-예수를 생각하기 전에는 몸의 환난을 보았다.
↳남의 건강함을 보았다.
↳만족은 무슨 불만이 충만했다.

-예수를 생각하기 전에는 실패 그 자체를 보았다.
↳남의 성공을 보았다.
↳자신에게 실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했다.

-세상은 육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본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눈이 곧 믿음이다.

-하나님은 지혜자를 통해, 마음의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마음을 지키는 것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다는 말이다.
↳마음을 지키는 여부에 따라, 이 땅에 천국의 삶을 살 수도 있고, 지옥의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야곱은 두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집안에 편할 날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게 하셨는데, 본의는 아니지만 일대이로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건 야곱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야곱은 두 아내 중 라헬을 편애했다.
↳레아는 아내의 기본 권리마저 무시당하곤 했다.
↳그걸 하나님이 보시고, 레아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다.
↳그래서 레아의 태를 열어, 네 명의 아들을 연달아 안겨주셨다.
↳레아는 아들을 하나씩 낳을 때마다, 남편의 사랑이 자기에게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세 아들의 이름 속에, 레아의 그런 아픈 마음이 담겨있다.
↳레아는 그때마다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하지만 넷째 아들인 유다를 낳은 후, 레아는 신앙적으로 한층 성숙해졌다.
↳남편이 돌아오면 좋겠지만, 혹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른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