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36:반드시 추수할 때가 옵니다.(마 13:24-4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7-02-12 00:00
조회
1041
마태복음 강해 36반드시 추수할 때가 옵니다.(마 13:24-43)2017. 2. 12. 프롤로그

-이모작이란 말이 있다.
동일한 농장에 두 종류의 농작물을, 1년 중 서로 다른 시기에 재배하는 농법을 가리킨다.
재배계절에 따라, 여름작물과 겨울작물로 나누기도 한다.
예를 들어, 늦봄에 벼를 심어 여름을 지나 가을에 수확하고, 그 후 보리를 심어 겨울, 봄을 지내고 수확하는 것이다.

-이모작은 농경지 면적이 좁은 지역에서, 토지의 이용률을 향상시켜, 보다 많은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하여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모작이 가능한데, 기후가 온난한 남부지방에서는 3모작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요즘엔 일손이 부족해서도 3모작을 못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이모작 이상의 다모작농업형태는, 농경지의 지력을 크게 소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을 만드신 하나님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다.
율법을 통해 땅도 안식년을 지키게 하심으로, 6년 경작하고 반드시 1년을 쉬도록 하셨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안식을 통해 지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땅도 심지어 기계도 안식이 필요하다면, 사람은 얼마나 안식이 필요하겠는가?

-주일은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몸과 마음을 안식해야, 월요일부터 엿새 동안 힘써 일할 수 있다.
주일에 예배드릴 수 있음이 복이듯이, 엿새 동안 힘써 일할 수 있음도 복이다.

-주일에 맘 편히 예배드리려면, 교회가 평안해야 한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어도, 교회가 평안이 깨지면 예배가 힘들다.

-교회에 평안이 깨지니까, 예배가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강단에 서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마이크 체질이 아니다.
강단에 서는 것을 즐기는 무대체질이 아니다.
지금도 매주일 강단에 설 때면 떨린다.
목사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리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은퇴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평안을 잃으면, 교인 얼굴 쳐다보는 것이 두렵다.
예배 끝나고 인사하는 것도 힘들다.
웃으면서 인사해야 하는데, 마음이 편치 않으니 웃음이 나오지를 않는다.
예배 인도자가 그러니 예배 회중이 행복할 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교회 분위기를 밝고 따뜻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하고, 따뜻한 말을 해야 한다.
내 컨디션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그렇게 하려고 힘써야 한다.
그건 위선이 아니다.
그건 연기가 아니다.
그건 주님을 위한 일이다.
그건 교회의 행복을 위한 일이다.

-내가 한 번 웃었다고, 교회가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덕이 되는 말 한 마디를 했다고, 교회가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다.
심자 말자 수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뿌리자 말자 돌아서서 거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일에 예배 잘 드리려면, 엿새 동안 힘써 일해야 한다.
생업이 잘 돼야 한다.
생업이 안정돼야 한다.
그래야 예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생업을 입에 풀칠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생업을 못 죽어서 하는 일l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생업을 교회 밖에서의 주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일터선교사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직장 선교사요 사업장 선교사이다.
나는 선교사가 하는 모든 일이 선교 곧 주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선교사라고 인정한다면, 자기가 세상에서 세상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주의 일을 하는 것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농부의 마음이다.
농부의 마음은 인내의 마음이다.
성급한 농부는 농사를 망칠 수 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그렇다고 막연한 기다림은 아니다.
언젠가는 추수의 계절이 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농사에 비해 인생농사, 자식농사, 영혼추수는 변수가 있다.
추수기가 일정하지 않다.
추수할 때가 규칙적이지 않다.
또한 30배 60배 100배 추수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요즘엔 <인생 이모작> 이란 말도 있다.
100세 시대에, 인생을 번식기인 50과 번식후기인 생존기간, 둘로 나눈다.
그래서 50 이전을 제1인생, 50 이후를 제2인생으로 칭한다.
나도 나이만 놓고 보면, 이미 인생 이모작 시기에 접어들었는데,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잘나가던 외국계 금융회사 간부가 46세에 돌연 사표를 던지고, 맥아더스쿨을 만들어 교장이 된 정은상 씨가 있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할 때 나이가 70세였어요. 인생 이모작을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학교란 뜻으로, 2013년 1인 기업 맥아더스쿨 설립했습니다.”

-교장 그러니까 교감이 있고 교사가 있는 학교를 생각하지만, 사실은 말 그대로 1인 기업이다.
조직을 키우지 않고 1인 기업으로 남겠다는 원칙에 따라, 자신처럼 창직 카운슬러로 활동하는 은퇴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돈키호테스쿨' '마중물스쿨' '소크라테스스쿨' 등, 제2의 맥아더스쿨 교장을 10명 배출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겠다.

-“세상에 '천직'은 없어요.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고, 가치 있는 일을 발견하면 그게 '천직'이 됩니다. 절대 조급하면 안 됩니다. 인생 이모작에도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일모작에만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모작에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모작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모작은 겨울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모작이든 이모작이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추수할 때이다.
심는 것에 의의를 두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씨를 뿌리고는 추수를 잊어버리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진정한 농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야외수업을 하셨다.
배를 강대상 삼아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수업 방식은 비유였다.
첫 번째 비유는 네 가지 밭에 떨어진 씨 비유이다.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추수는커녕 싹도 틔워보지 못했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은 틔워봤지만 추수는 못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어느 정도 자랐지만 추수에 이르지 못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최소 30배에서 60배, 100배의 추수를 했다.

-씨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종자용으로 쓰는 씨는 제일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씨가 좋아도, 밭이 좋지 않으면 추수할 수 없다.
말씀의 씨가 떨어지는 마음 밭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설교자가 마음 밭이 좋아야, 성경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다.
예배 회중이 마음 밭이 좋아야, 설교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연달아 비유를 하셨다.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이번에는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 이야기이다.
씨도 좋고 밭도 좋은 땅으로 보인다.
앞의 비유에 언급된, 길 가나 흙이 얕은 돌밭이나 가시떨기는, 예수님의 관심권 밖이다.
예수님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지기 전에, 마음 밭을 잘 일궈야 한다.

-마음 밭이 길 가, 흙이 얕은 돌밭, 가시떨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속히 벗어나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마음밭을 좋은 땅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30배 60배 100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기 바란다.

-씨도 좋고 밭도 좋은데 변수가 생겼다.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원수의 출현이다.
언제 원수가 왔는가 보라.“사람들이 잘 때에”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수는 우리가 잠들기만 바란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가 마귀를 떠나게 됐다.
마귀 입장에서는 자기 사람을 한 사람 잃어버린 것이다.
자기 사람을 예수님한테 빼앗긴 것이다.
그러니 기분이 좋겠는가?
어떻게든 되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당장에 그를 어떻게 할 수 없다.
그가 예수님께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

-마귀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심령에 가라지를 덧뿌리는 것이다.
좋은 씨를 거둬가고가 아니다.
좋은 씨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덧뿌리는 것이다.

-예수 믿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교회의 그늘진 면을 보여준다.
예수 믿어봤자 소용없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목회자의 연약한 면을 비난한다.
예배 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설교를 들을 때 졸게 만든다.

-좋은 밭이니까 곡식뿐만 아니라 가라지도 잘 자란다.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가라지는 나쁜 땅에도 잘 자란다.
그런데 가라지가 좋은 땅을 만났으니 얼마나 잘 자라겠는가?
늦게 뿌려졌음에도 가라지가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르다.
확실히 가라지는 생명력도 강하고 성장력도 강하다.
가라지는 웬만해선 안 죽는다.
가라지에게서 야성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확실히 야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
하우스 속의 신앙 같아서, 악조건의 상황이 얼마간 지속되면 다 죽어간다.

-종들이 밭에 갔다가 곡식 사이에 있는 가라지를 발견했다.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가라지가 너무 잘 자랐다.
곡식보다 더 튼튼하게 자랐다.

-종들은 깜짝 놀라 주인에게 달려왔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종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주인에게 물었다.
밭을 일굴 때도 씨를 뿌릴 때도 가라지는 없었다.
종들은 예쁘게 자라 있을 곡식들을 기대하며 밭으로 갔다.
그런데 가라지가 꽤 보였다.
가라지를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주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다 싶어서 달려왔다.

-종들의 말은 들은 주인은 별 놀라지도 않았다.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종들은 심각해서 주인에게 보고를 했는데,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누가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을까?
아니면 가라지가 자연적으로 났을까?
종들의 궁금증을 주인은 단번에 해결해 줬다.

-같은 문제라도, 문제의 원인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만 놓고 보면, 종보다 주인의 걱정이 더 커야 한다.
종은 믿을 구석이라도 있지만 주인은 없다.
그런데 주인이 태연할 수 있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아니까, 문제의 해결책도 알고 있다.

-주인의 말을 들은 종은 급했다.
곡식이 결실할 때인데, 가라지가 여기저기 보이니, 저걸 그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주인에게 물었다.“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종들의 마음은 이미 밭에 있는 가라지한테 가 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결실할 때니 조심하렴.”
“추수할 때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어서 서둘러라.”
종들은 주인에게 이런 말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인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만 두라”
순간 종들은 주인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자신들이 주인의 말을 혹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한시가 급한데 그만 두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뭔가 주인이 판단 착오를 한 건 아닌가 싶었다.

-종들의 놀라는 표정에 주인은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종들은 그제서야 얼굴이 밝아졌다.
주인이 염려한 것은 가라지가 아니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상할까를 염려했던 것이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농사가 얼마 안 됐어도,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탔기 때문에, 항상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당시 중학생인 나도 하교 후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그 중에서도 벼가 어느 정도 자라면 피를 뽑아야 했다.
이 피라는 것이 벼와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할머니한테 단단히 교육을 받고, 벼 사이에 있는 피를 뽑는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보여주면, 혼나기 일쑤였다.
분명히 나는 피라고 뽑았는데, 실제로는 멀쩡한 벼를 뽑은 것이다.

-피를 뽑는 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할 수 없다.
피가 뿌리를 단단히 내린 후에는, 피를 뽑으면 벼까지 같이 뽑히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이다.
추수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벼와 피는 잎은 흡사하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확연히 구분된다.
저 멀리서도 구분이 될 정도이다.
그럼 먼저 추수꾼이 들어가 가라지를 거둔 후, 곡식을 거두면 된다.
거둔 가라지는 불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넣으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추수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종들이 밭의 가라지를 보고, 추수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어서 가라지를 거두어야 하는데...’
‘놔두면 가라지 씨가 밭에 떨어질텐데....’
‘추수 전에라도 먼저 거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래도 종들은 기다려야 했다.
주인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럼 종들만 기다리는 게 힘들까?
주인은 기다리는 게 전혀 힘들지 않을까?

-제자들은 주님의 비유를 듣고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한테 살짝 물었다.
주님이 세상이라는 밭에 좋은 씨 곧 천국의 아들들을 두셨다.
그런데 원수 마귀가 가라지 곧 악한 자의 아들들을 두었다.
그러니까 세상이라는 밭에는 좋은 씨와 가라지가 공존한다.
언제까지? 추수할 때 곧 세상 끝날까지...

-추수할 때 추수꾼 곧 천사가 가라지와 곡식을 구별해낸다.
가라지 곧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풀무불에 던져지는데,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간다.
곡식 곧 의인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게 된다.

-밭을 지상 교회로 봐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보면 교회 안에도 곡식과 가라지가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저 사람을 교회 안에 두실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예뻐서 그냥 두는 것 아니다.
그 사람 심판하면, 교회가 상처를 입고, 다른 사람까지도 상처를 입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 때까지 참으시는 것이다.

-가라지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위장성이다.
겉으로 얼핏 보기에, 가라지는 곡식과 유사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단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겉으로는 진실되고 의로운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 온갖 좋은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복음의 광채를 흐리게 하려고 애를 쓴다. ② 잠복성이다.
곡식과 가라지는 처음에는 분간되지 않다가, 곡식이 패기 시작할 무렵에야 비로소 식별된다.
이단도 평소에는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이빨을 드러내 성도를 상하게 한다. ③ 해독성이다.
팔레스틴 근방의 가라지를 잘못 먹게 되면, 급한 설사병을 유발시키며, 때에 따라서는 인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단도 늘 경계하지 않으면, 자기 명예와 재산을 잃게 되고, 가정이 깨지기도 하고,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게 된다.

-정통이 있으면 이단도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왜 이단을 놔두시는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악한 자들을 왜 두고 보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길이 참으시는 것이다.

-추수할 때가 온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추수할 때가 성큼 다가온다.
신앙의 추수할 때가 급히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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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자라야 한다.
추수할 때는 아는 사람은, 멍하니 있다가 추수할 때를 맞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갖다 심었다.
그 씨는 너무 작았지만 자랐다.
점점 자라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됐다.
그래서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씨가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자라지 않은 것이 문제다.
시작은 미약할 수 있다.
나중에도 그대로니 문제인 것이다.

-겨자씨가 자기의 작음을 탓하며, ‘부모탓’ ‘조상탓’ ‘교회탓’ ‘사회탓’하고 있으면, 자기만 불행해진다.
밭에 심겨져야 한다.
그러면 점점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수 있는 나무가 된다.

-자란다는 것은, 다른 말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우리는 유실수이다.
유실수의 생명은 과실을 맺는데 있다.
유실수가 정원수 흉내 내려고 하면 안 된다.
주님께 드릴 맛깔스러운 과실을 맺어야 한다.
우리는 최상품의 과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가끔 최고의 과일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맛과 향과 모양이 최상급인 과일이다.
그 과일을 우리집에 가져온 사연인즉, 그 과일이 자기 집에 선물로 들어왔는데, 박스를 뜯어보니 최상급이라서, “이건 우리가 먹을 게 아니라 목사님 갖다 드리자” 해서 갖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 예뻐서 가져왔겠는가?
내가 무서워서 가져왔겠는가?
주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가져왔을 게다.

-그 말 듣고 솔직히 감동이 되더라.
그 과일을 먹을 때, 그 가정을 축복해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

-밭에 심겨진 작은 씨가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라고 했다.
왜 자라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피곤한 영혼에게 쉼을 주기 위해서다.
그 영혼이 교회 안에 있는 영혼이든, 교회 밖에 있는 영혼이든 상관없다.

-큰 나무로 자라면 큰 새가 깃들이고, 작은 나무로 자라면 작은 새가 깃들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영향력 있는 삶을 원한다.
이왕이면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분명한 것은 작은 나무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큰 나무로 자라 있으면, 자연스럽게 큰 영향력이 발휘된다.

-배움에 있는 학생들은 영성과 전문성에 있어 큰 나무로 자라라.
거목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품는 자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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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변화되어야 한다.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겨자씨가 성장을 말한다면 누룩은 성숙을 의미한다.
성숙은 다른 말로 변화이다.
눈에 보이는 성장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속이 변화된 사람은 눈에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럼 그 사람이 외적으로 성장했다고, 속이 변화됐다고 100% 말할 수 있을까?
그게 힘들다.
외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임으로 변화된 사람인줄 알았는데, 지금은 교회를 떠나 무종교 또는 타종교에 가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가?
무엇이 변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가치관이다.
믿음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내가 예수를 영접했다는 말은, 그 동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는데, 내가 그 주인 자리에서 내려오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세례를 줄 때 선포하는 말을 기억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인생의 주인으로 믿는 OOO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례를 주노라”

-믿음이란 내 안에 가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최고로 여기던 가치가, 2순위로 3순위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 최고의 가치가 예수님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걸 극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있다.
바로 삭개오다.

-삭개오에게 돈은 자기 인생 최고의 가치였다.
그는 돈에 모든 것을 걸었다.
돈을 갖는 게 모든 것을 갖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 어떤 것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점점 돈의 노예가 되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돈을 좇아가고 돈에 쫓기는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자기 안에 가치 혁명이 일어났다.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전의 삭개오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에서, 예수님이 최고의 가치로 바뀐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가치관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여전히 자신이 주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과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언제라도 예수님을 내쫓을 수 있는 사람이다.------------------------------------------------------

-추수할 때가 있다.
우리 중에는 인생 일모작의 시기를 보내는 사람도 있고, 인생 이모작 시기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일모작이든 이모작이든 분명한 것은 추수할 때는 온다.

-교회 안의 가라지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
어차피 추수 때까지 같이 가야 할 사람들이다.
물론 가라지가 이단이라면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자라야 한다.
크게 자라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살기 바란다.
또한 변화돼야 한다.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