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강해 01:골로새에 있는 성도들(골 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5-15 12:14
조회
466


골로새서 강해 01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골 1:1-2)
2022. 5. 15.


프롤로그

-지금까지 19번에 걸쳐, 구약인물 요셉에 대한 말씀을 상고해왔다.
↳오늘부터는 몇 주간은, 신약의 말씀을 상고하도록 하겠다.
↳구약은 구약대로, 신약은 신약대로, 말씀의 맛이 다르다.
↳구약은 구약이라서 맛있고, 신약은 신약이라서 맛있다.
↳음식을 섭취하는데 편식이 문제이듯, 영혼의 양식인 말씀도 편식은 좋지 않다.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양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다.

-성경은 크게 신구약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다양한 장르(genre)로 구성된 것도 사실이다.
↳설교자가 선호하는 취향의 말씀이 있다.
↳또한 회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씀만 들으면, 영혼에 큰 유익이 되지 못한다.
↳물론 말씀을 먹지 않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또 몇 번 편식한다고, 크게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교회 홈페이지를 살펴봤다.
↳2016년부터 2018년 3월까지 신약 <마태복음>을 강해했다.
↳2018년 3월부터 2018년 9월까지 구약 <호세아>를 강해했다.
↳2018년 9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신약 <빌립보서>를 강해했다.
↳2018년 1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신약 <고린도전서>를 강해했다.
↳2019년 8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강해했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구약인물 <노아>를 강해했다.
↳2020년 2월부터 2020년 9월까지 구약인물 <아브라함>을 강해했다.
↳2020년 9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구약인물 <이삭>을 강해했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사도신경>을 강해했다.
↳2021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구약인물 <야곱>을 강해했다.
↳2021년 9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열두지파>를 강해했다.
↳2021년 12월부터 2022년 5월(지난주일)까지 구약인물 <요셉>을 강해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몇 주간 신약 <골로새서>를 강해하겠다.

-구약과 신약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설교자로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계속하여 균형 잡힌 영양식을 제공하는, 말씀의 주방장이 되도록 기도해주기 바란다.

-먼저 골로새서가 신약성경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큰 그림을 알아야 한다.
↳신약성경은 복음서가 4권 있다.
↳역사서인 사도행전이 1권 있다.
↳서신서가 21권 있는데, 그 중 바울 서신이 13권이고, 공동서신이 8권이다.
↳묵시록인 요한계시록이 1권 있다.
↳그래서 총 27권으로 되어 있다.

-골로새서는 서신서 중에 바울 서신에 해당하고, 그 중에서도 옥중서신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옥중서신하면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이다.
↳이 4권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이 AD.62년경 1차 투옥되었을 때, 에베소서보다 약간 먼저 기록한 것으로 본다.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다.
↳바울이 목회를 했던 교회도 아니다.
↳심지어 바울은 골로새를 방문한 적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골로새교회의 사정을 알고, 골로새교회에 서신을 보냈을까?
↳그건 에바브라 때문이다.
↳에바브라가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와서, 골로새교회의 사정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에바브라가 전한 골로새교회 사정에는, 좋은 내용만 있지는 않았다.

-한 때 교회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칠 때가 있었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가리키는지, 안디옥교회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둘 다를 가리키는지는 몰라도, 그럼 초대교회가 완벽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초대교회도 사람이 모인 공동체인지라, 여러 가지 문제들에 노출되어 있었다.
↳골로새교회도 나름 초대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교회 역시 다양한 문제에 처해 있었다.
↳그게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한 목적이기도 하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
↳골로새도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단이 극성을 부렸다.
↳다양한 이단들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괴롭혔다.

-그 중 대표적인 이단으로 율법주의가 있었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디 가나 골치 덩이였다.
↳그들은 할례, 음식, 절기를 강조했다.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할례 받아야 하고, 음식 가려야 하고,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거였다.
↳이미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론이 났음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자기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신비주의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종교적 신비체험에 의존했다.
↳체험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리스도보다 체험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말씀을 붙들지 않았다.
↳기독교를 그리스도 중심적인 종교가 아니라, 체험 중심적인 종교로 만들고 말았다.
↳체험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체험을 성경보다 앞세워서는 안 된다.
↳성경 진리에 기초하지 않으면, 제나름의 신앙이 되어, 아주 위험해진다.
↳그러면 열심히 믿을수록 위험하다.
↳그런 신앙은 믿음의 확신이 강할수록 더 위험하다.

-금욕주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금욕은 식욕과 성욕이다.
↳골로새지역에서는 과도한 금식이 문제였다.
↳탐식도 문제지만, 금식도 과도하면 문제이다.

-한 때 한국교회는 금식이 경건의 상징이었다.
↳자신의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금식에 들어가곤 했다.
↳금식전문기도원이 있을 정도였다.
↳요즘엔 금식에 무관심해서 탈이고, 과식으로 인해서 병을 얻고, 다이어트한다고 돈 쓴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가난하고 못 먹어서 생긴 병이 많았던 우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으로 고민하고 있다.
↳얼마나 영양이 많고 건강에 좋은지 선전하던 음식물들이, 이제는 영양소를 최소화하여 살이 찌는 것을 방지해준다고 광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세상이다.

-골로새에 금식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과도한 금식과 육체적인 극기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금식을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문제였던 것이다.

-천사를 숭배하는 일도 있었다.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천사들을 숭배했다.
↳천사들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자, 또는 매개자로 보았고,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또 천사들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을, 겸손한 행위로 가장했다.
↳주후 363년에 소집된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천사들에게 기도하는 행위를 금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그리스도의 양성을 부정하는 거였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이다.
↳신성을 100% 충족하신 분이고, 인성을 100% 충족하신 분이다.
↳1/2 신성과 1/2 인성을 가진 분이 아니다.
↳2/3의 신성과 1/3의 인성을 가진 분이 아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고백대로이다.
↳“그분은 영원히 아버지로부터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빛으로부터 오신 빛이시요, 참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육신하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해도 이단이고, 인성을 부정해도 이단인데, 골로새 지역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골로새 도시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살펴보자.
↳골로새는 루카스라는 아주 비옥한 평원에 자리 잡은 도시였다.
↳이 도시 한복판에 매우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라오디게아가, 북쪽으로는 히에라볼리가, 동쪽으로는 골로새가 위치하고 있었다.
↳이 세 도시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이 지대에서는, 목축업이 왕성히 행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양모라든지 양모를 통한 염색업 등으로,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1세기를 전후하여 겪게 된 두 차례의 지진으로, 이들 도시의 경제는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바울 당시 골로새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고, 그에 반해 160Km정도 떨어져 있는 에베소는 대도시였다.
↳골로새 도시가 작으니, 골로새교회의 규모 역시 작았다.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몇 가정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우리가 소도시 골로새를 기억하게 된 것은, 바울이 기록한 골로새서 덕분이다.

-이제 성경 본문으로 들어가겠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의 인사말이다.
↳바울은 인사말에서,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의 첫머리에서 그렇게 해왔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다.

-바울이 자신을 뭐라고 소개했는가?
“사도 된 바울”
↳살을 붙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더 살을 붙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사도이다” 라고 소개한 것이다.

-사실 바울은 열두 사도가 아니다.
↳실제로 열두 사도가 되려면,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했다.
행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그런데 바울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고, 성도를 핍박하는데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적도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도 없었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다만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사도로서 정통성이 약했다.
↳사도성을 종종 의심받곤 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자신의 사도직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는 확신이 분명했다.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의 사도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울은 어느 열두 사도보다 크게 쓰임 받았다.
↳그를 처음부터 열두 사도의 한 사람으로 부르셨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곤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바울을 사도로 부르심으로, 세상에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셨고,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특히 각각의 쓰임새가 있다.
↳베드로가 아무리 수제자긴 해도, 혼자 다 할 수 없다.
↳요한이 아무리 사랑받는 제자라고 해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

-열두 사도는 유대인들을 구원하는데 쓰임새가 있다.
↳그들이 이방인을 구원하는데는, 특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방인을 구원하는데 특화되어 있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열두 사도들은, 처음에 바울을 신뢰하지 않았고, 교회지도자들은 바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사실 바울은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약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도로 부르셨다.
↳그는 신체적 약점으로 인해 더 기도할 수 있었고, 교회를 박해했던 과거사로 인해 더 겸손할 수 있었다.
↳약점은 그냥 약점일 뿐이다.
↳약점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르신 게 분명하다.

-이 말씀을 기억하는가?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약점을 모르고, 실수로 부르신 후,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정도로 허접하시지 않다.
↳하나님은 어쩌면 일부러 완벽한 자를 부르시지 않는다.
↳그러면 허세 떨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지 않고, 제 잘 나서 그렇게 됐다고 할 게 뻔해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내가 교회의 직분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찬양이 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들으면 들을수록 심금이 울린다.
↳부르면 부를수록 가슴이 뭉클해진다.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쓰는 바울 곁에 디모데가 있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디모데가 바울에게 어떤 사람인가?
딤전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롬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디모데가 믿음의 아들에서 동역자로, 형제로, 호칭이 달라지고 있다.
↳바울의 눈에, 디모데는 항상 어리게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언제까지나 자신의 아들로 대하지 않았다.
↳그를 자신의 동역자로 세워주고, 자신의 형제로 여겨주었다.
↳바울이 디모데의 성장을 도왔다는 말이고, 디모데도 바울의 기대대로 성장했다는 말이다.
↳가장 바람직하고,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있다.
↳바울이 힘들 때, 디모데가 형제로서 곁에 있어준 것이다.
↳갇혀 있는 바울 입장에서, 얼마나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디모데는 바울에게 복이었다.
↳처음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이었으나, 지금은 디모데가 바울에게 복이 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그림이 그려지기를 축복한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라고 했다.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한 자여야 한다.
↳도덕적으로도 신실할 수 있으면 좋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함이란, 다른 말로 복음 안에서 신실함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맡겨주셨다.
↳우리는 복음 앞에 신실해야 한다.
↳복음 앞에 신실한 삶이란, 복음에 머무르는 것이다.
↳복음을 왜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가?
↳복음에 머무르기 위해서다.
↳복음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어느 날 복음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단세력이 왕성한 것은,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골로새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깨어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는 마귀에게 붙들릴 수 있다.
↳우리는 복음에만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복음에 머물러, 복음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복음 앞에 신실한 삶이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에 머무른 만큼 전할 수 있다.
↳복음을 누린 만큼 전파할 수 있다.
↳내가 복음에 오래 머무르다보면, 내가 복음인이 된다.
↳내가 복음을 누리면서 살다보면, 내가 복음의 사람이 된다.
↳내가 복음인이 될 때, 내가 복음의 사람이 될 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다.
↳복음이 단순한 지식이라면, 꼭 복음인이 될 필요가 없다.
↳복음 따로, 삶 따로, 말 따로여도, 큰 문제될 게 없다.
↳복음은 지식이 아닌 생명이다.
↳복음은 지식이 아닌 혼이고, 정신적 가치이다.
↳즉 복음이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복음으로 살지 않고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우리가 복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복음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을,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을 되찾아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복음 전할 태세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빌고 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는 헬라식 인사이다.
↳그런데 바울은 은혜를 기독교 용어로 구원의 용어로 바꿔 사용하였다.
↳은혜는 하나님에게서 흘러 넘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값없이, 자격을 묻지 않고 주신다.
↳이게 구원이다.

-일반적으로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호의’를 말한다.
↳잘했거나, 자격이 있어서 받는다면, 그건 은혜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은,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
↳은혜를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당연한 것을 은혜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누가 더 행복할 거 같은가?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은,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은혜를 갚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6.25 한국전쟁 때, 월남한 10살 전쟁고아가 있었다.
↳소년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빌리라는 미군 사병을 만났다.
↳그의 심부름 등을 해주면서,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됐다.
↳빌리는 그 소년을 자기 친동생처럼 아껴주었다.
↳한번은 적군의 포탄이 기름통에 떨어지는 바람에, 이 소년은 큰 화상을 입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때도 빌리는 늘 찾아와서, 그 소년을 위로해 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빌리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 소년은 모자공장에 취직해 기술을 배웠고, 세계적인 모자 회사를 일궜다.
↳그는 광고를 내 빌리를 찾았고, 드디어 36년 만에 뜨거운 만남을 가졌다.
↳그는 빌리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년이 바로 세계 모자 판매량의 35%를 차지하고 있는,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다.

-우리의 행복은 은혜를 은혜로 아는데서 온다.
↳은혜의 삶을 위해서는, 은혜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은혜의 시각을 가지고 보면, 모든 것이 은혜롭게 보인다.

-은혜의 시각은 손경민의 <은혜>라는 찬양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은혜 중의 은혜는 구원의 은혜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우리의 남은 삶을 구원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기 바란다.

-평강은 샬롬의 히브리식 인사이다.
↳샬롬은 관계에서 오는 복이다.
↳샬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될 때에 오는 평화, 평강, 정의, 질서, 조화 등의 상태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강은 은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은혜는 원인이고, 평강은 은혜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화해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은혜를 알지 못하고서는,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사모해야 할 것이 은혜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평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평강, 자신과의 평강, 타인과의 평강, 환경과의 평강, 다 마찬가지다.

-히브리인들은 아들을 타지에 떠나보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샬롬으로 작별한다.
↳아들이 타지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하늘의 평안으로 흔들리지 말 것을 부탁하는 축복의 말이다.
↳아버지가 마지막 임종을 맞이할 때,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샬롬으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아버지가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의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기원하는 축복의 말이다.

-크로나의 깊은 터널에서 막 빠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평강이다.
살후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번 한 주간도, 은혜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강을 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