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2022):빈 무덤 앞에 서서(요 20:1-1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4-17 12:17
조회
441


부활절(2022)
빈 무덤 앞에 서서(요 20:1-18)
2022. 4. 17.


프롤로그

-우리는 지난 한 주간을 고난주간 저녁기도회에 함께 했다.
↳매일 저녁 찬송가 146장을 불렀다.
저 멀리 푸른 언덕에 그 십자가 위에
주 예수 나를 위하여 못 박혀 죽었네
그 귀한 주의 사랑이 날 구원하시니
그 사랑 나도 본받아 주 위해 힘쓰리

-매일 자신을 십자가 앞에 세우기 위해, 같은 찬송을 불렀던 것이다.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이, 빈 무덤 앞에 설 수 있어서이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갔던 사람은, 빈 무덤 앞에서도 도망갈 수밖에 없다.

-오늘 말씀이 부활 기사인데, 그 초점이 수제자 베드로에게 있지 않다.
↳그렇다고 주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있지도 않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다.
↳왜 열두 제자를 제쳐두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그건 그녀가 십자가 앞에 섰던 여인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십자가 앞에 섰던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마리아는 그 살벌한 현장에 얼어붙듯 서 있었을까?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주님을 사랑함이 없이는, 결코 십자가 앞에 설 수 없다.
↳십자가 앞은, 다른 사람이 서 있다고 해서, 나도 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주님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십자가 앞에 설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 삼일 째 되는 날 새벽에, 그분의 빈 무덤 앞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사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언제인가?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때가 새벽임을, 복음서 기자들이 공통되게 기록하고 있다.
마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막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눅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막달라 마리아가 도착했을 때, 예수님의 무덤은 이미 비어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보다 이른 새벽에 부활하셨다는 말이 된다.
↳본문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때를,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라고, 긴 수식어를 붙여 기록한 의도가 있다.
↳새벽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시간대가 새벽에 있었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다.

-성경은 유독 새벽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들이 새벽에 일어났다.
↳홍해가 육지처럼 갈라진 때가 새벽이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진 때가 새벽이었다.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진 때가 새벽이었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에 승리한 때가 새벽이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이 구원받을 때가 새벽이었다.
↳베드로가 회복될 때가 새벽이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때가 새벽이었다.

-새벽은 시작의 시간이다.
↳새벽은 기적의 시간이다.
↳예수님이 새벽에 부활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벽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시간이다.
↳새벽은 예수님이 아버지께 드린 시간의 첫 열매였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새벽에 부활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교우들이 새벽기도하기를 바란다.
↳다들 사정이 있겠지만, 새벽기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다음은 고려대 의대 교수였던 문국진 씨가 월간《한국인》에 기고한 글이다.
↳제목 : 새벽 아침에 인생을 건다.
↳내가 아침 시간을 이용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학창 시절 나는 배구 선수였다.
↳심한 운동 연습에 시달리고 집에 들어오면, 저녁 밥술을 놓자마자 깊은 잠에 빠지곤 했고, 아침 등교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서 깨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힘든 운동을 남보다 훌륭하게 할 수 있다면, 공부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운동을 포기하지 말고, 두 가지를 양립시켜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밤 시간은 도저히 불가능하니, 아침에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 보자.’

-사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눈은 떨어졌지만, 몸이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되도록 많은 물을 마셨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 새벽에 소변을 보기 위해서라도, 일단 눈이 떠지게 되고, 움직여야 소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되도록 잠자는 시간은 밤에, 그리고 새벽시간에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3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새벽 5시에 깰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을, 완전히 습관화했다.
↳이렇게 약 10년 동안을 하다가, 한 시간을 더 얻기 위해 새벽 3시로 옮겨, 이제는 그것이 몸에 배어, 완전히 나 자신의 것이 되어 버렸다.”

-문국진 씨의 글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말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다.
↳자기 몸을 새벽체질로 바꾸기 위해서는,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새벽 아침에 인생을 걸어야, 지속적인 새벽기도가 가능하다.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운 때에, 예수님이 장사되었던 무덤으로 갔다.
↳그냥 좀 이른 시각이 아니라, 아직 어두움이 깔려있는 시간대였다.
↳왜 그녀가 그 시간을 택했을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주님을 사랑해서였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이 살아 계실 때에도, 주님을 무척 사랑했다.
↳그녀의 예수님 사랑은, 주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것으로(눅10:39) 표현되었다.
↳그녀의 예수님 사랑은, 자기의 재산을 드려 섬기는 것으로(눅 8:2,3) 표현되었다.
↳제자들은 흘려들었으나,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기에,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알았고, 더욱 가까이서 따를 수 있었다.
↳마리아의 예수님 사랑은 신실했다.
↳그녀는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변함없이 사랑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변함없는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
↳내 필요를 채워주는 것과 상관없이, 무조건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으로, 우리의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주님의 쓸 것을 채우고 헌신하는 것으로, 우리의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주님께 전심으로 헌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환경 때문인가? 진짜 환경 때문인가?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덜 사랑해서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게 부족해서이다.

-막달라 마리아를 보라.
↳주님을 사랑했기에, 제자들조차 버리고 떠나간 십자가 앞에 남아서, 주님이 운명하시는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았는가?
↳주님을 사랑했기에, 큰 돌로 무덤 입구가 막혀있고, 거기다 인봉까지 되어있는 줄 알면서도, 더 나아가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새벽에 무덤을 찾지 않았는가?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걸, 환경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 말자.

-막달라 마리아는, 지난밤을 초조하게 보냈을 것이다.
↳울면서 뜬 눈으로 지새웠을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준비해 둔 향품을 챙겨, 어두움이 채 걷히지도 않은 새벽길을 나섰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몇 명의 여인들과 동행한 것으로 나온다.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우리가 이 말씀에서 보듯이,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거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말에서 알 수 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그녀들은 대책도 없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그렇다. 그들은 정말 대책 없는 여자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원래부터 대책 없는 여자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예수님 사랑에 눈멀어, 대책 없는 여인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책 없이 나선 그녀들에게, 하나님이 대책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대책 없는 여자들에게 대책이 되어 주신 하나님!
↳멋진 반전이다.

-만약 무덤 앞의 돌을 굴릴 대책을, 스스로 세우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며칠이 지나도, 대책을 세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대책으로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 대책으로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대책이 되어 주신다.
↳우리 앞서 대책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성경에서는 다른 말로 ‘여호와 이레’라고 한다.
↳우리 모두가 부활절을 맞아, 여호와 이레의 주인공이 되기 바란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대책 없이 나갔던 여인들에게, 돌이 옮겨진 기적이 일어났다.
1...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살면서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돌이 있다.
↳그런 돌이 없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돌을 어떻게 굴릴 작정인가?
↳그 돌을 굴릴 수 있는, 무슨 기발한 대책이라도 있는가?
↳어떤 뾰족한 대책이라도 간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대책으로 삼기 바란다.
↳우리가 몇날 며칠을 끙끙대며 세우는 대책보다, 하나님의 대책을 기대하기 바란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대책이 되어주신 하나님은, 오늘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우리에게도 대책이 되어 주실 줄 믿는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제자들에게 알렸다.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무덤 문이 열려있어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니, 세상에...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
↳여인들은 그 새벽에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알린 것을 볼 때, 너무나 당혹스러워 했던 것이 틀림없다.
↳누군가가 무덤을 열고,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두 제자가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여유롭게 걸어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들은 달음질하였다.
↳마치 달리기 경주를 하듯 빠르게 뛰었다.

-아무래도 어린 요한이 베드로보다 빨리 도착을 했으나, 무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무덤 앞에서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렸다.
↳베드로는 도착하자 말자, 숨 고를 여유도 없이, 곧 바로 무덤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둘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요한은 성격이 세심한 사람이다.
↳“구푸려”의 원어 ‘파라큐사스’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하여, 허리를 굽히고 들여다보는 것을 말한다.
↳요한은 세심하게 관찰할 뿐, 선뜻 들어가지는 않고 있다가, 베드로를 뒤따라 들어갔다.
↳그에 반해 베드로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그는 도착하자 말자, 단숨에 무덤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곳 앞에 섰다.

-여기서 잠깐... ↳예수님은 급하고 덜렁대는 베드로도 쓰시고, 우유부단하고 세심한 요한도 쓰셨다.

-사실 교회 안에도 베드로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고, 요한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모든 교인들이 베드로 같다면, 또 모든 교인들이 요한 같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는 베드로 같은 사람들과, 요한 같은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어야 한다.
↳그래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줄 때,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줄 때, 조화가 가능해진다.
↳우리교회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조화로운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베드로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가 이른 새벽에 달려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했을 때,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런데 가서 직접 눈으로 보니,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 제자리에 남아있고, 정작 있어야 할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설마” 하고 뛰어 왔는데, “여자들이 잘못 봤겠지” 하고 달려왔는데, 그게 사실로 판명난 것이다.

-그 때가 봄이지만, 이른 새벽인지라 추위를 느껴졌을 것이다.
↳또 지금은 병사들이 보이지 않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자칫하다간, 자기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범인으로 몰릴지 모른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해서, 무덤을 찾은 게 아니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해서, 무덤에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왔다.
↳그런데 와서 확인해 보니, 실제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
↳자기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그러니 시신도 없는 무덤 앞에서, 더 이상 서성거리고 있어봤자이다.
↳무덤 주위에 있다가, 괜히 봉변만 당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날 교회를 찾아 나오긴 한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애정은 크지 않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긴 한다.
↳그러나 예배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은 별로 없다.
↳주님을 소리 높여 부르긴 한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목마름은 없다.
↳마치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와서,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으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간 제자들처럼 말이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간 제자들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모하는 자들을 만나주신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단순히 확인차 왔다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저 빈 무덤만 확인했을 뿐이다.
↳빈 무덤 밖에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나 뵙는 영광을 누렸다.
↳그녀도 처음에는 예수님인줄 몰라봤다.
↳예수님이 동산지기인줄 알고,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여자여” 라는 호칭 때문이기도 했을 것 같다.
↳이어서 주님이 “마리아야” 하시니, 곧바로 “랍오니” 하며 알아본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두 제자의 행동과, 막달라 마리아의 행동을, 다 보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이왕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을, 수제자 베드로와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보이시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으로 갔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막14:31)” 할 때의, 그 호기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은 서둘러 무덤 앞을 빠져나갔다.
↳그것도 연약한 여인을 혼자 남겨두고 말이다.
↳자기들 살겠다고,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를 놔두고 말이다.

-주님은 오늘도 사모하는 영혼을 찾고 계신다.
↳주님은 이 시간도 주린 영혼을 찾고 계신다.
↳시편기자의 고백을 들어보겠다.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만나주신다.
↳친근히 다가오셔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주님이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것은, 자기를 전심으로 찾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부흥이 임하는 현장에는, 항상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님께 목말라하는 영혼들이 있었다.
↳우리에게 주님을 만나고픈 배고픔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기를 바란다.
↳그 때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실 때, 부흥은 따라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이 아닌 비천한 과거를 가진 여인에게 먼저 보이셨다.
↳며칠 전 예수님을 너무 사랑했기에, 십자가 아래 서 있었던 여인에게 먼저 보이셨다.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예수님의 고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여인에게 먼저 보이셨다.
↳시신만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 하던 여인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여주셨다.
↳이건 제자들의 가슴에는, 일평생 지워버릴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12제자’라고 ‘사도’라고 ‘남자’라고 으시댔다면, 얼마나 부끄러웠겠는가?

-사도냐 평범한 여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가 중요하다.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몸된 교회 공동체 앞에서 겸손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또 제자들에게 찾아갔다.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찾아가서 뭐라고 말했는가?
“내가 주를 보았다”
↳자기가 주님을 만났다는 것을 말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의 한결같은 반응은, 자기가 만난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주님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말했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자신을 살펴볼 차례이다.
↳우리는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특별한 사람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비어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갔다.
↳무덤에 온 목적이 단순한 사실 확인 차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앞에 머물러 있다.
↳무덤에 온 목적이 예수님을 사랑해서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기 바란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바란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자기가 만난 주님을 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