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2021):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번째 말씀(눅 23:44-4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3-28 12:23
조회
571


종려주일(2021)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번째 말씀(눅 23:44-46)
2021. 3. 28.


프롤로그

-해마다 종려주일이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 곧 가상칠언을 살펴보고 있다.
↳첫 번째 말씀부터 여섯 번째 말씀까지를 정리해 보겠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첫 마디는 이랬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용서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저주하지 않고 용서하셨다.
↳예수님은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용서의 삶을 사셨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둘째 마디는 이것이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구원을 부탁해오는 한 강도에게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조롱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했고 결국 구원을 허락받았다.
↳구원은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셋째 마디는 이것이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아들로서 모친을 부탁하는 말씀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아들로서 가족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넷째 마디는 이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이다.
↳아버지께 버림받은 아들의 절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버리신 것이다.
↳주님이 버림받으심으로 우리가 택함을 입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다섯째 마디는 이것이다.
“내가 목마르다”
↳십자가에서 죽어 가신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의 절규였다.
↳죄로 인해 우리가 당해야 할 육체적 고통을 주님이 대신 당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는 더 큰 목마름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며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여섯째 마디는 이것이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십자가 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이다.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셨다는 말이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일곱째 마디를 살피겠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우리는 이 말씀이 있기 전의 배경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제 육시 쯤 되었을 때 갑자기 온 땅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대낮에 어두움이 온 땅을 덮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성경은 단지 정오 무렵에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는 정보만 말해줘서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신 것으로 보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주적인 사건이란 뜻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전 인류가 흑암의 권세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흑암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쏟아졌다.
↳그로 인해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들을 예수님이 건져내셨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흑암의 권세는 워낙 강하여 우리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손을 뻗어 건져내신 것이다.
↳우리를 건져내어 어떻게 하셨는가?
↳아들의 나라, 곧 천국으로 옮기셨다.
↳우리가 흑암의 권세 아래 있는 ‘지옥인생’에서, 예수의 권세 아래 있는 ‘천국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전 인류가 어둠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어둠의 저주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부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어둠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받으신 저주는 원래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였다.
↳율법에 의하면 죄 아래 있는 전 인류는 다 저주 아래 있다.
↳이 저주를 피해갈 수 있는 대상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끔찍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이제 우리는 저주와 무관하게 되었다.
↳단순히 저주와 무관하게 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었다.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의 약속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단 말이다.
↳우리가 ‘저주인생’에서 ‘축복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땅에 임한 어둠은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이다.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놓는 것은,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아버지로서 어떻게 눈뜨고 보실 수 있었겠는가?
↳온 땅의 어둠은, 차마 아들의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없어, 두 눈을 가리신 아버지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그건 또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달라는 모세의 요구를 바로가 번번이 묵살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아홉 번째로 내리신 재앙이 흑암이었다.
↳애굽 온 땅에 흑암이 3일 동안 있게 했다.
↳해도 달도 별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온 애굽을 사흘 동안 뒤덮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
↳어둠은 바로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노 표시였다.

-사탄과 그의 지휘 아래 있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기쁨의 축배를 들고 있을 때, 온 땅에 흑암을 3시간 동안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이글거리는 분노를 보여주신 것이다.
↳‘자신에 대한 슬픔’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신 하나님의 마음, 이게 온 땅에 어둠이 임한 두 번째 의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 외에, 또 하나의 이적이 있었다.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어둠도 그랬지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성전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기 위해 휘장을 쳐놓았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봉사하는 예물과 기구가 놓여 있었고,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여 있다.
↳지성소에는 제사장들도 들어갈 수 없었다.
↳들어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오직 한 사람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도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고, 일 년에 단 한 차례만 허용되었다.
↳그것도 희생의 피를 뿌린 이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걸렸는데, 휘장을 시원찮게 칠 수 있었겠는가?
↳휘장은 아주 튼튼했다.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단단히 짠 것이었다.
↳예리한 칼로 찢지 않는 한 찢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진 것이다.
↳휘장이 위로부터 두 쪽이 난 것이다.

-휘장이 찢어진 시점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을 때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산에서 변모하셨을 때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였다.
↳예수님이 죽으신 순간,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휘장이 찢어졌다.
↳그토록 튼튼하게 직조되었던 휘장이었건만, 한 가운데로 찢어져 두 쪽이 되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건 성소와 지성소의 구별이 사라졌단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이 없어졌으니까,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휘장이 사라졌어도, 제사장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됐는가?
↳우리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이다.
↳이제 우리는 기도를 분향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봉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를 찢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셨다.
↳그 길은 누구도 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길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혀 새로운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통해 매일 아버지께 나아가야 한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아닌 담대한 마음으로 말이다.
↳우리는 담력을 얻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담력”의 원어 ‘파르레시안’은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내 공로가 아닌 예수의 피 공로이다.
↳우리가 보혈을 지나서 아버지 품으로 갈 수 있다.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보혈을 지나서이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바울이 그토록 강조한 것도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100% 하나님의 은혜이다.
↳100%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감격에 겨워 이렇게 외쳤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찬송가 284장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더럽기가 한량 없던 우리들
아무 공로 없이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 지금 되었네
주의 그 사랑 한량 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주의 그 사랑 한량 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우리가 100% 예수 공로로 구원받았다고 고백을 했으면, 고백자의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
시 17: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신앙을 빌미로 이 세상의 탐심을 만족시켜보려고 한다.
↳자기의 탐심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모든 게 수단이 된다.
↳예수 이름도 수단이 되고 기도도 수단이 된다.
↳적어도 그 정도의 수준은 넘어서야 신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이어지는 시편 기자의 고백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시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행복이요, 만족이라고 고백한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남긴 마지막 말씀을, 직접적으로 살펴보겠다.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첫 마디도 기도이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 역시 기도이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기도의 주님임을 잘 드러내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마리아의 모태에서 탄생하셨다.
↳어릴 때부터 기도를 먹고 자라셨다.
↳세례를 받으실 때도 기도하셨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다.
↳열두제자를 선택하실 때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주님이 살아오신 기도의 삶이, 도저히 기도할 수 없는 순간에 기도하실 수 있었던 비결이다.
↳주님이 결정적인 순간에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기도의 삶을 살아오셨기에 가능했다.
↳평소엔 기도와 담쌓고 살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만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주님처럼 기도로 마치고 싶지 않은가?
↳조용히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 앞에 서고 싶지 않은가?
↳이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일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이걸 알아야 한다.
↳그런 소망을 가진 것만으로는 안 된다.
↳평소 기도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 소망을 이루기 어렵다.

-우리는 하루 한 시간은 기도에 투자해야 한다.
마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였지만,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음으로 결국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다.
↳하루 중 보다 많은 시간을 주님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적어도 한 시간은 기도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하루 한 시간은 깨어있자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리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으셨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하다보면 주님을 닮게 된다.
↳기도의 삶을 사신 주님을 닮을 수밖에 없다.
↳사람도 서로 사랑하면 닮는다.
↳생각, 말, 행동은 물론이고 심지어 목소리, 얼굴까지 닮는다.
↳우리가 인생 여정에서 주님과 함께 한지, 상당한 시간들이 흘렀다.
↳수십 년이 흐른 분들도 있다.
↳우리가 주님을 상당히 닮아 있어야 정상이다.

-예전에 논산에 있는 <시튼 영성의 집>이란 수녀원에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향심기도를 배우는 중,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강사였던 수녀님의 대답이 기억에 남아 있다.
↳“기도의 열매는 삶 속에서 나타납니다.”

-교회에서 기도했으면 가정에서 열매로 나타난다.
↳교회에서 기도했으면 일터에서 열매가 나타난다.
↳열매를 나타내려고 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열매를 맺으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그냥 맺히는 것이다.

-기도의 열매가 삶 속에서 나타난다는 말은, 기도하면 기도자 자신이 변한다는 말이다.
↳자기 밖에 모르는 탐욕의 기도에 절여있지 않는 한 말이다.
↳우리는 가능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기 뜻을 포기하지 않는 한, 변화된 기도자의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내일부터 고난주간기도회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해보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집에서라도 기도회에 동참하자.
↳할 수만 있다면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자.

-주님이 이 땅에서 드리신 마지막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
↳자신의 영혼이었다.
↳주님이 최후의 순간까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 당신의 영혼이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자신의 영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내 영혼이 안녕한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내 영혼이 안녕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영적생활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바치고 있느냐로 알 수 있다.
↳영혼을 위하는 일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느냐로 알 수 있다.

-요즘 삶의 주 관심사가 무엇인가?
↳영혼에 유익한 것들인가?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인가?
↳여러분이 훗날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인가?
↳거기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다면 정리하는 게 좋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최고의 투자는, 영혼에 대한 투자이다.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쏟아부어야할 관심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순응해야 할 창조주의 섭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것이냐가 문제이다.
↳꼭 극적으로 죽을 필요는 없다.
↳꼭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필요도 없다.
↳가족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예수 잘 믿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평범하게 죽을 수 있다.
↳이왕이면 평범한 죽음보다는 비범한 죽음이고 싶겠지만, 사실 평범한 죽음과 비범한 죽음의 구분은 죽는 순간에 있지 않다.
↳그가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느냐에 있다.
↳그가 비범한 삶을 살아왔다면, 평범하게 죽어도 비범한 죽음이다.

-한 강도는 죽을 때 말 한 마디 잘해서, 극적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죽음을 비범한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한 웨슬리는 평범하게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죽음을 평범한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한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 런던에서 87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웨슬리는 2월 25일부터 고열에 시달리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3월 1일, 즉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무엇인가 쓸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쓸 수가 없었다.
↳이 때 옆에 있던 사람이 쓰고 싶은 것을 말씀해주신다면, 자기가 대신 받아 적겠다고 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 쓸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 날 오후에 웨슬리는 놀랍게도 다시 기력을 회복해서, 이삭 왓츠(Isaac Watts)의 찬송시를 읊조렸다.
↳이 때 웨슬리 주변에는 의사인 화이트헤드 박사와 엘리자베스 리치, 찰스 웨슬리의 미망인과 딸, 그리고 다른 9명의 사람들 등 모두 13명이 있었다.

-웨슬리는 힘을 모아서 다시 한 번 외쳤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3월 1일 밤새 웨슬리는 자주 이삭 왓츠의 찬송시 중에 "내가 찬양하리, 내가 찬양하리"(I'll praise; I'll praise)라는 가사를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그 다음날 아침, 즉 3월 2일 오전 10시에, 웨슬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안녕!"(Farewell!)이라는 최후의 말을 외치고서는, 조금의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죽었다는 것에 있지 않다.
↳장수했다는 시간의 문제도 아니고, 안방에서 숨졌다는 장소 문제도 아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의 신앙적인 태도였다.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맡기고, 찬송시를 암송하다가 죽어갔다는 데 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고백했다는 데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마지막 말씀은 시편 기도였다.
시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유대인 어머니가 자녀들이 잠을 청하기 전에 드리게 하는 기도라고 한다.
↳주님도 잠자리에 드실 때마다, 이 기도를 하셨을 것이다.
↳33년 생애에서 매일 드렸다면, 아마 일만 번도 넘게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드린 기도는, 저녁이 아닌 낮에 드려야 했다.
↳침대에 누워서가 아닌, 십자가에 달린 채 드려야 했다.

-우리도 마지막 기도를 드려야 할 때가 온다.
↳그 기도를 언제 드리게 될지, 어디서 드리게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한 번은 드려야 한다.
↳그날 우리의 마지막 기도는 어떤 내용일까?

-우리의 남은 삶 동안 영혼 관리를 잘 하자.
↳지금 보다 많은 시간을 우리 영혼에 투자하자.
↳그리고 마지막 기도를 준비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