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58:하나님의 것과 내 것은 구별됩니다.(마 22:15-2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7-09-10 00:00
조회
723
마태복음 강해 58하나님의 것과 내 것은 구별됩니다.(마 22:15-22)2017. 9. 10. 프롤로그

-자기 자신만 소중하고 자기의 생각만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는 '자아 중심성'이라고 일컫는다.
사람들이 자아 중심성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언제나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아 중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므로, 자기의 생각만이 항상 옳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이기를 바라며,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의 모든 사건이나 사물,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재단하려 든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환경 세계를, 세상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아 중심성은, 발달심리학자 피아제에 의하면, 4세에서 7세 사이의 아동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사고의 특성이라고 한다.
자아 중심성이 강한 이 시기에 어린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한다.
그림자는 자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를 따라 다닌다고 생각하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도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하늘이 눈을 만들어 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모든 세상 사람이 심지어 강아지마저도 게임을 좋아할 것이라 착각한다.

-자아 중심성은 어린 아이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일종의 착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아 중심성이 어릴 때 한시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선 선거운동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을 때, 오하이오 주에서 유세 중에 한 대선 후보가, 우연히 만난 배관공에게 한 말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배관공의 질문에 그 대선 후보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진 재산을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한 손님이 식당에 들어가려는 길목에서, 동냥을 하는 노숙자를 만났다.
그는 돈을 주지 않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라주는 웨이터는,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는 말을 한, 그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가 새겨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난 후에, 손님이 10달러의 팁을 꺼내 들고 웨이터에게 말했다.
“당신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의 말대로, 골고루 나눠 갖자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줄 10달러의 팁을 식당 밖에 있는 노숙자에게 주렵니다.”

-이 말에 웨이터는 화를 버럭 냈다.
“손님, 그 10달러는 내가 번 보수입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노숙자에게, 내가 노력하여 번 돈을 주야야 합니까?”

-손님은 웨이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이 좋다고,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분의 말대로 이 10달러를 노숙자에게 주렵니다.”

-손님은 식당을 나가 10달러를 노숙자에게 주었다.
말할 나위 없이 노숙자는 좋아했고, 식당의 웨이터는 화만 내고 있었다.
남의 것은 나눠 갖고, 내 것은 나눠 갖지 않으려는 마음씨는, 비단 그 웨이터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인 정부에서 고소득자들에게 증세하겠다고 하니까, 여론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높게 나왔다.
당연하다. 자기는 증세대상에서 빠지고, 부자들한테서 더 걷어 복지혜택을 늘리겠다는데, 거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한다면 부담스러워 한다.

-건강한 소유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한다.
제 물건과 남의 물건을 엄격히 구분하고, 제 물건이 아닌 것에는 욕심을 내지 않으며, 노력을 통해서 얻은 정당한 가치만을 자신의 소유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세상에는 가치 있는 물건이 무수하게 많은데, 소유로 보면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내 것이거나 남의 것이다.
물론 내 것도 남의 것도 아닌 우리 것도 있긴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유를 ‘내 것’과 ‘남의 것’에 ‘우리 것’ 정도로 분류하는데, 거기다 한 가지를 추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임자 없는 것’이다.

-유치원 다니는 꼬마가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져 있는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발견했다.
놀란 꼬마가... “엄마, 저기 돈!” 하고 외친다.
그러자 엄마가 대답한다.
“뭐해, 빨리 줍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은 빨리 주어야 할 물건이 아니다.
그 떨어진 돈은 임자 없는 물건이 아니라, 임자가 있는데 잠시 잃어버린 돈이다.
임자 없는 것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세상에 임자 없는 물건은 없다.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이 무엇인가?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탐내다보면 언젠가 죄를 짓게 된다.

-다윗이 그랬다.
그 결과 노년이 불행의 연속이었다.-아간이 그랬다.
그 결과 아골골짜기에서 죽임을 당했다.-게하시가 그랬다.
그 결과 몸에 나병이 들었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까지 했다.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 숭배의 근본적인 동기가, 탐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다.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왜 내 것과 남의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할까?
탐심 때문이다.
탐심은 물리쳐야 한다.
문제는 이 탐심이 본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탐심은 깊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어,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탐심은 때론 어떤 고상한 것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선언한다.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런데 우리 안에 여전히 탐심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은혜 충만하면 잠깐 기절했다가, 은혜가 바닥나면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이게 문제다.
그러니 신앙이 제자리에서 맴돈다.
한 해 한 해 교회 다닌 햇수는 늘어가지만, 신앙의 깊이는 매 그대로다.

-신앙은 교회 다닌 연수와 꼭 비례하지 않는다.
얼마나 양육으로 기본기를 다졌느냐, 훈련으로 기술을 연마했느냐가 중요하다.
거기에 인성을 따져야 하고, 열정 곧 헌신도도 따져야 한다.

-불행 중의 하나가 신앙의 정체다.
신앙이 자라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것에 대해 별로 답답해하지 않는다.
괜히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만 답답하여 조바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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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고 계신다.
오늘 본문은 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님은 화요일에 종교지도자들과 몇 가지 논쟁을 벌이셨다.
주님은 종교지도자들이 걸어온 논쟁을 피하시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셨다.

-종교지도자들은 당시 가장 민감한 문제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다.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얼마나 성가신 존재였는지 모른다.
저 변방 가버나움에서 소식이 들려와도 탐탁치 않은데 상경했다.
언젠가는 상경하리라 예상했지만, 막상 그 일이 닥치니 영 껄끄러웠다.

-예수님이 워낙에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로 알고 있다.
더구나 며칠 있으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유월절이다.
그러니 종교지도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래서 급히 모여 회의를 가졌다.
회의 의제는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거였다.

-심지어 자기들의 정적과도 힘을 합치기로 했다.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바리새인들은 경건한 사람들이다.
헤롯 당원들은 세속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때 같으면, 자리에 합석하는 것도 불편해 한다.
도저히 한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라는 공동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한마음 한통속이 되었다.

-주의 일을 위해서도 한 뜻이 되는 게 어렵다.
선한 일을 위해서도 한 마음이 되는 게 무지 어렵다.
그런데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이 뜻이 척척 맞았고 손을 맞잡았다.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찾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순한 의도를 숨긴 채, 예수님한테 나아갔다.“선생님이여”
그들은 공손했다.
예수님께 아주 깍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의아하게 했다.
‘야들이 왜 이러나...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지금껏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산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말투 바꾼다고 속이 바뀐 게 아니다.
표정 바꾼다고 마음까지 바뀐 게 아니다.
예수님보다 곁에 있는 제자들이 더 긴장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몇 번 당해봤기 때문이다.
몇 번 당하고 나면, 잔뜩 경계심을 갖게 된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보통 때와는 달리 얼굴이 밝았다.
비록 속에는 비수를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띠었다.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보통 찬사가 아니다.
누가 이 정도의 찬사를 받겠는가?
그들은 예수님을 한껏 띄웠다.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맘에도 없는 말을 해댔다.

-물론 그들의 말은 사실이다.
그들의 말 중에 틀린 말이 없다.
주님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셨다.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신 분이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는 분이다.

-주의 종으로 부름받은 목회자들도 이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에 한참 못 미친다.
나부터도 그렇다.
그럼에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류목사가 참되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는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기 바란다.
또한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는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고,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기 바란다.
더 나아가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이, 그런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기 바란다.
그러면 이 땅의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서 보다 건강하게 세워질 것이다.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의 말은 맞다.
예수님을 제대로 봤다.
이렇게 믿고 따른다면 100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 목적으로, 그런 말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빤히 속을 들여다보시는 분한테, 그런 시커먼 속으로 나아오니, 예수님의 속도 불편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잠자코 듣고만 계셨다.

-드디어 그들의 본색이 드러났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당시 가장 민감한 세금 문제를 거론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머리를 써서 짜낸 아이디어가 세금 문제였다.
유대인들에게 세금 문제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세금을 내는 것은 정상이다.
국민은 납세의 의무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국이라는데 있다.
자기 나라 왕이 아닌, 로마 왕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다.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둘 때, 유대인들을 세리로 썼다.
그들은 일정한 세금을 걷어, 그중 일부를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착복했다.
그들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아니 인정사정 봐줄 여유가 없었다.
세리들은 동족으로부터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세리 때문에라도 세금 문제는 더 민감했다.

-열심당은 아예 대놓고 세금을 납부하지 말자고 했다.
유대인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갈릴리 사람 유다는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신데, 이방 왕들에게 세금을 바쳐 그를 인정한다면, 이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가이사에 대한 납세의 적법성 문제는 계속하여 제기되었다.

-힘없는 일반 백성들도, 어쩔 수 없어 세금을 내기는 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은, 이런 민심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했다.
예수님은 궁지에 몰렸다.
세금을 내라고 하기도 그렇고, 내지 말라고 하기도 그렇다.
세금을 내라고 하자니, 열심당과 바리새인, 일반 백성들로부터 지탄받을 수 있다.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자니, 헤롯 당원과 사두개인들, 로마 총독으로부터 정치적인 문제에 걸릴 수 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놓고, 예수님의 입만 주목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을 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은 자신의 말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

-그 때 주님이 천천히 입을 여셨다.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주님은 그들의 악함을 아셨다.
그들 속에 숨기고 있는 악함을 보고 계셨다.
그들은 상의를 통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 완벽한 계획을 짰고, 즉각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작전대로 잘 되는 거 같았다.
천하의 예수도 이번에는 꼼짝없이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자기들 생각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악함을 알고 있을 줄,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예수님은 당황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쏘아보며 책망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누가 이 말을 듣고 기분 좋겠는가?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악함을 숨기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숨긴 악함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 속에 깊이 숨겨진 악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게 속을 수밖에 없었다.
매번 속아 넘어가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그걸 모른다.
주님은 그런 민중을 불쌍히 여기셨지만, 지도자들은 그걸 이용해 먹었다.

-그들이 민중들에게 써먹던 수법을, 이번에는 예수님께 썼다.
그들은 예수님을 과소평가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순간 그들은 뜨끔했다.
자신들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채는, 예수님 앞에 긴장이 됐다.
얼어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끝났다.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님이 말씀을 꺼내셨다.
예수님이 참 지혜로우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것만 같은 험악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주님의 말 한 마디에 분위기가 차분해졌다.“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에 영문도 모른 채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다.

-예수님은 데나리온을 손에 들고 그들에게 물었다.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어린 아이들에게 만원짜리를 보여주며, 이 돈 속의 형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를 수 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는 사람들이 애들이 아니다.
배움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인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예수님이 그렇게 물어올 때, ‘옳거니,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생각하고, 얼른 대답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정답을 말했다.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그들은 대답을 한 후에, 예수님의 입을 주시했다.
예수님이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기대를 채워주지 않고, 전혀 예상을 빗나가는 말씀을 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 말씀은 너무나 당연하여, 대꾸할 여지가 없다.
너무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말씀이었다.

-사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고, 우리 것은 우리 것이다.
자기 집 것은 자기 집 것이고, 교회 것은 교회 것이다.
사적인 것은 사적인 것이고, 공적인 것은 공적인 것이다.

-어차피 내 것이 안 될 것이 있다.
그럼 욕심을 내면 안 된다.
내 것이 아닌데 기어이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그 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그 때는 안 들키고 무사히 넘어갔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게 드러나 그것에 발목을 잡힌다.

-한 나라의 장관이 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한 것이 드러나, 이번 정부에서도 낙마하는 이들이 몇 명 있지 않은가?

-믿음의 사람은, 내 것과 남의 것, 우리 것에, 한 가지가 더 있음을 안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 우리 것도 내 것...
이건 놀부 심보요, 도둑 심보다.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고, 내 것과 우리 것을 구별하고, 내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
그것 구별하지 못하면, 범죄자가 되거나 최소 비난받는다.

-가이사의 것은 직접적으로 세금을 뜻한다.
국세와 지방세, 직접세, 간접세 뭐 그런 있잖은가?
확실한 것은 세금은 안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버틴다고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깎아주는 것이 아니다.

-운전하다보면 스티커를 끊기거나 카메라에 찍히는 경우가 있다.
요즘에는 다른 운전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경찰서에 제보하여, 단속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그럼 범칙금 내지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고지서를 받고는 바로 낼 수도 있고 미뤘다가 낼 수도 있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할 수만 있으면 바로 내려고 힘쓴다.

-돈내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다.
어차피 내야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 돈 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모아놓으면 나중에 목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금 잘 내야 한다.
세금 문제에 있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세금을 내는데 불법은 물론이고 편법도 동원하면 안 된다.
생업을 열심히 감당하여, 최대의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일하는 목적의 전부가 아니다.
세금내기 위한 것도 포함된다.
하나님께 헌금하기 위해서가 일번이 되면 좋겠다.
나눔이나 기부 같은 선행을 위한 것도 포함되면 좋겠다.

-창세기 14장에, 아브람이 롯을 구하고 돌아오다가, 두 사람을 만난 얘기가 나온다.
한 사람은 살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돔 왕 베라였다.

-먼저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러자 아브람이 어떻게 했는가?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아브람은 자신이 기른 318명의 사병을 데리고 가서, 죽을힘을 다해 싸워 이겼다.
하지만 그는 그걸 자기 공로로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의 도우심, 곧 하나님의 공로로 돌렸다.
그래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우리가 알듯이 각자의 몫이 따로 있다.
청지기 몫이 따로 있듯이, 주인 몫이 따로 있다.
주인 몫으로 정해진 것이 십일조이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인생의 주인이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려면, 자기가 자기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현세 뿐 아니라 내세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누가 그럴 수 있는가?
내세는 놔두고라도, 현세도 책임질 수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아니 오늘 몇 분 후의 일도 모르는 인생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핸들을 주인되신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그럴 때 풍파 많은 이 세상에서,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를 외칠 수 있다.

-아브람은 두 번째 사람을 만났다.
바로 소돔 왕이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얼마나 합리적인 제안이자 거래인가?
아브람이 목숨 걸고 가서 구해 온 사람들은 소돔 백성이다.
그러니 소돔 백성은 소돔 왕에게 드리는 게 맞다.
그러나 아브람이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은, 소돔 왕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건 아브람이 갖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소돔 왕의 제안과 거래를 사양했다. 창 14: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말이다.
애초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것에, 탐심을 부리지 않았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내 것이 아닌 모든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드려야 할 헌금이든, 내야 할 세금이든, 갚아야 할 부채이든, 매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세상에 임자 없는 것은 없다.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은, 흠칫 놀라며 살며시 예수님을 떠나갔다.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우리의 삶이 이렇게 깨끗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간관계, 물질관계가, 이렇게 깨끗하기를 바란다.
과거의 우리의 살아온 삶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남은 삶은 우리를 흠 잡으러 왔다가, 되레 부끄러워 물러갈 수밖에 없는 삶이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