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2: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리니(창 17:1-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6-07 12:38
조회
712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2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리니(창 17:1-8)
2020. 6. 7.


프롤로그

-아브람은 지금 열세 살짜리 아들을 둔 노인네다.
↳그를 노인네라 함은 나이가 99세이기 때문이다.
↳아브람의 나이가 16장에서는 86세로 끝난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99세로 나온다.

-16장 끝 절과 17장 첫 절을 확인해보자.
창 16: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왜 굳이 아브람의 나이를 밝히고 있을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서, 13년이란 세월을 그냥 건너 뛴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관심을 끌만한 일이 생기지 않아서, 그냥 건너 뛴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13년이란 공백에 대해서, 일부러 침묵하고 있을까?

-본문은 시작부터 우리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 정확한 이유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아브람이 13년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우리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무려 13년 동안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았다.

-사실 13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마엘은 소년으로 자라났다.
↳아브람은 이스마엘이 자라나는 것을 보는 재미로 살았다.
↳본문에는 그런 내용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창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아브람의 솔직한 마음이다.
↳아브람은 이스마엘 때문을 보며, 행복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이스마엘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그 동안의 온갖 시름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제 사래가 임신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갈등도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약속은 받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브람은 물론이고 사래도 체념하고 있다.
↳그렇게 13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간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세월이 약이다.”
↳살아보니... 어느 정도 그런 거 같다.
↳그렇게 못 잊을 일도, 세월이 지나면 잊어지더라.

-그러나 그건 모든 대상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하나님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자신이 언제 개입해야 할지, 그 시점을 재고 계신다.

-드디어 그 때가 왔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99세 때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13년 만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건 동시에 아브람의 믿음 상태를 정확하게 꼬집은 말씀이기도 하다.

-아브람이 이스마엘로 만족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자기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도 99세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무슨 욕심을 부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아브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몸이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감사하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또 아들을 자기 혼자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아내도 이미 89세이다.
↳여자로서 해산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나이가 되었다.

-13년이란 시간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지낸 기간이었다.
↳그가 이스마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아브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믿음에 자극을 주신 것이다.
↳믿음의 잠을 자고 있는 아브람의 귀에 대고, 하나님이 크게 소리치신 것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전능한 하나님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아브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을 하실 수 있는 분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 말씀 안에는, 이런 메시지가 있다.
↳‘나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하나님이다.’
↳‘내 계획대로 모든 일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24년 전에 내가 너에게 아들을 약속한 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면서, 동시에 신실하신 분이다.
↳그분은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질 수 있으시며, 동시에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인생들에게 하신 말씀인 이 성경은, 오늘 우리도 믿을 수 있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반드시 살 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한 후, 아브람에게 요구하신 게 있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더러 완전하라고 하신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는 15장 6절 말씀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만 하면 된다.
↳믿음 외에 다른 게 필요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시는 게 달라졌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행위의 완전을 요구하신 것이다.

-사실 성경은 믿음이냐 행위냐, 어느 한 쪽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 다음에는... 구원받은 자로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의 믿음의 진정성을 행위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음으로써, 신앙이 뒷걸음질을 쳤던 것으로 보인다.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서가 아닌 이스마엘 앞에서 살았다.
↳그런 아브람을 하나님은 13년이나 두고 보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엄숙하되 기쁘게 살고, 진지하되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완전하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고 싶지만,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인간과 “완전”이란 말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말인지도 모른다.
↳혹 주위에서 완벽주의자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완벽하던가?
↳완벽주의자란 완벽한 사람이란 말이 아니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세상에 완벽주의자는 있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때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완벽을 요구할 때가 있다.
↳그건 애당초 무리이다.
↳완벽주의자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는, 마음에 상처가 많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고, 자기를 용납할 줄도 모른다.
↳즉 감사도 없고, 자족함도 없다.
↳더 문제는 타인을 용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타인의 작은 허물도 자잘한 실수도 용납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완전하라”는 말씀을, 작은 실수도 전혀 하지 않고 완벽하게 살라는 것으로 봐야 할까?
↳아브람더러 완전무결하게 살 것을 명령하셨을까?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하고, 누구보다 하나님이 그걸 잘 알고 계신다.

-산상수훈 5장 끝에도, 그와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이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뜻일까?
↳제자들에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모델로 삼아서 하나님을 닮아가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만족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라는 뜻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자기만족에 빠져 지낸 면이 있다.
↳이스마엘을 얻고,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브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늘그막 하게 아들을 낳아서, 그 아이의 재롱떠는 것을 보면서,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인가?
↳아니다. 보다 큰 뜻이 있다.
↳복이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으로 인하여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브람은 지금 늦둥이 아들에게 푹 빠진 채,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람을 향해 책망조의 말씀을 하신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자기만족에 빠져 지내는 아브람에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다.
↳아브람은 ‘내 나이에 이만하면 완벽해’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야 완전하지 않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붙들고 있는 손을 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다시 언약을 세우신다.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니, 도대체 몇 번이나 언약을 세우시는 건가?
↳누구를 위해서 또 언약을 세우실까?
↳하나님께는 한 번이면 된다.
↳언약을 몇 번씩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나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가 믿음 없다고, 의지가 약하다고 버리시지 않고, 또 다시 언약을 세우고 계신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다.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언약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나님이다.
-언약을 시작하시는 분이 누구란 말인가?
↳역시 하나님이다.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 누구란 말인가?
↳당연히 하나님이다.
↳언약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언약을 진행시키시고, 연약을 종결지어 주신다는 말이다.

-바울을 통해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시작하게 하신 그분이 또한 이루실 줄을 믿는다.

-그럼 아브람의 잘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데, 자기가 생산하여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건 엄연히 월권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기다림 교실에서 조퇴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훈련 캠프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람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 말씀은 그가 하란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듣고서 그는 꿈에 부풀어 일어섰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엎드렸다는 말은 배를 땅에 댔다는 말이다.
↳배를 땅에 댔다는 말은 항복했다는 말이다.
↳즉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하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아무리 자기 생각이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 도무지 납득이 안 돼도, 일단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엎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자세다.
↳아브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마엘이면 충분한데, 또 무슨 하나님의 언약이 필요할까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군소리 하지 않아야 한다.
↳말씀 앞에서, 자꾸 불평하고 자기 고집을 앞세우지 않아야 한다.

-대체로 그런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내 뜻대로 하옵소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내 소견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는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는가?
↳그 때 어떻게 했는가?
↳내 소견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고 했는가?
↳내 소견에 하나님의 뜻을 맞추려고 했는가?
↳기꺼이 내 소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붙잡기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배를 땅에 대고 항복을 선언한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신 것은, 더 이상 아브람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옛 사람인 아브람을 버리고, 아브라함으로 새롭게 출발하라는 뜻이다.
↳그것도 99세에 말이다.
↳아브라함, 참 무모해 보인다.
↳그런데 99세의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새롭게 출발시키는 하나님은, 더 무모해 보인다.
↳역시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새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를 믿되,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런데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힘들고...
↳대신에 돈을 바치겠다고 한다.
↳아니면 시간을 드리겠다고 한다.
↳그것도 아니면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한다.

-우리 잘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돈이 없어 우리를 부르셨을까?
↳하나님이 시간이 없어서 우리를 부르셨을까?
↳하나님이 재능이 부족해서 우리를 부르셨을까?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옛 것을 버리는 것이다.
↳옛 생활의 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성경에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사건이 많이 있는데, 이 사건도 명장면에 속한다.
↳마가복음 10장 46절 이하의 말씀인데....
↳이중 49-50절 말씀을 보겠다.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바디매오는 맹인이자 걸인이다.
↳그에게 겉옷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 자신에게 생명과 같은 겉옷을 내버렸다.
↳겉옷을 버리고 예수를 붙잡았던 것이다.

-99세에 이름을 새로 바꿨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노인네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름을 바꾸고 그래!”
↳수군거리고 비아냥거렸을 수도 있다.

-새 사람으로 살려면, 이런 말에 귀를 막아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의식하다보면 아무 것도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위해서 우보천리 하면 된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뀌었는데, 아브라함의 뜻이 무엇인가?
↳많은 무리의 아버지이다.
↳아브라함에게서 많은 민족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단일 민족의 조상이 아니라, 복수 민족의 조상이 될 거란 말이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자기들의 조상이라 한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들만의 조상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마엘 후손이 나왔지 않은가?
↳아브라함의 손자인 에서 즉 에돔 후손도 나왔지 않은가?

-25장에 보면, 후처인 그두라에게서 많은 아들이 태어난다.
↳그 중에 미디안도 나온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 같이 많아졌다.
↳한 가정의 아버지에서 ‘많은 무리의 아버지’로 바뀌게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아브라함은 심히 번성하게 될 것이다.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앞에서 소개했듯이, 그에게서 민족들이 나오고 왕들이 그에게서 나오게 된다.
↳하지만 현재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이스마엘 마저도 아니라고 하니, 아브람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문제는 아브라함에게서 나왔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이다.
↳언약의 후손, 즉 말씀으로 낳은 아들 이삭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번성, 그러면 무조건 좋은 줄 안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말씀에서 어긋난 번성은 복이 아니다.
↳말씀에서 벗어남으로 찾아온 번성도 복이 아니다.
↳이스마엘과 에돔과 미디안이, 훗날 얼마나 이스라엘의 가시노릇을 했는가?
↳그 때의 번성이 가시가 되어, 어느 날 내 옆구리를 찌를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이다.
↳말씀의 인도를 받아 사는 것이 축복이다.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그 다음절이 말해준다.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하고만 언약을 세우는가?
↳아니다. 물론 언약의 당사자는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언약의 효력은 그 대대 후손에게까지 미친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우리 후손이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내 당대는 물론이고, 내 후손이 복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예수 믿는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무엇일까?
↳자녀를 예수 잘 믿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무엇일까?
↳믿음의 유산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효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혹 우리가 잊고 있어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다.

-그 영원한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
↳7절 뒷부분...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내 하나님이 되시고, 내 자녀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는 거...
↳이것이 최고의 복인 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복도 주신다고 했다.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신령한 복과 땅의 복이, 동시에 있어야 살 수 있음을 아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신령한 복이라면, 떡으로 표현된 밥은 땅의 복이다.
↳주님은 인간의 삶에서, 결코 밥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게 하셨다.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이라고 했다.
↳어떻게 땅이 영원한 기업이 될 수 있는가?
↳이 말씀이 답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러므로 그 땅은 단순한 땅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인은 땅의 복을 통해, 영원한 기업을 꿈꾸는 사람이다.
↳영원한 기업에 관심을 갖자.
↳보이는 땅의 기업이냐, 영원한 하늘의 기업이냐,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