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요셉) 강해 12:요셉이 아우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창 43:16-3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3-06 12:20
조회
385
구약인물(요셉) 강해 12
요셉이 아우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창 43:16-34)
2022. 3. 6.


프롤로그

-야곱은 막판까지도 베냐민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런 그도 결국은 베냐민을 놓고야 말았다.
↳막다른 궁지에 몰려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냐민을 포기하지 않으면, 시므온을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양식도 구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 준 것은, 비장한 결심이었다.
↳14절 뒷부분에 잘 나타나고 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이 그런 결단을 빨리 내렸으면 좋을 뻔했다.
↳그랬다면 유다의 말대로 벌써 두 번은 갔다 왔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끝까지 붙들어보려고 한다.
↳최후의 순간까지 버텨보려고 한다.
↳그리고 막판에 가서야, 어쩔 수 없게 돼서야, 손을 놓게 된다.

-포기해야 할 것을, 막다른 상황에까지 가져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빨리 포기해야 한다.
↳오래 끌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그걸 붙들고 막판까지 가지 않아야 한다.
↳그게 지혜다.

-우리에게 있어 자식이 베냐민인가?
↳자식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해야 한다.
↳자식이 어려서부터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식은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자식을 놓아주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식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전부는 아니다.
↳그러므로 자식 핑계로 주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돈이 베냐민인가?
↳사실 돈이 베냐민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돈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붙들어 보려고 한다.
↳돈에 삶의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십일조를 요구하실까?
↳돈을 포기하는 것을 훈련시키시기 위해서이다.
↳포기는 쉽지 않다.
↳포기는 작은 것부터 연습해야 한다.
↳충분한 연습이 되어야, 말씀대로 살기 위해 돈을 포기할 수 있다.

-포기는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포기는 우리에게 평안을 선사해 준다.
↳신앙은 자기를 포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주님이 가장 힘들 때 하신 기도는, 자기 비움의 기도였다.
↳“아버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독교는 부활을 먼저 말하지 않다.
↳부활 이전에 십자가를 말한다.
-기독교는 높임을 먼저 말하지 않다.
↳높임 이전에 낮아짐을 말한다.
-기독교는 채움을 먼저 말하지 않다.
↳채움 이전에 비움을 말한다.
-기독교는 성취를 먼저 말하지 않다.
↳성취 이전에 포기를 말한다.

-나를 포기할 때, 하나님이 가까이 오신다.
↳내가 포기할 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붙들고 있는 것을 포기할 때, 욕망의 종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포기가 잘 안 된다.
↳포기는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는다.
↳죽을 것 같은 고민을 한 후에 나올 수 있다.
↳베냐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하기 전, 야곱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 것이다.

-야곱이 베냐민을 포기했기에, 아들들이 다시 애굽으로 갈 수 있었다.
↳야곱의 포기가 70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살렸다.
↳가정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서로가 자기의 베냐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곱의 베냐민 포기로,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 앞에 설 수 있었다.
↳요셉은 자기 앞에 있는 낯선 아이가 베냐민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요셉은 청지기를 조용히 불러, 가나안에서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을 말해 주었다.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총리 관저로 그들을 인도하여 잔치를 베풀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잔치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했다.

-요셉의 형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지금 요셉의 형들에게,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양식을 사가지고, 얼른 애굽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무서운 총리 눈앞에서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양식은 주지 않고,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루에 있던 돈이 문제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꼬투리 잡아서, 자기들을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전번에 정탐꾼으로 몰아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었던지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있는 그들은, 나귀까지도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닌, 어디까지나 그들의 상상일 뿐이다.
↳불행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자꾸 불길한 상상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불길한 상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그렇게 된 것처럼 미리 염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은 아무래도 지난번의 돈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청지기에게 자루 안에 들어있던 돈에 대해 자수를 했다.
↳이게 죄 지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 죄를 짓고 나면, 누구를 만나든지 긴장하게 되고 겁부터 난다.
↳항상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
↳내가 죄 지을 때, 혹 본 사람은 없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떳떳하게 사는 것이 복이다.
↳아무리 권세가 있으면 뭐하는가?
↳권세가 없는 소시민일지라도, 떳떳한 게 복이다.
↳아무리 돈이 넉넉하면 뭐하는가?
↳돈이 넉넉하지 못해도, 떳떳한 게 복이다.

-그리스도인은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떳떳한 일을 해야 한다.
↳떳떳한 직장에 다녀야 하고, 떳떳한 사업을 해야 한다.
↳돈을 벌어도 떳떳하게 벌어야 하고, 돈을 써도 떳떳하게 써야 한다.

-요셉의 형들은 떳떳하지 못했기에, 요셉의 청지기에게 자루 속에 돈이 있었던 사실을 실토했다.
↳하지만 42장 25절의 요셉의 명령을 집행했던 청지기는, 그 간의 사정을 다 알고 있었기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상하게 대답했다.
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4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지기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분명할 텐데,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요셉의 형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요셉의 청지기가, 묘하게 대조되고 있다.
↳요셉의 형들 속에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이방인인 청지기이다.
↳사실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제대로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요셉의 형들처럼, 불신자들에게 부끄러움 당하게 된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뭐 그 모양이냐?’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밖에 못사느냐?’
↳우리가 예수 이름에 먹칠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욕 돌릴 수는 없다.

-청지기가 시므온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발 씻을 물을 주었다.
↳나귀에게 먹이를 주었다.
↳요셉의 형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이건 당시 손님을 접대하는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이 조금 놓일 수 있지만, 어쩌면 더 불안했을 수도 있다.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그들에게는 더 큰 고문일 수 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차라리 혼나는 것이 낳은데, 오히려 잘 대해준다? 그러면 알고도 잘 대해주는 건지, 아니면 모르고 잘 대해주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요셉의 형들은 마음고생이 심하다.

-그러다 불편한 식사를 하게 됐다.
25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26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총리도 함께 식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드디어 올 때가 왔구나’ 싶어, 자기들이 준비한 예물을 정돈했다.
↳여기서 “정돈하고”의 원어 ‘쿤’은 ‘확실하게 하다’ ‘예비하다’의 뜻으로, 성의를 다하여 준비한 예물을 더욱 돋보이게 가지런히 놓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청지기의 호의나, 시므온의 출옥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드디어 정오가 되었다.
↳요셉은 약속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그들은 준비한 예물을 요셉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을 했다.
↳자기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성취된 요셉의 꿈이, 또 한 번 성취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형들은 요셉의 꿈을 무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면서 뭐라고 했는가?
창 37: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며 비웃고, 구덩이에서 건져내어 노예로 팔아넘겼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어 주셨다.
↳요셉의 꿈이 이뤄지는데, 20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결국은 이뤄졌다.
↳우리의 꿈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 분명하다면, 틀림없이 이뤄진다.
↳비록 더딜 수는 있어도, 반드시 성취된다.

-요셉은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형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27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자기 신분을 속이고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관심만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요셉은 전번에 사간 양식으로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 계산을 하고, 어쩌면 며칠 전부터 형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양식을 사러올 때가 되었는데도 오지 않자,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안녕하신지 급하게 물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들로부터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

-요셉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버지이다.
↳열 두 아들이 있지만, 유독 자기를 사랑했던 아버지를 뵌 지가, 20년이 넘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 소식을 들은 후로, 한 순간도 아버지를 잊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와락 끌어안고 울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 다음으로 요셉의 눈길은 베냐민을 향했다.
29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은 어린 베냐민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요셉이 형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형들은 헤어질 그 때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냐민은 아주 어렸다.
↳그러니까 자라면서 어릴 때 모습이 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요셉이 꼭 몰라서 물었다기보다,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요셉은 다정한 말투로 베냐민을 축복했다.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그 엄하던 총리가 웬일인지, 베냐민에게만은 “소자여” 하며 친근하게 대했다.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이라는 말을 눈여겨 보라.
↳어쩔 수 없다.
↳요셉은 형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베냐민에 대한 사랑과 같은 급일 수 없다.
↳베냐민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요셉은, 어디론가 급하게 나갔다.
↳무슨 보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요셉이 황급히 뛰쳐나갔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해준다.
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요셉의 마음이 복받쳐서였다.
↳“마음이 복받쳐”의 원어 상 의미는 ‘마음이 군급하여 심장이 녹아내릴 정도’를 가리킨다.
↳울컥해서 하마터면 눈물을 들킨 뻔 했다.
↳요셉은 안방으로 들어가서 원 없이 울었다.
↳사실 요셉은 형들을 대할 때마다 울었다.
↳42장 24절에도 보면, 요셉이 울었던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그 때는 옛날 생각이 나서 울었다.
↳지난날의 자기 설움에 복받쳐 운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베냐민을 만난 기쁨에 울었다.

-요셉은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다.
↳예리한 판단력이 돋보이는 이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진솔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 차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 가까이 갈 수가 없다.
↳또 어떤 사람은 따뜻하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고, 존중과 배려심이 느껴진다.

-바람직하기는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균형잡힌 사람이다.
↳좋은 사역자가 되려면, 균형잡힌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균형 잡힌 사람에게 나라를 맡겨야, 나라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균형 잡힌 사람에게 교회의 직분을 맡겨야, 교회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요셉이 나왔다.
31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얼굴을 씻고 자기감정을 다스리고 나왔다.
↳오랫동안 운 것이 아니기에, 눈이 붓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요셉의 행동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한 음식이 차려졌다.
↳그런데 보면, 각기 따로 차렸음을 볼 수 있다.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함께 먹는 애굽 사람들에게도 따로 차렸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첫째는 총리의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지체 높으신 총리를 따로 구분 안 할 수가 없었다.
↳둘째는 본문에 나와 있다.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종교가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애굽 종교를 숭상하지 않는 이방인과는,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애굽의 규례 때문이다.
↳사실 이런 규례는, 애굽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더 심했다.
↳예수님 당시, 동족 간에도 있었지 않는가?
마 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유대인들은 설사 동족이라고 해도, 세리와 죄인과는 식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걸 깨뜨리신 것이다.

-복음이 확산된 후에도,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같이 식사하는 것을 무척 꺼렸다.
갈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서로 부정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웃기는 일이지만, 당시 그들은 그걸 진리처럼 여겼다.

-그러니까 요셉의 형들은, 따로 차린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33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요셉이 형제들을 나이에 따라 앉혔다.
↳이걸 보고, 그들은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자기 집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자기들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불안감은 더 커져갔다.
↳혹시 순서대로 자기들을 어떻게 해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사실 요셉이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했다.

-사랑한다는 게 쉽지 않다.
↳서로 이해되지 않은 사랑은, 두 사이를 멀어지게 할 뿐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루기 까다로운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조금만 잘 해주시면, 교만하여 기어오르려고 한다.
↳우리를 조금만 어렵게 하면, 고개를 숙이고 풀죽은 모습을 보인다.

-괜히 호세아 선지자가 그렇게 외친 것이 아니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면 우리를 찢을 때 절망하게 된다.
↳하나님을 모르면 우리를 치실 때 낙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그 앞에서 살게 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에 대해선, 3절에 나온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분”
↳“그 본체의 형상이신 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는 분”
↳“높은 곳에 계신 분”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신 분”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제자 중에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한 사람이 있다.
요 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했는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시간은 핑계이다.
↳틈나는 시간에 읽어야 한다.
↳틈이 나지 않는다면, 시간을 쪼개서 읽어야 한다.
↳시간을 쪼개도 안 된다면, 시간을 만들어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신다.

-요셉은 베냐민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다섯 배나 더 줌으로 자신의 정체를 조금 더 벗겼다.
34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여기서 “다섯 배를 주매”하는 표현은, 특별한 손님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표하는 고대 근동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요셉이 단순히 자기 친동생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함으로, 형들의 시기를 받았음을 상기하며, 베냐민의 식탁 앞에 다른 형제들 보다 다섯 배나 많이 주어서,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시험한 것이다.
↳그 시험에 형들이 합격한 셈이다.
↳그들은 요셉이 베푼 잔치에서 함께 즐거워했다.

-함께 즐거워하는 곳이 천국이다.
↳예수만 섬기며 함께 즐거워하는 삶이 되길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