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7: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5(행 1:8-11)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12-24 10:07
조회
14


사도신경 강해 7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5(행 1:8-11)
2020. 12. 20.


프롤로그

1.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3.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양화진에 외국인선교사 묘원이 있다.
↳양화진에 첫 번째로 묻힌 선교사가 존 헤론이다.
↳헤론은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테네시종합대학교 의과대학을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학교로부터 교수 초빙을 받았지만, 당시 조선에 선교사로 가기 위하여, 이를 거절하고 미국 북장로교 의료 선교사로 지원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촉망받는 유능한 의사가, 낙후된 곳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약혼녀까지도 ‘병원이나 약국도 없는, 가난하고 무지하며 미개한 나라에 왜 우리가 가야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그의 굳은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헤론은 광혜원 2대 원장이 되었고,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특권층뿐만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의 병까지도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

-헤론은 제중원 입원 환자들을 간호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100리 이상 떨어진 시골 지역을 다니며, 천연두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을 치료했다.
↳그렇게 바쁘게 5년간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던 헤론은, 결국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1890년 7월 26일, 33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부인의 손을 잡고, 두 딸과 한국인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헤론의 유가족으로는 아내와 어린 두 딸이 남았는데, 헤론은 아내에게 조선에 남아서 선교사역을 계속하기 원한다고 부탁하였다.
↳또한 조선인 하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도 부탁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론은 이런 고백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나의 사역이 참 보잘 것 없었지만, 그것이 모두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다.”
↳얼마 후 고종이 양화진을 외국인 묘지로 지정함에 따라, 헤론은 양화진에 묻힌 첫 번째 선교사가 되었다.

-부활신앙이 없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부활신앙이 수많은 박해를 딛고, 오늘의 기독교를 있게 했다.
↳부활은 십자가의 완성이다.
↳부활은 십자가의 승리 선언이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부활의 고백에 이어, 바로 예수님의 승천을 고백하고 있다.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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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섯 번째 시간으로,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에 대해 살펴보겠다.
하늘에 오르시어

-승천은 부활의 연장선이다.
↳부활은 설명이 안 된다.
↳진짜 부활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세 사람을 살리셨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와,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딸과, 나이 성 과부의 외아들이다.
↳베드로도 도르가를 살렸다.
↳바울도 유두고를 살렸다.
↳엘리사도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렸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다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소생한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불행할 수 있다.
↳남들은 한 번 죽는데, 그들은 두 번 죽었으니 말이다.

-죽었다가 살아났던 사람들 역시, 다시 죽고 말았으니, 부활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성경도 부활을 애써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할 뿐이다.
↳승천에 대해서도 더더욱 그렇다.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기록의 분량은, 복음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바울이 복음을 설명할 때, 십자가와 부활이 전부였다.
↳그런데 승천에 대한 기사는, 몇 줄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까지 포함해도, 몇 줄 늘어나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교회에서도 부활절은 지키지만, 승천절은 없다.
↳물론 교회력에 보면, 성령강림절 열흘 전이 ‘주의 승천일’로 돼 있다.
↳부활절과 오순절 사이가 50일이고,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간 계시다가 승천하셨기에, 성령강림절에서 열흘 앞을 계산하여 주님의 승천일을 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의 승천일을 기념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의 요약이요 핵심인 사도신경에서는, 승천을 부활과 대등하게 다루고 있다.
↳부활도 이성으로 믿기 어렵지만, 승천은 더더욱 신화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동정녀 탄생을 포함하여, 믿기지 않는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 보면, 내가 믿는 것이 아닌 내게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 확실하다.

-승천이란, 말 그대로 하늘에 올라감이다.

-먼저 하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늘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공간적인 의미와 차원적인 의미이다.
↳영어에 sky와 heaven이 있는데, sky가 공간적인 의미의 하늘이라면, heaven은 차원적인 의미의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늘과 땅이라고 할 때, 하늘을 공간적인 의미로 보면 ‘창공’을 가리킨다.
↳차원적인 의미로 보면, ‘보이지 않는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고 할 때, 어떤 하늘에 오르신 걸까?
↳그 하늘을 공간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차원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소련의 우주인 티토프가 우주를 다녀와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공간에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님은 없었다.”

-그러나 똑같은 우주를 다녀온 바 있는 미국의 우주비행사 글렌은, 티토를 보고 점잖게 타일렀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이 우주선 창문으로 내다보고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오.”
↳하늘을 공간적인 의미로 파악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하늘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고, 능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일명 천상의 하늘이다.
↳하늘의 하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천사들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영역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의 몸은, 부활하셨을 때의 몸이다.
↳예수님이 영으로만 승천하신 게 아니라는 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신비한 형체였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비한 몸이었다.
↳그 신비한 몸으로 승천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와 차원이 다른 세계의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다.
↳그래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장소는 감람산이다.
↳감람산은 해발 830미터로, 올리브 나무가 많아서 감람산으로 불렸다.
↳이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이건 예수님의 승천이, 신화나 조작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말해준다.
↳성경은 제자들이 본 것을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냥 담담하게 묘사했다.

-또 예수님의 승천에 구름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도 되고, 기분도 묘했을 것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때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행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천사를 통하여, 예수님이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했다.

-예수님도 자신이 구름을 타고 오실 거라고 하셨다.
막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요한도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말했다.
계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아니 예수님이 손오공도 아닌데 웬 구름일까?
↳그렇다면 그 구름에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거로 봐야 한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이건 구약성서에 종종 나온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동안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구름이 나타났다는 말은, 그 순간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의미다.

-또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출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모세가 성막을 세우기를 마쳤을 때 하나님이 구름으로 회막을 덮으셨다.
↳그게 여호와 영광이 성막에 충만한 것으로 해석했다.

왕상 8: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 봉헌할 때도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다.
↳그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으로 해석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구름이 나타났다는 말은, 그 순간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의미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표현을, 예수님이 우리 눈에 보이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이해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 가운데 오신다고 이해해야 한다.
↳아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구름이 등장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짝이듯, 승천과 재림도 짝이다.
↳승천을 믿지 않고서야, 재림을 믿을 수 없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시지 않고서, 다시 오실 수 없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사도신경에 두 번 나온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첫 번째는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으로 완전한 복귀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나님의 전능성은, 예수님의 탄생과정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정에도, 예수님의 승천 과정에도 있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을, 하나님의 전능성을 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제 삼일에 부활하신 것을, 하나님의 전능성을 빼고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하나님의 전능성을 빼고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사도신경 맨 첫 부분에 나오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사도신경 전체를 꾸미고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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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무슨 일을 하실까?

-첫째, 왕 사역을 하신다.
엡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바울을 통하여 알려주시기를, 예수님을 자기의 오른편에 앉혀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고 했다.
↳예수님을 세워, 이 세상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상을 다스리신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
↳그래서 교회 밖을 교회 밖이 아닌 세상으로 본다.
↳그럼 교회 안은 무엇인가? 천국인가?
↳또한 생업을 세상일이라고 한다.
↳생업이 하나님의 일일 수는 없는 걸까?
↳교회 일만 하나님의 일이고, 생계를 위한 일은 세상일일까?
↳너무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정의와 불의가 섞여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믿는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여전히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
↳그걸 믿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런데 에베소서 말씀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교회를 통해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 권력 위에 있다는 말로 해석하는 건 무리다.

-한 때 교회 권력으로 대표되는 교황이, 세상 권력으로 대표되는 황제를 추인했다.
↳교황이 오케이 해주지 않으면, 황제로 즉위하지 못했다.
↳어떤 황제는 교황이 추인을 해주지 않아서, 눈오는 밖에서 맨발로 3일간 서 있다가 교황의 추인을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그 후에 황제권력이 강화되자, 교회에 대한 보복이 있었다.

-교회는 세상 권력 위에 있지도 않고, 그 아래 있지도 않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협력관계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관계에 있기고 한다.
↳무조건 갈등만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협력만해서도 안 되니, 관계설정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구해야 한다.
↳갈등해야 할 것과 협력해야 할 것을 잘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둘째, 제사장 사역을 하신다.
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왕 사역이 다스림의 사역이라면, 제사장 사역은 중보 사역이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만물을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신다.
↳우리의 죄를 대신 고백하시고, 사함 받게 하고자 기도하신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

-바울에 의하면 성령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과 성령님이 역할이 겹침을 볼 수 있다.
↳성령이 예수의 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보혜사이고, 성령이 또 다른 보혜사이기 때문이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제사장이시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고 계신다.
↳우리는 무조건 예수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중재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물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다.
↳우리는 중보자가 될 수 없지만, 중재자로 살아갈 수는 있다.

-“중보자”와 “중재자”를 각각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중보자 :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그 관계를 성립시키고 화해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이른다.’
↳중재자 : ‘분쟁에 끼어들어 쌍방을 화해시키는 사람.’
↳중재자는 다른 말로 화해자이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화해자로 사는 게 복이라고 하셨다.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이 시간 선택해야 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 곧 피스메이커로 살 건가?
↳분쟁을 일으키는 자, 곧 트러블메이커로 살 건가?

-셋째, 선지자 사역을 하신다.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왕 사역이 다스림의 사역이라면, 제사장 사역은 중보 사역이고, 선지자 사역은 말씀 사역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심으로, 몸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영으로만 존재하신다.
↳직접 육성으로 말씀하실 수 없다.
↳대신 성령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다.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가 들은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거기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의 원저자가 성령이시다.
↳예수님이 승천하심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성경과 성령을 통하여 선지자로서 역사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종인 설교자를 세워서, 선지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감당하신다.

-성경을 통하여, 설교자를 통하여, 말씀을 받은 우리는 세상에 대해 선지자로 살아야 한다.
↳그게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기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전달하는 사람이다.
↳말씀의 심부름꾼이요, 말씀 택배원인 셈이다.

-우리는 말씀을 받기 위해 힘써야 한다.
↳주일을 사모해야 한다.
↳한 주간 내내 주일예배를 사모해야 한다.
↳주일예배 때 선포되는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또한 매일 성경 읽기를 해야 한다.
↳새벽기도회가 최선이고, 큐티가 좋겠지만, 사정이 있다면 매일 성경읽기라도 해야 한다.
↳육의 양식은 세 끼나 먹으면서, 영의 양식은 굶식이 일상이 되면 되겠는가?
↳그게 오래 가면 자칫 영혼의 거식증(拒食症, 영어: anorexia)은 음식을 조절할 수 없는 식사장애 중 하나로,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으로 인해 먹는 것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병적 증상이다. 다른 말로 신경성 식욕 부진증anorexia nervosa이라고도 한다.
거식증에 걸릴 수 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그럼 성령 받아 예수 증인 되라는 말씀은, 사실상 유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식증에 걸려 있으면, 예수 증인으로 살 수 있겠는가?
↳아마 자기 신앙도 지탱하기 힘들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앙 하나 지탱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는 예수 증인으로 사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예수 증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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