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08:신앙은 삶으로 증명돼야 합니다.(고전 5:1-1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1-20 00:00
조회
942



고린도전서 강해 08
신앙은 삶으로 증명돼야 합니다.(고전 5:1-13)
2019. 1. 20.


프롤로그

-내가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가 예수 믿은 일이다.
물론 나는 모태 신앙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안 믿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를 떠날 기회가 수없이 주어졌다.
하지만 방황은 했어도 떠나지는 않았다.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다.
예배의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게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생각해 보면 그게 그렇게 감사하다.?내 성격에 중간에 전도 받아 예수 믿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아무 것도 모르는 모태에서 부르셨다.
내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신앙이다.
아니 다른 게 거의 없으니 신앙이 유일한 유산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 같다.

-나는 오래 전에 유언을 정해 놨다.?“예수 잘 믿어라!”?자식들이 모인 자리에서 폼나게 유언을 할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예수 잘 믿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을 거 같다.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이면 이 말이다.
“얘들아, 천국에서 만나자!”?그 장면을 떠올려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코끝이 찡해진다.

-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죽음을 위해 기도한다.
나는 오래 전에 장기기증을 했다.
아마 서른 이전에 한 거 같다.
아내는 뭣도 모르고 내가 하자니까 같이 했다.
순교도 얼떨결에 한다는데 아내가 그랬다.?장기 기증을 하고는 어느 정도 인생의 홀가분함을 느꼈다.
서른 이전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긴 하다.

-사실 우리는 매일매일 덤으로 산다.?우리는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이 땅에 올 때 이미 수명이 정해져 있다.
오래 살아도 100살 남짓 사는 것이다.
확실한 건 200살은 못 사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몇 명이 죽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죽는다.
그럼 우리가 언제 죽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천 년 만 년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
잘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이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덜컥 서야 한다는 것을 모르니, 잘못 살게 된다.
제 맘대로 살게 된다.

-문제는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말씀을 따라 산다.
예수 믿는 사람은 교회 공동체와 함께 달려간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영적 분위기가 너무 중요하다.?단순히 교회를 오락가락한다면야 별 상관없을 수 있다.?그럼에도 어느 교회 공동체에 속해있느냐가 신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분위기 때문이다.?교회 공동체 분위기가 신앙의 색깔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영적으로 바로 서 있지 않으면 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의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고린도교회가 그랬다.?어느 교회가 지역 사회의 영향과 무관하겠는가마는 고린도교회는 특히 심했다.
지역의 부도덕한 삶이 덜 여과된 채 교회로 들어오곤 했다.?고린도전서 강해를 시작하면 고린도시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했다.?오늘 말씀과 연관된 부분만 다시 소개하면 이렇다.

-고린도시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항구였지만, 항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퇴폐적인 모습들이 나타났다.
기록에 의하면,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성창들이 천여 명이나 상주했다고 한다.?종교의 이름을 빙자해 매춘굴로 유명했던 것이다.
지금도 이 영향으로, 영어 단어 중에 “corinthian” 이라는 말은 ‘사치하고 게으르다’, ‘한량’, ‘난봉꾼’의 의미로 쓰인다.

-고린도교회 모든 교인들이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생활을 접었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생활을 끊고 믿음의 세계에 들어섰다.
자신이 과거에 그런 생활을 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한다.?예수를 몰랐다면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문제는 몇 몇 사람이다.
몇 몇 사람이 교회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있다.

-바울이 지금 3차 선교여행을 하며 에베소교회를 개척 중이다.
그러는 어간에 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로부터 고린도교회에 대한 보고를 받게 된다.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문의를 받고는 그에 대답을 해줄 목적으로 편지를 기록했던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에는 이미 소개된 분파와 분쟁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살펴볼 음행의 문제다.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세상에서 음행은 항상 존재해 왔다.?예수님이 오셔서 최후 심판을 하실 때까지 음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만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음행이 오늘날에 와서 갑자기 심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부터 음행은 시작되었다.

-문제는 음행이 있는 곳이 교회라는데 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여기서 “너희”가 고린도교회를 일컫는다.?음행하는 자들이 버젓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음행하는 자들이라고 교회를 못 나오게 할 수는 없다.?동성연애자라고 교회를 못 나오도록 가로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계속 교회 나오게 할 수는 없다.?진짜로 예수를 믿는다면 그 생활을 청산할 수밖에 없다.

-그럼 오늘날은 교회 안에 음행하는 자가 전혀 없을까??교회 안에 자기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두고 사는 남자는 없을까??자기 남편 외에 애인을 따로 두고 만나는 여자는 없을까??고린도교회가 별스러운 교회여서 그랬을까??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일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까??설교자로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더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는 글을 쓸 때, 바울은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신앙이 곧 도덕은 아니다.
도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앙이 있다.?교회는 도덕주의자들이 모인 단체가 아니다.?그럼에도 교회가 도덕수준이 미달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자들이 있었다.?아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물론 굳이 아버지의 아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친모는 아닐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아버지의 첩이거나 계모 아니겠는가?
또 그것이 단회성이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더군다나 지금도 그런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교회 안에 그런 문제가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통한히 여겨야 하는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다”는 뜻은, 죽은 자로 인하여 애통하다는 의미다.?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리스도인은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애통하는 것처럼 자신이 지은 죄 앞에서 애통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
죄를 지어놓고도 오히려 교만했다.?교회 안에서 당당한 모습이었다.
공동체 앞에서 부끄러워 할 줄을 몰랐다.
자신은 육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의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했다.?신앙에 있어 자유와 방종을 구분할 줄 몰랐다.

-자유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다.
방종은 제멋대로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음이다.
자유와 방종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가??책임을 질 줄 아느냐이다.?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같지만 자유는 책임을 지려고 하고 방종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 때문에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책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방종의 신앙이다.
그런 사람이 리더 그룹에 속해 있다면 그 교회는 앞날은 어둡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공동체에서 용납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고 있다.
죄 중에는 단순한 개인의 죄로 끝나는 것이 있고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죄가 있다.
1절은 후자에 속한다.?공동체의 보호를 위해 그런 자를 쫓아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기에 화를 내고 있다.
그런 사람을 놔두면 그 사람의 영혼도 죽고 교회도 죽는다.?한 사람이 교회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결국 한 사람이다.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 55분, 6척의 항공모함에서 출발한 일본 공군기 353대가 벌떼같이 하와이 진주만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의 미국 해군 기지를 공격해서 21척의 군함을 침몰시키고 117대의 항공기를 파괴하고 2003명의 사상자를 내고 960명의 실종자와 1100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이것이 대평양전쟁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건이 사실은 단 한 사람의 무관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날은 주일이었다.
진주만 기습 55분 전, 정확하게 오전 7시에 태평양에 있는 미군 레이더 기지에서 두 명의 병사가 레이더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스크린에 이상한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점들이 많아져서 레이더 스크린을 꽉 채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깜짝 놀라서 기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상관인 중위에게 이것을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레이더에 새까맣게 비행기가 나타났습니다.”

-그랬는데 그 중위가 여기서 크나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걱정하지마라 우리 편 비행기다.”

-그리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제 55분이 지나고 나니까 그대로 폭탄이 떨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실수, 한 사람의 무관심으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한 사람의 중요성은 수없이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바울은 몸은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있다고 했다.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자기 같으면 그런 사람을 공동체에서 쫓아냈을 것이라고 했다.?그런 사람은 개인적으로 권면해서는 나가지 않는다.?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했는가??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했다.?주 예수의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내쫓으라는 것이다.
이걸 출교라고 한다.?출교는 곧 사탄에게 내주는 것이다.

-사탄에게 내주는 것은 죄를 심판하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지옥행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그들이 죄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회개하고 구원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공동체에서 쫓겨나면,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많이 날 수 있다.
그러다 점차 자기가 행한 것의 심각성을 깨닫고, 후에라도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을 그대로 두면,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을 것이고,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근심해야 한다.
자신도 얼마든지 같은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오랫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잘 맞아들여야 한다.
그가 온전히 회개하고 돌아왔다면, 그가 부끄러움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잘 도와야 한다.
치리나 징계의 목적이,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범죄한 자를 공동체로부터 내쫓아야 하는 것은, 성도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한 사람의 부도덕한 행위를 그대로 두면, 앞으로 그와 비슷한 일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는 범죄한 자를 그대로 두는 것을, 사랑이 많은 교회라고 자랑했던 모양이다.
바울은 냉정하게 “그게 무슨 자랑거리냐”고 혼내고 있다.

-적은 누룩을 그대로 두면, 온 덩어리에 퍼지게 되고, 그건 다 죽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죄는 누룩과 같아서 그대로 두면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키게 된다고 했다.
교회가 죄를 용납하는 분위기가 되면 교회가 어려워진다.
자칫하면 교회 전체를 버리게 된다.

-교회는 묵은 누룩을 내버리는 것을 잘해야 한다.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묵은 것은 내버리는 게 쉽지 않다.
묵은 것이 주는 익숙하고 편안함 때문이다.
누룩은 유월절과 관계가 깊다.
유월절 다음날이 무교절인데 누룩을 제거하는 절기다.
누룩은 제거하는데 누룩이 의미하는 바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묵은 누룩은 애굽의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애굽에 살 때의 가치관이요 노예의 사고방식, 종의 근성이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원망한 대상을 찾는다.
모세나 아론을 원망하는 것은 기본이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누룩을 언제 버렸는가??40년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길갈에서 할례를 받을 때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면서 길갈이란 이름을 주셨다.

-우리는 모양만 그리스도인일 때가 있다.
가치관이 바뀌지 않아서 그렇다.
예수 앞에서 과거의 내가 죽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유명한 갈라디아서 2장 2절 말씀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때 내 가치관도 내 사고방식도 내 이데올로기도 죽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묵은 누룩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누룩보다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을 좋아해야 한다.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은, 누룩이 들어가 있지 않는 것이다.
맛이 덜할 수 있다.
금방 굳어져 딱딱해질 수 있다.

-교회가 이것저것을 하면서 성도들을 붙잡아두려고 한다.
보이는 게 십자가고 널려 있는 게 교회니 그럴만하다.
실제로 여러분이 우리교회에 오려면 여러 교회를 지나서 온다.
그래서 “아니 가까운 교회 가면 될 텐데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멀리서 오는 교우들에 대해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이다.
누룩이 섞이지 않는 말씀을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우리교회는 대형교회가 줄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 없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줘야 한다.?그게 바로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이다.?곧 생명의 말씀의 떡이다.

-교인들에게 설교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올해엔 예배 후 셀모임을 갖는 것이다.
육신의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배를 채우는 것이다.
작년까지 수요일에 셀모임을 하다가, 주일예배 후로 옮겨서 하다 보니, 한 동안 어색하고 시간에 쫓길 수 있다.
말씀 나눔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지혜 주시기를 바란다.

-죄 지은 자를 공동체에서 내보내라는 말을 오해할까봐, 바울은 보다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세가 있다.?은둔 또는 분리이다.
세상과 담쌓고 사는 것이다.
타협 또는 동화이다.
세상과 섞여서 사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세상과 타협하고 동화된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는 말이 세상과 은둔하라 세상과 분리하라는 말도 아니지만 세상과 타협하라 세상과 동화되라는 뜻도 아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 수도사로 살면 세상이 변할까??우리가 세상과 뒤섞여 그들과 하나가 되면 세상이 변할까??그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과 분리하지 않고,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사는 게, 사실 얼마나 힘들겠는가??세상에서 자기 믿음 지키는 것도 힘든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그걸 위해 우리를 세상에 두셨다.?세상을 보고 시험들지 말라.?세상은 본래 그래왔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문제는 교회 공동체 안이다.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는 교인을 가리킨다.
교인이면서도 음행하고 탐욕부리고 우상 숭배하고 모욕하고 술 취하고 속여 빼앗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인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도 거래할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다.?하지만 그런 사람이 교인이라면 가까이 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목회자 입장에서 그런 교인이 있다면 참 힘들다.
그런 사람이 교회의 직분자라면 더욱 힘들다.
아볼로는 바울에 이어 고린도교회의 2대 담임목사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목회하기가 너무 힘들어 에베소로 도망쳐버렸다.
후에 디모데와 실라가 마게도니아 쪽으로 선교여행을 갈 때 동행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을 때 그 쪽으로 갈 맘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 정도로 고린도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받았던 상처가 컸던 것이다.
참고로 마게도니아는 고린도가 속한 아가야의 윗지방이다.

-바울은 앞에서 한 말을 복기하고 있다.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다시 말하는데 그런 사람을 교회 공동체에서 내쫓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두면 교회의 순결성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값싼 회개를 장려해 온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진정한 회개가 사라졌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힘을 잃어버렸다.
거룩을 잃어버린 교회는 맛 잃은 소금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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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신을 돌아보자.?내 안에 내버려야 할 묵은 누룩이 있는지를 살펴보자.?내 안에 죄를 짓고도 교만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모습이 없는지 확인해보자.

-또한 교회 공동체를 돌아보자.?교회 안에 은혜가 있는지를 살펴보자.?교회 안에 누룩이 없는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이 있는지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