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10: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마 16:16-2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1-01-10 12:40
조회
906


사도신경 강해 10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마 16:16-20)
2021. 1. 10.


프롤로그

1.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3.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가 조직신학에서는 교회론으로 독립돼 있는데, 사도신경에서는 성령에 속해 있다.
↳사도신경이 성부 성자 성령의 구조로 돼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성령에 교회, 사죄, 몸의 부활과 영생이 속해 있다.
↳성령의 강림과 함께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창세기에서부터 교회의 모형을 찾을 수 있다.
↳교회를 예표하는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노아의 방주가 있다.
↳방주에 들어간 사람이 다 의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다 구원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방주는 교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다.
↳성전의 기능의 핵심은 제사에 있다.
↳하나님께 나올 때마다 죄사함의 은혜를 입는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짐승을 잡아 피를 드리지는 않지만 예수 피로 죄사함을 받는다.

-회당이 있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기 때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성전이 없으니 제사를 드릴 수 없으니 모여서 말씀을 배운다.
↳회당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 말씀 선포이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예표이다.
↳실제로 지상 교회의 시작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로 보는 게 맞다.

-예수님은 자신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한 ‘반석’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해 이견이 있다.
↳“반석”은 아람어로 ‘게바’이고, 헬라어로는 ‘페트로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석이 ‘사람 베드로를 뜻한다’ 라고 보는 입장이 천주교이다.
↳당연히 천국열쇠를 받은 사람도 베드로 개인으로 본다.
↳그러면 베드로가 교회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교황수위권이다.
↳즉 교황은 그리스도가 사도의 우두머리로 삼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모든 사제와 신도에 대해서 완전하고 보편적인 지상(至上)의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교황이 천국 열쇠를 받았으니까, 교황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면 가고 못 간다고 하면 못 가는 것이다.

-반면에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한 반석은, ‘베드로 개인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다’ 라고 보는 입장이 개신교이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교회관의 차이는 좁힐 수 없다.
↳교회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혹 천주교에 나가도 구원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건 좋은 질문이 아니다.
↳선한 의도에서 나온 질문이 아닐 수 있어서다.
↳그럼 장로교에 나가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
↳장로교라도 통합측에 나가야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천주교에 나가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장로교에 나가도 예수 안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
↳구원은 어떤 교회에 나가느냐가 아니라,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하셨다.
↳설사 반석을 베드로 개인이라고 해도, 베드로의 교회는 아닌 것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분명히 예수님의 교회이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다.

-이걸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누가 교회의 주인이냐의 문제로 다툼이 일어난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장로도 아니다.
↳당연히 개척 멤버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오직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시다.
↳한 동안 사회적으로까지 논란이 됐던 교회세습도, 알고 보면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서다.
↳말로는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고백하지만, 말 따로 행동 따로이다.
↳교회의 설립자도 주님이시고, 교회의 주인도 주님이시고, 교회를 세워가는 분도 주님이시다.

-하긴 교회의 주인조차 예수님으로 인정하는 게 어려운데, 자기 생명, 자기 꿈, 자기 재물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인정하는 게 쉽겠는가?
↳결국 신앙이란 누가 주인이냐의 싸움이다.
↳자기 안에 주인이 바뀐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내가 주인인 사람은, 아직 회심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예수님한테 주인 자리를 비켜드리고 물러나, 예수님을 나의 새로운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참된 회심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은 사람은, 이런 고백을 한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이 고백이 진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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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도신경에서는 교회를 거룩한 공교회라고 호칭한다.
↳“공교회”로 들어가기 전에, 공교회를 꾸며주는 단어 “거룩”에 대해 살펴보겠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 헬라어로 ‘하기오스’라고 한다.
↳거룩은 지칭하는 대상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거룩이 하나님께 대해서 사용 될 때는...
↳죄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순결하심. 완전하심.
↳하나님의 행하심에 사용될 때는 장엄하다.

-거룩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질에 대해서 사용될 때는...
↳~에 구별되다.
↳도덕적으로 순결하다.
↳하나님께 바쳐지다.
↳하나님과 그분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예비되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바쳐진 시간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성일(聖日) :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구별된 날
↳성전(聖殿) :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구별된 집
↳성도(聖徒) :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
↳성물(聖物) : 하나님께 드리는 혹은 드려진 물건, 예물

-주일을 성일이라고 하지만, 다른 날과 다르지 않다.
↳다른 날처럼 24시간 1,440분, 86,400초이다.
↳단지 예배 드리는 날로 구별했다.
↳물론 예수님이 부활하신 요일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전이라고 건물이 특별히 달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예배당으로 설계하여 잘 지을 수도 있지만, 상가를 임대하여 교회로 쓸 수 있다.
↳예배당 단독 건물만 성전이고, 상가 건물은 성전이 아닌 게 아니다.
↳예배를 위해 구별한 건물이라는 게 중요하다.

-성도라고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여느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그래서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면에서 성도이다.

-성물이라고 특별한 물건도 아니다.
↳성구사에서 제작해서 성물이 되는 게 아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사용해서 성물이 되고, 하나님께 드려져서 성물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본당 빔프로젝트를 구입했다.
↳10여년 쓰다 보니 메인보드가 나가서 교체를 한 것이다.
↳빔프로젝트는 돈만 주면 사서,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빔프로젝트는 교회에서 구입했고, 어느 날 천장에 설치되어 성물이 된 것이다.

-돈이 내 지갑속에 있을 때는, 그냥 돈이었다.
↳그런데 지갑에서 꺼내져 헌금으로 드려진 순간 성물이 되는 것이다.
↳같은 돈이지만,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라는 의미다.
↳세속적 가치관이 아니라, 성경적 가치관을 가진 공동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성경적 가치관이 아닌, 세속적 가치관이 교회를 지배하곤 한다.
↳그건 우리의 가치관이, 아직 성경적 가치관으로 바뀌지 않고, 세속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어서다.
↳이게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큰 숙제이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이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예수를 존경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독교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당신들은 예수를 전혀 닮지도 닮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
↳우리에게 뼈아픈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말은 비논리적이고 비신앙적인 표현이다.
↳예수가 곧 교회이고, 교회가 곧 예수 아닌가?
↳그런데 한국교회는 교회밖 사람들로부터, 이 말을 듣고 있다.
↳우리가 구별된 삶을,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살아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일 것이다.
↳교회가 거룩성을 잃는다는 것은,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거룩은 교회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교회로 적용할 수 있는데, 구약의 이스라엘의 정체성, 곧 교회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말해주는 말씀이 있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이다

-예수님의 수제자이자 초대교회 기둥이었던 베드로는 교회된 우리의 정체성이 뭐라고 하는가?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거룩이다.

-사람들이 개혁을 외쳐도, 개혁의 깃발을 흔들어도, 국민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가 있다.
↳그건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도덕성에 치명적 하자가 있을 때이다.
↳“이게 나라냐?”로 탄생한 정부가, “이건 나라냐?”로 공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회에 거룩이 없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세상을 도울 수도 없다.
↳세상으로부터 “너희들 도움은 필요 없다”는 말을 듣는다.
↳교회가 세상을 꾸짖을 수도 없다.
↳세상을 꾸짖었다가는 “괜히 우리 걱정하지 말고, 제발 너희들이나 잘 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우선 회복해야 할 것이 거룩성이다.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세상을 향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침묵하면서 자기 성찰을 하고, 세상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 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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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회

-공교회에서 공(公)은 한자로 공평할 공이다.
↳;공평하다;는 뜻 외에, ‘숨김없이 드러내 놓다’, ‘함께 하다’, ‘공적(公的)인 것’을 뜻한다.
↳공교회란 ‘공적인 교회’라는 말이고, ‘하나의 교회’라는 말이다.
↳전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는 뜻이다.

-공교회를 영어로는 Catholic Church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가톨릭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물론 가톡릭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가톨릭의 본뜻은 ‘전체적인’, ‘전 세계의’, ‘보편적인’ 이다.
↳가톨릭교회란 전 세계의 교회는 하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톨릭이 천주교의 명칭처럼 쓰이고 있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가톨릭과, 우리가 말하는 가톨릭이 차이가 난다는 의미다.
↳천주교에서는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의 천주교가 하나라고 한다.
↳그들은 교회의 머리가 교황이라고 믿는다.
↳그럼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교회의 머리와 보이는 교회의 머리를 나눠서, 교황은 보이는 교회의 머리이고,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한다.
↳얼핏 그럴듯한 주장 같아 보인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믿는가?
↳보이지 않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다.
↳그럼 보이는 교회의 머리는? 역시 예수님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보이는 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보이는 교회란 실제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이다.
↳포항교회, 경주교회, 영천교회, 대구교회 등 특정지역에 모이는 신앙공동체를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신령한 교회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믿는 자 개개인으로 그리스도께 속한다.

-엄밀하게 보면, 보이지 않는 교회가 참교회일지 모른다.
↳우리는 보이는 교회에 대한 관심이 크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교회에 관심이 클 수 있다.
↳물론 보이는 교회이든 보이지 않는 교회이든, 하나님께는 다 소중하다.
↳모든 교회가 예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하나라는 점에서 가톨릭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배웠다고 어디 가서 “우리교회도 가톨릭이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하면 자기 교회가 장로교인줄도 모른다며 핀잔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서는 가톨릭이란 용어를 쓰지만, 교회 현장에서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잘 쓰지 않는다.
↳영어권에서도 Catholic Church 대체어로, Universal Church, 혹은 Holy Universal Church를 쓰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거룩(Holy)가 수직적 개념이라면, Catholic은 수평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는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거룩하게 구별됨으로서 주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수평적으로는 이단이 아닌 정통 진리 위에 모든 교파와 교단과 교회를 끌어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큰 교회 작은 교회, 도시교회 시골교회가 따로 있지 않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만 있을 뿐이다.
↳2-3명이 모이는 교회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다면 완벽한 교회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머리되지 않는다면, 수만 수천 명이 모여도 제대로 된 교회일 수 없다.

-큰 교회 다닌다고, 작은 교회 얕보면 안 된다.
↳작은 교회 다니면서, 큰 교회 비판할 필요도 없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가치가 있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가치가 있다.
↳도시교회는 도시교회로서의 사명이 있고, 시골교회는 시골교회로서의 사명이 있다.
↳도시교회가 시골교회 사명을 감당할 수 없고, 시골교회가 도시교회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다만 모든 교회가 함께 가야 한다.
↳독주가 아닌 동반해야 한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와 협력해야 한다.
↳도시교회가 시골교회와 연대해야 한다.
↳작은 교회 없이 큰 교회 없고, 시골교회 없이 도시교회 없다.
↳엄중한 코로나 상황에서, 대기업은 이익이 줄지만 소상공인은 생계가 막히듯, 대형교회는 온라인예배로 전환해도 타격이 덜하지만, 소형교회는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나마 작은 교회나 시골교회라도, 우리 통합측 교단 소속 교회들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지 않는 주위 교회들을 보면 사지로 몰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교회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체의식, 형제의식의 회복 없이는,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고착화 되고 말 것이다.
↳함께 살아야 잘 사는 것이다.
↳차별 없이 어울려 살아야 진짜 잘 사는 것이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어느 날 한 흑인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하지만 백인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결국 그 흑인은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높은 계단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런데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흑인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처럼 서글픈 사람이 있는가 싶어 얼굴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혹시... 예수님 아니십니까?”
↳“음, 그래.”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예수님한테 물었다.
↳“아니, 그런데 왜 안 들어가세요?”

-그 때 예수님이 서글픈 표정으로...
↳“응, 나도 백인이 아니거든...”

-교회가 완벽할 수는 없다.
↳지상에 있는 보이는 교회라면, 흠과 티가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적어도 차별은 없는 교회여야 한다.
↳어떤 특정 대상이, 어떤 특정 계층이, 눈에 띄게 차별받는 교회여서는 안 된다.

교회의 기능

-마지막으로 교회의 기능 혹은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교회가 이 땅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바를 정리해 보겠다.

-먼저 예배이다.
↳예배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예배 안 드릴 거면 굳이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
↳교회에 모이기는 하는데, 예배 드리는 데는 소홀하다?
↳다른 건 용서받을 수 있어도, 예배 잘못 드리면 용서 받기 힘들다.

-나는 비대면예배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코로나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대면으로라도 예배하도록 안내하지만,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을 너무너무 안타깝게 여긴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교우들과의 만남이다.
↳목소리만 들리는 전화 통화보다야, 영상통화가 나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영상통화한 것을 가지고, 그를 만났다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예배는 교회가 존재하는 맨 첫 번째 목적이다.

-예배는 주일예배 외에 절기예배가 있다.
↳송구영신예배, 부활주일예배, 맥추감사주일, 추수감사주일, 성탄절예배 때는 절기 헌금도 있다.
↳매 번 느끼지만, 절기헌금은 이름에 걸맞게 드려야 한다.
↳경조사비도 3만원 짜리 없다.
↳나는 추수감사주일 헌금을 위해, 일 년 내내 모은다.
↳그래서 보통 때 십일조의 2배를 드릴 수 있고, 헌금 드릴 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다음은 선교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을 두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예배와 선교라고 하겠다.
↳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선교는 세상을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가 선교보다 앞서는 것이다.
↳선교하는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예배에 있다고 본다.
↳선교하여 그로 예배하게 하고, 그와 함께 예배하고자 함이다.

-선교는 지상교회에만 한시적으로 주어진 기능이다.
↳한시적이라 함은, 언젠가 선교의 문이 닫히게 될 날이 온다는 의미다.
↳선교의 문이 닫히면, 그 때까지 복음을 거부했던 이들에게는 치명적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와는 무관한 게 아니다.
↳그가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보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선교를 위해서다.
↳영혼 구원하는 일에, 너무 손을 놓고 지내온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교회의 지체된 우리를 일터선교사로 부르셔서 엿새 동안 매일 파송하신다.
↳단순히 돈 벌러 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교회의 기능과 역할에는 교육, 사역, 교제가 있다.
↳서너 줄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교육이다.
↳교회학교를 포함한 양육과 훈련이다.
↳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선교는 세상을 위한 것이고, 교육은 교회 자체를 위한 것이다.
↳교육이 튼튼해야 교회가 튼튼하고 미래가 보장된다.

-사역이다.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다.
↳교회 안은 물론이고, 교회 밖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 밖에서 봉사할 때 주의할 점은, 자기 이름이 아닌 교회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제이다.
↳성도의 교제이다.
↳교인들이 모인다고, 무조건 성도의 교제가 아니다.
↳그 모임이 어떤 종류의 모임이든지, 주인공이 예수님이어야 한다.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교회에도 덕이 되어야 한다.

-우리교회가 거룩한 공교회로서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잘 감당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