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강해 05: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골 1:24-29)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6-19 12:23
조회
262


골로새서 강해 05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골 1:24-29)
2022. 6. 19.


프롤로그

지그시 눈을 감는다
살며시 마음을 들여다본다
고요했던 마음이
왜 요동치는 지를 차근차근 들여다본다

오호라~
그럼 그렇지~~
니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방방 뛰었구나
니가 조금 힘들었다고 징~징~ 댔었구나
그럼 그렇지~~ 이 간사한 것이~
내가 괴로움을 만들었구나
내가 만들었어

-joon이란 사람의 블러그에서 퍼온 글이다.
↳글쓴이가 승려 혹은 불심이 깊은 불자인 듯하다.
↳괴로움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해, “내가 괴로움을 만들었구나 내가 만들었어”로 답해준다.
↳실제로 괴로움의 상당수는 내가 만든다.
↳내 집착에서 괴로움이 만들어지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괴로움은, 집착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다.

-오늘 바울이 말한 괴로움은, 그와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괴로움 자체를 기뻐할 사람은 없을 법한데, 바울은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했다.
↳바울이 받고 있는 괴로움이 무엇이길래,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했을까?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사실 바울은 유대사회에서 엘리트 학자이다.
↳젊지만 유능하여,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촉망받는 사람이다.
↳그가 만약 예수만 믿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고난 받을 일이 없다.
↳설사 예수를 믿어도 조용히 혼자 믿고, 그렇게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열정적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고난을 비켜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아니 복음을 전하는데, 왜 감옥에 갇혀야 하는가?
↳복음이 Goodnews 좋은 소식 아닌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면, 되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소식을 전해주는데, 왜 괴로움을 주는가?
↳오히려 감사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상하게 고난을 받는다.

-오늘 이 시대가 이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바울 당시에도 그랬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배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룟 유다와 요한계시록까지 써야했던 요한 외에는, 하나 같이 순교를 당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도 끓는 가마솥에 몇 번이나 던져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복음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 것은, 세상이 어둠이기 때문이다.
↳어둠은 본능적으로 빛을 싫어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생명의 빛 되신 예수 복음을, 어떻게든 거부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상록수>란 노래 끝말처럼 될 것이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단 우리가 고난 앞에서도,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오늘 말씀에서 자주 들어서 익숙하지만, 조금은 이상하다 싶은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말이다.
↳언뜻 그리스도에게 고난이 남아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완벽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의 죄를 사하는데,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감당하는데, 티끌만큼도 부족함이 없다.
↳십자가는 한 번으로 종결된 사건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요19:30)”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는 구속자로서 사역을 완성하셨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또 다시 지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가 교회의 머리로서 받는 고난이다.
↳교회가 이 땅에서 복음 사역을 하다가, 고난을 받게 된다.
↳그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 고난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바울이 회심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는 살기가 등등했다.
↳성도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얼마나 얼마나 열심이었던지라,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비췄고, 바울은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그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이 깜짝 놀라,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을 때, 들려오는 대답이 이랬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교회가 당하는 박해를,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는 박해라고 받아들이셨다.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그리스도와 교회가 유기적으로 하나 됨을 확인해 주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받는 고난이, 곧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받는 고난이, 곧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바울이 그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했을 때, 바울이 자기 혼자 짊어지겠다는 뜻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감당하겠다는 뜻이지, 혼자 감당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어느 특정인 혼자서 감당할 게 아니고, 공동으로 책임지고 분담해야 할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함께 나눠질 짐이라는 말이다.
↳물론 함께 나눠서 져도 백짓장처럼 가볍지 않고, 목숨을 걸어야 감당할 수 있다.

-19살의 나이에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류관순 열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

-이런 정신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가져왔다.
↳이런 정신을 가진 선교사들에 의해,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찬송가 작시자 가운데 프란시스 하버갈이란 여성이 있다.
↳그녀는 영국에서 태어나 수도원장의 딸로 자라, 어린 시절을 비교적 유복하게 보냈다.
↳그러다가 독일로 유학을 와서, 처음으로 고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병까지 들어 요양을 받고 있었다.
↳그녀가 22살 때,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히 화랑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 그림에는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제목과 함께, 이런 글귀가 있었다.
↳‘나는 너를 위해 생명을 주었는데, 너는 날 위해 무엇을 주었느냐' ('I did this for thee; what thou done for me?')란 부제였다.

-순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모르게,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은 그 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을 위해 무엇을 드린 것도, 고난을 받은 적도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글귀를 적어, 자기 집으로 돌아와 찬송시를 썼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버갈이 이 시를 쓴 후에 난로 앞에서 시를 다듬어가다가, 왠지 운율도 맞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시를 쓴 종이를 난로에 던져버렸다.
↳그 순간 굴뚝에서 바람이 거꾸로 불어 내려와서, 그 종이가 밖으로 다시 나왔다.
↳하버갈은 ‘태우지 말고 도로 주워라’는 하나님의 싸인 같아서, 재빨리 그 종이를 다시 주웠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다시 한 줄 한 줄 시를 다듬어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양로원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그들에게 이 찬송시를 읽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커다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반응을 보고, 그녀는 더 큰 은혜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후, 다시 한 번 찬송시를 다듬으며, 나머지 구절들을 채워 넣었다.
↳이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이 찬양이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우리가 찬송가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처음 이 찬송을 불렀을 때의 신선한 감격은 점점 잊혀지고, 찬송 시의 원뜻마저도 놓치곤 한다.
↳마치 늘 하는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처럼 말이다.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은 적이 있는가?
↳예수님을 위해 손해를 입은 적이 있는가?
↳예수님을 위해 아픔을 겪은 적이 있는가?
↳예수님을 위해 눈물을 삼킨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 때가 언제였는가?
↳혹시 까마득한 옛날, 기억도 흐릿한 그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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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임을 말하고 있다.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자신이 교회의 일꾼 된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분”이라고 고백한다.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를 다른 번역서로 읽어보면
새) 내게 맡기신 사명을 따라
공) 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직분을 사명이라고 번역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5절의 교회의 일꾼에 대해 정리를 해보면...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분이다.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직분을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물론 직분 자체가 곧 사명이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직분은 더 없이 소중하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직분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 직분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일꾼에게 기본적인 할 일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건 직분자의 기본 사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본 사명이다.
↳“이루다”의 원어 ‘플레로사이’는, ‘채우다’ ‘전달하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말씀을 채우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좋은 직분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안에 말씀을 채우는데 열심이어야 한다.
↳또한 자기 안에 채운 말씀을, 자기 인격으로 잘 소화하여, 타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사실상 교회의 모든 직분은 말씀 사역이 기본인 셈이다.
↳직분을 받기 전에는 말씀 배움에 열심인데, 직분을 받은 후에는 혹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직분을 받기 전에도 말씀 배움에 열심이어야 하지만, 직분을 받은 후에도 열심이어야 한다.
↳직분자는 이 배움이 내 신앙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가도 따져야겠지만, 잘 배워서 말씀 사역을 잘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신앙 앞가림하기에 바쁜 직분자들이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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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바울은 비밀에 대한 말씀을 꺼낸다.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여기서 “비밀”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물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이다.

-그런데 때가 되었을 때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여전히 비밀이다.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가리어져 있다.
↳그래서 보긴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이지만,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후에는 비밀이 풀렸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수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비밀이긴 하다.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그럴만한 실력도 안 된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 정도로 허술하지도 않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친히 비밀을 풀어 보여주셨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인 그리스도를,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다고 믿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영광의 소망이 되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확실한 소망이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 확실한 소망이 영광스러우므로, “영광의 소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소망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생겨났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순간부터 생겨났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이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광의 문 천국문으로 인도해주신다.

-그렇다고 영광의 소망이, 사후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님과 동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부터 양육을 받고, 하늘에 보화를 쌓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럼 영광의 소망이 실체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다.
↳그리스도가 계시는 천국이 영광의 소망이다.

-인생이 힘들 때일수록, 소망이 더욱 필요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소망이 더욱 필요하다.
↳불확실한 환경 아래 있을 때일수록, 소망이 더욱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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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선교활동으로 교회가 세워지면, 가르침 사역에 우선했다.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바울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인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개인에게도 전했다.
↳회당에서 무리에게도 전했다.
↳유대인에게도 전했다.
↳이방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전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전하고는 만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1차 사역이라고 한다면, 2차, 3차 사역을 이어갔다.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럼 그 사람이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하지만 그는 영적으로 아이이고, 아직 믿음의 초보이다.
↳그대로 두면 자라지 않는다.
↳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바울이 그 돕는 방법을 안내해주고 있다.

-“각 사람을”이다.
↳개인전도를 통해서 예수를 믿었든, 대중집회를 통해서 예수를 믿었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 예수를 믿었든, 예수님을 믿게 된 계기는 다양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잘 자라도록 바르게 자라도록 양육과 훈련을 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양육은 일대일이다.
↳가장 효과적인 훈련은 도제방식이다.

-물론 교회에서 실시하는 대부분의 양육과 훈련은 소그룹으로 한다.
↳소그룹으로 모이지만,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
↳즉 한 사람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양육자에게는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한다.
↳설교로 권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성경공부로 권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권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권함을 귀담아 듣는 사람도 있고, 흘려듣는 사람도 있다.
↳가르침을 귀에 새겨 받는 사람도 있고,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받는 사람도 있다.
↳들을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다.
↳문제는 듣는 거 같기는 한데 듣지 않는 것이다.
↳들어도 선택적으로 듣는 것이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하여 듣는 것이다.
↳자기가 듣기 싫은 것, 자기 듣기에 부담되는 것은, 빼고 듣는 것이다.

-잘 들음은, 팔로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리더에게 더 필요하다.
↳리더는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듣기 좋은 소리와 듣기 불편한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듣기 좋은 소리라고, 다 유익한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듣기 불편한 소리라고, 다 무익한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적인 듣기가 아닌, 가려듣기를 해야 한다.
↳선택적인 듣기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내 중심에서 판단한다.
↳판단 기준이 자기중심이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가려듣기는 그렇지 않다.
↳쑥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가려듣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가려듣기는 타인 중심이다.
↳저렇게 독하게 말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줄 안다.

-하나님도 가끔 맘에도 없는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렘7: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읽기보다는,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읽어야 한다.
↳하나님이 서운하고 속상해서 하신 말씀은, 되게 그렇게 읽어야 한다.

-권하고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지혜”가 필요하다.
↳매번 쑥떡 같이 말하고, 찰떡 같이 알아들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지혜로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는 말씀을 권하고 가르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목회자는 아무리 바빠도, 말씀 연구할 시간은 확보하곤 한다.
↳하지만 말씀의 권함과 가르침을 받는 회중들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성경을 꾸준히 읽는 신자들도,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신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꾸준한 성경읽기 정도는 해야하다.
↳또한 목회자의 말씀 사역을 위해, 기도로 협력해야 한다.
↳목회자도 더욱 지혜를 구하고, 말씀 사역에 매진해야 한다.
↳그래서 말씀이 일하시게 해야 한다.

-바울이 그토록 말씀 사역에 힘쓰는 목적이 무엇인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말은, 죄가 없는 절대적인 의미의 완전을 말하는 건 아니다.
↳온전하다 성숙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원래 의미는 제자나 조수가 스승으로부터 철저한 훈련을 받는 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쳐서, 각 사람을 세운다.
↳이게 참 중요하다.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쳐야, 각 사람을 세울 수 있다.
↳목회하면서 각 사람이 세워질 때, 형언할 수 없는 보람이 있다.
↳그런데 끝까지 잘 서가야 한다.
↳어느 정도 서 가는가 싶더니, 어느 날 무너지는 것을 봤다.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염두에 둔 말이다.
↳말씀으로 세우는 자도, 말씀으로 세움을 받는 자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신자라면, 지옥 판결을 받지 않겠지만,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엄격한 평가를 받게 된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 바울이 어떻게 했는가?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랐다고 했다.
↳이걸 성령의 감동으로 볼 수도 있고, 성령의 인도로 볼 수도 있다.
↳이어서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했다.
↳이건 최선을 다해 헌신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우선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보다, 내가 앞서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사람을 세우는 것이라면, 내가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내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야 하니,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뜻은 성령님이 가장 잘 아신다.
↳성령이 곧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여쭙는 기도를 해야 한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자기가 결론을 내리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곤 한다.
↳하지만 여쭙는 기도를 잘 해야 한다.
↳그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여쭤서 하나님의 의중을 알았으면,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한다.
↳하는 시늉만 내거나, 반심만 써서는 안 된다.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한다.
↳이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적용해야 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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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체에 채우길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의 일꾼으로서 직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길 바라신다.
↳하나님은 풀어주신 비밀을 우리만 간직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길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들고 살길 바라신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최선을 다하길 바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