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노아) 강해 6: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을 기억하사(창 8: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1-19 13:19
조회
81



구약인물(노아) 강해 5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을 기억하사(창 8:1-12)
2020. 1. 19.


프롤로그

-홍수의 심판 때 생사의 갈림길은 간단했다.
↳방주 안에 있느냐 방주 밖에 있느냐였다.
↳방주 안에 있으면 구원이고, 방주 밖에 있으면 심판이다.

-우리의 구원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 안에 있으면 구원, 예수 밖에 있으면 심판이다.

-노아의 방주는 구원을 상징한다.
↳그러나 구원의 전체적인 면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방주에 탔던 사람들이 바로 천국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목숨을 건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홍수 나기 전과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다.

-방주는 구원의 서정에서 중생과 유사점이 있다.
↳중생 곧 거듭남이란 관계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말씀의 씨앗이, 우리에게 떨어진 순간,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사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말은, 세상과 하직한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문제 많고 탈도 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생업에 종사해야 하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키우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산다는 말은, 우리가 당장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뀐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 우리 주요 관심사가 바뀐 것이다.
↳돈을 벌어도,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어디까지나 수단으로 보게 된다.
↳우리가 중생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에 즐겨 순종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홍수가 끝나고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노아는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방주에서 나와 보니, 막막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중생한 사람들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우리는 중생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소중함을 알았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했다.
↳전에는 돈 버는 거 자체에 목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니 더 중요한 것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직업을 선택할 때 선택의 폭이 좁고, 직장을 구할 때도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생을 하고, 성화의 단계에 있는 우리는, 이런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성화의 과정은, 노아가 홍수 후에 황폐한 땅을 일구는 것처럼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노아 자신이 감당해야 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자신이 땀흘려야 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자신이 연구해야 했다.
↳성화의 삶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아니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거룩하여 가는 과정은, 성령의 도움을 받되 성령이 전적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로부터 도움을 받되, 목회자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롱스태프는 이렇게 노래한다.
너 성결키 위해 늘 기도하며
너 주안에 있어 늘 성경보고
온 형제들 함께 늘 사귀면서
일 하기 전마다 너 기도하라

-성화의 삶을 위해서라면, 내가 기도해야 한다.
↳성결한 삶을 위해서라면, 내가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가 우리를 거룩으로 인도한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기도 안 해도 당장은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말씀 안 봐도 얼마간은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말 그대로 당장이다.
↳얼마간 살아 있는 것이다.
↳‘기도줄을 놓고 살고 있다?’
↳‘말씀을 덮어놓고 살고 있다?’
↳그러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겨우 숨만 깔딱깔딱 쉬고 있는 것이다.

-40일을 밤낮으로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방주 속에 타고 있는 노아 일행은, 이제 머지않아 곧 방주 안에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로도 거의 4개월 동안, 방주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불편했을 것이다.
↳만약 동물들이 그때쯤 잠에서 깨어났다면, 동물들도 갑갑하여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5개월 동안이나, 여러 종류의 생명체가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기적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방주 안에서 잘 살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과 동물들을 기억하고 돌보셨다.
↳하나님께서 방주 속에 있는 노아와 그 가족을 잊으셨을 리가 없다.
↳그렇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
↳건망증이 있는 하나님이라면,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

-단지 우리 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려움이 계속되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건가?’
↳고통의 현장에서, 그렇게 눈물의 기도를 올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건가?’
↳상황과 환경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이 아닐까하는, 신앙의 갈등 때문에 힘들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고, 그분이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될 때, 찾아오는 절대고독과 불안이 있다.

-하나님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다.
↳그분의 음성은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믿음만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도 이겨낼 수 있다.

-스페인에 이런 속담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체하실지 몰라도 결코 잊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한번 택한 자기 백성을, 절대로 잊으시는 법이 없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손바닥에 새겨놓고 기억하신다.
↳우리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께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원하신다.
↳하나님이 언제 일하시는가?
↳대개는 우리의 인내가 바닥이 나고, 조금 더 지났을 때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내가 바닥난 후부터,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 사이가 위기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다.’
↳이때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어떤 경우에도,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믿음이다.

-홍수가 끝나고, 하나님의 물 빼기 작업이 시작된다.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물을 줄어들게 하는 도구가 무엇인가?
↳바람이다.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기억하사, 바람을 땅위에 불게 하셔서, 물이 줄어들게 되었다.
↳바람을 불게 하심으로, 물을 원위치로 가게 하셨다.
↳하늘에서 온 것은 하늘로 가게 하셨다.
↳땅에서 온 것은 땅으로 가게 하셨다.
↳바다에서 온 것은 바다로 가게 하셨다.
↳바람을 이용하여, 본래의 질서를 회복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실 때도, 동풍 곧 바람을 사용하셨다.
↳우리는 모세가 홍해를 항해 지팡이를 내밀자, 곧바로 홍해가 쫘악~ 갈라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

출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었다고 했다.
↳그럼 바람이 밤새도록 불면, 오늘날도 바다가 갈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이때의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바람은 말씀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모세가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바람을 사용하셔서 홍해를 가르신 것이다.

-말씀의 바람이 불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라는 말은, 원 위치가 되었다는 말이다.
↳심판을 끝내실 무렵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원위치로 돌리셨다.
↳창조질서를 회복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무질서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혼돈과 무질서에 말씀의 바람을 보내셔서, 질서를 세우신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무질서한 삶을 살고 있는 분이 없는가?
↳말씀에 귀를 닫고, 정리하지 않은 채 오래 두면, 영혼에 문제가 생긴다.
↳커다란 불행이 닥치기 전에, 빨리 정리하는 게 지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무질서의 상태에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정에서 제자리에 서길 바라신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위치에, 어머니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남편은 남편의 위치에, 아내는 아내의 위치에서 탈선하지 않아야 한다.
↳자식은 자식의 위치에, 며느리는 며느리의 위치에, 사위는 사위의 위치에서 분명히 서 있어야 한다.
↳궤도를 이탈한 기차가 사고를 불러오듯, 자기 위치를 벗어나 있으면서,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미신이다.

-홍수 후 물이 빠질 때, 시간을 두고 서서히 빠진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쏟는 것은 순간이지만, 쏟은 은혜를 다시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기도의 불을 꺼뜨리는 것은 금방이지만, 꺼진 기도의 불을 다시 붙이는 것은 여간 힘들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데는 순간이지만, 말씀을 다시 가까이 하는 것은 오래 걸린다.
↳우리 몸을 죄짓는데 내어주는 것은 순간이지만, 죄로 인해 망가진 몸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잘못된 길에 빠져드는 것은 순간이지만,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는 긴 시일이 걸린다.
↳우리가 명예를 추락시키는 것은 순간이지만, 추락한 명예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억수로’ 어렵다.
↳우리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순간이지만, 잃은 신용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겁나게’ 어렵다.

-우리가 물이 엎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물을 엎어놓고 다시 담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방주가 한 곳에 머물렀다.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2월 17일 홍수가 시작되어,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고, 그때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럼 물이 땅에 차 있던 기간은 얼마인가?
↳150일간이다.
↳다섯 달 동안 방주가 표류하다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
↳‘아라랏 산’은 원어로는 ‘아라랏의 산들’이다.
↳이란, 터어키, 러시아 국경에 있는 큰 산 줄기인 것이다.
↳그 산들 중 한 곳에 방주가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방주 안에 있던 노아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이제는 방주생활을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 일행을 원위치로 복귀시키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일을 진행시키셨기 때문이다.
↳아라랏 산에 방주가 닿고도, 그들을 바로 나오게 하지 않으셨다.
↳떠다닐 때는 덜 했는데, 머물러 있으니까 다들 방주에서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머물러 있는 방주에서,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 얼마나 걸렸는가?
↳약 73, 4일쯤 된다.
↳이제 겨우 봉우리가 보일 정도이면 아직 멀었다.

-그들은 방주 안에서 아직은 많이 기다려야 했다.
↳노아가 이 세상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했는가?
↳마냥 기다렸다.
↳성질 급한 아들이, “아버지 이제 나가도 되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도, 노아는 하나님보다 결코 앞서지 않았다.
↳이것이 노아의 믿음이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말이다.

-또 40일을 기다려도, 방주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래서 노아는 어떻게 했는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열고 뛰쳐나왔는가?
↳그렇지 않다.
↳노아는 창문을 열고, 까마귀 한 마리를 내보냈다.
↳노아가 왜 하필 까마귀를 내보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까마귀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까마귀는 방주에서 나가 물이 아직 많이 있었는데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시체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답답한 방주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싫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까마귀는 연락병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여기서 건망증이 심한 사람을 가리켜, “야, 너는 까마귀 고기 삶아 먹었냐” 하는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연락병을 바꿔, 까마귀 대신 비둘기를 보냈다.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비둘기는 다시 돌아왔다.
↳앉을 곳이 없어서였다.
↳이 말은 물이 아직 덜 빠졌다는 말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때가 아직 멀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또 칠일이 지나,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냈다.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이번에 내보낸 비둘기가 돌아왔는데,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다.
↳물이 거의 빠졌다는 사인이다.
↳노아는 이때도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노아는 참 어지간히 무던한 사람이다.

-일주일을 더 기다린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냈다.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방주에 들어가는 일은, 전적으로 누가 주관했는가?
↳하나님이다.
↳동물들과 노아가족이 방주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
↳그러나 나올 때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수시로 물이 어느 정도 빠졌는지 말해주지 않으셨다.
↳방주가 아라랏산에 당도했을 때도, 앞으로 며칠만 더 기다리면 방주에서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지도 않았다.
↳노아로 하여금 알아서 판단하게 했고 분별하게 하셨다.

-우리가 구원받는 과정은, 노아 방주에서 볼 수 있듯이, 철저히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결코 사람의 방법으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기 속으로 난 자식도, 구원에 관한 한 어쩔 수 없다.
↳한 몸이라고 하는 부부도, 구원 문제만큼은 어찌해 볼 수 없다.
↳구원 문제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고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거저 해주시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는 안고 간다.
↳시간이 지나면, 안고 가지 않고 걸어가게 한다.
↳아무리 자식이 사랑스러워도, 돌이 지나면 걷게 해야 한다.
↳자식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제힘으로 걷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스스로 걸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기 위함보다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하고 아침 조깅을 하고 있었다.
↳막 뛰기를 시작했는데,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이 부자(夫子)를 보고는 막 웃었다.
↳뭔가 잘못된 게 있나 해서, 자기를 살피는데, 잘못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속으로 “별 이상한 놈들도 다 있다. 아침부터 웃긴 왜 웃어” 하고서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무리가 또 웃었다.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이 뭐 이상한 게 있나’ 하고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들놈도 멀쩡하자, “참 별꼴 다보겠네” 중얼거리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또 한참을 뛰는데, 또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래를 보니, 볼록한 배 밑으로 보이는 신발이 문제였다.
↳어떻게 하다 보니,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던 아버지가 나무숲으로 숨으면서, 아들 보고 말했다.
↳“아들아, 집에 가서 얼른 신발 좀 챙겨 와라.”
↳한참 있다 헐레벌떡 뛰어온 아들이, 아버지 보고 하는 말이...
↳“아빠 소용없어요.”
↳놀랜 아버지가 “야, 무슨 소리야” 하고 물었다.
↳그러자 평소 생각하기를 싫어했던 아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는 말이, “아빠, 집에 있는 것도 짝짝이에요.”

-스코트 팩은 이런 말을 했다.
↳“원죄란 교만이나 불순종이 아니다. 그것은 원죄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원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의 게으름이다.”

-하와가 사탄의 유혹 앞에, 조금만 더 생각을 깊이 했더라면...
↳또 아담이 하와의 권유에,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결코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말씀이다.
↳말씀을 알아야 한다.
↳말씀으로 판단하고,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기 위해서, 말씀을 깊이 알아야 한다.
↳말씀을 배워야 하고, 스스로도 연구해야 한다.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목회자가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목회자가 다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대신해 줄 수도 없다.
↳어릴 때는 목회자가 떠먹여주지만 계속해서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목회자는 팀에서 코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코치는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자이다.
↳선수들 하는 것이 아무리 답답해도, 코치가 대신 경기장에 나설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가 없어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어야 좋은 신앙이다.
↳목회자를 잘 만나는 것은 복이다.
↳여행에서 가이드만큼이나 신앙생활에서 목회자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목회자 때문에 신앙생활 잘하고, 목회자 때문에 신앙생활 못한다면, 그건 바람직한 신앙이 아니다.

-급한 일이 있을 때 기도하고 있으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신앙이다.
↳내가 서두른다고 빨리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짧은 시간 안에도 얼마든지 많은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뭘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는, 별 관심이 없으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느냐에 관심이 있으시다.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말씀을 더욱 사랑하여 가까이 하기를 바란다.
↳말씀에 길을 묻고 말씀의 안내를 받기를 바란다.
↳말씀하시는 주님을 묵묵히 따라가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따르는 자들을 기억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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