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72:승리는 결국 기도에 달렸습니다.(마 26:36-4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1-14 00:00
조회
848
마태복음 강해 72승리는 결국 기도에 달렸습니다.(마 26:36-46)2018. 1. 14. 프롤로그

-천주교 부산교구 만덕성당 홈페이지에 실린, 기도문을 하나 소개하겠다. 굴곡 많던 한 해를 돌이켜보며 감회에 넘쳐 기도를 드립니다. 아프고 피곤할 때 용기를 주시고, 괴롭고 외로울 때 소망을 주셨고, 일을 주셔서 보람을 갖게 하시며, 가족을 지켜 큰 사고 없게 하시고,
고통 속을 헤엄치면서도 아주 빠지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머리 둘 곳 없었던 주님에 비하면 난방된 집에 편한 잠자리가 있었고,
외롭게 배신당한 주님에 비하면 못 참을 만한 악당도 없었으며 ,
비난 속을 사신 주님에 비하면 가끔 칭찬도 받은 것을 감사합니다. 가시관을 쓰신 주님에 비하면 아픔다운 아픔도 사실 없었고, 십자가다운 십자가도 지지 않아 감사하기도 하지만 부끄럽습니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음을 불평했고, 마음대로 안 된다고 중얼거렸으며,
내가 중심이 못 됨을 한탄하고 내 비위 안 맞춰줌을 비난했으며,
이해하기보다 비판이 앞섰고, 덮어주기보다 들추기를 즐겼으며,
싸매주기보다 아픈 데를 건드렸고, 별 것 아니면서 잘난 척한 것들을 다 용서해 주십시오. 내 인생에 폭풍이 있었기에 주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가끔 십자가를 지게 해주셨기에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음을 감사합니다.이익에도 감사하고 손실에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덤의 공평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환영해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공격해 온 사람에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를 더 너그러운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때때로 가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잠든 영혼을 깨워주셨습니다. 한숨과 눈물을 주심을 감사합니다.그래서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하셨습니다.실수와 실패에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약할 때 강해지는 진리를 터득하게 하셨습니다. 날마다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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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님은 장소를 옮기셨다.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그 장소는 겟세마네였다.
30절에 의하면 감람산으로 나아갔다.
겟세마네와 감람산은, 사실상 같은 장소로 봐도 무방하다.
겟세마네가 감람산 기슭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를 찾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자들과 이별할 시간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일분 일초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되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주님은 그 귀한 시간을, 기도하기 위해서 겟세마네를 찾으셨다.

-기도는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한가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시간 남아도는 사람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시간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해도 되는 옵션이 아니다.
기도는 시간이 없으면, 시간이 나지 않으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
기도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기도는 우리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옵션인 것이다.

-그럼에도 때론 기도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도 좀 쉬어가면서 해도 될까?
기도하기 싫을 때가, 가장 기도해야 할 때다.
혹 ‘내가 요즘 기도가 잘 안 된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기도의 자리가 피해진다.’
그러면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누군들 기도가 잘 될 때만 있겠는가?
기도야말로 버티는 것이다.
기도로 버티다보면 뭐가 돼도 된다.
기도는 하나님이 손쓰실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기도의 손을 들고 버텼다.
엘리야는 가뭄 중에서 비오기를 위해, 기도의 무릎으로 버텼다.
기도로 버텨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주님이 이번에 겟세마네를 처음 찾으신 게 아니다.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주님은 감란산을 찾는 게 습관이었다.
주님은 기도할 일이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감람산을 찾았던 것이다.
기도는 습관이 중요하다.
기도를 위해 시간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
기도를 위해 장소를 정해놓는 것도 좋다.

-하워드(Haward) 장군이 미국서부해안지구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그의 친구들은 수요일 저녁에, 그의 영예를 축하하는 환영 만찬회를 열기로 했다.
그들은 여러 곳에 초대장을 보냈고, 미국 대통령까지 축하 전문을 보내왔다.
그들은 장군을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 그에게 알리기로 했다.
친구들은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장군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하워드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네. 수요일 저녁에 다른 약속을 이미 해두었네.”

-친구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이 사람아, 이 날은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참석할 텐데... 그 선약을 취소할 수 없겠는가?”

-장군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말했다.
“내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을 때, 수요일 밤 기도회 시간에 꼭 주님을 만나 뵙겠다고 주님과 약속했다네. 어떤 것도 이 중요한 약속을 깨뜨릴 수 없다네.”
장군의 친구들은 할 수 없이, 만찬회를 하루 연기해야만 했다.

-중국선교에 일생을 바친 영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사역자로 보낼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행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제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최고의 습관은 기도의 습관이다.
습관은 길러지는 것이다.
습관은 조금씩 길들여지는 것이다.
맘만 먹는다고 바로 습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벽기도, 며칠은 할 수 있다.
특별새벽기도회, 며칠은 참석할 수 있다.
새벽기도의 묘미는 매일 그리고 평생에 있다.
새벽기도하는 것은 매일 도 닦는 것에 비견된다.

-그런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신앙은 믿을 수가 있다.

-예수님은 가장 힘들 때 기도의 장소를 찾았고, 세 제자를 뺀 나머지 제자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기도할 때 옆에 앉아만 있어줘도 힘이 난다.
심야기도회 때 일당백의 심정으로 기도한다.
그럼에도 어떨 땐 힘이 빠질 때가 있다.
심야기도회 자리에 앉아있다고,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졸다 자다 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자리라도 채워주는 게 어딘가?
주님도 제자들에게 큰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기도할 동안 여기서 기도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여기 앉아만 있어달라고 했다.

-주님은 세 제자만 데리고 좀 더 가셨다.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셨다.
좀체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지 않았던 주님이시다.
그게 리더의 힘든 점이다.
자신은 따르는 자들의 힘든 점을 다 듣는다.
하지만 자신의 힘든 점은 드러내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주님이 자신의 고통스런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내셨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간적 고뇌로 힘들어 하셨다.
십자가를 앞두고 심적 갈등이 극에 달하셨다.“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우리도 이런 말을 흔히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고민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진 못할지언정, 배부른 돼지는 되지 말아야 한다.
고민할 줄 모르는 배부름보다, 고민할 줄 아는 배고픔이 낫다.

-예수를 믿으면 고민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를 따르는 우리에게 고민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천국에서, 예수 믿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고자 하면, 고민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 고민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이다.
그 고민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이다.
주님은 깊은 고민, 죽을 정도의 고민 가운데, 기도를 선택하셨다.

-아무리 잘 믿어도 고민은 있다.
끝까지 잘 믿는 비결은 딱 한 가지다.
고민 중에 기도하는 것이다.
고민을 끌어안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중에 버마(미얀마)로 가서 선교사로 일한 미국의 아도니람 저드슨이, 인도에서 일하고 있던 영국의 위대한 선교사 윌리엄 캐리를 1812년에 방문하였다.
저드슨은 캐리 선교사와 정원을 함께 거닐면서, 캐리 선교사의 헌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캐리 선교사는 세 차례에 걸쳐 살해당할 뻔했고, 인도 정부의 갖은 선교 방해를 받았으며, 수고와 땀으로 이룩해 놓은 원고와 인쇄 도구들과 서류들이 거의 다 불타 버리는 화재를 경험했었다.

-저드슨은 어떻게 이러한 수많은 역경들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그 용기와 믿음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캐리 선교사는 저드슨을 안내하여, 정원의 한 편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여기가 바로 나의 예배 장소이자, 기도와 묵상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없었다면, 나는 계속해서 닥쳐온 고난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매일 새벽 5시마다,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은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교회를 통해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게 하시고, 먼저 와 기다리신다.
그걸 알면 우리는 기도의 자리로 달려올 수 있다.
기도회에 달려오는 사람이, 가장 복된 성도다.

-주님이 세 제자에게 뭐라고 부탁하셨는가?“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여덟 명의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과는 사뭇 뉘앙스가 다르다.“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여기 앉아 있으라”와 “여기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의 차이다.
“앉아 있으라”는 기다리고 있으라는 뜻에 가깝고, “깨어 있으라”는 말은 기도하고 있으라는 뜻에 가깝다.
주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세 제자만 함께 하셨고, 그들에게 기도로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신 것이다.

-목회자도 아무에게나 기도 부탁을 하지 않는다.
교회소식 시간에 전체 교인을 대상으로 부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기도제목이다.
깊은 고민으로 잠 못 이룰 때, 기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목회자와 함께 깨어 있는 사람이, 소수가 아닌 다수라면, 그는 목회를 잘 한 것이다.
자신의 잠을 포기하고, 목회자와 함께 고민을 나누며 깨어 기도하기를 기뻐하는 성도라면, 본인도 복되고 목회자도 복되다.

-제자들에게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부탁하시고, 주님은 기도하러 가셨다.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주님의 기도 폼이 나온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도의 모습은, 서서 두 손을 들고 하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런데 주님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했다.
아버지 앞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주님은 기도의 자세를 통해, 벌써 아버지 앞에 절대 복종의 의사를 표현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심적 갈등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도 인성을 가졌기에 두 마음이 있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마음과, 십자가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님께도 두 마음이긴 했지만, 무게 중심은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기울어져 있다.
바로 이어지는 기도에서 알 수 있다.“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런데 우리는 그 정도의 수준이 안 된다.
그래서 안갯속을 헤맬 때가 있다.
그럼 인생의 안갯속에, 우리가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가?
안개에는 지름길이 없다.
안개에는 미로도 없다.
안갯속을 빠져나오는 방법은, 하나님이 안개를 걷어주시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안갯속에 있다.
자기 인생을 바로 보지 못한다.
자기 사명을 바로 깨닫지 못한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을 알 때, 안갯속을 빠져나올 수 있다.

-한 증기선이 뉴펀들랜드를 지나고 있었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는데, 바다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배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한 선객이 선장을 찾아와 말했다.
"선장님, 저는 토요일 오후까지 퀘벡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 때까지 그 곳에 배가 도착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저는 평생 동안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습니다. 정말 불가능한가요?“
"저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지금으로서는 도리가 없군요.“
"그러면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선장은 이 같은 상황에서 난데없이 기도를 하자는, 이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보세요! 지금 안개가 얼마나 짙은 지 안 보이십니까?“

-그러나 그 선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눈은 안개가 얼마나 짙은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생을 움직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고 있소."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의 뜻에 합당하다면, 이 안개를 5분 내에 걷어주십시오. 하나님이 저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퀘백에서의 약속을 아시지 않습니까? 바로 돌아오는 토요일입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기도를 마치자마자 안개가 걷혔다.
그 기도의 주인공이 바로 조지 뮬러였다.

-안갯속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이 진짜다.
인생의 자욱한 안개로 인해 답답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놈의 안개는 언제쯤 걷히려나...’
‘무슨 안개가 어떻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지...’
인간의 힘으로는 안개를 어떻게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 안개를 걷으실 수 있다.
그걸 안다면 안갯속에서도 기도할 수밖에 없다.

-주님은 기도를 마치고 세 제자에게로 오셨다.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 때 세 제자는 자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 전 뭐라고 했는가?마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주와 함께 죽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자고 있다.
깨어 있어 기도조차 하지 못했다.
주님이 길게 기도하고 오신 것도 아니다.
한 시간 남짓이다.
주와 함께 죽겠다고 한 사람들이,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다.
그게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세 제자도 연약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곤히 잠든 제자들을 측은히 여기며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최소한 갖춰야 할 것을 생각해 본다.
하루 한 시간은 주님과 함께 깨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자기 영혼을 위한 한 시간 기도라고 본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 최소 한 시간의 기도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비롯한 중보기도까지 하려면, 2-3시간은 필요하다.

-교회는 다니고, 예수는 믿지만, 자기 영혼은 방치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영혼에 잡초가 우거지는 것을, 본체만체하는 사람들이 있다. ^^ 다들 “나는 아니지요?” 하는 표정이다.

-자기 영혼을 위해 하루 한 시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대답하겠다.
“네가 말하였도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자기 영혼을 위한 하루 한 시간 기도는 건너뛰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시험은 있다.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시험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시험에 드는 것이 문제다.
시험에 들지 않는 비결이 무엇인가?
깨어 기도하는 것이다.
이게 주님이 제시하신 답이다.

-마음이야 원이다.
문제는 육신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

-대개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면 그대로 된다.
그럼에도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다.
그건 육신이 약해서이다.
그래서 주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약한 육신을 깨어 기도하는 것으로 이길 수 있다.

-우리 육신은 한없이 편해지려고 한다.
뛰면 걷고 싶어지고, 걸으면 서고 싶어진다.
서면 앉고 싶어지고, 앉으면 눕고 싶어진다.
우리 육신은 도무지 만족이란 것을 모른다.
육신을 그대로 두면 타락과 방탕에 빠지게 된다.

-비록 육신이 약하지만 깨어 기도해야 한다.
약한 육신을 이끌고, 어떻게든 깨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약한 육신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험을 이겼고, 제자들은 시험에 들었다.
그 차이는 깨어 기도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주님은 약한 육신을 이끌고,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주님은 지금 육신만 약한 게 아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주님은 깨어 기도하셨다.

-할 수만 있으면 좋은 컨디션으로 기도하는 게 좋다.
몸도 마음도 컨디션이 좋으면 기도가 더 잘 된다.
그런데 어디 우리 심신의 컨디션이 늘 좋기만 한가?
아주 엉망일 때도 있다.
이 피곤한 몸으로 교회 가봤자 뻔히 졸다가 온다.
이 심란한 마음으로 기도회 가봤자 기도 제대로 안 될 게 뻔하다.

-그래도 그 몸으로라도 기도하는 것이다.
10분 기도하고 50분 자다가 오더라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라도 기도하는 것이다.
50분 기도줄 못 잡고 헤매다가, 10분 기도하다 오더라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게 부끄러운 일인가?
그게 왜 부끄러워 할 일인가?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건 절실함이다.
절심함이 그런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기도에 있어 우리는 무엇보다 절실함을 회복해야 한다.

-주님이 두 번째 기도를 마치고 오셨다.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제자들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자고 있었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서였다.
그들은 안타깝게도, 주님께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제자들을 뒤로 하고, 주님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다.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기도의 내용은 첫 번째와 두 번째와 동일했다.
결론은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내 원대로 되기를 위해, 피땀 흘려 기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위해, 그토록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실 우리의 모든 기도의 결론은,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여야 한다.

-예수님은 결국 기도로 승리하셨다.
골고다 십자가에서 승리 이전에, 이미 겟세마네 기도에서 승리하셨다.

-주님은 땀으로 흠뻑 젖은 몸으로 제자들에게 오셨다.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다.
깨어 기도해야 할 때, 잠들어 있었던 제자들의 앞날을 아셨기 때문이다.

-승리는 결국 기도에 달렸다.
믿음의 승리자치고 기도를 게을리 한 사람은 없다.
올 한해 기도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