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야곱) 강해 17:내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창 32: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6-20 12:23
조회
531



구약인물(야곱) 강해 17
내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창 32:1-12)
2021. 6. 20.


프롤로그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살았던 20년은, 참으로 갈등의 세월이었다.
↳에서를 피해 어쩔 수 없어서 가긴 했지만, 그곳에서 마음 고생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어,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는 가까스로 라반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홀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반에게 발각되었고 추격을 당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겪었다.
↳그 와중에서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시지 않았다면, 라반이 야곱을 해쳤을 수 있다.
↳야곱은 라반의 속박에서 벗어나긴 했다.
↳이제는 자유인이 되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야곱은 처자식을 이끌고 많은 재산을 싣고,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이지만, 그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부담스런 사람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2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에서는 야곱에게 있어 언제나 부담스런 존재였다.

-20년 전에 야곱과 에서 사이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탈취했다.
↳어머니 리브가가 각본을 쓰고, 야곱이 주연한 성공한 사기극이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했고, 형은 야곱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빛나는 조연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이삭은 그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에서는 다르다.
↳아무리 쌍둥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형은 형이다.
↳자신이 야곱의 그늘에서 살 수 없는 노릇이다.
↳형이 동생을 섬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카드가 무엇이었는가?
↳야곱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도 사람인데,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남모를 고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야곱을 살려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야곱을 죽이기로 최종 결심했다.
↳문제는 때를 언제로 잡느냐였다.
↳그가 잡은 때가 27장 41절에 나와 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이다.

-그가 그 때로 잡은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 살았을 때 그 사건이 터지면, 아버지가 편히 눈감을 수 없을까봐 그랬다.
↳그런데 에서의 계획은, 리브가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에서가 너를 죽이려고 하니까, 하란의 외삼촌 집에 잠시 가 있으라”고 했다.
↳에서의 화가 풀리면, 곧 연락을 취해 다시 집에 돌아오게 하겠다고 했다.

-리브가의 말을 믿고, 야곱은 낯선 땅 하란으로 갔다.
↳날만 새면, 가나안에서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20년이 지나,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날 때까지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있지만, 이때의 무소식은 희소식이 아니다.
↳리브가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에서의 분노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20년이나 지났지만, 에서가 야곱에 대해 아직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야곱은 이제 라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적으로도 그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또한 서로의 땅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계약을 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다.
↳야곱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에서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에서가 아직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
↳20년 전의 감정 때문에 야곱을 해치려고 한다면, 야곱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야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런 고민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야곱에게 천사들이 나타났다.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천사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년 전에도 천사를 만났다.
↳28장 10절 이하에 보면, 집을 떠나 벧엘 들판에서 땅을 요 삼고, 하늘을 이불 삼고,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사닥다리 위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꿈이 아닌 생시에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지었다.

-그럼 하나님이 야곱에게 천사들을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가?
↳앞으로 야곱에게 닥칠 위험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의 믿음을 잃고, 형을 두려워하여 허둥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형의 군대보다 훨씬 많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시며, 야곱더러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사인을 보내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위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 우리를 은혜로 무장시켜 주시길 원하신다.

-은혜 받은 상태에서 위기를 맞는 것과, 은혜가 바닥난 상태에서 위기를 맞는 것은 천지차이다.
↳은혜 받은 사람은, 위기를 맞아 버텨낼 수 있다.
↳물론 불안하기도 한다.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견디고 이겨낸다.
↳그러나 은혜가 없는 사람은, 쉽게 넘어지고 만다.
↳은혜가 있긴 해도 깊이가 없으면, 조금 견디다가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 아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천사를 보내신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항상 야곱보다 한 걸음 앞서 가셨다는 말이다.
↳야곱이 썩 잘한 일도 없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처신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야곱보다 몇 발짝 앞서 가이드가 되어주셨다.
↳지금까지 야곱이 걸어온 것을 생각해 보자.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하나님이 항상 앞서 행하시지 않았는가?

-그럼 하나님이 야곱에게만 그렇게 해 오셨는가?
↳야곱만 특별 대우를 하신 건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삶을 돌이켜보자.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인생 여정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마음에 차지 않았겠지만, 그분은 우리를 놓아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의 약속대로, 과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과연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 한결 초조한 마음이 여유를 찾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만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야곱은 아버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에서에게 사자를 보냈다.
↳어떻게 해서든지, 에서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에서의 적개심을 누그러뜨리지 않고는, 아버지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야곱이 먼저 화해의 손짓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처를 준 사람이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없고, 다 상처받은 사람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먼저 화해하면 나도 화해하겠다.’
↳굳이 자신이 먼저 화해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왜인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화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문제는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큰 싸움이 언제 일어나는가?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이다.

-누구나 성자가 아닌 한, 자존심을 건드릴 때 견디기 힘들다.
↳가정에서 부부간은 물론이고 자녀들에게도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한다.
↳교회에서도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화해를 할 때는, 특히 말을 잘해야 한다.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성의 없이 화해하다가, 더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야곱이 에서를 어떻게 호칭하는지 보라.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에서를 “주”라고 하고 자신을 “종”이라고 한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이다.
↳사실 따지면, 누가 윗사람이라 할 것도 없다.
↳몇 십분 차이나 났겠는가?
↳그러나 야곱은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다.
↳화해를 하는데 있어, 겸손보다 위대한 전략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겸손하게 다가온 화해의 악수를 뿌리칠 수 없다.

-우리의 하는 말에, 논리가 부족하고, 정의감이 없어서, 상대방이 듣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태도가 교만하기 때문에,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해를 하려면, 오만한 자세를 버려야 한다.
↳말속에 겸손함이 배어나야 한다.
↳정말 화해하고 싶다는 진정성이, 말속에 담겨있어야 한다.

-야곱은 자신에게 재산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가?
↳자기 재산 자랑하는 것인가?
↳아니다. 형의 신세를 지러 가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삭의 재산에 대한 상속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화해에 조건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국제 정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화해라기보다는 거래이다.
↳화해는 순수해야 한다.

-화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관계의 회복이어야지, 다른 어떤 것이 중간에 끼어들면 안 된다.
↳야곱은 오로지 은혜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은혜란 자격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를 말한다.
↳자신은 은혜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무조건 받아달라는 것이다.
↳과거를 묻지 말고,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사정한다.

-화해를 신청하러 사람을 보냈건만, 오히려 불길한 소식이 들려온다.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전갈이다.
↳에서가 사백 명의 사람을 데리고 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야곱을 환영하러 오는 것인가? 싸우러 나오는 것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환영하러 나오는 것 같지 않다.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야곱은 겁이 덜컥 났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자기가 지은 죄도 있고 해서, 틀림없이 에서가 자신을 죽이러 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야곱 입장에서 달리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년이 지났지만, 자기 마음속에 에서는 불편한 관계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혹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회개하십시오” 하면 “아멘” 하는 사람이 없다.
↳회개하라는 말에, 기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공생애 사역에 나선 주님의 말씀 첫 마디는, 아이러니 하게도 “회개하라” 였다.
↳주님의 말씀을 복음이라고 한다.
↳그럼 회개하라는 말도 복음이란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회개하란 말이 복음이 될 수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회개하라고 했는지를 알면, 쉽게 납득이 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회개하라는 것인가?
↳하나님을 위해서인가? 우리를 위해서인가?
↳우리를 위해서이다.

-어떻게 회개가 우리를 위한 것인가?
↳회개를 하지 않으면, 죄 용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답하기도 어렵고, 그렇지 않다고 답하기도 어렵다.
↳그럼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으면, 우리가 지옥에 가는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회개하는 것인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이다.

-우리가 왜 할 수만 있으면, 빨리 화해해야 하는가?
↳화해를 늦출수록 누가 손해인가?
↳자기가 손해이다.
↳화해를 하지 않으면, 자기 손해인줄 모르는 사람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 평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인해 불화에 관계에 놓이는 것을 못 견뎌한다.
↳왜?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만약에 에서가 정말로 마중을 나왔다고 하면, 야곱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야곱은 7-8절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일단 에서가 사람을 데리고 온다는 말을 듣는 순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야곱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재산을 두 갈래로 나누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다.
↳에서의 공격에서 반이라도 살아 남겨야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주도면밀한 것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옛날 버릇 그대로다.

-야곱은 얼마 전의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것을 잊고 있다.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편이 돼주신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지금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1-2절에서 보았듯이,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대하고 그냥 왔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야곱은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어떻게 했는가?
↳에서에게 화해의 사자를 보냈다.
↳형의 분노를 풀기 위해 애썼다.
↳겸손한 태도를 취했고, 그 앞에 납작 엎드렸다.
↳즉 자기 방법대로 했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터득한 방법대로 처신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다.
↳야곱은 위급한 상황이 닥치고 난 후,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기도보다 앞서가는 것이 우리에게 있으면 안 된다.
↳신앙인에게 그 어떤 것도 기도보다 앞서면 안 된다.
↳기도 없이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아도, 그게 잘되는 것이 아니고, 성공하는 것 같아도, 그게 성공한 것이 아니다.

-명심하자. 기도가 먼저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
↳기도하느라 한 시간 늦게 시작한 것이, 기도하지 않고 한 시간 빨리 시작한 것보다 낫다고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사람이 다급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다.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자기 방법이 모두 소용없게 되자, 하나님을 찾고 매달렸다.
↳그가 다급하긴 다급했나 보다.
↳기도 중에 자신의 할아버지까지 들먹이고 있다.
↳할아버지야 그렇다 치고, 별로 좋은 관계에 있지도 않았던 아버지까지 들먹인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그런데 자기 하나님은 없다.
↳그만큼 경황이 없었다는 뜻이겠지만, 사실 야곱의 믿음이 그렇지 못했다.
↳20년 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아온 그였다.
↳그가 자원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야곱을 돌보셨지, 야곱이 하나님을 찾는 법이 없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그 때를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동안에 조금 있었던 신앙마저 던져버리고, 제 갈 길로 가버린다.
↳어려운 일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만난다.
↳위험한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문제는 그때 내가 기도하느냐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도 기도하느냐는 것이다.
↳보통 때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던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부딪혀서 기도하기 어렵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이다.

-야곱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부분이다.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다.
↳하나님은 야곱이 고향에 돌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두 번 약속하셨는데, 한 번은 집에서 떠난 직후였고, 또 한 번은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이었다.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는 기도는, 참 좋은 기도방법이다.
↳그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을 읽어야 한다.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을 성찰하는 부분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

-야곱은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있다.

-이 부분을 공동번역성서로 다시 읽겠다.
“당신이 이 종에게 베푸신 한결같으신 사랑을 저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고, 이렇게 고백을 이어가고 있다.
10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게 된 것이다.
↳자기의 수단이 좋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소유를 은혜의 안목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 동안 그는 모든 것이 자기의 공로인줄 알았다.
↳자기가 수단이 좋아서, 그렇게 된 줄 알았다.
↳그래서 악착같이 밧단 아람에서 가지고 나왔다.
↳작은 것 하나도 남겨두고 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 부분이 생략될 때가 많다.
↳아니면 너무 형식적으로 지나갈 때가 많다.
↳사실 좋은 기도는 감사가 간구보다 많은 기도이다.
↳감사의 제목이 열 개면, 간구의 제목은 서너 개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간구를 하기 위해 감사를 한다.
↳그냥 간구하기가 속보이니까, 인사차 감사를 하기도 한다.
↳어떤 분은 맨 구하기만 하더니,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기도 드립니다” 하더라.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어딘지 어색하단 생각이 들었다.
↳굳이 ‘감사기도’한다고 할 필요는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필요를 구하는 부분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자신의 현실의 문제를 솔직하게 내놓았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다.
↳“하나님, 형의 손에서 건져 주십시오.”
↳“제발 에서의 손에서 구해주십시오.”
↳“그가 나를 죽이고 처자식까지 다 죽일지 모릅니다.”
↳“하나님 저 솔직히 너무 겁납니다.”
↳“두려워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야곱의 간구를 보라.
↳조금이라도 위선적인 것이 있는가?
↳약간이라도 맘에도 없는 내용이 있는가?
↳뭐 남 들으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가?
↳없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기도였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시는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이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자기 필요를 구하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야곱이 이제라도 자기 방법을 내려놓고 기도했다는 것이 의미 있다.
↳야곱의 기도는 야곱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다시 기도의 자리를 찾자.
↳기도의 무릎을 꿇음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되찾자.
↳기도의 두 손을 모음으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붙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