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야곱) 강해 22: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 35:1-15)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8-01 12:08
조회
595



구약인물(야곱) 강해 22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 35:1-15)
2021. 8. 1.


프롤로그

-사람에겐 이중적인 면이 있다.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변화되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말로는 변화를 외치지만, 막상 변화의 기로에 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춤하게 된다.
↳변화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본인은 “나, 변했어” 하는데, 남들이 보면 변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반대로 본인은 “나, 변한 거 없어” 하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많이 변한 사람이 있다.

-사실 변화란... 단순히 생각이 변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적인 태도가 조금 변한 것을 말하지도 않는다.
↳중심이 변하는 것을 말하고, 그로 인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

-야곱은 그동안 많은 은혜를 받았다.
↳아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빼고는, 그의 생애를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삶을 추적해 보라.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과 축복권을 얻어내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그 일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았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도시락과 옷 몇 벌을 싸들고, 전혀 낯선 땅으로 떠나야 했다.
↳자기와 함께 해 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고독한 여행이다.
↳벧엘 광야에서 잠을 청했다.
↳이게 하나님과의 첫 번째 만남이다.

-그 후로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잠깐 머물 계획으로 갔는데, 20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어야 했다.
↳물론 그의 20년이 꼭 허송세월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20년 고생 끝에, 처자식들과 엄청난 재산을 얻었다.
↳20년이 지나자, 하나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는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이게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다.

-라반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쉬웠지만, 나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탈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것이 발각되어 어려움에 처하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형 에서였다.
↳그는 형 에서의 마음을 사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그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있었다. 바로 기도였다.
↳그는 가족으로 하여금, 먼저 얍복 강을 건너게 하고, 자기는 홀로 남아서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씨름을 했다.
↳이게 하나님과의 세 번째 만남이다.

-야곱은 돌 같은 에서의 마음을 녹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에서와 화해할 수 있었다.
↳에서가 “동생아 세일로 가서 우리 같이 살자” 했지만, 그는 세겜에 머물렀다.
↳세겜에서 가족과 함께 단출하게 사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의 계획대로 모든 게 잘 되는 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 디나가, 그 땅 추장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로 인해 야곱의 ‘세겜 드림’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야곱이 아들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함으로, 잔인한 복수극이 벌어진 것이다.
↳복수하는 방법도, 얼마나 비겁하고 잔인했는지 모른다.
↳“너희들, 할례를 받으라” 해 놓고, 당사자인 추장 세겜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온 성의 남자들을 살해했고, 거기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았고, 재산을 약탈하여, 세겜 성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야곱은 그 소문을 듣고,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창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이때의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는가?
↳야곱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고 있다.
↳그는 이제 갈 곳이 없다.
↳하란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애굽으로 도망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일로 가서 에서아래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소문은 금방 가나안 족속에게 퍼져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들이 힘을 합쳐, 야곱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계산에 빠른 야곱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이로서 하나님과의 네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하나님은 야곱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그의 삶에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렇다.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 내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처음엔 되는 것 같다가도, 금방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몇 발자국 못가서 손들고 만다.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과 만나서 풀어야 할 이유는, 사람의 처방은 임시방편적이기 때문이다.
↳처방이 설사 잘못되었다고 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근본적인 답을 주신다.
↳우리가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져주신다.

-불안에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벧엘로 올라갈 것을 명하신 것이다.
↳그건 벧엘에 가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하나님께 단을 쌓는 것이다.
↳왜 하필 벧엘인가?
↳가까운 세겜에서도 얼마든지 단을 쌓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벧엘에 가서 단을 쌓으라고 했을까?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곳이 벧엘이다.
↳그 전까지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하나님’, ‘교리적인 하나님’이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지,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지 못했다.
↳그런데 벧엘에서 너무나 생생한 하나님 체험을 한 것이다.
↳이건 그에게 엄청난 일이었다.

-그는 이 때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는 하나님을 전에는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번에 눈으로 보았다.
↳이 체험이 그로 하여금 사람 같지도 않은 라반 밑에서, 20년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눈치 챌 수 있다.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첫 사랑의 회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야단치지 않으시고, “너한테 가장 급한 것은 나와의 첫사랑의 회복이란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을 처음 만난 벧엘로 올라가게 하신 것이다.

-우리도 인생의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자리, 또는 은혜 받았던 자리를 찾아, 그 때 그 감격을 떠올려보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벧엘은 야곱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때이다.
↳그 때 그는 가진 거라고는 없었다.
↳힘도 없었다.
↳그와 함께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였고 빈털터리였다.
↳그야말로 인생의 밑바닥이었다.
↳하나님이 그런 야곱을 만나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실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진 게 없어도 만나주신다.
↳우리가 힘이 없어도 만나주신다.
↳우리가 나이가 많아도 만나주신다.
↳우리가 배움이 부족해도 만나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만나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 것 같은가?
↳재산 의지하지 말라. 사람 의지하지 말라, 환경 의지하지 말라는 말이다.
↳빈손이었던 벧엘에서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너는 원래 맨몸이었지 않느냐, 너는 빈털터리에서 시작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야곱은 눈치 하나는 빠르다.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는 말씀의 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리고 결단했다.
↳그에게서 더 이상 계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생각을 수용했다는 말이다.
↳자기의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랐다는 말이다.

-사실 야곱이 계산했었다면 순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겜에 부동산에 투자한 돈이 있다.
↳벧엘이 안전한 곳이냐, 그곳이 무슨 요새 같은 곳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벧엘은 사방이 뚫려 있는 광야이다.
↳가나안 사람들이 공격해 오면, 수적으로 열세인 그들이 붙었을 때 승산이 거의 없다.
↳차라리 에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다.
↳말씀이 이치에 ‘맞냐’ ‘맞지 않냐’를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야곱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라.
↳이방 신상들을 버린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는다.

-하나님이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꿔 입으라고 했는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는가?
↳하나님께 단을 쌓기 위해서다.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버릴 것을 버리고 바꿀 것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몸에 지니고, 그분께 예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서 이방신상을 버리라는 말은, 다른 신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또한 불결한 모습으로, 그분께 예배할 수 없다.
↳더러운 삶이 묻어있는 의복을 입고, 그분께 예배할 수 없다.

-삶의 연장으로서 예배다.
↳예배는 삶의 연장이요, 삶은 예배의 연장이다.
↳삶과 무관한 예배... 이건 말이 안 된다.
↳우리가 바른 예배를 드렸다면,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때 묻은 삶의 옷을 빨지 않고, 그대로 입고 왔다가 예배 드리고, 또 그대로 입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예배에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이런 예배에 무슨 감격과 눈물이 있겠는가?
↳오히려 예배가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믿음의 사람인 야곱의 집에, 무슨 이방 신상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놀라운 일이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야곱 본인이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야곱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야곱이 책망 받아야 할 처지다.
↳야곱은 가정의 가장이다.
↳더 나아가 가정의 제사장이다.
↳물론 라헬이 드라빔을 끝까지 비밀로 함으로,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혹 자기 가족이나 종들 중에, 숨어서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이 없는가를 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다. 가장은 그냥 가장이 아니다.
↳자기 가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가장이다.
↳가족부양의 책임은 기본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도 인정하는 책임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또 하나의 책임이 있다.
↳자기 가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기 가정을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나가는 것이다.
↳특히 남편이 믿지 않는 경우나, 믿음이 시원찮은 경우에, 신앙의 가장 역할을 감당하려면 갑절의 기도와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4절을 보면,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표시를 해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파내려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정말 왜 그랬을 것 같은가?
↳우리말 성경에는 ‘상수리나무’인데, 원래는 ‘그 상수리나무’이다.

-그럼 ‘그 상수리나무’는 어떤 사연이 있는 나무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창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발을 디딘 후, 처음으로 하나님께 닫을 쌓은 곳을 기념하는 기념수로 보인다.
↳이제 그 상수리나무는, 야곱 가정의 신앙개혁을 기념하는 기념수가 된 것이다.
↳야곱은 이방 신상들과 여러 가지 장신구들을 모아, 그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
↳묻었다는 말은 죽음을 고한다는 뜻이다.
↳즉 청산한다는 뜻이다.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옷만 갈아입고 말면,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된다.
↳자기 단절은 결코 쉽지 않다.
↳아주 과감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오고 만다.

-야곱은 자기가 가정을 신앙적으로 잘 이끌지 못했음을 깨끗이 인정하고, 그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던 것을 장사지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났다.
↳낭패와 실망 당한 삶을 묻어두고 일어났다.
↳벧엘을 향하는 야곱의 모습이, 20년 전과 너무 흡사하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떨 때 만나주시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질 때이다.
↳그런데 이걸 분명히 알라.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강제로 낮추실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강제로 낮추시면, 스스로 낮추는 것에 비해, 훨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야곱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겜을 떠나 벧엘로 향했다.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 말씀으로 볼 때, 가나안 사람들이 야곱 일행이 도망치는 것을 본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야곱 일행을 공격하지 않았다.
↳공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공격하지 못했다. 왜...?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말씀에 순종한 야곱을, 하나님이 책임져주신 것이다.
↳언제 어디를 가든지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도 살 수 있다.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아니 말씀대로 살아야 진짜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떠나 살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떠나 사는데도 잘 산다면, 잘 살수록 비정상적이다.
↳말씀에서 벗어난 삶은, 잘 나가면 잘 나갈수록 위험하다.

-비정상적인 세포는, 잘 자라면 잘 자랄수록 더 큰 문제이다.
↳정상적인 레일을 벗어난 기차라면, 잘 달리면 잘 달릴수록 큰 문제다.
↳항로를 잘못 든 비행기라면, 잘 날면 잘 날수록 문제가 심각해진다.

-혹시 삶에 급제동이 걸렸는가?
↳까닭 없이 급브레이크가 걸리곤 하는가?
↳하나님이 보내는 사인일 수 있다.
↳하나님의 사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지키심으로 벧엘에 도착할 수 있었다.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벧엘에 도착하자말자 한 일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단을 쌓은 것이다.
↳자기를 벧엘에 도착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사였다.
↳아울러 첫사랑의 추억이 담긴 벧엘에, 다시 돌아오게 됨을 감사하는 제사였다.
↳그리고 그 단에 이름을 붙였다.
↳엘벧엘이다.
↳엘이 하나님이란 뜻이기 때문에, 벧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 야곱의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곧 슬픔이 닥친다.
↳리브가의 유모였던 드보라가 죽은 것이다.
↳밧단아람에서부터 시집가는 리브가를 따라와, 이삭의 집에 살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야곱의 일행에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녀의 죽음은 야곱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었다.
↳아마 모친이 죽은 후, 야곱이 그녀를 어머니처럼 의지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뿐 아니라, 장지 그리고 애도한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나온 것을 보면, 그녀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나 보다.

-사실 유모란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모인 그녀를 기억해주셨다.
↳그런 것 보면, 하나님의 평가 기준과, 사람의 평가 기준이 다름을 볼 수 있다.
↳사람 보기에 성공적인 삶과, 하나님보시기에 성공적인 삶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는 단을 쌓은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경우가 많다.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제사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말은,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주신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와 만나주신다.
↳예배를 우리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어떤 것보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서 어떻게 하셨는가?
↳그에게 복을 주셨다.

-복의 내용을 말씀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주신 이름을 상기시키셨다.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쑥스러워서 그랬는지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았다.
↳성경에서 이름이 바뀌는 것은, 인생이 바뀌고 팔자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바꾸는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바꾸어 주시는 이름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이 바꾸어주셨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떤 이름으로 바꾸어주셨는가?
↳성도,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 ……
↳이 이름을, 이 거룩한 이름을, 귀하게 여기기 바란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복의 내용을 살펴보자.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구약에서 기본적인 복이 두 가지, 곧 자녀의 복과 땅의 복이다.
↳하나님이 자꾸 자녀의 복과 땅의 복을 말씀하신다는 말은, 그게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을, 우리가 관심 없는 척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한다.
↳자녀의 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녀를 잘 키우는 데서 온다.
↳자녀를 믿음 안에서 키우기 바란다.
↳믿음을 계승하고 좋은 습관을 물려주려고 애쓰기 바란다.

-우리는 땅의 복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날 동안은, 신령한 복과 함께 땅의 복도 받아야 한다.
↳땅의 복을 대표하는 것이 재물이다.
↳재물에 소망을 두어선 안 되지만, 억지로 재물을 물리칠 필요는 없다.
↳재물을 모으는 복보다, 재물을 사용하는 복을 받기 바란다.
↳재물을 깨끗하게 벌어서,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 바란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것을 기념하였다.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사실 기념은 너무 중요하다.
↳기념은 기억을 되살려내는 능력이 있다.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기념하여,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생일이 그렇고, 결혼기념일이 그렇다.
↳감사절이 그렇고, 교회설립기념일이 그렇다.
↳매 주일예배가 그렇고, 매달 성만찬이 그렇다.

-우리 각자에게 벧엘이 있다.
↳그 벧엘로 올라가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