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7:그가 아브람을 축복하여 이르되(창 14:17-2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4-19 12:15
조회
773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7
그가 아브람을 축복하여 이르되(창 14:17-24)
2020. 4. 19.


프롤로그

-아브람이 조카를 구출하기 위하여, 사병 318명을 대동하고 그돌라오멜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아브람은 이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이미 한 차례의 싸움을 해야 했다.
↳그건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전쟁 전에도 자기와의 싸움을 했고, 전쟁 후에도 자기와의 싸움을 했다.

-아브람의 자기와의 싸움이 몇 가지로 나와 있다.
-첫째, 조카 롯을 용서하는 내면의 싸움이다.

-조카 롯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갔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적으로나마, ‘네 놈은 고생 좀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한데, 아브람에게서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데, 왜 내면의 싸움이 없었겠는가?
↳더구나 승산이 별로 없는 싸움에 참전해야 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말리는 싸움이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브람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그 싸움에서 이겼다.
↳적은 수로 그돌라오멜의 군사를 물리친 것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자기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것이 더 빛나는 승리이다.

-우리는 내면의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나를 섭섭하게 하는 사람에 대해 먼저 관용하고,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을 먼저 용서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을 얻었다고 해도, 진정한 승리자라고 말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 주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이다.

-아브람의 자기와의 싸움 둘째는 믿음을 드러내야 하는 싸움이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마음에 한정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표현되지 않는 믿음이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반쪽짜리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행함을 ‘모험’이란 말로 바꾸어볼 수 있다.
↳그럼 아브람이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의 모험에 있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롯을 사랑했어도, 하나님을 믿고 참전하는 모험이 없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롯은 여전히 포로로 잡혀 있을 것이다.

-믿음은 모험이다.
↳이 모험이 아브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조카 롯을 구하려 그 먼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병 318명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싸우는 것은, 믿음을 빼고 보면 무모한 일이다.
↳아브람은 그돌라오멜과 비교할 때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참전하여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아브람의 자기와의 싸움 셋째는 승전 후의 교만과의 싸움이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그는 개선장군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브람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겐 생명의 은인으로 대우받았을 것이고, 잃은 재산을 도로 찾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러 고마움을 표현했을 것이다.

-소돔왕 베라는 예기치 않은 승리를 안겨준 아브람을 영접하기 위해, 사웨 골짜기로 나왔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소돔 왕이 이렇게 할 위인이 못된다.
↳그는 악하고 교만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사웨 골짜기가 소돔에서 제법 멀리 떨어졌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뜨네기 목자 취급을 받고 있던, 별로 영향력 없는 아브람이었는데, 소돔 왕이 직접 영접을 나올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면 이렇게 된다.
↳내가 높아지려고 발버둥을 치면, 오히려 낮아진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려고 맘먹으면, 소돔 왕 앞에서도 높이실 수 있다.

-이게 다윗이 고백한 역전승 아닌가?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 잔을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승리로 가는 과정은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해주신다.

시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 얼마나 멋진가?
↳별 쓸모 없는 돌 같고, 건축자의 발에 채여서 저리 제켜놓았는데, 건물을 완공하고 보니, 그 돌이 머릿돌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실제로 그랬지 않는가?
↳우리는 주님이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았고, 그분이 설교하셨다 하면 구름 떼처럼 몰려든 것으로 알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가 메시야로 대접받기는커녕, 선지자보다 대접이 못했다.
↳결국 죽으실 때 어떠했는가?
↳마치 주인 없는 개처럼 끌려가, 저주의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님은 과연 그렇게 비참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났는가?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높여주시니까...
↳그 흔해 빠진 예수란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었다.
↳그 예수란 이름 앞에, 모든 사람들이 무릎 꿇게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 이름을 시인하는 것이 되었다.

-사람에게 높임받기 위해서는, 별의 별 짓을 다해야 한다.
↳그 정성을 하나님께, 그 시간을 하나님께, 그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게 지혜다.

-아브람은 그 상황에서 충분히 교만해질 수 있었다.
↳그도 사람이었는데,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순간적으로 갈등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옆에서 누가 자꾸 부추겼으면, 넘어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럴 때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왕이 등장한다.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살렘 왕 멜기세덱이다.
↳하나님께서 멜기섹을 아브람에게 보내신 것이다.
↳만약 아브람이 멜기세덱을 만나지 못했다면, 교만에서 넘어졌을지 모른다.
↳원래 정상에서 만나는 시험은, 더 이겨내기 어려운 법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인물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사사 중에 ‘입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엄마가 기생이었으니, 당연히 서얼 출신이다.
↳출생신분이 좋지 않았다.
↳놀림을 받고 차별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들로부터 집에서 쫓겨났다.

-그는 출발부터 한계를 지녔던 것이다.
↳분명히 절망적인 상황인데,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대신 이를 악물고 무예를 닦았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역사 공부를 했다.
↳그래서 그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그런 소문이 멀리까지 났다.
↳잡류인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잡류인생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찾아왔다.
↳드디어 자기의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전쟁터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는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그처럼 절망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소수의 이스라엘 군인들을 이끌고, 암몬 연합군을 보기 좋게 물리쳤다.
↳이제 그는 길르앗의 장관이 되었다.
↳명실 공히 한 지파의 두목이 되었다.
↳그는 정상에 선 것이다.
↳그러나 정상에 오래 있지 못했다.
↳아니 정상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의 결정적인 실수 때문이었다.
↳잘못된 서원으로 인해, 자기의 무남독녀를 번제로 드린 것이다.
↳또한 시비를 걸어온 에브라임지파와 전쟁을 해서, 동족을 무려 4만 2천명을 죽인 것이다.

-이처럼 정상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브람도 별다른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을 아셨다.
↳그래서 멜기세덱을 보내주신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보살피시는 사랑이 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보내신 사람 멜기세덱은 어떤 사람인가?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멜기세덱은 전쟁에 참여한 사람도 아니고, 전쟁에 관련된 사람도 아니며, 아브람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곳에 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아브람에게 보내신 것으로 봐야 한다.

-멜기세덱은 성경에 나와 있는 인물 중에, 베일에 가려진 신비한 사람이다.
↳그는 족보가 나오지 않는다.
↳난데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왕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본문에서 그를 “살렘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

-살렘 왕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➀ 살렘을 예루살렘의 옛 이름으로 보는 것이다.
↳그럼 멜기세덱은 살렘이란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란 말이다.

➁ 살렘을 지역 이름이 아닌 의미로 보는 것이다.
↳“살렘”의 무슨 의미인가? 평화이다.
↳그가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강탈하지 않고, 평화롭게 다스렸기 때문에, 그에게 ‘살렘’이란 별명이 붙여졌다고 보는 것이다.

-두 가지 견해가 다 일리가 있다.

-다음은 멜기세덱이란 이름의 뜻을 살펴보겠다.
↳멜기세덱의 문자적 의미는 ‘의의 왕’이란 뜻이다.
↳물론 이름하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성경에서는 이름과 삶을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 멜기세덱에 대한 정보를 더 확인할 수 있다.
히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은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여느 제사장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아론의 후손만 될 수 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으니, 정확히는 판단하는 게 어렵지만, 그가 아론의 자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이 유다 지파면서 제사장인 것을, 멜기세덱의 예로 설명하고 있다.

-멜기세덱이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그리고 성경도 그것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
↳단지 그가 아브람과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은 먼저 아브람을 축복했다.
↳그는 승자인 아브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이건 당신이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치켜세우지 않았다.
↳아브람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했다.
↳아브람은 이번 전쟁에서 자신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옆에서 자꾸 ‘당신이 최고’라고 치켜세우니까, 살짝 교만한 마음이 들려고 했다.
↳그럴 때 멜기세덱이 이 부분을 확실히 짚어주고 있다.

-20절 앞부분...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께서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붙여주신 것이지, 결코 아브람의 능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칫 흔들릴 뻔한 아브람의 마음을, 곧바로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다.
↳멜기세덱은 그런 의미에서 참된 선지자이다.
↳아브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했던 선지자였던 것이다.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이 없었다면, 아브람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을 하게 하시려고, 멜기세덱을 아브람에게 보내셨다.
↳물론 인간적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 수 있는 말이다.

-목회자의 어려운 점이 이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과 사람의 음성이 함께 들려올 때, 당연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럴 때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 일로 사적인 앙심을 품는 교인도 혹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목사를 더 좋아할까? 사람의 뜻을 따르는 목사를 더 좋아할까?
↳대답하기 참 곤란한 질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목사를 더 좋아할 거 같아도, 실제로는 사람의 뜻을 따르는 목사를 더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이,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목사가 인기가 있다면, 목사가 사람의 말을 전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20절 뒷부분을 보자.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람이 멜기세덱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자기에게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마음으로 고백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 고백의 표시로 한 것이 무엇인가?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준 것이다.
↳여기에 아브람의 위대한 승리가 있다.

-십일조를 율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맞다....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다.
↳십일조 할 때 “조”가 한자로 세금 조(租)이다.
↳그러니까 십일조가 징수의 성격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십일조는 율법 그 이상이다.
↳십일조는 율법을 뛰어넘는 것이다.
↳아브람이 십일조를 어떻게 드렸는가?
↳자원하여 드렸다.
↳누가 옆에서 드려야 복 받는다고 해서, 복 받을 욕심으로 드린 것이 아니다.
↳드리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해서, 겁먹고 억지로 드린 것도 아니다.
↳그 어떤 물리적인 힘도 작용하지 않았다.

-아브람은 자신의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십일조의 정신이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서,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십일조를 포함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금은, 하나님이 내 삶에 함께 하셨다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복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헌금이다.
↳예전 부흥사들이 헌금에 대해 잘못 가르친 부분도 있지만, 그들의 말 중 “헌금은 믿음에 비례한다”는 말은 성경적이다.
↳그렇다고 액수만 놓고 믿음의 분량을 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마다 수입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헌금 액수와 믿음이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돈의 많고 적음을 보지 않는다고, 우리는 잘못 생각한다.
↳그래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헌금을 하지 않는다.
↳헌금은 자기가 쓸 것 다 쓰고 남은 돈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 먼저 드리고, 그 나머지로 내가 살겠다는 것이 헌금의 정신이다.

-아브람의 자기와의 싸움 마지막(네 번째)은 물욕과의 싸움이다.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소돔 왕이 “사람은 나한테 보내고, 물질은 아브람, 너 다 가져라” 했다.
↳당시 풍습으로는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 전리품은 다 갖게 되어 있었다.
↳아브람은 그것을 가질 수 있는 확실한 자격과 정당한 권리가 있었다.
↳아브람이 목숨을 걸고 되찾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동 왕의 제안에, 아브람이 어떻게 응하는가?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람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쉽게 말하면 이런 의미이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호의를 거절하겠습니다. 당신의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말할 것 같아서입니다. 당신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나를 축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은 단호하게 소돔 왕이 주는 재물을 거절했다.
↳아마 지난날의 아픈 기억도, 아브람이 재물을 거절하는데 한몫 했을 것이다.
↳아내를 팔아 엄청난 재산이 생겼지만, 그 재물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그 재산이 생긴 이후로, 롯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자신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그 불로소득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재물에 대해, 그리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신이 이 전쟁에 개입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참전했는가?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서 참전했는가?
↳자기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참전했는가?
↳아니다. 아브람이 전쟁에 개입한 것은 한 가지 이유였다.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롯을 구했다.
↳그것 하나만으로 만족한다.
↳그는 처음에 가졌던 목적에 충실한 셈이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사실 아브람이 초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는 상황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소돔 왕에게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닐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소돔 왕에게 그것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 받는 것이 사라지게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에 얽매여 있는 한,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이 주신 분복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것 이상을 가지기 위해서 부정한 수입을 노릴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엉망이 되고 만다.
↳우리는 마땅히 취할 수 있는 것과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먹이인줄 알고 덥석 물었는데, 그게 미끼란 것을 깨닫는 순간, 신세 망칠 수 있다.

-옛말에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아마 돈을 잘 써야 한다는 좋은 의미로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결과 중심으로 생각하는 함정이 있다.
↳돈을 선한 용도로 쓴다면, 어떻게 벌어도 상관없다는, 위험한 생각이 숨겨져 있다.

-분명한 것은, 믿음의 사람은 돈을 개같이 벌어서 안 된다.
↳정당한 방법으로, 올바른 노동을 통해서 벌어야 한다.
↳신앙과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가 돈에게 이겨야, 비로소 신앙에서 이길 수 있다.

-아브람은 자기는 전리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자신과 함께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당시 관례에 따라 전리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나와 똑같이 해야 한다고, 억지 부리지 않았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전리품을 받지 않았으니까, 너희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 않았다.
↳사실 자기가 받지 않는 것도 어렵지만, 상대가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해주는 것도 쉽지 않다.
↳자기 혼자 청렴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와 다르게 사는 것에도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두 가지 관점을 가져야 한다.
↳자신에게는 거룩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자비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은 힘써 성결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관용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자기와의 싸움에서, 끝까지 승리할 수 있다.
↳남은 삶을 자기와의 싸움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