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강해 09: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골 3:1-11)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7-24 15:19
조회
320


골로새서 강해 09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골 3:1-11)
2022. 7. 24.


프롤로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사람이다.

-그런데 골로새지역에 있는 거짓교사들은, 그리스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율법주의자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초하루와 안식일 같은 것으로 그렇게 했다.
↳신비주의자들은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 같은 것으로 그렇게 했다.
↳금욕주의자들은 자기 몸을 괴롭히는 것으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에다 무엇을 보태려고 하면 복음이 아니다.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 율법과 체험과 금욕이 필요한 게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온전한 구원이 있고, 미비한 구원이 있고, 그러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베푸셨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를 온전하게 구원하셨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앞에서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죽고 다시 산 것”을, “다시 태어나다”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당연히 영적 아이로 태어나는 것이다.
↳구원 자체는 온전하지만, 장성한 분량의 신앙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믿음의 상태 그대로 있으면 안 되고, 장성한 믿음으로 자라가야 한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은 한 마디로 이렇게 권면한다.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지상의 삶과 전혀 무관한, 천상의 것을 추구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실천적 삶을 무시한, 초월적 경건을 추구하라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썩어 없어질 테니 관심 끄고, 천국만 사모하며 살라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그렇게 대하실 리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시었다.
↳예수님이 유대 땅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셨지만, 이 세상에 다시 오시기로 하셨다.
↳구원받은 우리 더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바울이 말한 “위의 것”이, 땅에 속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위의 것이,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문맥상 애매하다.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은, 골로새교회 교우들에게 ‘관심사를 바꿔라’ ‘가치관을 조정하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땅의 관심사에서 하늘의 관심사로, 나의 관심사에서 그리스도의 관심사로 바꾸라는 것이다.
↳땅의 가치에서 하늘의 가치로, 얼마 후 사라질 가치에서 영원한 가치로 조정하라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관심사이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내 관심사가 전부였다.
↳예수님과 무관했으니, 예수님의 관심사와도 무관했다.
↳이 땅에서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였다.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가치관이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이 땅의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이 땅에 있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았기에, 그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땅에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늘의 영원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을, 예수님의 표현으로 바꿔보면 이렇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은, 주의 나라를 위해 힘쓰는 성화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이보다 급한 기도제목은 없다.
↳기도제목 1번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고민을 덜어준다.
↳최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위의 것을 찾으라에 이어서,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했다.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2절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겠다.
2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생각하고”의 헬라어 ‘프로네이테’는 ‘주의를 기울이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다.
↳공동번역대로 마음에 두라는 말이다.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위의 것에 마음을 두라는 말이다.
↳위의 것에 마음을 두면, 땅의 것이 시시해진다.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위의 것에 마음이 덜 갈 수밖에 없다.

-사람이 둘 다를 붙잡을 수 없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 생각 같아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고 싶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우리 맘처럼 되지 않는다.
↳위의 것과 땅의 것 사이에서,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다.

-왜 우리가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가?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가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들이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는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다시 땅의 것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반복하여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이런 깨달음이 든다.
↳‘아, 내가 땅의 것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위의 것을 생각해야지!’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을 얻었다.
↳우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
↳그러다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렇다고 우리 몸까지 옮겨진 것은 아니다.
↳우리 신분의 변화는 순간이지만, 삶의 변화는 더디 나타난다.
↳신분의 변화를 칭의에, 삶의 변화를 성화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칭의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곧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성화이다.
↳성화도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성령님께서 주도하시고, 우리도 호응하여 힘써 노력해야 한다.
↳위의 것에 마음을 두고,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 싸워야 한다.

-이건 끝나지 않을, 우리 안의 전쟁이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이 전쟁은 끝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전쟁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그 전쟁이 끝나는 날이 온다.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 때가 언제인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그 때이다.
↳그 때에 우리도 주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
↳그 때는 위의 것이냐 땅의 것이냐 하는, 마음의 전쟁이 무의미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영화로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역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중이다.
↳그걸 믿기에, 우리는 오늘도 성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매주일 예배 때마다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는 거 같다.
↳그건 우리가 먹고 살기 편해서 그럴 수 있다.
↳이 땅에 없는 게 없다.
↳돈만 있으면 뭐라도 다 누릴 수 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재림을 환영하기는 한데,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한다.
↳오셔도 한참 있다 오셨으면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정할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재림하실 게 분명하다.

-예수님의 재림을 확실히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신분의 변화가 있다.
↳마귀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죄의 종에서 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위치의 변화가 있다.
↳흑암의 나라에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
↳그러면 맘 놓고, 맘 편히, 맘대로 살면 되는가?

-우리에게는 몸이 있다.
↳몸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방해역할을 한다.
↳몸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방해역할을 하는 건, 육체의 연약성과 죄성 때문이다.
↳우리 몸이 영화롭게 변화되기 전까지는, 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죄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 육체의 연약성과 죄성 때문에, 죄짓는 게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해서는 안 된다.
↳죄의 유혹에 노출되었다고, 다 죄를 짓는 건 아니다.
↳만일 죄짓는 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야 한다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소개하고 있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음란”의 헬라어 ‘포르네이아’는, ‘포르노 (porno)’의 어원이 되는 단어로서, 온갖 종류의 비정상적 성행위 및 불법적 성관계를 망라하는 표현이다.

-“부정”의 헬라어 ‘아카다르시아’는, 정결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육체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정결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호감을 갖고, 서로 끌리는 감정을 주셨다.
↳그런데 그 감정을 더러운 것으로 변질시켰다.
↳그게 바로 음란이고 부정이다.

롬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요즘 이슈가 되는 동성애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교단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한국기독공보 광고면에, 서울서북노회 선언문이 실렸다.
↳선언문이 7번까지 있는데, 그중 1-4번까지만 소개하겠다.
1. 우리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부정하는 명백한 죄임을 천명한다.
2. 우리는 헌법 제36조 제1항(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에 명시된 대로, 남자와 여자 외에 제3의 성을 인정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반대한다.
3. 우리는 동성애에 빠진 이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회복될 수 있음을 믿는다.
4. 우리는 성경을 왜곡하여 동성애와 성평등을 옹호하면서, 차별과 혐오라는 용어를 앞세워,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가정을 붕괴시키려는 어떤 세력도 배격한다.

-“사욕”의 헬라어는 ‘파도스’는, 수동적 측면에서 제어하기 어려운 욕구를 가리킨다.

-“악한 정욕”의 헬라어 ‘에피뒤미아아’는, 능동적인 측면에서 지니는 악한 욕구를 가리킨다.

-사욕과 악한 정욕은, 자기 것이 아님에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욕심을 내는 것이다.
↳욕심을 소극적으로 내느냐, 적극적으로 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욕심을 적게 소극적으로 내느냐, 크게 적극적으로 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어서 나오는 탐심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탐심”의 헬라어 ‘플레오넥시아’는, 자신이 이미 지닌 것과 상관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를 가리킨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 탐심을 우상숭배라고까지 했다.
↳탐심이 가득한 신앙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땅에 있는 지체로 소개된, 음란과 부정과 사욕와 악한 정욕과 탐심을 죽이라고 했는데,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악인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냐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기억한다면,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할 수는 없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멸망시키기 위한 진노가 아니다.
↳심판하여 지옥에 떨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구원을 취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탄의 영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목적은 확실하다.
↳회개에 이르게 하여, 회복시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력해진다.
↳누구도 하나님과 버텨서 이길 수 없다.
↳하나님께 고집으로 버텨봤자, 괜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찬양이 있다.
구원받은 몸이라 안심하고 있었나
끊임없이 생기는 어둔 죄 감춰둔 채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셨는데
친구 넌 그 뜻을 진정으로 아는가

-김성수 목사님의 <집으로 가자>라는 찬양이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면,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의 진정한 뜻이다.

-골로새교회 교우들이라고,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다.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예수 믿기 전에는,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가운데 살았고,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여기서 “그 가운데”는 땅에 있는 지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들에게 버려야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그리스도인에게 벗어버리라고 한 것이 무엇인가?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분함”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 화나고 원통함을 말한다.
-“노여움”은 분하고 섭섭하여 화가 치미는 감정을 말한다.

-분함과 노여움을 묶어서,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화내는 것이다.
↳성질 부리는 것을 말한다.
↳감정을 격하게 분출하는 것을 말한다.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악의”는 나쁜 마음이다.
↳악한 의도를 말한다.
↳타인에게 해를 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다.
↳그런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타인에게 해를 끼칠 의도였다.
↳그게 악의이다.
↳남 잘되는 것을 못 보는 마음이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배 아파하는 심보이다.

-“부끄러운 말”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음담패설이고, 다른 하나는 욕이다.
↳욕도 점잖은 욕이 있고, 쌍욕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욕 중에 상당수는, 성과 관련된 욕이다.
↳음담패설과 욕이 무관하지 않고,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말이 나온다.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서로 거짓말”이다.
↳요즘에는 가짜 뉴스가 많다.
↳말 같지도 않은데 뉴스로 포장되어 쏟아진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에는 특정 진영에서, 가짜 뉴스를 많이 생산해냈다.
↳하지만 가짜 뉴스는, 더 이상 진영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서로 가짜 뉴스를 가공해 내는데, 메이저 언론이 그걸 바로잡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걸 소비하는 모양새이다.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다.
↳유튜브가 얼마나 볼 게 많은지 모른다.
↳정말 만물상이다.
↳보면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잘 보면 정말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신앙적으로도 유익한 내용이 가득 저장된 보물창고이다.

-다만 가려서 봐야 할 내용도 많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가짜 뉴스, 가짜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리스도인을 미혹할 목적으로 이단에서 제작한 방송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거짓말은 교회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
↳거짓말은 진리이신 예수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예수님은 마귀를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는 거짓말로 서로를 이간시킨다.
↳서로를 못 믿을 사람으로 보게 한다.
↳목회자가 교인을 못 믿는 교회, 교인이 목회자를 못 믿는 교회가 상상이 되는가?
↳마귀는 그런 교회를 꿈꾼다.
↳그런 교회가 되기까지, 마귀는 쉬지 않고 일한다.

-소리엘이 부른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는 찬양이 있다.
진정한 예배가 숨쉬는 교회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믿음의 기도가 쌓이는 교회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성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과 헌신이 기쁨이 되어 열매 맺는 아름다운 교회
주님의 마음 닮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빛 되신 주님 전하는 교회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 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한꿈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었다.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옛사람과 새사람의 본질적인 차이는, 그 안에 예수님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예수를 믿는데도, 옛사람은 옛습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신분은 새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여전히 옛습관에 머물러 있다.
↳예수 믿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예수 믿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옛습관에 머물러 있다면 문제이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달리 새 사람이 아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그 안에 있어서, 새사람인 것이다.

-새사람은 새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새 습관을 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부지런히 찾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지 못하면, 습관에 문제가 생긴다.
↳습관이란 게 본래 그렇다.
↳오랜 반복된 행위로, 무의식 중에 나오는 것이다.
↳말씀에 붙들려 있지 않으면 긴장이 풀리게 되고, 그러면 옛습관에 붙들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새사람을 입어야 하고,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만유의 주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에,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하는 것에,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말씀 앞에,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에,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한 분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만이 만유 곧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