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요셉) 강해 10: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창 42:18-3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2-20 12:25
조회
451


구약인물(요셉) 강해 1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창 42:18-38)
2022. 2. 20.


프롤로그

-애굽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전역에 유례없는 기근이 들었다.
↳제법 잘 살았던 야곱의 집도, 그만 양식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소문을 듣자하니,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애굽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버텨보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곱도 도저히 힘들었던지, 아들들을 불러놓고 나무랐다.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열 아들들은 못 이기는 체 하고, 애굽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 위험한 이유도 있겠지만, 자기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의 다간 길을 돌아오기도 뭐하고, 또 다른 것도 아닌 양식 사러가다가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양식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볼 때, ‘야, 어느 세월에 사 가지고 가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드디어 그들의 차례가 왔다.
↳그런데 바로 앞 사람들에게는 돈받고 양식을 팔고 있던 것을, 잠자코 지켜만 보던 고위 관리가,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다.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이들은 별 대수롭지 않은 질문으로 여겨, 편하게 대답했다.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그 대답을 들은 고위 관리는, 순간 얼굴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그들은 순수하게 양식을 사러왔는데, 뜬금없이 정탐꾼으로 몰리니,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정탐꾼으로 몰리는 장면을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든다.

-22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갔다.
↳형들은 세겜에서 도단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요셉은 세겜에서 찾느라 고생만 하고, 다시 도단으로 향해야 했다.
↳형들은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저 멀리 오는 사람이 요셉임을 알아봤다.
↳그리고는 요셉을 죽이기로 합의를 했다.
↳그가 꾼 꿈 때문이다.
↳그게 결정적인 건 맞지만,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고자질이다.

-형들은 요셉을 아버지의 정탐꾼이라고 단정하고, 그를 구덩이에 던지기 전에 물었다.
↳“너, 우리를 정탐하러 왔지?”
↳“아니에요.”
↳“야,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준다. 너는 우리의 틈을 엿보려고 왔지?”
↳“아니에요. 저는 확실한 자입니다.”

-요셉이 형들한테 당신들은 정탐꾼인 게 분명하다고 할 때, 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변호했는가?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스스로를 “확실한 자”라고 했다.
↳“확실하다”는 말은 ‘정직하다’는 말이다.
↳“나는 결백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물론 그들은 정탐하러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백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요셉 앞에서, 자기들이 확실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혹 22년 전 도단에서의 일이 우발적이었다고 해도, 얼마든지 뒤 행동이 따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회개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자기들의 잘 못을 뉘우치고,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심을 세월에 묻고, 잘 먹고 잘 살아왔다.
↳그런데 요셉 앞에서, “우리는 확실한 자들입니다”라고, 자기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요셉이 확실한 자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는 묵살했던 그들이, 이제 스스로를 확실한 자들이라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자 요셉이 어떻게 했는가?
↳그들을 삼일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
↳자신들은 결백하다는 주장이 묵살된 셈이다.
↳마치 결백하다는 주장이 묵살된 채,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진 것처럼 말이다.
↳졸지에 정탐꾼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된 형들은, 처음엔 분노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항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불안해졌을 것이고, 두려움이 엄습해왔을 것이다.

-요셉은 그들을 감옥에 가둔 지 삼일 만에 풀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애굽의 어떤 신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애굽의 총리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그건 그들에게 다행이다.
↳잘하면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에 충분했다.
↳요셉이 자기 말대로만 하면,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요셉이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밝힌 이유가 있다.
↳조금씩 자기를 열어 보여주기 위해서다.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서서히 자신을 나타낸 것이다.

-이건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서서히 드러내셨다.
↳즉 점진적 계시를 하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을 통한 계시가 있고, 노아와 방주를 통한 계시가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통한 계시가 있고, 모세와 율법을 통한 계시가 있다.
↳사무엘과 다윗을 통한 계시가 있고, 선지자들을 통한 계시가 있다.

-그럼 최종 계시는 누구를 통해서 주어졌는가?
↳예수님을 통해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최종 계시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 곧 사복음서로 해석해야 한다.

-정통 교단에서는, 성경을 계시의 끝으로 믿는다.
↳신구약성서 외에 그 어떤 것도 계시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교는 원리강론을, 안식일교는 엘렌지 화이트의 글을, 몰몬교는 조셉 스미스의 책을, 신구약성서와 동등한 계시로 인정한다.
↳아니 자기들이 예언자로 받드는 이들의 말에, 더 무게를 둔다.

-아무리 그럴 듯해도, 성경에서 벗어난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아니다.
↳장로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교회는, 한 때 깔뱅의 충실한 후예가 되고자 할 때가 있었다.
↳루터교는 루터에서, 감리교는 웨슬리에서, 구세군은 윌리암 부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깔뱅, 루터, 웨슬리, 부스, 그들은 하나같이 위대한 성경 해석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한꺼번에 열어주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요셉은 확실하다는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는지,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당신들이 진짜 확실한 사람들이 맞냐”고 캐묻고 있는 것이다.
↳요셉은 형들의 과거 모습을 재현시키고 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형들로 자신들의 지난 허물을, 다시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건 형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곪은 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부를 드러내보여야 한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민감해지고, 말씀에 예민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둔감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속마음을 감추려고 한다.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는 것을, 어떻게든 숨겨보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걸 드러내고 싶어 하신다.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그 때 형들의 마비된 양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기 속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인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무뎌지다 못해 마비되어 버린 양심의 소리가, 지금 다시 들려온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탄식했다.

-22년 전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요셉의 울부짖음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행한 대로 받고,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롬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은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분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악인이 그 지은 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분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돌이켜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바란다.

-악인이 멸망하기를 바라지 말자.
↳그들이 잘못되기를 바라지 말자.
↳그들이 예수 믿고 새로워지기를 바라자.

-요셉은 형들이 주고받는 것을 이야기를 듣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통역을 세웠기 때문에, 요셉이 자기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형들의 주고받는 말을 듣고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요셉은 그들을 떠나가서 한참이나 울었다.
↳아마 22년 전 일들이 생각나서였을 수 있다.
↳아니면 파란만장했던 종살이와 옥살이의 고통들이, 생각났기 때문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토록 무자비했던 형들이, 그래도 양심은 살아있었구나 하는 감동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제 요셉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동생에 대한 애정이 더 끓어오르고 있다.
↳아버지와 동생을 만나 꿈의 성취를 보여주고 싶고, 꿈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을 간증하고 싶었다.

-요셉의 울음은 길게 가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자신의 감정을 겨우 자제했다.
↳마음 같아서는, 형들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안고 울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형들이 요셉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형들을 믿을 수 없다.
↳형들이 뉘우치는 기미는 보였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개는 단순히 과거를 뉘우치는 후회와는 다르다.
↳일시적으로 죄의식을 느끼는 죄책감과는 다르다.
↳감상적인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것이 아니다.

-요셉의 형들을 잘 보라.
↳그들에게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라는 고백이 없다.
↳누구 하나 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말하지 않다.
↳오히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
↳그래서 요셉은 ‘아직은 아니구나’ 판단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도 그렇다.
↳하나님이 선물을 주시고 싶어도, 받을 만한 준비가 돼있지 않으면 주실 수 없다.
↳우리가 받을 그릇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찬 마음의 그릇을, 회개를 통해 비울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런데 받을 그릇은 준비하지 않고, 무조건 달라고만 요구하면, 하나님 입장에서 답답할 노릇이다.

-요셉은 여전히 신분을 감춘 채 다가와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단 조건이 있었는데, 그건 막내를 데려오는 것이다.
↳왜 막내를 데려와야 하는가?
↳그건 아버지를 모셔오려는 일 단계 조치이다.
↳사실 형들은 곡식만 사서 떠나면 그만이다.
↳만약에 총리가 요셉이란 사실을 알고 나면, 다시는 그 앞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막내를 데려오도록 요구했고, 보다 확실하게 시므온을 인질로 붙잡아 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우리도 주님께 담보물로 잡힌 것이 없다면, 이미 오래 전에 주님께 “Good Bye” 했을지 모른다.
↳물질이라는 담보물, 질병이라는 담보물, 생업이라는 담보물, 가정이라는 담보물, 자녀라는 담보물, 등등, 이것들 때문에 아직도 주님께 붙어있는지 모른다.
↳물론 그 차원을 넘어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의 경지에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심각한 기도제목을 갖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기도가 같지 않다.
↳절박함의 강도가 다르다.
↳부르짖는 소리의 크기가 다르다.
↳기도의 내용이 다르고, 기도의 시간이 다르다.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과 교제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겠다.

-그런데 왜 하필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었을까?
↳열두 형제들 중에, 시므온이 몇 번째인가?
↳두 번째이다.
↳장남인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려고 하는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는 것이, 새롭게 알려졌다.
↳그렇다면 시므온이 요셉을 헤치려고 한데서, 주동적인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그래서 시므온을 결박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요셉이 자기를 조금 더 연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셉은 신분은 밝히지 않았지만, 베풀 수 있는 선을 행하였다.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이는 분명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대한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양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따로 주었고, 양식 값으로 받았던 돈도 자루에 도로 집어넣게 했다.
↳물론 그들에게 부담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순전히 좋은 뜻으로 그렇게 했다.
↳아무 영문을 모르는 시므온을 제외한 아홉 명의 형들은, 양식 자루를 나귀에 싣고 가나안 집을 향하여 출발했다.
↳혹시나 또 무슨 구실을 내세울지 몰랐기에, 어떻게든 걸음을 재촉해서 애굽을 벗어났다.

-한참을 가다가, 여관에서 하룻밤 쉬어가기로 했다.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한 사람이 나귀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자루를 풀었다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그 말은 들은 나머지 여덟 명도 같이 얼굴이 굳어졌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여기서 “혼이 나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갑작스럽게 발생하여, 어안이 벙벙한 상태를 말한다.

-정탐꾼으로 몰렸다가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제는 절도범으로 몰리게 되었다.
↳다행히 애굽을 벗어낫고, 추격해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혹 기근이 곧 끝나 양식을 다시 사러가지 않아도 될지 몰라도, 그래도 인질로 잡혀있는 시므온이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양식은 구했지만,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한 말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이제까지 그들은 마비된 양심으로 살아왔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왔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담을 겹겹이 쌓고 살아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굳어진 심령을 깨뜨리고, 마비된 양심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 속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은 부재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물론 완벽한 신앙고백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도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인격적인 결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 야곱은 오직 하나님 붙들고 살았다.
↳그가 하나님께 단을 쌓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을 것이고, 그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수시로 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이란 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인생의 코너에 몰려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좋은 일에, 일이 잘 될 때, 이런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럼 뜻이 달라진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감탄문이 된다.

-그런데 이들이 한 말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광을 돌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혼이 나서 얼떨결에 나온 말이다.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던 하나님 의식이 되살아난 것이다.

-간혹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주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숨 쉬고 나서도 “주여”를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언뜻 보면 대단히 신앙 좋은 사람처럼 비쳐질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식사기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주 짧은 기도이다.
↳30초 길어야 1분 이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도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습관적으로 할 때가 많다.
↳식사에 대한 묵념처럼 할 때가 있다.
↳했는지 안 했는지를 몰라, 하고 또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을 부르는 자체에 만족하고, 기도하는 것 자체에 만족하고, 예배하는 것 자체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어렵게 집에 도착했다.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그들은 그 동안 애굽에서 겪었던 일들을, 아버지에게 소상하게 말했다.
↳시므온을 두고 온 이야기하며, 막내를 데려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야곱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이 강조한 것은, 자기들은 확실하다는 말이다.
↳“확실하다”는 말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정직하다’는 말이다.
↳자기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말이다.
↳자기들이 뭘 잘못해서, 시므온이 인질로 잡힌 것이 아니고, 막내를 데려가게 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에게 자세히 말하면서도,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22년 전에 자기들이 요셉에게 행한 일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당했던 일이, 사실은 자신들의 죄 값이었고, 죽게 되었을 때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다는 것은 빼고 이야기 했다.
↳그들은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잠깐 뉘우치는 기색이 있었지만, 그 환경에서 벗어나자 자기들의 결백만 주장하고 있다.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죄값을 깨끗이 치르고, 아버지께 용서를 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시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러자 하나님은 또 그들의 양심의 문을 노크하셨다.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신 것이다.
↳가져갔던 돈이, 고스란히 자루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청산되지 않은 죄 문제는, 자기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
↳아니 죽어서도 완전히 꼬리표를 뗄 수 없다.

-그들이 돈을 보고 두려워하는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들이 그 돈을 두려워한 것은, 그 돈이 공짜돈이기 때문이다.
↳수고하여 얻은 돈이 아니고, 자기들이 노동으로 번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돈 앞에서는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 ‘혹 공짜돈이 생기지 않나’ ‘눈먼 돈을 챙길 수 없을까’ 눈알을 굴린다.
↳그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노동의 대가로 번 돈을 기뻐하신다.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여 얻은 재물을 기뻐하신다.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버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하고 깨끗하게 버는 것이다.

-새파랗게 질려 있는 아들들을 보며, 야곱은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르우벤이 말려봤지만,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무조건 막내 베냐민만은 안 된다고 했다.
↳아니 그럼 애굽에 두고 온 시므온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시므온은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
↳야곱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단시 막내를 데려가야 한다는 말에, 순간 이성을 잃고 한 말일 것이다.

-르우벤은 장자인데도, 그의 말이 무시되고 있음을 본다.
↳그건 그의 허물 때문이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르우벤이 장자이지만, 이미 야곱의 맘속에는 르우벤을 장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책임의식이 강하고 형제간의 우애도 있는 르우벤이었지만, 결정적인 실수로 인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삶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확실한 자’로 인정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