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11:당신의 송아지를 버려야 합니다.(호 8:1-1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7-11 00:00
조회
899
호세아 강해 11당신의 송아지를 버려야 합니다.(호 8:1-14)2018. 7. 8. 프롤로그

-신앙은 계약적인 관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행은, 이 관계를 오해한 데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신앙을 계약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망나니짓을 해도 하나님이 끝까지 받아 주실 줄 알았다.
하나님이 무조건 자기 편들어 주실 줄 알았다.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이 축복해 주실 줄 알았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개꿈 꾸고 있는 이스라엘을 깨우라 하신다. 1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설교자는 일종의 나팔을 부는 사람이다.
여기서 나팔은 연주용이 아닌 경고용 나팔을 말한다.
단 소리가 아닌 쓴 소리이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닌 듣기 거북한 말이다.
부담 없이 듣고 즐기는 말이 아닌, 회개를 촉구하는 아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설교자는 인기가 없어야 한다.
설교자는 오로지 하나님의 대변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왜 설교자를 세워 주셨는가?
성경이라고 하는 신앙생활 지침서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교회와 설교자를 주신 것이다.
특히 사람들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한다.
그래서 더더욱 설교자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설교자로부터 어느 정도 신앙의 간섭을 받는 게 유익하다.
신앙에 있어 독학이 있을 수 없다.
교회와 설교자를 떠나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힘들다.
그래서 회중은 설교자가 파수꾼으로서 하나님 앞에 늘 깨어있도록 늘 기도해야 한다.

-나팔은 언제 불어야 하는가?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집 위에 독수리가 떠 있으면, 어떤 상황인가?
비상이다.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독수리는 순식간에 엄마 품에서 멀어진 병아리나 새끼들을 덮쳐서 낚아채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원수가 독수리처럼 어떤 집을 덮칠 수 있는데, 그 집이 다름아닌 여호와의 집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감히 원수들이 여호와의 집을 덮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지키시는 집,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집을, 원수가 덮칠 수 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호세아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호세아는 이런 비신앙적인 예언이요, 설교를 해야 했다.
하나님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하나님의 집이 대적에게 짓밟힌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금 하나님이 왜 그런가?
그들이 잘 믿는데도 괜히 그런가?
잘 믿는데 더 잘 믿으라고 그런가?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가운데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다.
율법대로 살면 생명이고 축복이고, 율법을 저버리고 살면 죽음이고 저주다고 언약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통 말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 무렵에는, 율법이 어디 구석에 버려져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요시야 왕 때, 성전 수리하면서 겨우 발견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도는 뻔질나게 했다. 2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었다.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얼마나 멋진 고백인가?
그러나 이건 순전히 입에 발린 고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주를 아나이다”고 고백은 했지만, 실제로는 주를 아는 것이 아니었다.
몰라도 한참 몰랐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가?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급한 김에 부르짖기만 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그 때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는가? 3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사랑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선을 싫어했다.
물론 선을 버리기 전에, 선하신 하나님을 버렸다.
선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나면, 사람은 표준을 잃게 된다.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놓고도, 태연하게 살아간다.
왜? 삶의 표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이 “이신칭의”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물론 의인은 사람의 행위로 가능하지 않고, 하나님의 행위 즉 은혜로 가능하다.
의인이 되는 방법은 제대로 가르쳤으나, 의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소홀했다.

-그럼 의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의인답게 살아야 한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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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부터는 지도자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4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이스라엘에 지도자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허락은 했으나, 기쁘신 뜻은 아니었다.
이걸 왕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방백들이 하나님의 모르는 바라고 표현했다.

-지도자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자기가 스스로 지도자가 된 경우이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군림한다.
백성들을 압제한다.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쁘다.
여로보암 왕은 자기 정권 유지를 위해, 벧엘과 단에 각각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게 했다.

-다음은 잘못 뽑혀져 지도자가 된 경우이다.
백성들이 뭘 몰라서 잘못 뽑았다.
여론이 그쪽으로 몰아갈 때, 자기도 같이 휩쓸려 간 것이다.
이건 백성의 책임이다.
우리는 흔히 과정이야 어떻든 그 사람이 당선되기만 하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우상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잘 안 보인다면 그것이 곧 우상이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인다면 물질이 우상인 것이다.
내가 가진 어떤 욕망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인다면 내 욕망이 우상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금송아지 형상으로 제한시켰다.
그리고 신전에 가뒀다.
꼼짝 못하게 묶어 두었다.
마음대로 내버려두기도 하고, 또 필요하면 가져다 놓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들 맘대로 하고, 자기네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하나님을 주일에만 제한하려고 한다.
나머지 6일은 자기 맘대로 산다.

-하나님을 교회로 제한시키기도 한다.
교회 밖에만 나가면 별짓 다한다.

-하나님을 예배로 제한시키기도 한다.
하나님이 내 출장 가 있다가 예배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분쯤으로 여긴다.

-하나님의 영역은 온 우주이다.
교회는 물론이고, 가정과 직장 정치와 경제와 문화 언론과 예술과 인터넷까지도,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으셔야 한다.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Lordship을 인정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송아지를 하나님인줄 알고 열심히 섬겼다. 5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6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선언하신다.
그것은 한낱 우상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에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우상은 우상일 뿐이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선언하신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말이 좋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잔소리 안 하는 송아지 종교가 너무 편했다.
부담 없었다.
회개 안 해도 되었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하니까 좋을 것만 같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파괴되고 만다는 것이다.
자신들을 위해서 실컷 우상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만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이다.7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법칙이다.
심은 것보다 더 많이 거둘 때 이를 은혜라고 말한다.
심은 것보다 더 적게 거두는 것을 저주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정상적인 씨앗을 심었을 경우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된 씨앗을 심었다.
바람을 심었다고 했다.
바람이란 헛된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바람을 정성껏 심었더니, 거두는 것은 풍성한 수확이 아닌 광풍이다.
여기서 광풍은 파멸을 상징한다.
우상 숭배 때문에 망하게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심어도, 줄기가 없고, 열매가 없을 거라는 것이다.
혹 어쩌다 열매가 맺혀도, 대적들이 다 빼앗아 갈 것이라는 말이다.
되는 게 없을 거라는 뜻이다.
말짱 헛수고인 인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 광풍을 거두게 된다.
말씀의 안내를 따라 신앙의 여정을 정도로만 걷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 결과가, 이렇게까지 비참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옛날 이스라엘에도 질그릇이 많이 있었나 보다.
그 그릇들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그마한 흠집이 생겨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 그릇을 깨뜨렸다.
여기서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은 ‘깨진 그릇’이나 ‘이빨 빠진 그릇’이란 뜻이다.
어떤 집에 손님으로 갔는데, 만약에 이빨 빠진 그릇에 밥을 주거나 국을 줄 경우 굉장히 기분 나쁠 것이다.
본차이나고 한국도자기고 간에, 밥맛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빨 빠진 그릇을 자기 집 식구들이 사용하는가?
그렇지 않다.
대개는 버리거나 개밥그릇으로 사용한다.

-이스라엘의 신세가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개밥그릇 신세였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왕따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교만했다.
겸손할 줄 모르고 되레 큰 소리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언젠가는 너희들이 큰 코 다칠 때가 있을 것이다고 응수했다.
하나님이 자기편인 줄 알고 큰소리 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있다.
이걸 모르는 것이 불행이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홀로 처한 들나귀’에 비유하고 있다. 9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홀로 떨어진 들나귀를 떠올려보라.
친구 하나 없이 언제나 혼자다.
들나귀는 정착을 못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어디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딱 그 신세이다.
하나님을 용감하게 떠나 보았으나, 바알에게서도 아스다롯에게서도 금송아지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못한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쉬울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상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

-보면 방랑끼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 끝없이 유랑한다.
교회를 옮겨 다니다, 자칫 홀로 떨어진 들나귀 되기 쉽다.

-한 교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 나무가 거목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그것을 다 이겨낸 후에야,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거목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뿌리 깊은 신앙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10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그들은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쳐 생존을 유지한다.
조공을 바치다 보니, 그 부담이 점점 커져, 나중에는 커다란 멍에가 되고 말았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겠지만, 결국은 쇠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두고두고 짐이 되어, 결국은 어렵게 된다는 말이다.
돈은 돈대로 주고, 아부는 아부대로 하고, 치욕은 치욕대로 당하고,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터다.
이미 기울어가는 끓는 가마를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하지만, 원 상태로 돌리기에는 불가능했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단을 많이 만들었다. 11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힘을 빌어, 국난을 해결해 보려는 속셈이다.
본래 목적은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속죄제가 아니라 감사제와 서원제를 드렸다.
그들은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서 감사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구차하게 질질 짜며 회개하는 것보다, 그럴듯하게 인심쓰듯 감사하겠는 것이다.
또한 자기를 비우는 제사보다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서원제를 더 선호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율법을 하나도 아니고 많이 기록하셨다. 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여기서 “만 가지”는 실제 수자가 아니고 아주 많다는 뜻이다.
여러분 율법을 왜 누구를 위하여 기록했는가?
분명히 “그를 위하여” 즉 하나님 자신이 아닌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자신들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여겼다.
귀찮고 짜증스럽게 여겼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결국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의 기능이 우리를 옭아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은 우리를 복되게 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 말씀을 따라 산 후에 다가오는 기쁨은, 그간의 어려움을 능히 불식시키고도 남는다.
말씀의 굴레를 벗어나면,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만 없으면 신나게 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애굽의 굴레가 덮쳐 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그들이 어떻게 하는가? 13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제수용 고기를 먹는 데만 탐욕을 부렸다.
정작 예배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읽지 못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의지하지도 않았다.
앗수르에 붙었다가, 애굽에 붙었다가 했다.
그러다 다시 애굽에 종살이 하게 된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궁들을 세우고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다.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이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잊어버리다는 원어로 「샤카크」인데, 직역하면 “잘못 놓았다”는 뜻이다.
항상 쓰는 물건인데, 어느 날 관리를 잘못해서 그 물건이 없어졌다.
한번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영원히 망각해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살 수는 있다.

-우리는 이 시간 내가 하나님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하나님을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만, 내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안에 송아지가 자리 잡고 있는 한, 하나님이 능력을 발휘하실 수 없다.
내 안에 있는 송아지를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