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11:나는 죄를 용서받는 것을 믿습니다(마 18:35)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1-17 12:38
조회
33


사도신경 강해 11
나는 죄를 용서받는 것을 믿습니다(마 18:35)
2021. 1. 17.


프롤로그

1.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3.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오스트로 왕국의 데오도링이란 유명한 왕이 있었다.
↳그는 삼십 여 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다.
↳여러 가지로 좋은 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혈기를 못 이겨서 무죄한 신하 두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다.
↳한 사람은 보에디스오스이고, 또 한 사람은 디메 커스라고 하는 사람인데 비참하게 목을 메달아 죽였다.
↳그런 지 얼마 후에, 왕은 자기가 실수한 것을 알고 항상 후회하였다.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늘 후회하였다.

-어느 날 저녁, 궁중 요리인이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것은 생선으로 만든 좋은 요리였다.
↳왕이 생선의 빨간 눈알을 보는데, 거기에서 자기가 죽인 신하의 눈알이 보였다.
↳생선의 입 안의 날카로운 이빨을 볼 때, 마치 자기가 죽인 그 두 사람이 자기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어 나오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 데오도링왕은 너무나 무서워서, "나는 오늘 몸이 불편해서 저녁을 먹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자기 침상에 돌아가서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런데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는 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삼일 후에 죽고 말았다.

-사람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죄를 짓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거 같지만, 양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어떻게 저런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사람도 있다.
↳아예 얼굴은 사람인데 실제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도 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양심에 화인 맞았다고 표현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자꾸 무시하다보면, 점점 둔해질 거고, 어느 날 양심에 화인 맞은 것 같은 무감각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양심에 낀 떼를 닦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하루에 잠시라도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게 일명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다.
↳나에게는 새벽기도회 시간이 그런 시간이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성과 정화의 시간이다.
↳그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새벽기도회 시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그나마 목사로서의 영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

-자기 죄의식에서 벗어나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보상행위다.
↳불의한 방법으로 축적한 전 재산을, 장학재단 같은 곳에 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남은 삶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한다.
↳조금은 자기 위안이 될지 모른다.
↳심리적으로, 죄의식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죄를 없이 하지는 못한다.
↳보상행위는 보상행위일 뿐, 보상행위로 속죄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죄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구약성서에서다.
↳히브리어로 ‘페샤’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뜻한다.
↳‘체타’는 ‘살인이나 도둑질 등의 반사회적인 행동’을 뜻한다.
↳‘아온’은 ‘자신에 대해 학대하며 마음이 비뚤어진 것’을 뜻한다.
↳구약에서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이웃과 나와의 관계, 나와 내 자신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도 중요하고, 더 나아가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음 신약성서에서다.
↳헬라어로 ‘하마르티아’는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다.’ ‘목표에서 벗어나다’는 뜻이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 창조된 목적에서 벗어나게 사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복되게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면, 우리가 영광스러워진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수록, 우리가 비참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영광스럽게 된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대로 사는 것이, 곧 우리가 이 땅에서 영광스러워지는 길이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에서 벗어나 살면, 그때부터 우리 삶은 추락하고 비참해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다.” 라고 하면, “그럼 나는 뭐냐?”고 반문한다.
↳“내 삶이 없지 않냐?”고 항변한다.
↳진짜 그런가?
↳창조주 없이 피조물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창조주의 보살핌 없이 피조물끼리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피조물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와 한 번 비겨보려고 하고, 더 나아가 창조주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피조물 된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것이, 죄의 뿌리인 것이다.

-영어로 죄를 sin이라고 한다.
↳그런데 sin이란 단어를 이런 단어들로 대체하고 싶어 한다.
-crime이다.
↳crime은 ‘법규를 어기고 잘못을 저지른 범죄’를 말한다.
↳crime은 법률적 죄를 가리킨다.
-fault이다.
↳fault란 ‘실수’, ‘과실’, ‘잘못’, ‘허물’을 말한다.
↳fault는 고의성을 배제한다.

-하나님 앞에서 창조된 목적에서 빗나간 것이 죄인데, 하나님 존재를 거부하려고 하다보니까, 죄라는 단어 대신에 ‘법규 위반’이나 ‘실수’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죄라는 말에 불쾌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숨어서는 죄를 짓고, 겉으론 고상한 척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조건 중에 하나가, 설교 때 가급적 죄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달라는 거였다고 한다.
↳분명히 죄는 존재하는데,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문제다.

-기독교 복음은 죄 문제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죄를 잘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말을 해봤자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서다.

-어떤 스님이 있었다.
↳어떤 죄를 짓고 세상을 피해 스님이 된 거였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그 죄를 없애보려고, 수도하고 참선을 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를 닦고 수련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는 자신의 죄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고승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 고승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그를 절망에 빠뜨렸다.
↳고승의 마지막 말이 “내 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였기 때문이다.
↳스승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건, 그렇게 존경하는 소승조차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자기가 남은 인생을 아무리 수도에 정진한들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확신이 안 섰다.

-그러다 어떤 기회에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났는데, 죄에 대한 해결책이 간단하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 되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를 영접하고 하산했다는 얘기다.

-기독교는 죄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한다.
↳너무나 간단해서, 심지어 싸구려 해결책 같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죄 문제의 해결이 복음의 핵심이라면서, 회개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 주어지는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평생을 수도하고 수련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다니 쉽게 믿기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그 스님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좌절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극한 절망감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미로에서 헤매었다.
↳앞으로도 미로에서 빠져나오려면, 얼마나 더 헤매야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길을 아는 사람이 가르쳐주니, 10분도 안 걸려서 빠져나왔다.

-모태신앙인들은 구원의 길을 헤매본 적이 없다.
↳다른 길을 가다가 중간에 예수 믿은 분들에 비해, 예수 믿는 게 얼마나 복된 것인 줄 모른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을 쳐보지도 않았기에, 값싼 복음으로 여길 수 있다.
↳하긴 자기가 한 게 아무 것도 없어서 그렇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데, 죽기는커녕 십자가를 져본 적도 없고, 십자가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그러니 감동이 없을 수밖에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그래도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살인강도들에게나 필요하지, 자기 같은 선량한 사람에게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쩌지....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판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이건 절망적인 선언이다.
↳이어지는 말씀도 다르지 않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음으로 죄를 범했다.
↳그러면 그 상태로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죄 문제를 그냥 두고 무슨 행위를 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시방편으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게 했다.
↳문제는 유효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죄를 짓게 되면, 또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희생하는 해결책을 주셨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이다.
↳세상의 어떤 신이 자기희생을 하겠는가?
↳인간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신은 봤어도, 자기를 희생하는 신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인류의 모든 죄를 그에게 지워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 죄를 간과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해주셨다.

-하나님의 이 행위에 어떻게 값을 매기겠는가?
↳자기를 반역한 인간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신에게, 어떤 값을 매길 수 있을까?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다.
↳그래서 “값없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뜻으로 “값없이”인 것이지, 값이 너무 싸서 값을 매기는 게 의미가 없어서 “값없이”가 아닌 것이다.

-기독교가 죄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한다고, 값싼 복음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성부 하나님의 자기희생이 있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짊어지고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희생이 있었다.
↳우리에게 ‘값없음’이지, 하나님은 최고의 값을 지불하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값을 지불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최고의 값을 지불하셨기에, 은혜를 베푸실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런 하나님이기에, 누구나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용납하실 수 있다.
↳은혜는 조건이 없다.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참된 은혜를 모르기에,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못한다.

-미국 한 도시에 에이즈로 신음하며 죽어 가던 여인이 있었다.
↳그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이 교회에 가서 엄마가 죽게 된 사실을 목사님께 말씀드리며, “목사님, 한 번만 우리 어머니를 심방해 주세요. 어머니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목사님이 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집을 찾았을 때, 아이 엄마는 차갑게 거절했다.
↳“여기는 목사님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제가 이런 병에 걸려 죽는 것은 당연합니다. 젊은 날 쾌락을 좇아 산 죗값을 치르는 것이니 돌아가십시오.”

-그러자 목사님이 묻기를, “옷장에 붙어 있는 사진 속 아이가 누굽니까?”
↳“제 외동딸입니다.”

-“딸이 엄마 말 안 듣고 나가 놀다가 몹쓸 병에 걸리면 버리시겠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인데요. 내 말 안 들었다고 해서, 또 아무리 몹쓸 병에 걸렸더라도, 어떻게 엄마가 딸을 버립니까?”

-목사님이 그 여인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한다.
↳“당신도 하나님께 그런 딸입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당신이 딸을 안아 주듯 하나님이 당신을 안아 주십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단지 끝까지 죽는 순간까지 거부하는 자만 못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회개의 삶을 산다.
↳회개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죄된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회개란 자기 길에서 삶의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다.
↳회개란 하나님께로 유턴하는 것이다.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여전히 불의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참된 회개가 아니다.
↳계속 같은 죄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다면, 역시 참된 회개가 아니다.
↳참된 회개엔 열매가 따르게 된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허다한 무리가 나아왔다.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를 향해서, 환영사가 아닌 독설을 퍼부었다.
눅 3:7...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한의 거친 입만 보고, 그를 뒷골목 출신쯤으로 알면 안 된다.
↳그는 현 제사장의 아들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진심어린 회개는 없이, 잠시 진노를 피할 속셈으로 세례를 받으러 오는 자들을,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로 혼날 때 잘못 했다고 싹싹 비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그게 끝까지 버티다 망하는 어리석은 사람보다야 낫겠지만, 타이밍은 놓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가 있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그 자리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그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루터는 돈지갑의 회심을 말했다.
↳돈지갑이 회심해야 진짜 회심이라고 본 것이다.
↳돈지갑의 회심을 통해,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종교생활하는 자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교우들을 위해 기도할 때, 종종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무슨... 다 아는 말씀이고 상식적인 말인데 그러냐 할지 모른다.

-이 말씀의 앞뒤 말씀을 살펴야 한다.
↳앞 절인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뒷 절인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연보 곧 헌금에 대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6절을 다시 보면, 헌금을 하나님께 심는 것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 적게 심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적게 거두고, 하나님께 많이 심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이 거둔다.
↳이게 하나님의 법칙이다.

-칭의와 성화에 대해 살펴보겠다.
↳칭의란 법적인 선언이다.
↳죄가 있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죄인이지만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죄인이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분이 법적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걸 한자로 이신칭의(以信稱義) 혹은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 한다.
↳이신칭의는 남용될 수 있다.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된다고? 그럼 구원은 따논당상이네. 자유롭게 나 편한대로 살면 되겠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이신칭의 교리는 '기독교 타락의 원흉'이니 '타락한 시대의 면죄부'라니 하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이친칭의를 남용하는 자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칭의를 믿는 자들은, 반드시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게 돼 있다.

-성화가 무엇인가?
↳성화란 죄악된 옛 본성을 벗고 죄와 더러움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즉 죄사함을 얻고 구원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거룩함 가운데 자라는 과정으로, 개인의 성품과 삶 가운데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성화는 칭의처럼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칭의 후 주님 앞에 서게 될 그날까지, 평생의 과정인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도덕적으로 완전에 이를 수 없다.
↳그게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한계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용서이다.

-성화의 핵심 중에 하나가 용서이다.
↳신학자 얀 M. 로호만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용서받는 데서 시작하여 용서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별명은 용서받은 사람이다.
↳자기가 하나님께 용서 받았기에, 용서 받은 사람으로서 타인을 용서해야 한다.
↳하나님께 용서 받은 뜨거운 감격에서, 타인을 용서하는 힘이 나온다.

-그럼에도 용서는 쉽지 않다.

-인간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이, 이런 비유를 드셨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의 이야기다.
↳사실 일만 달란트의 빚은, 보통 사람이 갚을 수 없는 액수다.
↳유대 나라가 로마에 바치는 일 년 세금이 800달란트라고 하면, 일만 달란트 감이 올 거다.
↳일만 달란트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처분해도, 심지어 자기 몸과 아내와 자식을 팔아도 개인이 갚을 수 없는 액수다.
↳그걸 잘 아는 주인이,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는 용서 받은 것이다.
↳그에게 꿈만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다.
↳그가 동료를 붙잡고 자기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했다.
↳동료는 빚을 꼭 갚겠다며 좀 시일을 달라고 사정사정 했다.
↳그런데 그는 막무가내였고 동료를 옥에 가두었다.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이라고 한다.
↳자기가 주인에게 탕감 받은 일만 달란트 빚에 비하면, 동료가 자기에게 진 빚 일백 데나리온은, 6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이 소문은 금방 주인의 귀에 들어갔다.
↳화가 난 주인은, 당장 그 종을 호출했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이놈아, 네 놈이 싹싹 비니까 내가 네 빚을 다 탕감해주었잖아. 내가 네 놈을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겨야 마땅하지 않느냐?”

-주인은 이 용서의 은혜를 모르는 종을, 이번 기회에 아주 혼쭐을 내기로 했다.
↳그래서 그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쳐 넣었다.
↳그럼 그곳에서 못 나오고, 거기서 평생 썩어야 한다.
↳비유는 여기서 끝난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을 이렇게 맺으신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가 용서 받은 자라면 반드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보면, 타인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줄 때도, 같은 의미의 말씀을 하셨다.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눅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용서는 율법이 아니다.
↳용서 받은 자만 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럼에도 우리 인품으로 용서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내 안에는 용서의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오직 주님의 용서의 능력으로라야 가능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주님께 용서의 능력만 구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결국 용서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자기를 위한 용서일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나도 나를 용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께 회개한 죄에 대해서는, 사죄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자기 기억에 속지 않아야 한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억을 통해 공격해 온다.
↳“네가 과거에 그런 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교회 앞에 나설 수 있느냐?”
↳“네가 과거에 그런 죄 지은 것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데 주의 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그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담대하게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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