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노아) 강해 4:노아는 방주로 들어갔고(창 07:0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2-22 15:04
조회
874



구약인물(노아) 강해 4
노아는 방주로 들어갔고(창 07:01-12)
2019. 12. 22.


프롤로그

-노아는 어느 날 하나님께로부터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을 듣고는, 매일 매일 죽을 고생을 해가며 방주를 만드는데, 자기의 인생을 걸었다.
↳노아는 밥숟가락만 놓으면, 방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연장을 주섬주섬 챙겨 가지고, 공사 현장으로 출근했다.
↳그러기를 수십 년째이다.
↳노아의 아내는 매일매일 점심을 해 날났을 것이다.
↳노아도 노아지만, 그의 아내 역시 대단한 거 같다.

-세 아들은 이런 부모들을 보면서 자랐고, 커서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도왔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이 이상한 가족을 향해 처음엔 말려보았다.
↳정신 차리라고 충고도 해보았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하니 손가락질도 해보았다.
↳그래도 안 되니 이제는 포기하고 말았다.
↳아니 1-2년도 아니고, 몇 십 년을 넘기자, 정신 나간 영감쟁이로, 정신 나간 가족으로, 아예 동네에서 제쳐놓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도 그들의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누가 들어도 상식적이고, 누가 생각해도 이성적이고, 누가 봐도 합리적인 일은, 좀 힘들어도 끝까지 할 수 있다.
↳혹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다.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일은, 전혀 상식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안 되는 그런 일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이성적이지 않을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머리로 상식으로 경험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믿고 행하는 것이다.
↳믿음을 갖는 것도 힘들지만, 믿음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더욱 힘들다.

-노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6장에서 노아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다시 확인하자.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인, 당대에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다.
↳성경 어디에도 이만한 평가를 받은 사람이 얼마 없다.

-노아는 의인의 대표 주자 3인에 해당한다.
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창세기에서만 높게 평가 받는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만 후하게 평가 받는 것이 아니다.

-신약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고 있다.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
↳대단한 찬사이다.

-본문 1절에서는 어떻게 평가를 받는가?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이게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다.
↳6장과 7장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자그마치 120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노아는 120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변함없는 신앙,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게 믿음이 좋던 사람도, 노년에 이르러 믿음이 약해지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노아는 믿음의 꾸준함을 유지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도 노아처럼 신실한 신앙을 갖기 바란다.
↳쾌청한 날이나 화창한 날뿐 아니라, 폭풍우나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은 신앙을 갖기 바란다.
↳형통할 때뿐 아니라 위기가 왔을 때도, 건강할 때뿐 아니라 아픔이 있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변함없기를 바란다.

-우리가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그 때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방주를 다 만든 노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창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식구들을 데리고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은 전에 이미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다.
↳방주 안에 들어가면 생명을 보존하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120년이 지나도 유효했다.
↳120년만 유효하겠는가?
↳몇 천 년, 몇 만 년을 넘어... 아니 영원히 유효하다.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믿을 수 있다.

-사람의 약속이라면 믿을 수 없다.
↳사람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라고 해도, 믿음이 안 갈 때가 있다.
↳몇 번 속아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당해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있다.
↳그분의 언약은 불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이해되지 않아도 믿기를 바란다.
↳설교자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다 싶으면, 그대로 믿고 따르기 바란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서도 창조된 동물을 남겨둘 계획을 세우셨다.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동물의 모든 종을 보존하기 하기 위하여 암수 두 마리씩 남겨 두게 하셨다.
↳거기다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 마리씩 보전하게 하셨다.
↳여기서 어떤 동물이 정결하고 어떤 동물이 부정한가는 명확하지 않다.
↳정결과 불결을 나누는 것은 레위기 11장에 가서야 나오기 때문이다.
↳레위기의 규정을 보면, 정결한 동물은 먹을 수 있고 부정한 동물은 먹을 수 없다.

-어떤 동물이 정결하고 어떤 동물이 부정한 가를 따지는 것은, 성경의 주안점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도 왜 똑같은 동물인데, 정결한 동물은 더 많이 태우라고 했는지 추정해 볼 수 있다.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본문의 뜻을 살려 추정한 것이다.

-첫째는 예배를 위해서일 것으로 본다.
↳당시에 예배는 제사로 표현되었다.
↳당시는 희생제사를 드릴 때니까, 제물로 동물이 필요했을 것 아닌가?
↳아무 동물이나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결국 정결한 동물은 제사용이었을 것으로 본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인데, 이것은 제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사실 방주 안에서 죄지을 일이 뭐 있겠는가?
↳홍수 중에 방주 안에서 제사를 드릴 수도 없다.
↳그럼 홍수 끝나고 노아가 감사 제사를 드릴 때의 제물용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식용을 위하였을 것이다.
창 9: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성경에서 공식적으로 육식이 허락된 것은 9장에서다.
↳그러나 어떤 분은 육식이 방주 안에서부터였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능성이 낮지만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홍수 D-day –7일이다.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에게 마지막 7일이 있다.
↳이 7일이 지나면, 온 세계는 홍수로 덮일 것이다.
↳노아는 이때가 가장 마음 고생이 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세상이 물바다가 된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을 것이고, 7일이 지나면 익사할 줄도 모르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방탕한 그들을 보면 불쌍하고, 가르쳐줘도 믿어주지 않으니 애간장이 탔을 것이다.
↳그들을 두고, 자기와 자신의 가족만 방주로 들어가는 것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감정에 붙들리지 않았다.
↳‘나 혼자 살아서 뭐하나!’
↳‘이 세상에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남겨져서 뭐하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았다.

-노아는 냉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
↳결국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우리가 발버둥쳐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 있다.
↳그냥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자기 인생을 사사기로 만들어 괜한 고생할 필요가 없다.

-동물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기간은 정확히 일주일이다.
↳그 많은 동물들이 어떻게 7일 만에 방주로 다 들어갈 수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짐승들을 잡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돼지도 잡아들이려고 하면 ‘생 쇼’를 해야 한다.
↳하물며 야생인 코끼리나 코뿔소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사나운 호랑이나 사자를 어떻게 잡겠으며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를 무슨 재주로 잡겠으며 악어나 비단뱀 같은 것을 어떻게 잡겠는가?

-어떻게 잡을 수 있다고 쳐도, 또 암수를 구별해서 잡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암수가 확연히 구별되는 동물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도 구별이 잘 안 되는 동물도 있지 않은가?
↳또 두 쌍만 필요한데, 세 쌍이 오거나, 일곱 쌍이 필요한데, 열 쌍이 올 땐 나머지는 어떻게 돌려보낼 건가?
↳또 방주에 서로 들어가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서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뒷걸음질을 칠 때, 어떻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론은 간단하다.
↳노아가 동물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보내려고 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진두지휘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자, 그 많은 동물들이 방주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마치 자진해서 입대하는 청년들처럼, 두 마리씩 제 발로 찾아왔다.
↳노아가 동물들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노아가 한 일은 그저 방주 안으로 안내하는 것뿐이었다.
↳자기들이 알아서 방주로 찾아왔고, 자기들이 알아서 방주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코끼리나 하마 같이 중량감이 있는 동물은 알아서 1층에 탔을 것이고, 새 종류는 3층에 탔을 것이다.
↳체중에 따라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동물들이 서로 싸우거나 물어 죽이지 않았다.
↳다들 온순한 가축같이 되었다.
↳영락 없는 한 식구가 되었다.

-방주의 이런 평온한 모습은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그런데 풀리지 않는 숙제가 또 있다.
↳동물의 먹이 주는 문제이다.
↳먹이를 쌓아놓은 것을, 자기들이 알아서 먹었는지, 아니면 노아 가족이 나눠주었는지 모르겠다.
↳동물들이 세 끼를 다 먹지 않겠지만, 만약 노아 가족이 먹이를 나눠주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기온이 낮고 햇빛도 없고 산소가 부족하면 동물들은 동면을 취하기 때문에, 방주 안의 동물들은 1년 동안 동면을 했을 것으로 본다.
↳일리 있는 해석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방주 안의 동물들을 잘 다스리셨다.
↳답답한 방주 안에서도 동물들이 문제없이 지내도록 하셨다.
↳이건 창조주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하시면 이처럼 쉽다.

-우리의 지혜는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분께 맡겨야 한다.
시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주님 손에 맡겨드리리 나의 삶 주님께
주님 손이 나의 삶 붙드네
나 주의 것 영원히
내가 믿는 분 예수, 내가 속한 분 예수
삶의 이유 되시네 내 노래 되시네 전심으로

-7일 동안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는데, 비올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방주에 들어가서 다 자리를 잡았는데도, 온다던 비가 오지 않는다.
↳‘어, 이것 뭐가 잘 못 된 거 아닌가?’
↳‘뭐가 잘못 돼도 한 참 잘못된 것 아닐까?’
↳분명히 말씀에 순종했는데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고민된다.
↳그 때가 우리의 믿음을 보일 때다.

-비 한 방울도 오지 않더니 정확히 7일 후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비가 처음부터 퍼붓듯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웬 난데없는 비구름이 몰려 왔을 것이고, 한두 방울씩 떨어졌을 것이다.
↳차츰 빗줄기는 굵어졌을 것이고, 이윽고 빗줄기는 멈출 줄 모르고 세차게 뿌려졌다.

-이때 밖에 있던 사람들은 “아뿔싸” 했을 것이다.
↳뭐가 이상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차츰 ‘진짜 홍수?’ 하는 생각이, 그들을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홍수로 죽는 것 아닐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살 궁리를 짜내고 있었을 것이다.
↳비가 오는데도 ‘웬 난데없는 비냐’고 하며, 한잔 걸치고 비척거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까?
↳나와 가족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은혜가 만극하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까?
↳아니면 120년이란 기간 동안, 한 영혼도 건지지 못한 죄책감으로 용서의 기도를 드렸을까?
↳물론 정확히는 모른다.
↳이 두 가지 기도가 겹쳤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구원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라도 구원받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나만 구원받은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예수 믿다가 천국 가겠지만, 천국 가서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보다, 내 남편을 구원시키지 못한 것에, 내 자식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의 기도를 드려야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아니면 누구도 가족을 구원할 수 없다.
↳가족인 내가 못하는 것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의 고삐를 죄고, 기도 줄을 잡아당기기 바란다.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2월 17일에, 드디어 홍수가 시작되었다.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노아의 홍수 사건은,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날짜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은, 노아의 방주 사건이 신화나 전설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아무리 비가 온들, 지구가 물로 덮일 수 있겠는가?
↳비는 구름을 통해서 오는데, 40일 주야로 왔다고 하더라도, 지구를 덮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구가 물에 잠길 만큼 물이 쏟아졌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다.
↳우리는 노아 홍수 사건 이래, 이와 같은 일을 한 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성경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1절 중간부분-12절을 다시 한 번 보자.
11b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두 가지 사건이 생겼다.
↳첫째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
↳둘째는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땅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것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지진이 난 것이거나 화산이 터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터졌기 때문에, 지구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생겼다.
↳산이 꺼지기도 하고, 바다에서 육지가 솟아나기도 했다.
↳그래서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도 무너졌다.
↳그래서 바닷물이 땅으로 침범해 들어온 것이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물만 빠지면 홍수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바닷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말이다.

-바닷물이 역류한 흔적이, 전 세계 곳곳에 남아 있이다.
↳노희천 박사의 [노아의 방주는 역사적 사실인가]란 책에 의하면, 해발 1,700미터의 터키의 반호가 바닷물이다.
↳해발 1,470미터에 있는 이란의 우르미아호수는, 물의 성분 중 염분이 23%나 된다.
↳몽고분지의 사막에도 염해가 있다.
↳해발 3,800미터나 되는 안데스 산맥에 넓이가 4,800제곱미터가 되는 티티카카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의 물도 짜다.

-해발이란 말은 바닷물의 표면을 가리키는 것이다.
↳산의 높이를 잴 때의 기준이 바로 이 해발이다.
↳해발 1,000미터 심지어 3,000미터가 넘는 호수가 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노아 홍수 때, 완전히 지구가 뒤집어진 것이다.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으로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둘째 모든 지하수들이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를, 공동번역성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바로 그 날 땅 밑에 있는 큰 물줄기가 모두 터지고”
↳지하에 물이 얼마나 많은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양일 것이다.
↳비가 오면, 냇가로 흘러 강물이 되고,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그렇다고 모든 빗물이 바다로 흘러가겠는가?
↳그러면 아마 바닷물은 넘치고 말 것이다.
↳매우 많은 양의 물이 땅 속으로 들어간다.
↳지하로 스며드는 것이다.

-지하에 물길이 있다는 거 아실 것이다.
↳이것을 수맥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땅 속에 있는 강이 흐르는 것이다.
↳이 물이 노아 홍수 때, 지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분수처럼 솟아 오른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비가 그치지 않고 올 때, 뭐라고 말하는가?
↳“하늘이 빵구가 났나 보다” 한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를, 공동번역성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하늘은 구멍이 뚫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속어와, 정확히 일치한다.

-천지 창조 기사로 돌아가보자.
창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궁창을 중심으로, 위의 물이 있고 아래의 물이 있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는 것은, 바로 그 물층으로 형성되어 있던 궁창 위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비가 왔다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물을 쏟아 부은 것이라고 표현해야 적절할 것이다.

-후에 홍수 심판을 예상하셨기 때문이었을까?
↳하나님이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는, 다른 날은 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있는데, 둘째 날은 없다.
↳둘째 날, 물을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기는 했지만, 이 물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을 심판하는데 쏟아 부을 걸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맘 놓고 맘 편히 복 주실 수 있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