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강해 12:종들아 상전들아(골 3:22-25, 4:1)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8-14 15:01
조회
338


골로새서 강해 12
종들아 상전들아(골 3:22-25, 4:1)
2022. 8. 14.


프롤로그

-우리가 신앙생활해야 할 곳은,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 밖에서도 신앙생활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 밖에서도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교회 밖 신앙생활로 연결되어야 한다.
↳교회 밖을 대표하는 두 곳이 있다.
↳가정과 직장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은, 곧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정생활과 신앙생활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직장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직장생활은, 곧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직장생활과 신앙생활은 분리되지 않는다.

-오늘은 교회 밖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를 살펴보겠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가정생활을 다룬 지난주일의 말씀을, 복습삼아 간단하게 요약해 보겠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이때의 복종은 자발적인 복종이다.
↳가정의 질서를 위한 복종이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실질적인 행위는, 가정사의 최종 결정권을 남편에게 드리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다.
↳이때의 사랑은 ‘아가페’로,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자기희생적 사랑을 말한다.
↳그보다 눈에 띄는 말씀은, 뒤이어 나오는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는 말씀이다.
↳자기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아내에 대해 몰라서 아내를 괴롭힐 수도 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 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다.
↳자녀는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해드려야 한다.
↳부모님보다 나를 더 위해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럼 부모님께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모님보다 상위 권위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다.
↳무리한 요구를 해서 자녀를 자극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자녀에 대한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럴 수 있다.
↳자신이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자녀 스스로 낙심할 수 있다.
↳그러면 부모의 뜻과는 달리, 자녀가 열정을 잃어버리게 되고, 더 나아가 장래를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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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직장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듣도록 하겠다.
↳가정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쉽겠는가?
↳직장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쉽겠는가?
↳둘 다 쉬울 리 없다.
↳그래도 사람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은 맺고 끊는 게 힘들다.
↳교회도 그런 면이 있다.
↳직장은 맺고 끊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직장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 자체를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직장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자신이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인 것이 드러나면 불편하다.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질 수 있어서다.

-직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는 최소한의 기대가 있다.
↳자기들은 무절제하게 살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면 실망한다.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절제하며 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마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욕하면서도, 기대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직장생활을 어떻게 말하는가?
↳그리스도인들더러 직장에서 어떻게 생활하라고 하시는가?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이 말씀이 기록된 당시가 로마시대이다.
↳로마 시대는 노예제도가 보편적인 사회현상이었다.
↳교인 중에는 주인도 있었지만 노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와서 노예들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예수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하나라는 사실이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가르침은 노예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을 것이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하나라는 말은, 노예나 주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자 노예들은 집안에서 자신들의 의무를, 좀 소홀히 했었던 거 같다.
↳보통 때도 성실하지 못했던 노예들은,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고 있다.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엡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딤전6: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럼 바울만 그런 식으로 말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바울이 친 로마적이라서 그렇게 말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바울이 당시 신분제도를 찬성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베드로가 보낸 편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벧전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주인에 대한 순종은, 주인이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주인이 선하고 관용하는 자이든 까다로운 자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순종해야 할 이유가,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에 있기 때문이다.

-종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일을 할 때 눈가림으로 했다.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을 했다.
↳종에게는 주인의 평가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의 목숨도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종이 예수를 믿어도, 종의 신분은 그대로이다.
↳사회 신분제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믿기 전의 주인이, 여전히 자기의 육신의 상전이다.
↳교회 와서는 “형제님” 하고, 집에 가서는 “주인님”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잘 했는데, 소수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거 같다.
↳그랬기에 바울도 베드로도,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종더러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고 권한 것이다.

-오늘 말씀은, 가정 안에서 상전과 종에 대한 말씀이지만, 직장생활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상전과 종을 직장에 적용하는데,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살짝 고민이 되긴 했다.
↳그래서 사회와 법에서 사용하는, ‘사용자&근로자’ 단어를 쓰기로 했다.

-직장은 사용자와 근로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갈등의 요소는 항상 내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하긴 가정 내 ‘부부 갈등’도 있고, ‘부자 갈등’도 있는데, 직장 내에 갈등이 없기를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우리 회사는 노사갈등 같은 거 없다. 아니 회사에 무슨 노조가 필요해?’
↳정상적인 회사라고 보기 어렵다.
↳회사는 노사가 공존상생하는 게 목표여야 한다.
↳그렇더라도 갈등까지 없을 수는 없다.
↳갈등 없는 직장이 있다면, 그곳은 꿈의 직장이다.
↳그 말인즉슨, 애초에 그런 직장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살펴보는 말씀은, 직장에서 갈등을 없애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는다.
↳직장생활의 방법론이 아닌, 직장생활의 원리를 들려준다.

-먼저 근로자가 사용자를 대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원리1 : 순종하라

-근로자는 자기를 고용한 사용자에게, 원칙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 말씀을 보고, ‘아 성경은 가진 자 편이구나’, ‘가진 자 입장을 대변하는구나’ 하며, 불편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건 말씀의 본뜻을 곡해하는 것이다.
↳바울이 굳이 가진 자의 편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바울이 그들에게 잘 보여서, 무슨 덕을 보겠는가?
↳또 그렇게 하면, 복음 전파에 크게 유리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종과 주인의 관계의 원리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근로자가 자기를 고용한 사용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순종해야 할 동기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예수님 보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회장님 보고, 사장님 보고가 아니다.
↳회사의 미래 가치를 보고가 아니다.
↳자기 승진 가능성 보고가 아니다.
↳퇴직금 보고가 아니다.
↳처자식 보고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순종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좀 이상하고 까다로운 상관이 있을 수 있어서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상관이 있을 수 있어서다.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트집 잡는 상관이 있을 수 있어서다.
↳그러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보고 순종해야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 보고 순종해야, 눈가림만 하지 않을 수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적당히 눈가림만 할 수 있다.
↳그들을 보고,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그들과 우리는 일을 하는 동기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하는 동기가 두 가지다.
↳하나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실현이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직업의 동기는 무엇인가?
↳방선기 목사의 책 [크리스천@직장]에 보면, 네 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①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긴다.
② 일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필요를 채운다.
③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재물을 얻는다.
④ 일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럼 사용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불순종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가정생활을 다룰 때도 받은 적이 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불순종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불순종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질문의 정답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셨기 때문이다.

-그럼 사용자의 부정이나 불법이 아닌, 사용자의 허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허물은 덮어줘야 한다.
↳물론 허물을 덮어준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용자의 허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낫긴 하다.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근로자가 사용자를 대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원리2 : 마음을 다하여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라고 한다.
↳이건 ‘하나님이 나를 이 직장으로 보내셨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물론 내가 시험 봐서, 내가 입사지원해서, 직장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걸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는다.
↳하나님이 나를 이 직장으로 파송하셨다고 믿는다.
↳그럴 때 “무슨 일”이 곧 “주의 일”이 된다.
↳그럴 때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단순히 생업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불행하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할 수 없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직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 일을 주의 일이라고 생각할 때, 마음을 다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일 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을 다하여”와 비슷한 표현이, 22절의 “성실한 마음으로”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바꿔볼 수 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과로이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곧 과로하라는 말이 아니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한 해 과로사로 죽은 사람이 457명이었다.
↳산재로 인정받은 숫자만 그러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정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무슨 일”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도, 포함되는 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불법적인 일에, 성실한 마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로 죄를 짓게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사용자를 대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원리3 : 주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으라

-일을 하면, 소득을 얻게 된다.
↳일을 하면, 시급이든 일급이든 주급이든 월급이든, 보수를 받게 된다.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딤전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일꾼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게 복이다.
시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마음을 다하여 일했지만, 그게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성실한 마음으로 일했지만, 그게 고스란히 보수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사용자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성실한 마음으로 일했는데, 수입이 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자칫 낙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그런 일이 반복이 되면, 견디는 게 힘들다.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주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주님이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갚아주실 거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 믿음이 말씀에 순종하는 동기 부여가 된다.
↳직장생활이 힘들어 지쳐가고 있는가?
↳주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고, 다시 힘을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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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겠다.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사용자는 회사의 경영자이다.
↳경영자에게는 책임이 따른다.
↳회사 실적에 대한 책임도 따르지만, 인사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아무리 회사 실적을 잘 내도, 인사를 잘못 하면 회사에 어려움이 닥친다.
↳그러다보니 사용자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측근에 앉힐 수밖에 없다.
↳측근은 자기를 믿어주는 고용주에게 충성을 다한다.
↳사용자가 회사를 위한답시고 부정을 저질러도, 그것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
↳사용자는 측근 뿐 아니라, 모든 근로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놓기는 했지만, 사용자와 근로자가 ‘갑-을 관계’에 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사용자에게는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근로자를 기계의 부속품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근로자에게 위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란 게 있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만약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하였음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얼마나 신고할 수 있을까 싶다.
↳만일 사용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당한다면 망신이다.
↳교회 망신이고, 하나님 망신이다.
↳성경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라지게 하라는 수준에 머물라고 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근로자를 대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원리 :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

-사용자는 근로자를 좀 잘 대해줘라 수준이 아니다.
↳근로자를 인간적으로 대해줘라 수준이 아니다.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고 한다.
↳의로만 대하지 말고, 공평으로 대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의로만 대하면 공평이 무너질 수 있고, 공평으로만 하면 의가 문제될 수 있다.
↳사용자는 근로자를 의롭게 대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근로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근로자를 대할 때, 법적으로 따지는 걸 ‘의’로 본다면, 인간적으로 배려하는 걸 ‘공평’으로 볼 수 있다.
↳사용자가 늘 법만 따지고,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근로자에게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도 결국 법의 그물에 걸려들 수 있다.
↳법은 항상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
↳법보다 우선은 상호 신뢰, 상호 존중, 상생공존이다.

-근로자에게도 애환이 있다면, 사용자에게도 애환이 있다.
↳사용자가 보통 때, 근로자를 의와 공평으로 대했다면, 사용자에게 애환이 있어 양해를 구할 때, 정상적인 근로자라면 나 몰라라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사용자들이, 근로자를 의와 공평으로 대하여 존경받으면 좋겠다.

-사용자가 근로자를 의와 공평으로 대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하늘의 상전을 의식할 때 가능하다.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너 위에 또 다른 상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자기가 최고의 상전이라고 생각하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 뜻대로 하고 만다.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안 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건 위험한 발상이다.
↳신앙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위험하다.
↳특히 사용자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더욱 그렇다.
↳하늘에 상전을 의식하라는 말은, 자기가 사장이면 하나님을 회장님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자기가 회장이면 하나님을 왕회장님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회사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하늘의 상전인 하나님께 기도하여 허락을 받는다.

-그래야 자기의 경영이 이루어짐을 알기 때문이다.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매사에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진짜 신앙이다.
↳참된 신앙은 일터에서 증명된다.

-4장 1절은, 직원 한 사람만 있어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정식 직원이 아닌 계약직이라도 아르바이트라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더러 모든 근로자를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고 한다.
↳하나님 보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의의 하나님이고, 공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의와 공평이 나타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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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가 사용자를 대하는 원리가 있다.
원리1 : 순종하라.
원리2 : 마음을 다하여 하라.
원리3 : 주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으라.

-사용자가 근로자를 대하는 원리가 있다.
원리 :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