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43:바르게 믿어야 합니다.(마 16: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7-04-02 00:00
조회
1096
마태복음 강해 43바르게 믿어야 합니다.(마 16:1-12)2017. 4. 2. 프롤로그

-제4차 세계불교포럼이 중국 무석시 염화만컨벤션센터에서 열렸는데, ‘정신(正信)과 정행(正行)’을 주제로 분과토론을 했다.
동국대 이사장 일면스님이 분과토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바른 믿음(正信)이 바탕이 돼야 바른 행동(正行)이 나올 수 있다. 바른 믿음에 의해 바른 행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믿음과 행위’, ‘행위와 믿음’은 둘이 아니다.”

-혹시 그가 옛날에 교회를 다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 ‘자력 구원의 종교’로 알고 있는데, 그들이 믿음을 말하고 믿음과 행위가 하나라고 하니 신기하긴 하다.

-그럼 믿기만 하면 될까?
아무 거나 열심히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가려서 믿어야 한다.
바른 것을 믿어야 한다.
바른 것을 바르게 믿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믿어야 바르게 믿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른 믿음을 얘기했다.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믿는 것은 다른 믿음이다.
고린도교회에 이미 ‘다른 믿음’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다른 믿음이다.

-백동조 목사님이 쓴 [바른 믿음 다른 믿음]이란 책이 있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 ‘개신교에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그 고민의 결과를 책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책에서 신앙에 있어서 ‘의지적 결단’의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신앙을 단순히 예배의식으로만 보거나, 지성 혹은 감성에만 머무르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믿음’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한 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신앙고백으로 끝나는 믿음, 순종이 없는 믿음에 그친다면, 우리가 그토록 비난하는 구원파와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까닭도, 이 대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따르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잘 믿는 것에 관심이 있다.
열심히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스러워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믿는 것이다.
바르게 믿는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

-10년마다 한 번씩 통계청이 실시하는 종교 분포 조사에서, 2015년 신자 수가 가장 많은 종교는 기독교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자 중에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19.7%(967만명)였고,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은 15.5%(761만명)였고, 천주교는 7.9%(389만명)였다.

-매번 2위였던 기독교가 1위로 올라섰다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의 숫자가 그만큼까지는 못된다.
거기에는 분명히 이단 숫자까지 포함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이중 교적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다.

-예준이가 간 대학교가 대구나 부산만 있어도, 매주 집에 오라고 하겠는데, 진주는 가보니 안 되겠더라.
직접 차를 가지고 갔는데도, 2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우리교단 소속의 진주교회를 정해주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라고 했다.
그 애가 집을 떠나 첫 주일이 다가오자, 금요일부터 얘기를 했다.
교회 늦지 않게 가고, 담임목사님께 인사드리고, 청년부에도 가입하고, 예배 후 꼭 교회에서 식사하고....잔소리를 했다.

-지난 3월 4일 토요일 회복캠프를 마치고 몸은 천근이었지만, 집 떠나 있는 아들의 다음날 교회 가는 문제로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주일 오후에 “교회 잘 갔다왔냐”는 것부터 확인했다.

-그가 누나한테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고 한다.
‘누나, 내가 새신자 등록할 줄 몰랐다.’
예준이는 진주교회의 새신자로 등록이 되었다.
그럼 우리교회에서 그 교회로 이명을 해서 보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예준이는 이중 교적을 갖게 된 셈이다.

-이렇듯 기독교 숫자에는 허수가 섞여 있다.
실제로 기독교인 숫자는 600만 정도로 낮춰서 잡아야 될 거 같다.
물론 나도 기독교인 수가 1천만 명을 넘으면 좋겠다.
그러나 숫자의 문제는 아니다.
기독교인이 바르게 믿느냐가 중요하다.
바르게 믿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

-1900년대 초에 기독교 인구는 1%가 안 되었지만, 그때 기독교는 세상을 변화시켰다.
바르게 믿는 소수가, 사회와 나라를 변혁시키는 주체가 되었다.

-반죽 전체를 변화시키는 데, 누룩은 소량이면 된다.
그러나 가짜 누룩은 한 움큼을 넣어도, 아무런 변화를 못 일으킨다.
누룩의 문제는 양이 아닌 그게 진짜냐는 것이다.

-진짜를 진짜로 믿는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이다.
한 동네 공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쪽에서는 교회 전도사가 전도지를 들도 전도하고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약장수가 목청을 높여 열심히 약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전도사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약장수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시간이 흘러 해가 지자, 약장수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도사도 자신의 짐을 챙긴 후 약장수에게 가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사람을 불러 모으는지’ 비결을 물어보았다.
약병을 챙겨 넣던 약장수가, 전도사를 한참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전도사님, 사실 이 약은 가짜입니다. 하지만 전 가짜약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팝니다. 나 같은 약장수도 가짜를 진짜처럼 파는데, 전도사님은 어떻게 진짜를 그렇게도 확신 없이 전합니까?”

-진짜를 가짜처럼 믿어도 바른 믿음이 아니고, 가짜를 진짜처럼 믿어도 바른 믿음이 아니다.-------------------------------------------------------

-세상에는 가짜가 많다.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가짜가 진짜를 시험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사실은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시험해야 맞다.
그런데 그 반대의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는 진품 같은 짝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보통 사람은 진품과 짝퉁을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오히려 진짜가 가짜한테 밀릴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영국의 찰리 채플린에 관한 일화가 아주 많다.
채플린은 단순한 코미디언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성을 가진 코미디언이다.

-그가 전성기 때 휴식 차, 아무도 모르게 여행을 떠났다.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축제가 있다고 떠들썩하다.
광고를 보니까, '채플린 흉내내기'라 해서 채플린처럼 분장해서 진짜처럼 경연대회를 하는 것이다.
그 광고를 본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서, 진짜 채플린도 신청을 했다.

-경연대회가 벌어졌는데, 모두가 똑같이 분장을 해서 나온 것이다.
채플린처럼 동작과 말도 하고 콧수염도 달고 헐렁한 바지도 입고 어정어정 걷는 것까지, 채플린 흉내를 기가 막히게 내는 것이다.
진짜 채플린도 신분을 속이고 출연했다.

-대회가 끝나고 입상발표가 났다.
진짜 채플린은 당연히 1등을 했을까?
3등을 했다.
가짜가 진짜를 물리치고 1, 2등을 차지한 것이다.

-진짜는 요란하지 않다.
굳이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메시야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를 쓰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주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예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동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수차례 보이셨다.
그런데 그렇게 한 이유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주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긍휼 때문에 하늘의 표적을 보이셨다.
그러니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가짜가 진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르게 믿는 사람들이, 바르게 믿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 같은 줄 알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들이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다가, 예수님한테 핀잔을 들었다.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요즘엔 스마트폰 날씨 어플이 있어, 시간 단위로 날씨를 알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지 모른다.
새벽에 교회 나갈 때, 외투를 입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플을 통해 확인해본다.
바깥에 외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야외예배 일시를 잡아놓고도, 주간예보를 통해 그 날 날씨가 좋다면 맘 놓고, 좋지 않다는 예보가 뜨면 날씨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예수님 당시는 하늘을 보고 날씨를 판단해야 했다.
그건 예수님이라서 특별히 안 게 아니고,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지식층은 물론이고, 씨 뿌리는 사람도 그물을 던지는 사람도 알고 있었다.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종교지도자들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시대의 표적이었다.
그들은 날씨는 분별할 줄 알았지만,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줄 몰랐던 것이다.
예수님한테 그 점을 핀잔들은 것이다.

-시대의 표적은 메시야의 표적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다들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여러 징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여러 징조가 있어왔다.
그들이 그걸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지, 멀리 갈 것도 없고 세례 요한부터만 해도 이어져 왔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는, 보다 분명한 시대의 표적이었다.
그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손바닥 만한 땅이니 예수님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들은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소문으로 듣기만 했을 거 같지도 않다.
그런데 와서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 하니, 예수님한테 핀잔을 받은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시대의 표적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성경은 재림의 때에 대해, 아버지 외에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나 시대의 표적은 있다고 했다.
여러 종말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2, 3절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예수님의 재림이 없는 것처럼, 혹은 예수님의 재림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해당된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신다.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들으면 혹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목회자에게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아야 한다.
목회자가 분별력에 문제가 생기면, 피해는 고스란히 교우들에게 돌아간다.

-통일교나 전도관이나 여호와 증인,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같은 이단적인 가르침은 누구나 분별한다.
그들은 교리적 이단이기 때문에 분별이 쉽다.
문제는 실행적 이단이다.
누가 봐도 교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단과 다르지 않다.
주의 일을 빙자하여 자신의 명예와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은, 이단과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을 보라.
그는 교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고, 하나님이 주신 예언을 했지만 거짓 선지자라고 말한다.
발람은 다른 말로 실행적 이단인 것이다.

-주님은 종말 때에, 악한 자들이 표적을 행하며 미혹할 것을 예고하셨다. 막 13: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성경을 알아야 분별력이 생긴다.
분별력은 바른 믿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바른 믿음의 기초는 성경이다.
성경을 멀리하면서 바른 믿음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성경을 가까이 하면 좋겠다.
일 년에 일독은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라.
얼마 전에 성경타자통독을 세 번째 마치고 네 번째 시작했는데, 타자로 성경을 통독해도 2년이면 충분하더라.
성경을 타자로 통독하면 좋은 점이 있다.
한 글자도 점 하나도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의 표적을 구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다.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대가 예수님 당대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특히 종교가 더 심했다.

-우리나라는 상당 기간 정치 블랙코미디를 경험했다.
그 동안 뉴스가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재미있었다.
재미있기는 한데, 이상하게 보고 나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게 블랙코미디의 특징이다.
정치 수준이 곧 종교 수준이다.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은 교회가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보고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다보니, 교회가 세상에 이용당한다.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다보니, 우리가 세파에 흔들린다.

-주님은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다.
주님은 자신이 보여주실 건 십자가와 부활밖에 없다고 하신다.
십자가와 부활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전부라고 하신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해서 문제다.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을 교회에서 하려고 하고, 교육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교회에서 하려고 하고, 복지단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교회에서 하려고 한다.
그걸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걸 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그걸 하다가 교회 본연의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할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다.
왜냐하면 그걸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말 안 통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떠나셨다.
괜히 그들과 논쟁하느라 힘 빼지 않으셨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는 논쟁을 피하지 않으셨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우리가 힘 빼지 말아야 할 것이 논쟁이다.
특히 이단과의 논쟁이다.
가족 중에 이단에 빠진 사람도 논쟁을 통해서는 못 빼낸다.

-나는 예준이를 타지에 보내놓고, 대학가에 이단동아리가 많다는 것을 알기에 주의를 시켰다.
“특히 잘 해주는 선배를 조심해라.”
“성경공부하자고 하면 절대 하지 말아라.”
“가능한 아예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말아라.”

-몇 번 얘기 했더니, 얼굴에 싫어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 번 빠졌다하면, 빼내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교회가 속한 포항남노회와 이웃 포항노회에 [이단공동대책위원회]라는 게 있다.
그분들의 수고가 많다.
일반 목회를 하면서도, 그 일을 감당하니 존경스럽다.
신천지 분야에 대해서는, 꽤 유명한 강사도 포항노회에 있다.
이단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논쟁하기보다, 그분들의 도움을 받는 게 지혜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건너편으로 가셨다.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그런데 중간에 떡 챙기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알았다.
12명이면 그 중에는 ‘챙기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 몸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다른 사람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것 하나까지 잘 챙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알아서 챙기겠지’ 하다, 그냥 배에 올랐다.
앞의 1-4절을 보면 그리 바쁜 일이 있었던 것 같지 않은데, 서로 미루다 그랬는지 담당자가 있는데 깜박 잊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갑자기 예수님이 누룩 얘기를 꺼내셨다.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까 만났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떠올리며,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과 사건을, 제자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도구로 활용하셨음을 볼 수 있다.
주님의 주관심이 제자를 양육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길어야 몇 년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래 오래 살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인류 구원의 사명을 마친 후 아버지께로 가야 했다.
예수님이 남길 것은 제자들밖에 없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실 때, 뭐라고 기도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제자 양육에 혼신의 힘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예수님의 속을 제자들은 잘 모르는 거 같다.

-예수님이 누룩 얘기를 꺼내실 때, 제자들은 누룩 비유라도 떠올려야 하는데, 떡 생각을 했다.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아이고야, 떡 가져오는 것을 잊었네...’
지금 제자들은 이미 건너편으로 가는 중이다.
지금 생각났지만 떡을 가지러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제자들은 ‘야, 어떻게 하나... 주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적잖이 고민했다.

-제자들의 고민은 예수님한테 들키고 말았다.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제자들은 멋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괜찮았다.
“떡을 안 챙기면 어떡하냐?”
“야, 오늘 떡 당번이 누구야?”

-그런데 예수님은 떡과 믿음을 결부시키셨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떡보다 예수님이 먼저라는 것이다.
예수님께는 떡 문제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걱정하니, 예수님이 꾸중을 하신 것이다.

-떡은 밥을 가리킨다.
떡은 먹고사는 것을 가리킨다.
떡은 우리가 가진 돈을 가리킨다.
밥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를 보면, 믿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하느냐를 보면, 믿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느냐를 보면, 믿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순간적으로 ‘떡과 믿음이 무슨 상관이 있지’ 하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던 모양이다.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 때 주님의 말씀에서 답답한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제자들도 어지간하다.
어지간히도 깨닫는데 둔하다.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급식한 일이, 그래 오래되지 않았다.
더구나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급식한 일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들이 그걸 소문으로 전해 들었던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오천 명에게, 사천 명에게, 자기들 손으로 직접 떡을 떼서 나눠줬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을 자기들이, 바구니에, 광주리에 거둬들였다.
그런 엄청난 체험을 했음에도, 예수님 앞에 떡 문제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다.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어주셨다.
그 정도면 말뜻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예수님의 믿음대로 제자들은 알아차렸다.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떡의 누룩이 아닌 교훈을 말씀하신 줄 깨달았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에게 하셨다.
그들에게 “주의하라”고 강조하셨다.
잘못된 교훈은 전파력이 뛰어나다.
이단의 가르침이 침투력이 강하다.
주님은 오랫동안 종교기득권층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아셨기에, 특별하게 주의를 주셨다.

-우리 주위에 이단이 많다.
교회 안에까지 이단이 침투해 있는 현실이다.
그들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자들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신앙의 척도는 성경이다.
그런데 이단들도 성경을 들고 찾아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로 성경을 왜곡시켜 해석하는데 능하다.
교회 밖에서의 성경 공부를 하는 게 매우 위험한 이유다.

-정통교회는 성경과 함께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사도신경, 또는 사도신조이다.
우리가 바르게 믿기 위해 붙들어야 할 것이 사도신경이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이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가 있다.
사도신경이 서방교회에서 사용해 오고 있는 신조라면,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동방교회가 사용해 오고 있는 신조이다.
우리교회에서는 다섯째 주 예배 때 사도신경 대신 고백한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를 소개하겠다.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그분은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지으신 아버지이십니다.우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아버지로부터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빛으로부터 오신 빛이시요, 참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피조된 것이 아니라 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하십니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 오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육신하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사, 고난을 받으시며 장사지낸 바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경대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분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고 그의 나라는 영원무궁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시고 생명의 부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동일한 예배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성령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우리는 죄 사함을 위한 하나의 세례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장차 임할 세상에서의 영생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