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60:자기를 낮출 때 높아집니다.(마 23: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7-09-24 00:00
조회
750
마태복음 강해 60자기를 낮출 때 높아집니다.(마 23:1-12)2017. 9. 24. 프롤로그

-어느 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 현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비서가,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인 것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쩔쩔매며 말을 꺼냈다
"각하, 이게 어찌된 노릇입니까?"
"아니, 어찌된 노릇이라니?"
"일국의 대통령의 존귀하신 몸으로서, 천한 사람이나 하는 구두닦이를 손수 하시다니, 이게 될 법한 일입니까?"

-대통령이 대답하였다.
"제임스군, 자기 구두를 자기 손으로 닦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이게 무슨 잘못된 일인가? 또 구두 닦는 일은 천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세.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다같이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야. 어찌 천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겸손한 인격 때문에, 링컨은 오늘날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자기를 낮출 때 높아집니다.”

-중국 전국 시대, 안자(安子)가 제나라 정승으로 있을 때 일이다.
안자를 모시는 마부가 있었는데, 그 마부의 아내가 자기 남편이 마부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정승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하여, 그 기세가 등등한 것을 보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여보, 당신이 모시는 안자로 말하면, 한 나라의 재상이지만, 몸가짐을 참으로 조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마부의 신분으로서, 재상 행세를 하고 다니니, 남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부디 겸손하게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마부는, 그 후로 언행을 조심하게 되었다.

-갑자기 달라진 마부의 모습을 본 안자가, 그 까닭을 물었다.
마부는 아내에게서 들은 충고를 사실대로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안자는, 마부의 지위를 높여 주었다.
아내의 충고를 듣고 자신의 행동을 즉시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다른 일도 잘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낮출 때 높아집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겸손과 거리가 멀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다소 거만한 자세로, 예수님을 찾아와 논쟁을 걸어왔다.“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세금이란 가장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납세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납세를 반대하는 입장이고, 헤롯당원들은 납세를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납세에 대해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겠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와 논쟁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의 명쾌한 논리에, 그들은 두 말 하지 못했다.
그걸로 세금 논쟁은 끝이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논쟁을 걸어왔다.“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부활 문제를 건드렸다.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에 비해,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아하니, 예수님이 부활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이번 기회에 예수님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라이벌인 바리새인들의 코도 납작하게 만들 요량이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 역시 자신들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괜히 자신들의 무식함만 드러났고 머쓱해졌다.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불꽃 틔는 논쟁을, 쭉 지켜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율법사였다.
그 역시 예수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질문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앞서 예수님께 논쟁을 건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은,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세금 문제를 질문했다.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은 믿지도 않는 부활 문제를 질문했다.
이에 반해 율법사는 자기 전공분야를 질문했다.

-예수님은 더 이상 보충 질문이 필요 없게끔 명쾌하게 답해주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예수님 앞에서 비켜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먼저 질문을 하셨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종교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이,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역으로 질문을 하신 것이다.
그들은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찾아올 때는 거만한 자세였으나, 예수님을 떠나갈 때는 잔뜩 풀죽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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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그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무겁게입을 여셨다.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주님은 계속되는 논쟁과 질문으로 심신이 피곤하셨다.
그럼에도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무리와 제자들 앞에서, 침묵하실 수 없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화요일을 보내고 계신다.
이 땅에서의 삶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예수님께는 일분일초가 소중하고, 그래서 한 말씀이라도 더 가르치고 싶었다.

-무리야 그렇다 쳐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고 나면, 주님의 일을 대신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그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촌음을 아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르치는 수밖에 없다.

-가르치는 것은 뿌리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심는 것이다.
추수 때를 바라보고 뿌리는 것이다.
몇 년 후 열매를 바라보고 심는 것이다.

-가르치고 당장의 효과가 안 나타날 수 있다.
한 번 가르쳤을 때 가르친대로 된다면, 반복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가르침이 반복이다.
사람이 기계처럼 작동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을뿐더러, 변화의 속도도 늦기 때문이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일년수곡 십년수목 백년수인(一年樹穀 十年樹木 百年樹人)
일년을 보고는 농사를 짓고, 십년을 보고는 나무를 심고, 백년을 보고는 인재를 키워라.
딱 예수님이 그 심정이었다.

-예수님이 무리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내용을 보자.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개의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이다.
바리새인들 중에서 서기관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율법을 생명처럼 여겼던 자들이다.

-백성들은 율법을 가르치고 철저하게 지키는, 그들을 존경했다.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은 달랐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경고하셨다.
심지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하며, 화를 선포하셨다.

-사람이 보기에는 의로운 사람들인데, 하나님이 보기에는 불의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예수 믿는 사람도, 교회 안에서의 평가와, 교회 밖에서의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사람한테 인정받아야 하지만, 사람한테 인정받는다고 하나님한테까지 인정받을 거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먼저 된 자가, 끝까지 겸손해야 하고,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모세의 의자는 회당에 있다.
율법을 가르치는 자가 앉는 의자인데, 회당에서 가장 상석이다.
서기관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자가 이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쳤다.

-모세의 자리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어떤 사람의 자리에 앉는다는 말은, 그 사람의 권위를 계승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음으로, 스스로를 모세의 권위를 계승하는 자로 여겼다.
실제로는 권위도 없으면서, 대단히 권위적으로 굴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가리켜, 율법 무용론을 주장하지 않았다.
율법을 가르치는 것을, 쓸데없는 짓 한다며, 비판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르침은 행하고 지키라고 했다.
그들의 문제는 가르침에 있지 않고, 행위에 있었던 것이다.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지키되”란 말의 원어 ‘테레이테’는, ‘거의 몸에 배듯이 자연스럽고도 완벽하게 지킨다’는 의미이다.
몸에 배는 것은, 한 번에 가능한 게 아니다.
부단한 반복의 반복을 통해서 가능하다.
몸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몸에 배면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온다.

-예수님은 결코 율법 폐기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율법의 완성자였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 3절 말씀은,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로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교우들에게 “류목사 설교는 행하고 지키되, 그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는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진다.
말씀 사역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이다.
그렇다고 설교자가 자신이 지키는 말씀만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경 한 책을 정해 차례대로 강해하는 설교자에게는, 피하고 싶고 건너뛰고 싶은 말씀 앞에서, 괴로워 갈등할 때가 있다.
그래도 전해야 한다.
설교자 자기도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한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전해야 한다.
그게 설교자의 운명이다.

-운명이라지만 고민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짐에서 평생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더구나 그 짐은 누구와 나눠질 수 없는, 순전히 내 십자가다.

-성경은 서로 짐을 져주라고 했다.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무거운 짐도 나눠지면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짐을 나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홀로 짊어져야 할 짐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 짐을 스스로 지라고도 했다.갈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이건 겸손히 자기 인생을 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의 짐을 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짐에 대해 참견하지 않는다.
자기 짐도 무거운데, 자기 짐 지기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의 짐에 관여할 여유가 있겠는가?

-자기 짐을 잘 지는 사람은, 자기를 낮출 수밖에 없다.
자기 짐조차 제대로 지지 않는 사람은, 겸손과 거리가 멀다.
무거운 짐을 남의 어깨에 지운다.
그리고는 “그것도 제대로 못 지냐”며 타박한다.

-예수님의 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랬다.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은 입으로 사는 자들이었다.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는 탁월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율법이 요구하는 짐을 스스로 지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져야 할 짐까지, 다른 사람의 어깨에 지웠다.
그리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게 특별히 문제되지도 않았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 그런 가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게 잘못됐다고 지적하신다.
자기가 져야할 무거운 짐을, 남의 어깨에 지우는 법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그건 명백히 반칙 신앙이다.
그리고 그 반칙에는 벌칙이 따른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나 역시 어쩌다 선생이 됐다.
내가 원해서 선생이 된 게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선생의 길을 가고 있다.
마지못해 선생이 되었지만, 그 길을 기쁨으로 가려고 노력한다.

-끝까지는 갈 수 있을 거 같다.
문제는 심판대 앞이다.
그분의 심판대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그게 떨리는 숙제다.
더 낮은 자세로,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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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권위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그들은 경문 띠를 넓게 하고, 옷술을 길게 하여, 권위를 만들려고 했다.
경문은 처음에는 율법을 기억하고 경건에 힘쓸 목적이었으나, 차차 자기 경건을 과시할 목적으로 쓰였다.
그러다보니 경문 띠가 점점 넓어져갔다.

-옷술은 겉옷의 네 귀에 단 술을 가리킨다.
이 술은 석류 문양의 장식으로 된 것으로 청색실로 짰다.
본래 청색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의 영원성을 상징했지만, 그들은 자기의 거룩성을 드러내는데 힘썼다.
순전히 사람의 눈에 잘 띄게 할 목적으로 옷술을 길게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최일선에서 섬기는 자들이다.
가장 하나님께 보이고자 해야 할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눈치를 살펴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고자 힘썼다.
그렇게 하여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고, 자신들의 경건을 과시했다.
하나님과 무관한 권위, 경건이었다.
그 모든 게 스스로를 높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의 자리 탐은 대단했다.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언제나 윗자리 높은 자리였다.
그들의 자리 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서로 상석을 차지하려고, 사소한 시비가 일기도 했다.
잔치에서 상석 차지도 그렇지만, 회당의 상석 차지를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은, 예배에서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증거다.
그들은 심지어 시장에서도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에 시장을 찾았다.
여기 저기서 “랍비님” “랍비님” 하고 인사 받는 것을 즐겼다.

-그러면 자기들의 권위가 올라가고, 자기들의 경건이 돋보일 줄 알았다.
무리들은 이제 그런 모습이 익숙해졌다.
아직도 그런 모습을 꼴사납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했다.
참 사람 눈이 그렇다.
좋은 것도 적응되지만, 나쁜 것도 적응된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여도, 자꾸 보다보면 볼만해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작심하셨다.
아주 작심 발언을 하셨다.
물론 발언 대상이 직접적으로는 무리와 제자들이었지만, 그 말은 금방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어갈 게 뻔하다.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랍비 소리 들으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교회가 왜 시끄러운가?
선생이 많아서이다.
선생이 많으면 평화가 깨진다.
선생은 하나면 족하고 나머지는 형제여야 한다.
선생이 하나일 때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이 된다.

-우리의 참된 선생은 한 분 예수님이시다. 요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그런데 주님이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세우셨다.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목사와 교사”는 본래 목자와 교사이다.
목자와 교사를 줄여서 목사라고 한다.

-목사를 세운 이유가 분명하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다.

-교회가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분쟁하는 교회 치고 건강한 교회를 못 봤다.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이 되면, 교회 건강을 담보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은 땅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를 말씀하신다.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한 때 기독교는 조상도 몰라보는, 쌍놈의 종교로 오해받곤 했다.
자칫 이 말씀도 오해받을 수 있다.
땅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하늘 아버지만 인정하라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땅의 아버지는, 친아버지보다는 위대한 스승이나 어떤 학파의 창시자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근대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 인도의 아버지 간디, 덴마크의 아버지 그룬트비, 이런 식이다.
이들은 아주 추앙받는 사람들이다.

-가톨릭에는 성인(聖人) 제도가 있다.
순교하였거나 생존 시에 출중한 덕행으로 명성이 높았던 신자가 사망한 다음, 엄격한 조사를 거쳐 우선 지역적으로 공경할 수 있도록 복자(福者)로 선포하고, 신자들이 복자들에게 열심히 기도하여 기적의 은혜를 입은 경우, 엄밀히 조사한 뒤 교황이 행하는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함으로써 성인으로 공포한다.
9절 말씀에 의하면, 과연 성인 제도가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얼마는 존경받아야 한다.
부모님은 공경받아야 한다.
그것이 끝이다.
사람을 그 이상 높일 때 문제가 된다.
그 이상은 하나님 아버지께만 해당된다.

-예수님은 지도자에 대한 말씀도 덧붙이셨다.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지도자의 원어 ‘카데게타이’는 교사, 스승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완전한 모범이 되며, 그 각각의 제자들을 책임지는 전인적인 스승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교회에서 부장, 위원장, 국장, 팀장 정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영적 아비인 셀리더 이상이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에게 그 용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했다.
그들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따가운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았다.
수군거리는 말에도 귀를 막았다.

-그렇게 하면 높아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면 영적 권위가 서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면 개인적 경건이 올라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위대한 착각이었다.

-예수님이 어떻게 큰 자가 될 수 있는지, 그 원리를 무리와 제자들에게 알려주셨다.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섬기는 큰 자를 말씀하셨다.
우리가 왜 큰 자가 되어야 하는가?
섬기기 위해서다.
낮은 자는 섬기는 것이 정상이다.
낮은 자가 섬겼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큰 자가 섬길 때 이상하게 본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가 낮은 자로 살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자기를 낮추라고 하신 이유는, 높아지게 하기 위해서다.
높아져서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며 살게 하기 위해서다.

-자기를 낮춰도 높아지는 것은 때가 있다.
자기를 낮췄다고, 다음날 바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때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언제까지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여주실 때까지이다.
그 때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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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즈 수도사는 어느 날 문제가 많기로 소문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그곳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와, 백발이 성성한 노수도사를 보고, “나이 든 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것을 알지 못했다.
그곳은 새로 들어온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노수도사는 이 수도원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단지 "네"라고만 대답하고, 곧장 식당으로 들어가, 묵묵히 한 달, 두 달, 석 달 계속 접시를 닦았다.
그 동안 젊은 수도사들의 멸시와 천대와 구박은 대단했다.

-석 달이 지났을 때 감독이 감사 차 그곳에 왔다.
젊은 수도사들은 그의 방문으로 쩔쩔매었다.
감독이 "원장님은 어디 가셨나?" 하고 묻자, 그들이 대답했다.
"원장님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은 아연 실색해,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서, 노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후부터 그 수도원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다고 한다. “자기를 낮출 때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