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61:지도자에게는 지도자의 삶이 있습니다.(마 23:13-2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7-10-01 00:00
조회
746
마태복음 강해 61지도자에게는 지도자의 삶이 있습니다.(마 23:13-28)2017. 10. 1. 프롤로그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는 지배적 소수와 창조적 소수가 존재해 왔다. 그런데 역사를 발전시킨 주인공은 지배적 소수가 아닌 창조적 소수였다.”
역사를 움직이는 인간형에는 지배자와 지도자가 항상 공존해왔다.
지배자는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다.
그러나 지도자는 희생과 인격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자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개구리들이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왕을 보내달라고 하늘에 호소했다.
하나님께선 큼지막한 나무토막을 던져 주시면서, “이것이 너희의 왕이다. 위급할 땐 이 품에 숨으라.”고 하셨다.
개구리는 너무 시시하다며, 권위 있고 볼품 있는 왕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번에는 잘생긴 황새를 보내주셨다.
개구리들은 환호하며 좋아했다.
황새는 “내가 너희의 왕이다.”라며, 살진 놈을 골라 잡아먹었다.
그때 한 개구리가 “왕이 없이 살아야 했다.”고 소리치자, 황새는 그도 잡아 삼켰다.
황새는 지도자가 아닌 지배자였던 것이다.

-5백여 년 전, 남미의 힘 있는 부족의 추장이, 프랑스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는 자기네 고유 의상을 하고, 한 치의 위축됨이 없이 파리에 나타났다.
수상록의 저자로 당대 최대의 사상가인 M,D 몽테뉴는, 그를 지켜보던 중 호기심에 그를 만났다.

-몽테뉴는 대화 끝에 “추장으로의 특권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추장은 주저 없이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나가 싸우는 일이요”라고 답했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부족을 목숨 걸고 지켜내는 일이, 자신의 특권이자 의무라는 것이다.
이 추장은 고등학문에 접해보지는 못했으나, 지도자로의 기본 덕목이 몸에 배어 있었다.
추장은 지배자가 아닌 지도자였던 것이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선반공 출신의 룰라가 대통령이 됐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환호하고, 부자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심지어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이런 악평을 쏟아냈다.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처럼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룰라는 자신의 고통과 경험을 잊지 않았기에,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 앞에서는 어머니처럼 울어주는 대통령이었다.
좌파라는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좌우를 넘나들며, 성장과 분배 정책을 아우르며,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펴는 데 정치 인생을 걸었다

-룰라는 재임 8년 동안, 단 한 번도 국민으로부터 반감을 산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퇴임 직전 조사에서도 국민의 지지율이 87%에 이를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브라질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굶주린 배를 움켜진 채 잠자리에 들지 않게 하겠다”던, 룰라의 약속은 ‘기아 제로’라는 정책으로 실현됐다.
이 밖에 다양한 정책들을 통해, 극빈층을 줄이고, 중산층 인구를 확대함으로써, 소외된 계층을 포용하고, 사회 통합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좌파 진영 동료들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친 시장 정책을 유지했다.
2003년부터 2008년 사이에 10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국민소득을 늘리고, 국가부채를 갚아가면서, 마침내 브라질은 거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에서 열린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룰라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
“이분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통령입니다. 룰라 대통령은 나의 우상입니다. 나는 그를 깊이 존경합니다.”
룰라는 브라질의 지배자가 아닌 지도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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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에게는 지도자의 삶이 있다.
지도자는 많다.
여기저기 지도자란 사람은 많다.
“나요, 지도자 여기 있단 말이요”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지도자의 삶을 사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사실 지도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게 어렵게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 한 순간의 실수로 추락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권위는 땅에 떨어진, 그래서 실제로는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자리는 지키고 싶은데, 권위가 땅에 떨어졌을 때,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럼 따르는 자들이 항거한다.
지도자가 자리에서 그냥 내려오지 않으면, 따르는 자들이 끌어내리려고 한다.
거기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지도자는 앞선 자이다.
앞장서 있다 보니 주목의 대상이 된다.
아무래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는 것 못지않게, 지도자로 사는 것이 힘든 것이다.

-우리 교회 아이들이 다들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위해 기도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가 되기를 위해 기도한다.
나라의 지도자도 나오면 좋겠고, 나라밖의 지도자도 나오면 좋겠다.
지도자가 되는데 그치지 않고,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탁월한 지도력은 지도자의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하면 좋겠다.

-지도자의 삶도 훈련이다.
어려서부터 삶을 훈련해야 한다.
특히 절제된 삶을 훈련해야 한다.
자라면 몸이 굳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활습관이 굳는다.
그러면 잘 안 고쳐진다.
고치는데도 여간 애를 먹는다.

-묘목은 쉽게 뽑힌다.
심고 몇 년만 지나면 뽑는데 여간 힘이 든다.
나쁜 습관을 드리는 데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 데는 죽을힘을 써야만 한다.
같은 행동을 석달 열흘은 반복해야 어느 정도 고쳐진다고 하니, 습관혁명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삶을 훈련하려면, 가정환경이 좋아야 한다.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라면 힘들다.
순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 것이다.
사람은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어릴 때는 환경의 영향을 더 크게 더 많이 받는다.

-예수님 당시는 신분사회였기에, 그게 더 심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서기관이면 아들이 서기관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아버지가 바리새인이면 아들도 바리새인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닮는다는 말이 있다.
부모된 우리의 책임이 무겁게 느껴진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맘만으로는 안 된다.
내 닮은 아들이 나오고, 내 닮은 딸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의 삶이 중요하다.
“나 같은 부모 되지 말라”고 부탁해도 소용없다.

-송아지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얼룩송아지가 누구 닮겠나?
얼룩소인 엄마 닮는다...-------------------------------------------------------

-오늘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셨다.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가장 경건한 종교인들이었다.
자칭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경건을 인정해줬다.
사실 보통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 열심을 따라갈 수 없었고, 그들의 경건한 모습을 흉내 낼 수 없었다.
자기들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 보일 정도였다.
그러니 그들 앞에 자연스럽게 머리가 숙여졌다.
존경심이 들어서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각은 달랐다.
그들의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이다.
외식으로 번역된 원어의 원뜻은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 연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경건한 모습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경건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경건한 척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실례가, 천국 문을 닫고는 자기도 안 들어가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천국 문을 막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들이다.
교회 안의 불신자들이 있다.
교인 안의 사람들이 100% 신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교회 밖에서는, 그들도 예수 믿는 사람으로 친다.
그래서 자기들 맘에 안 들면, 대번에 “예수 믿는 것들이”라고 한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인데도 못 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에는 교회의 지도자급인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상처를 입게 되면, 예수님과 담을 쌓게 된다.
그에게 천국 문은 사실상 닫힌 문이 된다.

-목회자가 천국 문을 열고 닫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막아설 수는 있다.
어떤 사람이 순전히 나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갔다면, 내가 받을 벌이 크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순전히 나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내가 받을 상급이 크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그 선택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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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두 번째 화를 선포하셨다.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번에는 천국 문을 막아서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이 유대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의 개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개종이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담 큰맘 먹고 어렵게 개종을 한 것이다.
그 다음엔 종교지도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된다.
율법에 대해 무지한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받는다.
문제는 그들이 잘못된 가르침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 자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도 그런 교회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예전에는 모든 교회가 그렇게 했다.
그렇게 전도하여 교인이 되었어도 양육이 없으면 문제가 된다.

-양육을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혹 있다.
양육은 교인의 신앙성장을 돕는 것이다.
교회만 정기적으로 출석해도, 신앙이 성장하긴 한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성장하긴 힘들다.
양육은 신앙이 어릴 때 틀을 잡아주는 것이다.
양육을 받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틀이 굳어버린다.
그러면 고치는 게 정말 힘들어진다.
어렵게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을, 양육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은, 지옥 자식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교회에 대해 알고 다녀야 한다.
종교에 대해, 신앙에 대해 알고 다녀야 한다.
성경에 대해 , 예수님에 대해, 구원에 대해 알고 다녀야 한다.

-모르는 길을 가면 멀게 느껴진다.
뭣 모르고 가게 된다.
하지만 아는 길은 다르다.
신앙생활은 길을 가는 것이다.
양육은 그 길에 대해 안내하는 것이다.
안내를 받고 길을 가면 알고 가기에 한결 수월하다.

-양육도 받을 기회가 있다.
해당되는 분들이, 그 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세 번째 화를 선포하셨다.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그들이 눈 먼 인도자라는 것이다.
16절, 황금에 눈 먼 인도자라는 것이다.
18절, 제사보다 젯밥에 눈 먼 인도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에 눈 먼 인도자들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성전보다 성전의 금이 큰 건가?
제단보다 제단의 예물이 더 큰 건가?
이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크게 보는 것이다.

-성전이나 성전의 금으로 맹세했다면,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 맹세한 것이다.
제단이나 그 위의 예물로 맹세했다면,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으로 맹세한 것이다.

-사실 맹세는 안 할수록 좋다.
왜 맹세를 하는가?
안 믿어주니까 한다.
확실하게 하겠다고 한다.
한 번 뱉은 말은 믿을 수 있고, 한 번 한 약속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사람이라면, 무슨 맹세가 필요하겠는가?

-돈이 하나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는 시대다.
옛날부터 돈의 위력이 약했던 시대는 없다.
부끄럽지만 교회의 어두운 역사에서는, 돈을 주고 성직을 매매한 적도 있었다.
로마에 베드로성전을 짓기 위한 건축헌금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한 희대의 사기극도 있었다.
돈에 눈독이 오르면 진리에 눈멀게 된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거 아닌가.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시는 주님의 말씀이다.

-겉으로는 신령한 척 할 수 있다.
하늘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이단들은 보험에 드는 것을 믿음 없는 것으로, 저축하는 것을 헌신이 부족한 것으로 몰아부친다.
그리고 자기는 뒤로 재산을 모아 치부한다.

-우리는 영혼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과 함께 엄연히 육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눈은 하늘을 향해야 하지만, 우리의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어야 한다.
다윗의 영성이 그랬고, 예수님의 영성이 그랬다.
결코 현실을 벗어난 영성, 현실을 외면한 신앙이 아니었다.

-나는 분별력, 통찰력, 창의력, 선견력을 달라고 기도한다.
눈 먼 인도자, 어리석은 맹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얼마 전 세명기독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더니, 시력이 0.8-0.9로 나왔다.
시력이 1.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나도 이제 0점대 시력을 갖게 된 것이다.
시력이 0점대로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안경이 생각났다.
썬글라스 쓰는 것도 귀찮아 하는데, 안경을 쓴 내 모습을 한참이나 그려보았다.

-육안관리도 잘해야 하지만, 영안관리는 더 잘해야 한다.
영안은 말씀과 기도로만 깨끗해진다.
특히 눈물의 기도는 영안을 세정하는 효과가 있다.
기도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네 번째 화를 선포하셨다.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이들은 누구보다 율법을 준수하려고 했다.
누가 보더라도, 얼마나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했는지 모른다.
박하, 회향, 근채는 양념에 쓰는 채소 종류다.
이 채소들은 이스라엘의 농작물 중 사소한 수확물에 속한다.
그들은 그런 세세한 것까지도,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했다.

-그러나 정작 정의, 긍휼, 믿음은 버렸다.
그 점에 대해 화를 선포하신 것이다.
정의, 긍휼, 믿음을 버린 것에 대해, 화를 선포할 것까지는 없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다.

-종교지도자들은 큰 것은 물론이고, 작고 사소한 것까지도 십일조 생활을 함으로, 은근히 자신들의 경건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정의, 긍휼, 믿음이 없었다.
정의와 긍휼, 믿음은 율법의 더 중한 바이다.
그것들이 율법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십일조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율법의 정신이 빠지면 안 된다.
율법의 정신이 담긴 십일조를 해야 한다.
주님이 그걸 지적하신 것이다.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십일조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오늘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말라기 시대에도 그랬다.
물론 그들은 십일조를 형식적으로는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형식적인 십일조를 원하시지 않았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온전한 십일조를 원하셨다.
모든 물질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표로서 드리는 십일조를 원하셨다.
내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십일조를 원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창고에 복을 쌓을 곳에 없도록 부어주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시험해보라고까지 했다.

-나는 우리교우들이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살면 좋겠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교우들이 이 말씀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그걸 위해서는 통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십일조이다.

-나는 가난해봐서 가난이 지옥인줄 안다.
목회자는 가난을 미덕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게 청빈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가난이 죄라는 말은 아니다.
가난을 무조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도 함께 누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우리 호주머니를 털려고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 만유의 주인이 되신 분이시다.
주님이 굳이 우리에게 십일조를 요구하는 것은, 십일조가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마중물에 비유한 적이 있다.
펌프에 마중물을 붓는다고, 바로 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펌프에 마중물을 붓는 순간, 자동으로 물이 콸콸 뿜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
여기서 펌프질이 생업이다.
더 나아가 펌프질은 생업에서 흘리는 땀방울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이다.
마중물 안 붓고 아무리 열심히 펌프질해봤자, 물 안 나온다.
반드시 마중물을 먼저 부어야 한다.

-십일조가 재정 지출 일번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빚 갚는 것보다, 이자 갚는 것보다, 세금 내는 것보다, 적금하는 것보다, 생활비보다, 품위유지비보다, 십일조가 먼저다.
그리고 이왕 십일조를 한다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
형식적인 십일조 말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을 시험해보라.-------------------------------------------------------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다섯 번째 화를 선포하셨다.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종교지도자들의 겉과 속의 다름을 책망하셨다.
겉은 깨끗했다.
그러나 안은 더러웠다.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했다.

-정치는 흔히 명분싸움이라고 한다.
여든 야든 그럴듯한 명분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다.
그래서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명분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당리당략을 추구한다.
정치는 한 입으로 두 말 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다.
겉과 속이 일치해서는, 현실 정치에서는 힘들 거 같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다르다.
먼저 안을 깨끗이 하고, 겉도 깨끗해야 한다.
끊임없이 자기 안의 탐욕과 방탕과 싸워야 한다.
사람이 한 순간이다.

-물론 오래 전부터 조금씩 쌓여온 측면은 있다.
낙타의 머리를 텐트에 넣어주면, 머잖아 주인은 텐트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처음엔 탐욕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방탕이라고 해봤자, 불신자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탐욕이 그 방탕이 나를 무너뜨린다.
그것들이 어느 날 나를 집어 삼킨다.
여전히 내가 다른 사람보다 탐욕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그건 방탕 축에도 못 낀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어느 날 내 안을 장악해 버린다.

-먼저 안을 깨끗하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하면 겉도 깨끗해 질 거라고 하신다.
겉은 더러워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안이 더러운데 겉만 깨끗하면 뭐하냐는 것이다.
목욕은 안 하고 옷만 갈아입어도 안 되겠지만, 목욕은 했는데 옷은 안 갈아입어도 안 되는 것이다.

-새벽기도회나 큐티는 말씀과 기도로 영혼을 샤워하는 것이다.
목욕과 달리 샤워는 매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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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여섯 번째 화를 선포하셨다.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이스라엘에서 가난한 자들은 무덤을 길가에 평토장으로 쓴다.
그들은 우기가 지난 유월절 전 아달월 15일에, 횟가루를 뿌려 무덤위를 하얗게 칠했다.
그 이유는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길가는 사람들이 무덤을 식별하여 피해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율법에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셨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은 겉은 안 보실까?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중심 밖에 안 보실까?
그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올 때, 외모는 아무렇게나 하고 나와도 괜찮을까?
그런 뜻이 아닐 게다.
외모보다 중심이 먼저고, 중심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아무리 외모가 그럴듯해도 소용없다는 뜻일 게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람 앞에서 의인이었다.
예수님은 사람 앞에서 의인인 체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의인이 되라는 것이다.
속에 가득한 외식과 불법을 제하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채우라는 것이다.
그런 좋은 지도자가 되라는 것이다.

-지도자에게는 지도자다운 삶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지도자여야 한다.
지도자다운 삶을 사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