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야곱) 강해 25(끝):야곱이 그의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창 49:29-50:1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8-29 12:12
조회
649


구약인물(야곱) 강해 25
야곱이 그의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창 49:29-50:14)
2021. 8. 29.


프롤로그

-우리 문화권에서는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이 못된다.
↳그래서 다들 할 수만 있으면, “죽음”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영생의 길을 제시하는 성경에 보면, 죽음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열두 아들들의 장래에 대하여 예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나 죽음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준비 없이 죽음 앞에 서서,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날 당황하지 않으려면, 죽음에 대한 준비를 미리 갖춰놔야 한다.

-성경은 죽음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영적 죽음 :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이다.
↳육체적 죽음 :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상태이다.
↳영원한 죽음 : 둘째 사망, 지옥을 가리킨다.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 다양하게 표현했다.

①조상에게로 돌아가는 것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②기운이 끊어지는 것
욥 10: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③흙으로 돌아가는 것
시 90: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④영혼이 떠나가는 것(마 27:50)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⑤잠을 자는 것
행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⑥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⑦세상을 떠나가는 것
벧후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성경은 육체적 죽음을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임을 알려준다.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 짜리 딸 아이가, 여느 때와는 달리 매우 심각한 얼굴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예쁘장한 그의 작은 얼굴에는, 채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엄마가 다그치듯 물었다.
↳“얘야, 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니?”
↳“.......”

-잠시 후 딸 아이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엄마, 죽음이란 뭐예요? 죽는다는 게 뭐죠?”

-갑작스런 질문에, 엄마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뛰놀던 단짝 친구가, 등교 길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오늘 아침 병원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엄마, 사람은 왜 죽어야 해요?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죠?”

-그는 잠깐 딸 아이에게 죽음을 이해시킬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딸 아이를 만지면서, 차근히 설명을 이어갔다.
↳“얘야, 네가 어릴 적 바깥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놀던 때가 생각나지? 그리고 그 때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너는, 피곤에 지쳐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소파에서 잠들었던 일이 기억나지?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네가 눈을 떴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지?”

↳“제 침대 위에 있었어요.”

↳“그렇단다. 이 엄마는 온통 흙투성이가 된 더러운 네 옷을 벗기고, 깨끗한 잠옷을 입힌 후, 너를 안아 네 침대로 옮겼단다. 죽음도 이와 같은 거란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으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팔로 안아 하늘나라로 편안히 옮겨주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죽음은 잠깐 자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란다.”

-예수님도 죽음을 잔다고 표현하셨다.
↳이 땅에서 잠들어 하늘나라에서 깨어나는 것이 죽음이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부활을 비밀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는, 힘 있게 외쳤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가 죽음 앞에서 얼마나 담대한가를 보라.
↳문제는 부활신앙이다.
↳그 부활신앙에 확고하게 서 있기만 하면, 누구나 바울처럼 외칠 수 있다.

-어느 날 무디(Moody)는 자신이 이 세상을 곧 떠나게 될 것을 깨닫고, 한 친구에게 말했다.
↳“언젠가는 신문에서 노스필드의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게 될 걸세.
↳그렇게 되더라도, 자네는 그 말을 믿지 말게.
↳그 때가 오면 나는 지금보다도 더욱 활동적인 사람으로 살게 될 걸세.
↳이 낡은 흙 집(몸)에서 나와, 더 높은 곳 영원히 멸하지 않는 집으로 들어갈 걸세.
↳죄의 손길이 닿지 못하고, 더렵혀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될 거란 말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1837년에 몸으로 태어났고, 1856년에는 영으로 태어났다네.
↳이제 몸은 죽어 없어질 테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일세.”

-사람은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
↳잘 사는 것을 웰빙(Well-Being)이라고 하고, 잘 죽는 것을 웰다잉(Well-Dying)이라고 한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도 중요하다.
↳웰다잉해야 웰빙한 것이다.
↳웰다잉으로 웰빙을 증명하는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장자인 르우벤부터 축복하여, 막내인 베냐민까지 축복한 후에, 마지막으로 유언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자손들에게 남기는 말을 가리켜 유언(遺言)이라고 한다.

-유언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했다.
1. 죽음에 이르러서 부탁하여 남기는 말.
2. 죽은 뒤에 법률상의 효력을 발생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방식에 따라 하는 단독 의사 표시.

-야곱의 유언의 핵심이 무엇인가?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매장지에 대한 유언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야곱 역시 자신이 죽어 묻힐 곳에 대해 부탁을 했다.
↳그가 자신을 그곳에 묻어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한 것을 보면,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대개 자신의 추억이 있는 곳에 묻어달라고 유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친구들과 뛰어놀던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달라고 한다든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에 묻어달라고 한다.
↳야곱에게 있어 추억이 깃든 장소라면, 라헬을 만났던 하란 땅을 꼽을 수 있다.
↳그곳은 그가 라헬을 처음 만나 첫사랑을 시작한 곳이다.
↳그곳이 아니라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 잠들어 있는 베들레헴에, 자기도 나란히 묻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은 하란도 베들레헴도 아닌,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애굽에 장사되길 원했으면, 훨씬 좋은 장소에 묻힐 수도 있었고, 자손들이 자주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에브론의 밭인 막벨라 동굴에다 묻어달라고 했을까?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손들에게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시키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가나안으로 가는 약속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랬기에 멀리 떨어져있는, 가나안의 막벨라 동굴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곳엔 조부모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묻혀있다.
↳그곳엔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가 묻혀있다.
↳또한 그곳엔 레아가 묻혀있다.
↳자신 또한 그곳에 묻어달라고 한다.
↳결국 이 막벨라 동굴이 징검다리가 되어,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된다.

-비록 기근 때문에 잠시 애굽으로 내려왔고, 또 애굽에서 번성하였지만, 그와 그 후손의 소망은 애굽 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곳은 그들이 임시적으로 머물 땅이요, 그들이 영원한 기업으로 상속받을 땅은 가나안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에게 그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 땅을 헷사람 에브론에게서 사서 소유를 삼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곳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임을 거듭 밝힘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며 살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손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당부하고 있는 셈이다.

-야곱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자손들에게 어떤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물론 평소의 삶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떤 유언을 하느냐이다.
↳우리는 자손들을 모아놓고 의미있는 유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손들이 녹음을 해놓았다가, 다시 듣고 싶어 하는 유언을 해야 한다.

↳“아, 더 살고 싶다.”
↳“야, 나는 이제껏 헛살았다.”
↳“인생이 왜 이리도 허무할까?”
↳이런 하나마나한 유언이나 하면 되겠는가?

-바울이 어떻게 유언했는지를 보자.
↳그는 주의 일을 위해 독신으로 살았기에, 자녀도 하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는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고는 못해도, 바울처럼은 말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는 자신이 믿음을 끝까지 지킨 것과, 자신이 받게 될 면류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유언의 핵심은 믿음과 소망이었다.
↳우리도 그날 둘러선 무리들에게, 이런 믿음과 소망의 유언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야곱은 유언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앉아서 축복하던 야곱은, 이제는 누워서 그 발을 침상에 모았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분명한 정신으로 아들들을 축복하고, 유언을 마친 후에 죽은 것이다.
↳야곱은 마지막 남은 힘을,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에 다 쏟고,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의 생애는 거칠고 험악했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죽음의 복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죽음의 복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때가, 아마 죽는 순간일 것이다.
↳아무리 생전에 힘들게 살았어도,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비그리스도인의 죽음과는 다르다.
↳얼굴이 평안하여,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인다.

-살았을 때, 여러 가지로 복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평안한 모습으로 죽는 것이 복이다.
↳잠자는 듯 평온한 얼굴로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모해야 할 진짜 복이다.
↳우리에게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란다.

-50장 앞부분은, 야곱이 장사되는 내용이다.

-야곱의 장례식이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음을 알 수 있다.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여기서 몸을 향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시체가 썩지 않도록 ‘미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야곱이 죽자, 요셉은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했다.
↳총리를 수종 드는 의원이라면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텐데, 시신을 향으로 처리하는 기간이, 자그마치 40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애곡하는 기간을 70일로 정했다.
↳그렇다면 대관절 며칠 장을 치른 것인가?
↳야곱의 장례는, 거의 애굽의 국장처럼 치러졌다.
↳애굽에서 요셉의 지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야곱은 아들 덕택에, 죽어서 화려한 장례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사실 뭐 그래 봤자이긴 하다.
↳아무리 장례식을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른다고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어서다.

-우리는 근검과 절제를 강조하던 요셉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며, 다소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애굽의 장례법이 그랬을 수도 있다.
↳어떤 관직을 가진 자가 부모상을 당하면, 장례식을 어떤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그런 내규 같은 게 있지 않았겠나 싶다.
↳만약에 요셉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바로가 그렇게 하도록 했을 것이다.
↳어쩌면 더 화려하게 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요셉이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 적당히 한 것으로 보인다.
↳또 가나안까지 이동하려면, 향 처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거고, 이왕 향 처리를 할 바에는 완벽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요셉은 70일의 애곡의 기간이 끝나매,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를 가나안에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바로에게 아뢰었고, 바로는 그 걸 허락하였다.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요셉은 바로의 허락을 맡고,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기 위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올라가게 된다.
↳이때 함께 올라간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많았다.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갔는데, 그 떼가 심히 컸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린 아이들은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애들 데리고 가면, 번거롭고, 시간도 지체될까봐 그랬을까?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5절 말씀에서 이유를 찾는 게 좋겠다.
“내가 다시 오리이다”
↳요셉은 장례를 마치고, 애굽으로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고 간 것이다.

-요셉이 그만큼 신용을 못 얻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여 오해를 사곤 한다.

-지나치게 남을 신경 쓰는 것도 문제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기를 잊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남에게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남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요셉이 우리 아버지는 가나안 사람이니까 가나안식으로 장례하겠다고 했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애굽인들이 전혀 장례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그들이 조의를 표할 기회마저 사라지게 된다.
↳결국 그들이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고, 총리직을 수행하는데 자칫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이 무서워서, 애굽식으로 한 것은 아니겠지만, 요셉이 애굽인들을 배려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일부러 오해를 사서 받을 필요는 없다.
↳괜한 오해, 불필요한 오해를, 일부러 살 필요는 없다.

-특히 아무렇게나 말하면 안 된다.
↳화난다고 열린 입이라고 맘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말 속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나야 한다.
↳말 속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드러낸다.
↳무심코 하는 말에서 그 사람의 인성이 나오는 것이다.

-아닷 타작마당에서 칠 일 동안 애곡하는 것은, 장례 직전에 갖는 특별행사로 보인다.
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그 애곡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가나안 땅을 진동시켰다.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가나안 사람들은, 아마 ‘애굽의 대단한 권세가 있는 사람이 죽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화려한 장례행렬이 막벨라 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곳에다 관을 내렸다.
↳너무나 평범한 굴에다 장사를 지낸 것이다.
↳그걸 보고 애굽 사람들은,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했했다.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수고스러운 일이었지만, 명령한 그대로 행했다.
↳유언이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언은 후손들이 대단히 비중 있게 다룬다.
↳자식들이 다른 것은 못 지켜도, 부모의 유언만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청개구리도, 엄마의 유언만은 지켰다고 한다.
↳부모의 유언을 지키지 않는다면, 청개구리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유언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청개구리보다 못한 제자가 된다.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유언이 무엇인가?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이 말씀은, 같은 제자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유언이다.

-예수님의 유언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계절은 나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계절이, 점점 지나가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생의 추수기인 가을이 닥치게 될 것이다.
↳그 때 빈손이 되지 않도록, 우리 육체의 남은 때를, 주님과 그의 복음을 위해 살자.

우리 모든 수고 끝나 세상 장막 벗고서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진 후에
주를 뵙고 성도 함께 면류관을 쓰리라
새예루살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