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2: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창 1:1, 창 17:1, 요 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11-08 12:22
조회
18
사도신경 강해 2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창 1:1, 창 17:1, 요 1:12)
2020. 11. 8.


프롤로그

1.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3.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우리는 신자들이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럼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를 믿기는 하는데 “무엇을 믿느냐”에 답할 수 없다면, 그를 신자라고 칭하기 어렵다.
↳“무엇을 믿습니까” 하고 질문하면,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답을 한다.
↳묻는 사람이, 그 사람이 예수 믿는 거 모르고 물은 거 아니다.
↳그럼 “어떤 예수를 믿느냐”는 질문일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은 어떤 예수를 믿습니까” 질문하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성경의 예수를 믿는다?” 정답이다.
↳그럼 “성경의 예수를 간단하게 정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고 부탁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도신경에 기록된 대로 말해주면 된다.

-사도신경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다른 신경과 신조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지금의 사도신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간의 다른 점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대동소이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아서 정리하여, 모든 교회가 고백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게 사도신경이다.
↳초대교회 시대가 지나고 약 200여년 후에는, 대다수의 교회가 사도신경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무려 1,800년 이상 최고의 신앙고백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다.
↳동시에 우리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신앙고백의 시간이 예배를 알리는 정도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나의 신앙고백으로 고백해야 한다.
↳맹목적인 신앙이 무섭다.
↳덮어놓고 믿는 것보다 위험한 것도 없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여호와증인이 왜 이단인가?
↳그들은 여호와만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의 으뜸, 으뜸된 피조물 정도로 믿는다.

-교회가 공통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있어도, 교파별로, 교단별로, 교회별로, 신앙색깔이 다를 수 있다.
↳사도신경은 믿음의 내용의 기본인 것이다.
↳후에 나온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비롯하여, 다른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이, 이 사도신경에 기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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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습니다.

-사도신경에는 “나는 ~ 믿습니다”는 고백이 세 번 나온다.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사도신경은 교회의 고백이자 개인의 고백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믿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의 주체가 바로 나여야 한단 말이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교파에서는 이점을 문제 삼는다.
↳자기 자신의 고백이 아닌 부모가 대신 고백해준다는 것이다.
↳자기 믿음이 아닌 부모의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도, 입교 절차를 거치게 한다.
↳유아세례를 받고 15세가 되면, 세례교육을 받고 입교를 한다.
↳그 때 자기 고백을 한다.
↳자기 믿음으로 공동체 앞에서 고백한다.

-믿는다는 말이 라틴어로 크레도(Credo)인데, 크레(Cre)가 심장이고, 도(Do)가 우주 전체를 질서 있게 주관하시는 분이란 뜻이 있다.
↳믿음이란 우주 전체를 질서 있게 주관하시는 분 곧 하나님께 내 심장을 드린다는 뜻이다.
↳사도신경에 있는 믿음의 내용을,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믿음의 내용에, 내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도신경을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서 하든, 입교서약의 재현으로서 하든, 우리의 마음가짐이 형식적이거나 습관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대로, 사도신경으로 하나님께 신앙고백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에게 고백하는 말이다.
↳그럼 장난스럽게 해도 되는가?
↳아니다. 증인의 자세로 해야 한다.
↳증언은 사람에게 하지만, 그러나 절대로 장난스럽게 하지 않는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 증언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

-예전에 세례를 받기 위해서 3가지를 외워야 했다.
↳사도신경과 더불어 주기도문, 십계명이다.
↳사도신경은 믿음의 내용인데, 사도신경대로 믿는지를 확인받지 않고, 사도신경을 외우는지를 확인하고 세례를 받게 했다.

-“나는 ~ 믿습니다”는 건 믿음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알아야 제대로 믿을 수 있다.
↳처음에 예수를 믿는 것은, 알아서 믿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때 믿어지는 것이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믿음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교회에 대해 구원에 대해 종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믿을 수 있다.
↳바로 아는 만큼 바로 믿을 수 있다.
↳확실히 아는 만큼 확실히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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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어야 하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셨다.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건 누군가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아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라고 고백한 게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가리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이다.

-여기서 “엘”은 하나님을 뜻한다.
↳권세와 능력자란 의미가 있다.
↳“엘”의 복수형이 ‘엘로힘’이다.

-“샤다이”는 ‘샤드’에서 파생되었는데, 엄마의 젖가슴을 의미한다.

-그럼 “엘 샤다이”는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또한 아이에게 젖을 물려서 생명력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것이 부성(父性)에 해당한다면, 아이에게 젖을 물려서 생명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은 모성(母性)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부성애적인 요소와 모성애적인 요소가 다 있다.

-“전능”을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일에나 못함이 없이 능함’이라고 풀이했다.
↳못하는 게 없는 거, 다 할 수 있는 것이, 전능의 사전적인 의미다.
↳맞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하나님이 못하시는 게 있다면, 그분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는 기적이 없다.
↳기적은 사람에게만 존재하지,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기적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그걸 기적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반면에 사람은 전능할 수 없다.
↳사람이 유능할 수는 있어도, 전능할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무능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그 하나님의 개입이 일명 기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나는 결코 기적을 무시하지 않는다.
↳내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적을 위해 기도하고, 기적을 기대한다.
↳하지만 기적을 남발하거나 오해해선 안 된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때, C. S 루이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지만, 아무 일이나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마귀는 예수님한테 다가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다.

-만일 그 말을 나한테 했다면, 그건 전혀 시험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가?
↳내가 아무리 배고파 눈에 헛것이 보여도, 돌로 떡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한테는 그게 충분한 시험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병이어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12광주리를 거두게 하실 수 있는 분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실 수 없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는 대신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실 수 있지만, 돌들로 떡 떵이가 되게 하시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다 하신 게 아니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셨다.
↳하고자 하시는 바를 하셨고, 하고 싶지 않은 바를 하시지 않았다.

-이삭이 아들 야곱을 축복할 때를 보라.
창 28: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축복하지 않았는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기 전에, 이삭이 축복했다.
↳그런데 라반의 집에 가서 많이 당했다.
↳외삼촌이면서도 조카의 임금을 속이고 부당하게 노동 착취를 일삼았다.
↳그런데 어떻게 야곱이 버틸 수 있었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도 주관하시는 분이다.

-훗날 야곱이 외삼촌 앞에서의 고백을 들어보자.
창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이삭이 살고 있는 가나안과, 야곱이 머물고 있는 하란은, 1,000Km는 떨어져 있다.
↳하지만 이삭의 축복기도대로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고서야,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오직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이었기에 가능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요셉 앞에서도 고백했다.
창 48: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기력이 쇠하여 다 죽어가던 야곱이다.
↳그런데 요셉이 왔다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인도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야곱을 인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코로나 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우리에게, 그분은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코로나 19를 바라보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코로나 19를 묵상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묵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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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란 사실이 감사하다.
↳전능자가 폭군이었다면,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전능자가 악당의 괴수라면, 진짜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란 게 축복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아버지와 자녀 관계로 묘사한다.
↳본래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였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인정해주셨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을 가리켜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기도 했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예수님의 아버지라는 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현장으로 가보자.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보다 더 직접적인 말씀을 보자.
요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어떤 분이, 하나님이 예수님의 아버지이고 또한 우리의 아버지니까, 우리가 예수님한테 큰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말이야 틀린 말이 아니다.
↳“큰행님 예수”
↳“큰행님 예수”가 “그리스도 예수”, “주 예수” 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이 형제자매가 된다.
↳우리가 큰행님하고 싸울 일은 없지만, 형제자매끼리 싸운다.
↳그러면 큰행님이 “야들아,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하는데도 말 안 듣는다.
↳되레 눈을 치켜뜨고 “큰행님은 좀 가만 있으소.”
↳“큰행님은 못 본 체 하는 게 좋겠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특별할 게 있겠나?
↳우리가 믿음의 가족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격 없는 우리,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가,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한 번 더 확증해 주고 있다.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오직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였다.

-그래서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거였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어떤 사람이 처음에 교회에 나왔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 대서, 한 동안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 아버지는 좋은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육신의 아버지는 완벽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는, 죄인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려고,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다.
↳본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거꾸로 하나님이 치러주셨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하셨다.
↳언제라도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심야에도...
↳어디서도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차 안에서도, 배 안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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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창조주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하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건 이미 하나님의 전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전능하시지 못한 분이,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겠는가?
↳문제는 누구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어떤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만가지 추측이 난무하다.
↳별의별 가설들을 주장하곤 한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이다.
↳진화론을 이야기하려고 하다보니까, 지구의 나이를 많이 잡을 수밖에 없다.
↳진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연히 어떤 무기물이 생겨나 생명체가 되었고, 유기물로 진화하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고등생명체 곧 인간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가, 99%가 같고 1%가 다르다고 한다.
↳그럼 시간이 지나서 다른 1%가 0.9%가 되고, 0.8%가 되고, 마침내 0%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침팬지는 어디까지나 침팬지일 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의 침팬지는, 지금도 여전히 침팬지일 뿐이다.
↳왜 동물을 사람의 조상으로 만들어, 스스로를 동물의 후예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선언한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그만큼 존귀한 존재라는 말이다.
↳왜 신의 형상을 가진 존귀함을 버리고, 동물의 후예가 되려고 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창세기 1장 1절은 선포이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창조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둘 중 하나를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든지, 천지가 자연발생적으로 진화를 통하여 있게 됐다고 믿든지 이다.
↳진화론이 과학책에 나오니까, 학문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진화론은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신봉하고 신앙한다.

-오늘날 과학계에서 창조론을 주장하면, 왕따를 시키고 이단아 취급을 당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 중에서, 진짜 믿음 좋고 실력이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

-요즘 과학이 하나님의 영역까지 침범할 기세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몸에 있는 피 한 방울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게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이다.
↳창조냐 진화냐는 해묵은 논쟁이 아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게 신앙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 말씀을 믿는다.
↳모든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주장해도,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 말씀을 굳게 믿는다.
↳이게 절대 진리이고, 우리가 존재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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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믿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존재 목적인 셈이다.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예배자로 살아야 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쏟아서 예배해야 한다.
↳한 주간 내내 예배를 사모하고 기대하라.
↳주일 예배에 집중하라.

-또한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지키며 살자.
↳하나님의 자녀로 살 때, 존귀한 인생으로 살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타인에게도 있기에,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자.
↳그래서 우리를 예수 피로 자녀 삼아주신, 그 아부지 하나님을 맘 편하게 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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