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1: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창 16:7-1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5-24 13:01
조회
864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1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창 16:7-16)
2020. 5. 24.


프롤로그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믿음의 사람 아브람도 실수를 했다.
↳어쩌다 한번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실수의 연속이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녀를 기다렸지만, 십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큰 실수라고 부르는 것은, 그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이기 때문이다.

-실수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본질적인 실수가 있고, 순간적인 실수가 있다.
↳본질적인 실수는 구원을 잃어버려 멸망에 이르는 실수이다.
↳순간적인 실수는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지만, 약속의 말씀을 놓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아브람의 실수는 순간적인 실수이다.
↳믿음은 있지만 믿음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은 받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아브람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의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하갈은, 자신이 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주인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사래는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아브람도 예상하지 못한, 아주 의외의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사래는 결정적인 위기로 느꼈고, 아브람을 향해 “돌격 앞으로”를 했다.
↳더 이상 사래에게서 정숙하고 현숙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상황이 이쯤 되자, 아브람은 두 여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주 무책임한 해법을 내놓았다.

-그 해법이 무엇인가?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이번 일은 처음부터 당신이 꾸민 거니까, 마무리도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거였다.
↳비겁한 자세이자 무책임한 태도이다.
↳아브람은 어떻게든 책임 있는 자세로, 그 일에 임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브람은 가장으로서의 리더십을 포기했다.
↳가장으로서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물론 아브람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자기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사래가 자꾸 그렇게 나오니까 마지못해 그렇게 했다고, 얼마든지 핑계할 수 있고, 또 사실 그런 면도 없지 않다.
↳사래가 1차 원인을 제공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브람이 지금 내놓은 해법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처럼 남편이 ‘내편(?)’임을 확인하고 기세등등해진 사래는, 거꾸로 하갈을 학대하기에 이르렀다.
↳얼마간 멸시 당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하갈을 좋게 대해줄 수 없었다.
↳사래의 하갈에 대한 학대는,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다.
↳하갈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니, 차라리 도망이라도 쳐보자.”
↳하갈이 몸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나이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행동에 옮길 수 있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있어야 할 하갈이 보이지 않는다.
↳아브람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사래 앞에서 드러내놓고 걱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래는 하갈이 없어진 것에,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낫다고, 나쁜 맘이 들었다.

-하갈은 도망쳐 광야로 갔다.
↳종의 신분으로, 광야가 아닌 다른 어떤 곳으로도 갈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주인집에서 도망치는 종은, 누가라 할 것 없이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갈은 홀몸이 아니다.
↳아이를 뱃속에 가진 채, 그것도 광야로 도망을 친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광야는 목마름과 굶주림이 있는 곳이다.
↳광야는 낮의 무더위와 밤의 추위가 있는 곳이다.
↳광야는 온갖 독충들과 맹수들이 들끓고 있는 곳이다.
↳하갈이 광야에서 살아남기란 거의 힘들다고 봐야 한다.

-하갈이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 앞에 나타났다.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신 것이다.
↳하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이 있는 광야 길로 내달았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갈은 죽고 싶은 심정으로, 광야를 선택했을지 모른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그토록 자기에게 잘 대해주던 여주인이, 그렇게 자신을 학대할 줄 몰랐다.
↳또 자기 자식을 잉태한 여자를, “나 몰라라” 외면하는 주인에 대해, 극도의 배신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무렵, 하나님께서 하갈을 찾아와 주셨다.
↳샘물을 마련하시고, 하갈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그녀를 찾아와 만나주었다는 것이다.
↳하갈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갈을 찾아오셨다는 게 중요하다.
↳하갈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갈을 만나려고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녀가 인생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 때도 보고 계셨고,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광야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도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남모르는 고통을 받을 때가 있다.
↳부부간에도 돌아누워서 눈물 흘려야 할 때가 있다.
↳부모가 자식들 몰래 큰 한숨을 쉬어야 할 때가 있다.
↳자신을 포기하고 싶고, 살아있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할 때가 있다.
↳가까이 있으며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상처를 주고 갈등을 부추길 때가 있다.
↳그 때 우리가 이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분은 인생의 광야를 걸으며, 타는 목마름을 겪고 있는 우리를 위해, 한 샘을 준비하시고, 샘 곁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하갈을 부르셨다.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주인 사래에게 학대를 당하고, 주인 아브람에게 버림을 받은 채, 집에서 도망치고 있는 하갈에게, 하나님이 말을 걸어 오셨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만 알기 쉽다.
↳그래서 사래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지만, 하갈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것이라고 속단한다.

-아니다. 하나님은 하갈도 사랑하신다.
↳하갈은 지금껏 누구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들어보지 못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신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그냥 “하갈아” 하지 않고, “사래의 여종 하갈아” 했다.
↳이것은 하갈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이다.
↳네 위치가 본래는 사래의 몸종이었다는 말이다.
↳이 말에 하갈은 아마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아니 이 낯선 분이 어떻게 내가 사래의 여종이란 사실을 안단 말인가’

-하갈은 다소 긴장된 얼굴을 하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쪽에서 계속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계시면서, 또한 어디로 가는지 뻔히 아시면서, 그렇게 물으셨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질문은 성경에 자주 나온다.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요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닌 것이다.
↳다 아시면서도 물어보는 질문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것은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은 대학생 시절에나 하는 것으로 보면 안 된다.
↳이 질문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왔다.
↳그리고 얼마 동안 이 세상에서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분 계시는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럼 하갈은 뭐라고 대답을 했는가?
↳“어디서 왔느냐”의 질문에 대한 댜답을 했는가?
↳했다.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그럼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대답을 했는가?
↳안 했다.
↳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도망자의 신세이다.
↳이게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삶이다.

-인생의 문제는, 세상에 태어나긴 했는데, 과연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데 있다.
↳전도가 무엇인가?
↳그들에게 인생의 최종 목적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곳에 어떻게 가야하는지, 그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 하갈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나님은 하갈에게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하신다.
↳제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너를 도와주겠다든지, 아니면 내가 대신 복수를 해주겠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겠다든지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대에 못 이겨 겨우 도망쳐 나왔는데, 여주인에게 돌아가라는 것이다.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는 말은, 예전의 몸종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하갈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만약 여러분이 하갈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하나님, 나 죽었으면 죽었지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갈도 분명히 갈등했을 것이다.
↳만약에 하갈이 ‘그것만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면, 하나님이 뭐라 하셨을까?
↳“그래? 그럼 뭐 네 알아서 해라. 죽든지 말든지 나는 모른다” 하셨을까?
↳아니면 “아니야 그곳으로 돌아가야 해. 지금은 그게 사는 길이야” 재차 말씀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셨을까?
↳사래가 여주인이니까... 가진 자의 편을 들어준 건가?
↳하나님도 종은 무시하고... 주인의 손을 들어준 건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오히려 약자를 더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다.
↳힘 없고 빽 없고 돈 없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다.
↳하갈더러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신 것은, ‘네가 그렇게 하면 그 뒤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사래에게 미리 손을 써놨다는 것이다.
↳그럼 하갈에게 남은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하갈이 도망쳐 나온 가정은, 복의 근원인 가정이다.
↳그녀가 현재 서 있는 곳은 광야이다.
↳복의 근원 가정인 아브람의 집에서 나오면, 자유와 희망이 넘칠 것 같지만, 사실 그녀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굶주림과 목마름을 동반한 고생뿐이다.

-우리도 교회 생활을 하면서, 서로 맘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교우들 간에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목회자와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때 교회 문을 박차고,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
↳‘이 교회 아니면 내가 갈 곳 없을까봐’ 하고 나가보지만, 막상 나가면 자기 영혼을 믿고 의탁할만한 교회가 마땅치 않다.
↳포항에도 500여명 정도는, 뿌리를 내릴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교회를 보면, 실제로 좋은 교회로 보인다.
↳또 자기 교회 교역자가 좋은 목회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교역자를 보면, 실제로 좋은 목회자로 보인다.

-참된 행복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있다.
↳사명자로서, 직분자로서 제자리에 서는데 있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제자리를 지키는데 있다.
↳일탈은 호기심은 만족시켜줄지 몰라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걸림돌이 무엇인가?
↳불순종이다.
↳이 불순종을 극복해야 산다.
↳지금 하갈은 기로에 서 있다.
↳감정에 충실하여 불순종하고 죽을 것인가, 이를 악물고라도 순종하여 살 것인가...
↳분명한 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뒤를 봐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내 뒤를 봐주십니다.”

-잠시 머뭇거리는 하갈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하갈은 약속의 자녀를 잉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씨를 축복하셨다.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럼 이삭의 특권이 무엇인가?
↳이삭의 자손 가운데서 메시야가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 예언이 이루어지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인가?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씀이다.
↳그 자리로 돌아가면, 여주인한테 맞아 죽을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들을 선물로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갈이 그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 누구인가?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의 뜻은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 이다.
↳말씀에 순종한 하갈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녀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을 갖기 원한다.
↳하나님이 우리 편만 사랑하기를 원하고, 내 식구만 돌봐주기를 원하곤 한다.
↳하나님이 내편이 아닌 사람에게는, 잘해주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만일 교회별 시합이 있는데, 각 교회들마다 다 자기 팀이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누구 편을 들어주셔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도 사랑하실 수 있다.
↳그가 내 원수지 하나님의 원수는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가 많은 남한만 사랑하지 않는다.
↳교회가 거의 없는 북한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배부른 남한보다, 배고픈 북한을 더 불쌍히 여기지 않겠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도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이 말씀은 앞으로 이스마엘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삶을 예언하고 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들나귀의 특징이 무엇인가?
↳길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들나귀는 잡아서 길들이려고 하면, 길길이 날뛰다가, 언젠가는 사람을 박차고 도망친다.
↳이스마엘 후손들이 이런 기질을 갖고 살아갈 것을 말한다.

-또 이스마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이라고 합니까?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래서 그들의 손에 칼과 피가 있나보다.
↳그들에게서 나온 이슬람교는 코란과 칼을 들고 포교를 한다.
↳이스마엘 후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린다.

-하갈이 하나님을 만났다.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하갈의 생각에는, ‘여호와가 사래의 하나님일 뿐 나의 하나님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사래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하나님은 적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서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맞다. 하나님은 주인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종이나 머슴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하갈은 자신을 만나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는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갈을 살펴주셨다.
↳하갈의 한숨 소리를 들으시고, 아파하는 것을 살피셨다.
↳하갈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뵙고, 한 동안 감격에 휩싸였다.

-하갈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사래에 대한 분노가 풀렸다.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 원수를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신다.
↳사랑할 용기도 주시고, 용서할 용기도 주시고, 회개할 용기도 주신다.

-하갈은 하나님을 만난 장소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다.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갈은 그 샘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이다.
↳살다보면 왜 힘든 일이 없겠는가?
↳더구나 종살이가 얼마나 고달팠겠으며, 첩살이가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하갈은 그때마다 브엘라헤로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브엘라헤로이 샘을 떠올리며, 자기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갈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아브람의 집으로 여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갔다.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아브람은 웃으며 그녀를 받아주었다.
↳자기를 학대했던 사래도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잃은 식구를 다시 찾은 것 같이, 서로 좋아해주었다.
↳집안이 회복되었다.
↳아브람도 어느 정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래도 부담을 덜기는 마찬가지였다.

-하갈은 두 사람의 환대에 감격했을 것이다.
↳그 이후 그가 주인에게 얼마나 잘했겠는가?
↳두 번 다시 교만하게 굴지 않았을 것이고, 여주인을 멸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때 아브람의 나이가 몇 세인가?
↳86세이다.

-그럼 이스마엘과 이삭의 나이 차가 몇 살인 건가?
↳14살 차이다.

-그럼 사래가 이삭을 낳기까지, 앞으로도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14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사래와 하갈이 사이좋게 잘 지냈다는 말이 된다.

-사래는 윗사람으로서 처신을 잘 하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하갈도 아랫사람으로서 처신을 잘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 앞에서 종과 자유자가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다.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자와 존귀한 자가 함께 거하는 곳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함께 나누며 사는 사회이다.
↳사래와 하갈이 더불어 살아가고, 이스마엘과 이삭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셨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자리가,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축복한다.
↳이 한 주간도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