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노아) 강해 10(끝):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창 9:18-29)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2-16 09:38
조회
709



구약인물(노아) 강해 1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창 9:18-29)
2020. 2. 16.


프롤로그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온 후에, 처음에는 폐허에서 농토를 일구느라 죽을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동안 손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정말 열심히 일했다.
↳몇 년이 지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비교적 평안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은, 아들 딸 구별 않고 열심히 낳았다.

-그렇게 한 결과가 무엇인가?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진 것이다.

-말씀대로 된 것이다.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걸 보고 너무 성급하게, ‘야, 이제 드디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죄지은 사람들을 심판하셨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죄성은 잠깐 숨겨지기는 한다.
↳얼마나 자기 모습을 감출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노아는 홍수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땅을, 땀 흘려 개간하고 일구어, 그 땅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이마에 땀을 닦는 노아의 모습이, 무척 평온해 보인다.
↳요즘에야 농사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힘도 들고, 비료도 주고, 농약도 쳐야 한다.
↳그러나 이때의 농사는 처음에 심을 때까지만 고생이지, 그 후엔 요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포도 농사가 잘되었다.
↳알알이 맺혀있는 포도송이를 바라보고, 노아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흐뭇해했다.
↳‘하나님께서 적당한 햇빛과 비와 바람을 주셔서, 이렇게 소담스러운 열매가 맺혔구나!’ 하고 생각하니, 자신과 그 가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여간 고마웠다.
↳노아는 식구들과 포도를 수확하여, 그중에 좋은 것을 골라 포도주를 담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별다른 문제될 게 없다.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실제로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것이 문제인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당한 농사였다.

-그럼 그가 포도주를 담근 것이 문제인가?
↳아니다. 포도로 포도주를 담그는 것은 절차상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럼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것이 문제인가?
↳아니다.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그쪽 나라 사정상, 포도주는 음료수 대용이었고, 잔치에서 포도주는 필수적이었다.

-그렇다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것이 문제인가?
↳아니다. 포도주를 마시면 취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한다면, 되레 그게 문제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아가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것이 문제인가?
↳아니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벌거벗은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
↳그것도 장막 바깥이 아닌 장막 안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노아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아직도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잊어버린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잊어버린 것이 노아의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그럼 노아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노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그만은 의인으로 살았고, 당대에 완전한 자로 살았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홍수의 심판으로 모든 인류가 모두 멸망할 때에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노아를 그렇게만 보면 안 된다.
↳노아를 의인으로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께 동행하는 사람이 되게 한 뭐가 있었냐를 봐야 한다.
↳그게 바로 전 절에 나온다.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바로 노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노아가 의지가 강해서? 심지가 곧아서? 아니면 인간성이 좋아서? 그게 아니다.
↳그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럼 뒤집어 생각하면,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면, 죄의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노아가 무슨 일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포도주에 취해 추태를 범하고 있다.
↳벌고벗고 자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자녀가 집에 왔는데, 만취한 아버지가 벌고벗고 자고 있다...
↳그러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믿음이 좋은 분이었고,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분이었다면, 그 충격은 더 클 것이다.

-노아가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했는가?
↳한마디로 방심한 것이다.
↳마음을 턱 놓고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신뢰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하나님과 잡은 손이 느슨해진 것이다.
↳“포도주 몇 잔 정도야...”
↳그는 얼마든지 절제하면서 마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홍수 이후에 아무 문제가 없고, 농사도 잘되고, 자녀들도 잘 자라고, 모든 게 잘 돌아갔다.
↳거기다 하나님이 다시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셨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방심하게 된 것이다.

-안심하되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
↳방심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있는데 교만이다.
↳우쭐거리는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물론 자기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어디까지나 방심은 금물이다.
↳잘 될수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일어섰다고 했을 그때 조심해야 한다.
↳성공하였을 그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질 수 있다.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베드로가 괜히 이런 편지를 보냈겠는가?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신앙생활에는 휴식이나 방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가끔 보면, 교인들이 스스로 방학을 선포한다.
↳일방적으로 ‘나 교회 나가는 것’ 좀 쉬겠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방심하면 언제라도 노아 꼴 날 수 있다.
↳노아처럼 망신당할 것 각오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을 전쟁상황으로 보아야,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된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을 계속하여 지킬 수 있다.

-가만 보면 익숙한 것이 언제나 문제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긴장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방심한다.

-찬양을 할 때, 이 찬양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찬양하는데 정신을 집중하지 않는다.
↳대개 아는 노래를 성의 없이 부를 때가 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 본문으로 처음 설교를 듣는 것처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말씀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그 말씀에 대해 조금 아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방심하면 넘어집니다.”

-아버지의 한 순간의 실수가, 아들의 인생, 더 나아가 자손의 인생에까지,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여기서 “보고”와 “알리매” 라는 동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다”는 ‘지나가다가 슬쩍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흥미 있게 계속해서 주목했다’는 의미이다.
↳즉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는 말이다.
↳함은 아버지의 그 광경을 보면서 계속 즐겼다는 말이다.
↳함의 태도는 이웃의 실수를 즐기는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

-“알리매”는 ‘고발한다’는 뜻이다.
↳함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염려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함에게서 이웃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재미있는 얘기 거리가 하나 생긴 것으로 생각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떠벌리고 다니는 모습이 그려진다.
↳또 그렇지 않아도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는데, 확실한 꼬투리 하나 잡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 거 같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에 대하여는 관대한 편이다.
↳자기 자신을 너무 쉽게 용서하면서 산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실수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투철한 고발정신을 가지고 비판하는 태도를 취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그런 일이 다시 있어서도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한 가지 실수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 사람을 전체적으로 평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한 가지 실수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위치에 앉는다는 말이다.
↳“그거 한 가지만 보면 다 알 수 있다”는 말은, 쓰지 않는 게 좋다.

그런 태도는 본문에 나오는 함의 태도이다.
↳그런 삶의 자세는 복 받지 못할 태도이다.

함의 태도와는 사뭇 대조되는 한 사람을 소개하겠다.
삼하 1: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괜히 하나님이 다윗을 마음에 들어하신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도망생활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며, 쾌재를 부를 법도 하건마는, 애가를 부른다.

-우리가 다윗이라면 어떠했을 것 같은가?
↳그토록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상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처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셈과 야벳은 어떻게 했는가?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그들 두 사람은 함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어깨에 메고”와 “덮었으며”란 동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깨에 메고”는 봉사하는 종의 태도를 표현하는 말이다.
↳아버지가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아들들은 아버지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덮었으며”는 가리워주는 것을 말한다.
↳이 아들들은 아버지의 잘못을 덮어준다.
↳아버지가 실수했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인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4장 8절은 이렇게 안내하고 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성경은 이런 비판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주님은 분명하고도 쉽게 말씀하신다.
↳거품을 물고 비판을 하는데, 그 비판이 고스란히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말 아닌가?
↳주님의 대부분의 말씀은 관계의 측면에서 하셨다.
↳네가 용서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은 대표적이다.

-노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성경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아 결정적으로 알 수 없지만 노아가 지금까지 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만은 분명하다.
↳노아는 누구보다도 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이다.
↳심판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서 살아난 사람이다.
↳이런 그가 오랜 세월이 흐르고, 모든 환경이 평안했을 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된다.
↳아무리 성자처럼 살고 존경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역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바울이 그냥 해본 말이 아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윤리-도덕적으로 훌륭해 보이고, 인격적으로 탁월해 보이고, 신앙적으로 든든해 보여도, 사람이라면 언제나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 분야에서 존경받던 학자도,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던 목회자도, 어느 순간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주변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존경하던 사람이 무너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다윗 같은 사람을 보라.
↳그렇게 훌륭하고, 하나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다윗도,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 방심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고난을 겪지 않았는가?

-이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야속하지만 현실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죄성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노아의 노아 됨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노아도 실수할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감싸주었고 보호해 주셔서,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지, 노아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우리의 허물을 하나님께서 들추어내신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가 하나님 앞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 설 수 있겠는가?
↳고개를 들고 밖에 나다닐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율법의 시각보다는 은혜의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야벳과 셈은 함을 야단치지 않았다.
↳셈이 동생인 함에게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전혀 말이 없다.
↳그에 반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한다.
↳크게 앞서 있지도 않으면서, 자꾸 남을 지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야벳과 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으니까, 아버지의 도덕적 타락이 함에게는 굉장히 큰 문제였지만, 셈과 야벳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게 문제가 없는 사람은 만사가 문제가 되지 않고, 내게 문제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문제는, 그저 지나가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건드리면 문제가 되는 경우이다.

-우리는 용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용납해야 하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완전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부모도 연약한 인간인 이상 완전할 수 없다.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고, 살아계신 분도 계시겠지만, 셈과 야벳처럼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주기 바란다.

-또한 부모는 자식을 용납해야 한다.
↳친자식이든 양자식이든 며느리든 사위든 용납해야 한다.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한다고 나아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비교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치고 행복한 사람은, 단 1%도 없다.

-또한 남편을 용납하기 바란다.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너무 구박하지 말고 제대로 신앙생활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하고, 그를 위해 더 기도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허물을 돌리기 바란다.

-또한 아내를 용납하기 바란다.
↳몸이 약해 약봉지를 달고 산다고 해도, 내조하는 것이 크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부족함을 덮어주고 용납하기 바란다.

-이어지는 말씀이 난해하다.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노아가 술이 깨어 사건의 이야기를 듣고, 함이 괘씸하게 생각되어, 그를 저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아도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우리는 노아의 예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시기적으로 예언의 말씀을 하필 그때 해서, 함에게 보복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노아의 실수라고 보아야 한다.

-노아 자신에게도 불행이고, 함의 아들들에게도 불행이다.
↳노아는 이중 불행을 겪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설교자와 회중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둘의 관계가 좋을 때는, 설교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관계가 틀어져 있을 때는, 설교에 시험들 수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설교자와 설교자의 가족도 용납해 주기 바란다.

-노아의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가?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가나안은 저주의 예언을 받고 셈과 야벳은 축복의 예언을 받는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한 것은, 셈은 존귀한 자가 된다는 말이다.
↳그 후손도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는 말은 야벳의 지경을 넓히신다는 말이다.
↳아마도 가장 넓은 지역으로 퍼진 사람들이 야벳의 후손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복 받은 것은 셈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다.

-그렇다. 샘의 장막에 거하는 것 자체가 복이다.

-28, 29절 말씀으로 말씀을 마무리 하겠다.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노아의 삼백 오십년은 크게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자식들 앞에서도 한번 추락한 권위를 되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노아는 인생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훨씬 못했다.

-우리의 지금까지 삶은, 인생의 전반부였다.
↳이제 우리에게는 인생의 후반부가 남아 있다.
↳인생의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더 아름답기를 바란다.
↳인생의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자손들 앞에서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인생의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공동체 내에서 더 존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