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12:나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계 21:03-0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1-24 12:37
조회
26
사도신경 강해 12
나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계 21:03-04)
2021. 1. 24.


프롤로그

-사도신경 강해 마지막 시간이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다.
↳사도신경은 한국교회에서 예배 때 신앙고백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사도신경은 최고의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하나님께 하는 신앙고백은 아니라고, 첫 시간에 말씀 드렸었다.
↳그럼 사도신경을 예배 시간에 사용하면 안 되냐? 그건 아니다.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할 수는 있다.

-고대 신조나 신앙고백서들을 보면, 고백자가 우리이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나는 믿습니다”는 형식으로, 고백자가 나다.
↳그건 사도신경의 출발이, 초대교회 세례문답에서 출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례에서 신앙고백은, 우리가 아닌 나여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공동체의 신앙고백도 중요하지만, 나의 신앙고백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사도신경은 교회에서 공동체의 고백으로만 사용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교회 안에서, 세례나 그 외 교육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교회 밖에서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나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할 때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나는 성령을 믿는다.”
↳“나는 이런 교회, 죄사함,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고백 부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가 신자다” “나는 믿는 사람이다” 하면, ‘나는 예수 믿는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을 아예 직접적으로 ‘예수인’, ‘예수쟁이’, ‘그리스도인’, ‘크리스찬’으로 지칭한다.
↳누가 “나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 요즘 하도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까, “당신은 어떤 예수를 믿느냐”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예수를 사도신경대로 믿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건, 대답은 정답을 말하는데, 그들의 삶은 아닐 수 있어서다.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사실은 말보다 행실이 중요하다.
↳실제론 주장보다 행실의 결말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열심히 믿는 것과 바르게 믿는 것은 다르다.
↳잘 믿는다는 것은 바르게 믿는다는 것이다.
↳바른 내용을 바른 방식으로 믿어야 잘 믿는 것이다.
↳우리가 12번에 걸쳐 사도신경을 공부한 것은 바른 내용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이천년이 넘도록 고백해 온, 기독교의 근간이요 뿌리이다.

-사도신경 강해를 준비하여, 주일예배 때 교우들과 나누는 보람이 있었다.
↳셀모임을 갖지 못해서 함께 나누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나름 유익했던 시간들이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몸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가장 큰일이 있다. 죽음이다.
↳죽음보다 더 큰일은 없다.
↳우리에게 앞으로 닥칠 가장 확실한 일이 있다. 죽음이다.
↳죽음보다 확실한 일은 없다.

-우리에게서 가장 크고 확실한 게 죽음인데,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혹시 죽음이 나만은 피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늘의 전산망은 오류가 없다.
↳죽음의 사자는 헷갈리는 법이 없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보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죽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죽음에 대해 알려면, 생명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생명이 무엇인가?
↳생명이란 한자로 날 생, 목숨 명을 쓴다.
↳날 생(生) 자는 ‘태어나다’ ‘살다’는 뜻을 갖고 있고, 목숨 명(命) 자는 ‘목숨’, ‘명령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생명이란 살라고 하는 명령인 셈이다.
↳생명 있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살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호흡이 있는 우리는 “너 잘 살아야 돼. 알았지?”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에는, 스스로 죽으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생명이 있는 동안, 잘 살아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럼 죽음이 무엇인가?
↳죽음이란 그만 살라는 명령이다.
↳하나님께로부터 그만 살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너 이제 그만 살고 돌아오렴” 하는, 하나님의 소환 명령이 죽음이다.

-우리는 이 땅에 파송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땅에 파송하셨다.
↳가서 잘 살고 있으라고 파송하셨다.
↳내가 부를 때까지 잘 살고 있으라고 파송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날이, 바로 우리의 죽음일이다.
↳생일도 죽음일도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다.
↳내가 원하는 날 태어날 수 없듯이, 내가 원하는 날 죽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죽음에 대해서는, 내가 원하는 날을 기도할 수는 있다.
↳생사여탈권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하지만, 우리가 아뢰어 볼 수는 있다.
↳나는 주일예배 드리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죽으면 좋겠다.
↳금요일에 죽어 4일장 치르면 여러 사람 고생시킨다.
↳날씨도 좋을 때 죽으면 좋겠다.
↳날씨가 궂으면, 장례 치르는데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죽음의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음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다.
↳죽을 때의 모습이 결정적이다.
↳그 모습이 가족과 지인들의 뇌리에, 오래 남아 있어서다.
↳예수 믿고 죽으면 무조건 호상이긴 한데, 죽을 당시의 모습도 중요하다.
↳이왕이면 폼 나게 죽으면 좋겠다.
↳박해 시기가 아니라면, 깨끗한 모습으로 죽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세상에 파송했던 우리를 왜 다시 부르실까?
↳그건 결산하기 위해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에 시간, 재물, 재능이 있다.
↳그걸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 결산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맡긴 것에 대한 결산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만일 결산이 없다면, 자기가 주인인양 제멋대로 살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마지막에 결산이 있을 것을, 한두 군데서 말씀하는 게 아니다.
↳인생 끝에 결산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뜻이다.
↳결산을 마치고 나면 모든 게 끝이다.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기부금영수증을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기부금영수증 서류를 발급하기 위해서, 개인별 헌금현황을 뽑는다.
↳그러면 그가 혹은 그 부부가 한 해 동안 헌금한 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가 십일조를 얼마나 했는지, 감사헌금과 선교헌금, 건축헌금을 얼마나 했는지, 헌금 항목별로 산출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자료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이게 결산이다.

-우리가 훗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결산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산대로 결산이 된다.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산대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산대로, 거기에서 일(1)도 더하지 않고 빼지 않고 결산하게 된다.

-나는 개인별 헌금현황표를 볼 때,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한 해 동안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헌금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한편으론 내가 우리교회에서 헌금 순위가 너무 앞에 있어서,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 순위가 지금보다 뒤쪽으로 많이 밀리면 좋겠다.
↳우리 교우들이 ‘내가 우리교회에서 헌금을 제일 많이 하겠다.’ ‘내가 우리교회에서 헌금 순위 세 손가락 안에 들고 싶다.’ 뭐 이런 선한 욕심을 좀 부리면 좋겠다.
↳기부금 영수증을 신청하면서, “헌금한 거 다해주실 필요 없어요. 한 이 정도만 해주세요.” 하는 수준이 되면 좋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파송했다가 왜 다시 부르실까?
↳몸의 부활을 위해서다.
↳육신의 몸을 가지고는 영생할 수 없어서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성경은 육의 몸과 영의 몸을 말하고 있다.
↳육의 몸으로는 영원히 살 수 없으니, 영의 몸으로 변화가 돼야 한다.
↳그게 몸의 부활이다.

-사람들은 이 말씀에 겁을 낸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심판이란 단어 때문이다.
↳하지만 심판자가 불의한 재판장이 아닌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예수 믿으면 구원이다.
↳그러니 특별히 겁낼 이유는 없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도 있지만, 몸의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란 문을 통과해야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육의 몸을 입고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는 결코 영의 몸을 입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영의 몸을 입어보이신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이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보이신 영의 몸은, 신령한 몸, 이전과는 다른 몸이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단 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면 그렇다.
↳무덤 밖에 있던 마리아도, 처음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이전의 몸과 전혀 상관없는 몸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도마에게 보이신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 자국이 있었고, 손발에는 못 자국이 선명했다.
↳영의 몸 신령한 몸은, 살도 있고 뼈도 있는 존재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놀라고 무서워했다.
↳자기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해서였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시공을 초월하지만, 살과 뼈가 있는 몸이다.
↳그러니까 신비한 몸이요 신령한 몸인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사라진다.
↳이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20년 전만 해도 화장은 꺼려했다.
↳혹시 부활하지 못할까봐서 그랬는지, 두 번 죽는 거 같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강했다.
↳사실 매장되면 썩어 흙이 되어 사라지고, 화장되면 타서 재가 되어 사라진다.
↳육체가 사라지기는 매 한 가지고, 우리 몸의 부활에는 아무 장애가 없다.
↳그 일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가 하시기 때문이다.
↳애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신 그분이, 흙으로는 몸의 부활이 가능하고 재로는 불가능하실까봐 염려가 되는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그런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라.
↳그런 하나님이라면 하나님 자격 없으시다.

-사도신경에는 부활이 두 번 나온다.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앞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고, 뒤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분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세 가지 죽음을 말하는 데, 죽음의 공통개념은 분리이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다.
↳육신의 죽음은 영혼과 육이 분리되는 것이다.
↳영원한 죽음은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끝맺을 때, 우리 영과 육이 분리된다.
↳육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로 떠나간다.
↳하늘로 떠나간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
↳좀 애매하여, 연옥에 보내고 그런 거 없다.
↳아니면 너무 억울하게 죽어, 바로 하늘에 오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거 그런 거 없다.

-그리스도인이 왜 제사 드리면 안 되는가?
↳효도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제사상을 차려놔도, 부모님은 오시지 않는다.
↳죽은 자의 영혼은, 이미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 있기 때문이다.
↳뭐가 찾아왔다면, 그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아닌 타락한 천사들인 귀신이 온 것이다.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우리 영혼에 해코지를 하는 귀신에게, 제사상을 차려 바치는 게 말이 되는가?

-죽은 자의 영혼에게는 제3의 지대가 있을 수 없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함께 십자가에 달려있던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부탁을 하자, 그에 응답하신 말씀이다.
↳말씀을 눈 크게 뜨고 보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이다 오늘.
눅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인데, 오늘이란 단어는 없지만 거지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 것으로 나온다.
↳아무렴 천사가 나사로의 영혼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품에 가는데 몇 년씩이나 걸렸겠는가?
↳시공을 초월하는 천사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

-고인에게 명복을 비는 풍습이 있다.
↳사실은 죽는 순간 영혼은 정해진 곳으로 이미 가 있다.
↳명복 빌어도 소용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고인이 아닌 유족들에게 위로를 빈다.

-사람들은 저승을 막연하게 인정한다.
↳고인에게 명복을 비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영원을 갈망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선지 많은 사람들이 영생하고자 시도를 했다.
↳그중에 도교라는 종교에서는 신비한 약을 먹음으로서 신선이 되어 천년만년 산다고 했다.
↳환약으로 천년만년 살 수도 없거니와,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생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는 의미 외에, 이 땅에서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른 삶이기도 하다.
↳이 땅에서의 삶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 땅의 삶은 불완전하다.
↳그렇게 고생 고생하여 코로나 백신 개발하고 치료제 개발해도, 어느 정도 통제가 될 뿐이지 박멸이 안 된다.
↳틀림없이 또 다른 병이 나온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항상 병이 앞서가고, 백신이나 치료제는 뒤쫓아간다.

-이 세상의 삶과 영원한 삶의 차이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이 세상에서는 눈물, 사망, 애통, 곡, 아픔이 없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저주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천국에는 그게 없다는 거 아닌가?
↳이렇게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삶이 펼쳐지니, 기대가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죽어서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죽어서 몸의 부활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신자든 불신자든 죽어서 몸으로 부활한다.
요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같은 몸의 부활이지만, 생명의 부활을 하는 사람과, 심판의 부활을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생명의 부활을 하는 사람을 천국행으로, 심판의 부활을 하는 사람을 지옥행으로 보면 된다.

-몸의 부활은 죽음이 없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 때 언급했었지만, 다시 죽는 건 부활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부활자는,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몸의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진다.
↳몸의 부활의 목적은, 요한복음 5:29 말씀처럼 영생과 영벌을 받기 위해서다.
↳시한부 생이 아니라 영생이고, 일시적인 벌이 아니라 영벌이다.

-이 세상에서의 벌은 시한이 정해져 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종신형이 있는데, 사실 종신형도 시한이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하는 게 죽을 때까지다.
↳죽으면 벌이 다 끝난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죽으면, 형집행정지가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형벌 중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있다.
↳이미 사망한 사람이 사망 후에 큰 죄가 드러났을 때 처하는 극형인데,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그 관을 부수고 시신의 목을 베는 것을 말한다.
↳그럼 정치적으로 두 번 죽이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에게 고통이 있을 리 없다.
↳죽은 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죽으면 영벌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몸의 부활 후 벌을 받음으로 영벌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선 지옥을 불못으로 표현하곤 한다.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육의 몸은 불못에 던져지는 순간,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죽게 된다.
↳그런데 부활의 몸은 죽지 않는다.
↳산채로 그곳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된다는 면에서 영벌인 것이다.

-영생은 부활의 몸으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영생의 시점을 앞당겨놨다.

-얼마나 앞당겨놨는가를, 성경은 이렇게 알려준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영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영생을 완전히 누리는 것은 천국에서다.
↳하지만 이 땅에서도 우리는 영생을 부분적으로 누릴 수 있다.

-이호운 목사님이 고린도후서 5:17을 묵상하던 중에, 이런 노랫말을 썼다.
↳찬송가 436장 1절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 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 같이 빛난다
영생을 누리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1절에 나오는 “새 생명”이 우리가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 누리는 영생이다.
↳후렴대로 우리는 영생을 누리며 주 안에 살면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영생을 누린다는 말과 천국을 누린다는 말은 같은 의미이다.
↳어떤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인가?
↳가정에서 천국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그가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자기를 피한다.
↳그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좋은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냉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럼 자기도 분위기가 느껴질 거 아닌가?
↳“뭐 집안 분위가 이래” 하면서, 자기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가 기도를 하루에 몇 시간씩 해도, 그는 가정에서 천국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집에 들어오면 가족들이 반갑게 환영해준다.
↳“이제 와?”, “에구, 고생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가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웃으며 반겨준다.
↳그는 가정에서 천국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예수 잘 믿는 사람이다.

-영생을 누리는 연습을 이 땅에서 많이 하자.
↳특히 가정에서...
↳우선 가정천국부터 만드는 한 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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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강해를 마무리 하겠다.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이걸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를 용서받는 것과
↳자기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교회에 잘 다녀야 한다.
↳교회를 잘 다니려면 성도와 교제해야 한다.

-누가 교회를 인도해 주는가?
나는 성령을 믿으며
↳성령님이 교회로 인도해 주신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한꿈교회에 다니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교회에 다닌다고 영생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로 자기의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에서,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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