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13:잘 살아야 잘 믿는 겁니다.(호 10:1-15)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7-29 00:00
조회
799
호세아 강해 13잘 살아야 잘 믿는 겁니다.(호 10:1-15)2018. 7. 29. 프롤로그

-우리는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이다.
어떤 사람은 작은 것도 큰 복으로 여기지만, 또 어떤 사람은 큰 것도 작은 복으로 여긴다.
느낌은 자유다.
작은 것을 큰 복으로 느끼는 것도 자유고, 큰 것을 작은 복으로 느끼는 것도 자유다.
누구도 그걸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이건 있다.
큰 것을 작은 복으로 느껴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큰 것을 받고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
작은 것을 받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작은 것을 큰 복으로 느끼고 감사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
행복은 감사라는 통로로 들어오고 불평이라는 통로로 빠져나간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범사에 행복하기를 바라서였다.
우리가 복을 구하는 데는 열심이다.
하나님 복을 주세요.
하나님 이런 복을 주세요. 저런 복을 주세요.
그럼 복만 많이 받으면 예수를 더 잘 믿을까?
지금까지 예수를 시원찮게 믿었던 이유가, 단지 복을 많이 받지 못해서였을까?

-복을 받는 것과 예수 잘 믿는 것이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10: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열매가 없거나, 열매를 잘 못 맺는 포도나무로 묘사됐다.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얄궂은 들포도 같은 열매를 맺었다고 질타를 당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의외다.“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 자체가 복이다.
그렇지 못한 포도나무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라.“그 열매가 많을수록...”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인 것도 복인데 열매까지 많다.
그럼 큰 복을 받은 것이다.
큰 복을 받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큰 감사를 해야 한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는가?
큰 감사를 했다.
그런데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었다.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누구에게 했다는 말인가?
우상에게 했다.

-왜 제단을 많게 했는가?
감사를 많이 하려고...
더 큰 감사를 하려고...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많은 열매를 맺었는데, 가나안 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이 복을 주신 보람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복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이 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자기가 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 탓할 게 없다.
그럼에도 뻑 하면 하나님을 탓하곤 한다.
좋으신 하나님이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까지 희생시키신 분이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세상에 이런 신이 어디 있는가?
이런 하나님이 우리한테 무슨 억한 감정이 있겠는가?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고는 우상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는 없다.
복을 구하는 것 중요하다.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받은 복을 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은 복을 달라한다고 주고는, ‘이제 네 알아서 하라’고 하는 분이 아니다.
받은 복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지켜보신다.
받은 복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신다.
이게 하나님의 테스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복을 받는 데까지만, 하나님이 필요했다.10: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이제 그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이유는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 하나님...”
“나한테는 하나님 밖에 없어요.”
이런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많은 열매로 풍성해지니까,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다.
아니 하나님을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다.
또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아주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당장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
이게 두 마음이다.
교회 안에서의 마음과, 교회 밖에서의 마음이 다르다.
기도할 때의 마음과, 기도 응답 받고나서의 마음이 다르다.
말씀 들을 때의 마음과, 집에 가서의 마음이 다르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구약을 인용하여 말씀하셨다.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다하고”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았다.
마음이 둘로 나뉘어, 반은 하나님을 섬겼고, 반은 우상을 섬겼다.
전심을 쏟지 않고, 반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바알이 있었다.
바알이 주는 기쁨과 쾌락이 있었다.
그들의 실질적인 하나님은 여호와가 아닌 바알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10: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서서히 없어졌다.
처음에 바알 제사에 갈 때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당장에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불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차츰 맘 놓고 우상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죄를 지었는데 별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복인가?
말씀에 불순종했는데 오히려 일이 잘되었으면, 그게 은혜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신앙인이다.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럼 그는 교인일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이 참인가를 거짓인가를 분별하는 시금석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꼬박꼬박 지키고, 제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왕이 없는 상태가 된다.
자기가 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왕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하고 내 맘대로 한다면, 내가 왕인 것이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이 왕이냐 내가 왕이냐이다.
예수님이 왕인 상태를, 달리 성령 충만이라고 한다.
내가 왕인 상태를 불신앙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상 불신앙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정상적으로 살 리가 없다. 10:4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바른 삶은 바른 신앙에서 나온다.
신앙이 잘못 되면, 삶도 잘못 될 수밖에 없다.
이단 사이비들이 그 증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헛된 말을 냈다.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 헛된 말과 거짓 맹세가 재판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서 끝까지 신임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 사법부다.
행정부도 중요하고 입법부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중요한 것은, 행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나 입법부인 국회의원들은 선출직이다.
임기가 지나면 투표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사법부인 법관은 임기가 없다.
또한 사법부는 심판하는 기관이다.

-가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이 나곤 한다.
그럴 때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
재판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헛된 말과 거짓 맹세로 재판이 왜곡되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아진다.
법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좀 귀담아 들으면 좋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긴 결과는 비참했다.10:5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벧아웬은 ‘사악함의 집’, ‘우상의 집’이란 뜻이다.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 벧아웬 곧 사악함의 집, 우상의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벧엘에서 송아지 우상을 섬겼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송아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다른 이유보다도 편하고 쉽게 신앙생활하기 위해서였다.
송아지 하나님은 간섭하지 않는다.
웃는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놓았으니, 얼마든지 맘 편히 제사할 수 있었다.

-반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자기 백성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신다.
그러니 섬기기가 어렵고 불편한 것이다.

-문제는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이다.
잘 될 때, 형통할 때는, 웃고 있는 송아지 하나님과 함께 웃을 수 있다.
급박한 문제 앞에 살려달라고 부르짖어야 하는데, 송아지 하나님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죽을 거 같아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는데, 송아지 하나님은 그때도 그저 웃고 있다.
열심히 송아지 하나님을 섬겨온 백성들은 슬퍼하고, 제사장들 역시 슬퍼할 수밖에 없다.
‘아, 이러려고 송아지를 섬긴게 아닌데...’
‘내가 이 꼴 보려고 송아지 하나님께 제사드렸던가?’

-자기를 섬기는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 송아지 하나님의 최후는 어떻게 되는가?10:6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7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앗수르로 옮겨진다.
당시 앗수르 왕이 야렙이었다.
야렙이란 ‘싸움 왕’이란 뜻이다.
하나님으로 숭배 받았던 송아지가, ‘싸움꾼’, ‘깡패’ 같은 야렙에게 예물로 바쳐지는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당시 나라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다.
이스라엘 나라와 앗수르 나라가 전쟁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신과 앗수르 나라의 신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패함으로, 이스라엘 신을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바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송아지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닌, 쇳덩어리에 금을 입힌 조각상이 되고 만다.
용도 폐기된 하나님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용도 폐기된 송아지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사실 송아지가 무슨 죄가 있나?
송아지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강요했는가?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송아지를 억지로 하나님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숭배하고 복을 빌었다.
그러다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바쳤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다.
실제로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신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참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자기 신을 예물로 바쳐야 했던 이스라엘의 심정은 비참했다.10: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하나님의 징벌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들은 탄식했다.“산더러 우리를 가리라”“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차라리 산이 무너져 내릴 때, 거기에 깔려 죽는 게 낫다는 부르짖음이다.
그 정도로 하나님의 징벌이 혹독하다는 말이다.
또한 치욕을 견디느니 차라리 죽는 걸 택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살 길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보내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죄에서 돌이키고, 우상숭배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살았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를 이유가 없었다.
하나님이 한 번 잘못 했다고, 무시무시한 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다.
선지자들이 입이 닳도록 경고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선지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을 핍박하기까지 했다.
막상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니까, 차라리 산에 깔려 죽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 때도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다.
대단한 교만이요, 완고한 고집이다.

-이를 본 하나님의 탄식이 나온다.10: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그들이 잘못할 때마다 징계하시지 않았다.
두고 보셨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셨다.
죄에서 돌이킬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무슨 죄 짓는데 재미 붙인 사람들 같았다.
하나님의 인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드디어 하나님의 인내의 때가 차고 말았다.10: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내가 원하는 때에”
여기서 내가 원하는 때는 하나님의 때를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의 때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때를 우리가 알 수 없으니,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깨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명을 거두시는 하나님의 때를 모른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하나님의 때를 모른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늘 깨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때는 모르는 게 낫다.
내가 죽을 날을 알고 있으면 좋을 거 같은가?
그럴 거 같지 않다.

-예수 믿으라고 하면, 죽기 직전에 믿겠다는 이들이 있다.
마치 하나님의 때를 알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징계의 때를 알지 못해서, 그렇게 용감한 말을 하는 것이다.
원래 무식할수록 용감한 법이고, 유식할수록 겸손한 법이다.

-에브라임은 남다른 하나님의 백성이다.10: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길들인 암소”란 ‘제대로 훈련받은’ 혹은‘ 정식으로 교육 받은 백성’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방인들이 받지 못한 율법의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율법을 잘 배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곡식 밟기는 좋아하지만, 멍에 메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곡식 밟는 것은, 곡식을 밟으며 마음껏 그것을 먹는 것을 뜻한다.
즉 하나님께 받는 것만 챙기고, 의무는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축복은 자기가 챙기고, 의무와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지우는 것이다.
잘못 배워서 그렇다.

-담임목사로서 교회 안의 궂은일을 찾아서 하는 이장로님을 존경한다.
주일에 보면,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일인데, 뭘 치우고 고치고 한다.
또한 몇 년째 남녀화장실 청소를 도맡아서 하는 임장로님을 존경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자기 목이 아름답다고 자랑하는 암소는 필요 없다.
진짜 아름다운 암소의 목은 멍에를 멘 목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복이다.
주님의 멍에를 메야, 제대로 배울 수 있고,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묵은 땅을 기경할 때다.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왜 공의를 심어야 하는가?
인애를 거두기 위해서다.
공의를 심기 위해서 먼저 할 일이 있다.
묵은 땅, 교만과 고집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땅, 불순종으로 인해 묵혀져 버려 있는 땅을 갈아엎어야 한다.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은, 옥토를 기경하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묵은 땅을 그대로 두는 것은, 악을 밭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10: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악을 밭 갈면...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게 된다.
거짓 열매는 거짓 신앙에서 나온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길을 믿었다.
또한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다.
그들은 주의 손이 아닌 군사력을 믿은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실제로는 자기를 믿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믿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을 통해, 잘 믿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끝까지 그렇게 살면 끝내 망하게 된다. 10: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생각지도 못한 날, 전혀 준비가 되어 있는 않는 시간에 망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도움의 시간인 새벽이,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게, 여간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내 삶에, 내 신앙에, 내 인격에, 기경해야 할 묵은 땅은 없는지 조용히 곱씹어보자.
잘 살아야 잘 믿는 것이다.
잘 믿어야 잘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