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헌신예배:선교사로 가든지 선교사를 후원하든지(마 20:18-2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12-12 12:49
조회
663


선교헌신예배
선교사로 가든지 선교사를 후원하든지(마 20:18-20)
2021. 12. 12.
 
 
프롤로그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는,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2살에 그의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의 아버지는 화학기사였다.
↳그의 부모는 경견한 사람들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가족은 뉴저지주의 어퍼 더함이란 마을에 정착을 했고, 그는 그곳에서 신앙을 가져 개혁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그는 곧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하스브룩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대학에 진학했으며, 그곳을 마친 후 '뉴 브룬스위크 신학교'에서 3년을 공부하였다.

-그는 개혁교회의 목사로 안수 받은 후, 뉴저지주의 폼프톤에 있는 작은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였다.
↳그 교회는 부흥했고, 선교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교회의 장로들은, 그에게 선교에 대하여 너무 많은 돈을 기부하도록 충동하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만약 그가 계속 그렇게 할 경우, 그들은 더 이상 사례비를 드릴 수 없다고 했다.

-언더우드 목사의 개성적인 대답은 이러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사례비 없이 그와 같이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간이 지나간 후, 그 교회는 선교헌금이 4배로 급증했고, 목회자 사례비도 2배로 올랐다.

-언더우드 목사는 인도로 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부수적 준비로써 의학공부를 시작하였다.
↳뉴욕의 대학교회는 그가 공부하는 동안에 그들의 목사로 모시고, 매주 한 번의 설교와 한 번의 기도회만을 인도하고, 1년에 1,500달러를 지불했다.

-바로 그때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었고, 조선의 부름은 그에게 지상명령으로 다가왔다.
↳그는 준비해왔던 인도에서 조선으로 임지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가 속했던 화란 개혁교회는, 조선에 새로운 선교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1884년 북장로교 선교부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고, 북장로교 선교사로 조선에 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언더우드는 1885년 부활절 아침 인천항에, 우리나라 선교의 첫 발을 떼게 되었다.

-조선을 위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이 남아 있다.
↳이 기도문을 통해, 당시 조선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이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언더우드가 선교사로 들어올 때만 해도, 조선은 동양의 숨겨진 작은 나라였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조선은 그 어떤 나라와도 통상을 맺지 않고, 혼자만의 고립 가운데 갇혀있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늘 괴롭힘을 당하는,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작은 나라였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열강들은, 조선과의 통상을 주장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조선은 내부적으로도 지독히도 가난한 상황 속에서, 수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져 분열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1910년 8월 29일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후 일제 35년간의 식민지배와,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 전쟁으로, 그야말로 나라가 잿더미에 앉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 중의 하나였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어떤가?
↳세계에서 12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군사력도 세계에서 6위에 랭크되어 있다.
↳디지털 선도국가가 되었고, 의료 선진국이 되었다.
↳이제는 문화선진국으로까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격은 한층 높아졌다.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무엇보다 많은 경제개발도상국의 롤모델 국가가 되었다.
↳이건 기적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15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선교역사에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 세계 50개의 대형교회 중 20개 이상이 한국에 있다.
↳지금은 감소 추세에 있지만, 그래도 인구 중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에 가깝다.
↳이건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특이한 경우다.

-언더우드는 26세라는 어린 나이에, 우리나라 선교사로 와서 사역하다가, 병을 얻게 되었다.
1916년 4월,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해 10월 12일 만 57세의 젊디젊은 나이에 소천하고 말았다.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는, 세 마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하나님의 사자, 그리스도의 제자, 한국인의 친구.”

-오늘 우리는 선교헌신예배를 드리고 있다.
↳2017년부터 매년 12월 둘째주일에 선교헌신예배를 드리며, 선교헌금을 작정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매년 선교헌금 작정에 힘써 참여해주어서 너무 감사하다.

-선교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선교는 주님께서 교회와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이 땅에서의 명령이기 때문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선교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필연코 해야 하는 사명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배다.
↳교회는 예배하기 위해 존재한다.
↳만일 교회가 예배드리는 게 일 순위가 아니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교회가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선교다.
↳교회는 선교하기 위해 존재한다.
↳만일 교회가 영혼 구원하는데 관심이 없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우리가 다 선교사로 직접 나가지는 못한다. ↳또 현실적으로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럼 교회는 누가 지키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다 선교에 참여할 수는 있다.
↳선교에 참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선교 현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것이다.

-그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파송한 선교사나 후원하는 선교사의 사역지로 단기선교를 가는 것이다.
↳선교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2016년에 김성철 목사님이랑 태국 선교지에 다녀왔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
↳그 동안 선교 현장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한 번 더 방문하고 싶다.

-또한 박집사님이 사역하는 곳에도, 꼭 가보고 싶다.

-직접 가서 눈으로 선교 현장을 보고나면, 기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앉아서 선교보고를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직접 현지로 가서 보고 느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대략 한 5만 여명이 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오직 일선에서 직접 말씀을 선포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는, 2만 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단으로 알려진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몰몬교)는, 전 세계에서 직접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선교사가 5만 여명이라고 한다.
↳그것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고 유능한 자들이 자원봉사를 통해서 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그렇게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2-3년 전하고 와야, 정직 멤버십을 가진다고 하니, 선교사로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악질 이단 신천지의 모든 교인들은, 자신들을 선교사로 이해한다.
↳신천지 교인 숫자가, 코로나 사태로 약간의 타격을 받긴 했지만,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만 신천지 선교사가, 지금도 활발하게 선교지를 누비고 있는 셈이다.

-한국목회자선교협의회(KPMA)가 서울 천성교회에서 '2017 목회자이슬람세미나'를 개최했을 때, 최바울 선교사(인터콥 본부장)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선교사가 2-3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의 상당수는, 이슬람선교사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좀 섬뜩한 생각이 든다.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이다.
↳일단 규모면에서 작은 교회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약 5만개 교회가 있는데, 그 중 100명 미만의 교회가 85%이다.
↳그럼 우리교회는 85%에 속하는 교회이다.
↳우리교회가 합병하여 한꿈교회로 새 출발하기 전에는, 자립대상교회였기에, 노회로부터 지원을 받았었다.
↳그런 우리교회가 지금은...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됐고, 또한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한꿈교회로 출발하면서, 바로 김영석 목사님을 선교사로 파송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9년째 태국 치앙마이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박경원 집사님 역시 같은 시기에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하여, 9년째 태국 푸켓에서 비즈니스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우리교회에서 후원하는 김온유 선교사님은 말레이시아에서, 다니엘 선교사님은 아제르바이잔에서 각각 사역을 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교회는 85%에 속한 교회 중에서는, 선교비 지원에 대해서만은, 상위권에 속하는 교회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우리교회는 전 교우들이 선교헌금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최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선교는 성공과 실패를 따질 수 없는 사역에 속한다.
↳매우 특수한 사역인 셈이다.
↳외형적으로 그럴듯하면, 선교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 쉬운데, 그렇게 보는 건 위험하다.
↳우리는 선교사를 믿고 우리 할 일을 하면 된다.
↳교회가 파송 선교사나 후원 선교사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미얀마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저드슨은, 신학교를 졸업할 당시 어느 큰 교회의 부교역자로 초빙을 받았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부러움과 기대에 찬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해외 선교에 꿈이 있었다.
↳그는 부교역자 초빙을 거절하고, 불교의 나라인 미얀마에 선교사로 자원을 했다.
↳그러자 주위의 아는 사람이, 그의 결정을 만류하고, 걱정스런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저드슨은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목숨을 바칠 각오로 선교사역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명의 세례 교인을 얻는데 걸린 기간이, 무려 6년이었다.

-그럼 그의 선교가 실패했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교인데 실패가 있겠는가?
↳한 명의 세례교인을 얻는데 6년이나 걸렸지만, 저드슨의 선교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 결과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 6만 명의 기독교인이 생겨나게 되었다.

-모라비안 교파 출신인 조지 스미스라고 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신앙이 아주 좋은 청년이었다.
↳자기는 아프리카에 가서 한 평생을 바치고 그 땅에서 죽으리라 생각을 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후원자를 얻어서 아프리카로 갔는데, 몇 달 되지 않아서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했다.
↳그는 몇 달 동안 딱 한 명을 전도했다.
↳한 사람밖에 전도를 못 했는데, 추방을 당해서, 그는 아프리카를 향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몇 달 후에 죽었다.

-그럼 그의 선교가 실패했는가?
↳하나님의 선교에는 실패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조사해 봤더니, 이 조지 스미스가 전도한 사람이 전도자가 되어서, 1만3천 명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밀알 선교이다.
↳선교사는 선교지에 한 알의 밀알을 심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가 사역하는 동안 열매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한참이나 지나고 난 후에, 열매를 거두기도 한다.

-혹은 선교사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다섯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이들 가운데 피트라는 청년은 막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는 신혼 여행을 포기하고, 에콰도르 선교에 나섰다.
↳5명 선교사들은, 아내들을 데리고 같이 가려다가, 우선 아내들을 후방에 남겨 두고, 상황을 보려고 먼저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경비행기를 타고, 기독교인이 단 한 명도 없는 아우카 인디언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1965년 1월 2일, 피트 선교사는 아내에게 긴급 무전을 보냈다.
↳"흥분한 인디언들이 몰려오고 있다. 기도해 달라"
↳그 뒤 연락이 끊어졌다.
↳이튿날 구조대원과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보니, 5명 선교사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총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5명 모두가 인디언들에 의해 순교를 당하고 말았다.

-20대의 선교사 부인들은 울부짖으며, 한 가지 결심을 하였다.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우리가 이루자. 우리도 같이 죽어야 하는 데, 우리를 두고 떠난 것은, 우리더러 후발대로 들어가라고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것이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자."
↳아내들은 모두 아우카 마을로 들어가, 그 곳에 살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을은 복음의 땅으로 변하였다.
↳선교사들을 살해했던, 5명의 인디언 가운데 4명은 목사가 되었다.
↳1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두 주님을 영접하였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선교 명령이다.
↳더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유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 앞에서 올바른 반응을 보여야 한다.
↳“선교사로 나가든지, 선교사를 후원하든지”

-알렉산더 더프 박사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목사로서, 오랫동안 인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나이가 많아서 고향에 뼈를 묻기 위해 귀국하였다.
↳환영하는 식장에서, 그는 인도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의사의 치료로 깨어난 후, 자기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단상에 다시 세워달라고 눈물로 간청했다.
↳그는 단상에 서서, 백발이 성성한 흰머리로 열변을 토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지원병을 모집할 때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지원했는데, 우리 주님이 선교사를 보내고자 하는데, 한사람의 지원자도 없다니, 정말 섭섭한 일입니다. 나는 내 고향 스코틀랜드에 뼈를 묻으러 왔지만,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한 사람이, 저들의 영혼을 위하여 백골을 인도의 갠지스 강변에 묻으러 왔다고 말하겠습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인도 선교사로 자원했다고 한다.

-이런 그들의 반응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고 우리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반응할 차례이다.
↳“선교사로 나가든지, 선교사를 후원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