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주일(2019):나는 어떤 사람인가(딤후 4:6-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2-29 14:10
조회
27
송년주일(2019)
나는 어떤 사람인가(딤후 4:6-12)
2019. 12. 29.
 
 
프롤로그

-16세기에 영국의 한 부호 가정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는 조지 캐리이고, 둘째는 윌리엄 캐리였다.
↳두 아들은 모두 옥스퍼드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한 수재들이었다.
↳첫째인 조지는 돈을 많이 벌어서, 당대의 부호로 떵떵거리며 살았다.

-윌리엄은 어느 책에서 인도 이야기를 읽고, 인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그들에게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인도 선교사로 지원해서 그곳으로 떠나갔다.
↳그런 그의 행동에 대해, 집 안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

-친구들도 그를 가리켜 어리석다고 했다.
↳윌리엄은 인도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파하면서, 학교와 병원을 세웠고, 또한 성경도 번역했다.
↳이 윌리엄 캐리의 일생은, 근대 세계 선교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그를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대영 백과사전에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한 페이지 반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다.
↳그에 반해, 당대에 떵떵거리고 살았던 조지 캐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윌리엄 캐리의 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게 역사의 평가다.
↳역사의 평가는 이처럼 엄중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더 엄중하다.

-이 시간은 올해의 평가를 받는 시간이다.
↳오늘까지 52개의 주일을 맞았다.
↳스스로에게 주일성수의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될 거 같은가?
↳주일예배는 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다.

-올해가 오늘을 포함시켜도 사흘 남았다.
↳사흘도 짧지는 않다.
↳사흘은 무려 72시간이다.
↳분으로 계산하면 4,320분이나 된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부활까지 사흘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365일에서 362일이 지나고 사흘 남았으니 짧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 해를 시작도 잘 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마무리도 잘 해야 한다.
↳시작을 잘하고 마무리가 시원찮은 것을 용두사미라고 하지 않는가?
↳스포츠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의술이든 정치든 경제든 모든 것에 마무리가 중요하다.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나는 어떻게 걸어 왔는가?’,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나는 앞으로 남은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물어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내일을 긍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오늘의 본문은 바울의 인생 회고담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지금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고 달려가고 있다.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하여,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는 올해도 바쁘게 살아왔다.
↳그저 앞만 보고 정신 없이 달려왔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바쁘게 산 것 하고 잘 산 것 하고는 다르다.
↳열심히 산 것 하고 잘 산 것 하고도 다르다.
↳우리는 바쁘게 살기 전에 잘 살아야 한다.
↳우리는 열심히 살기 전에 잘 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종종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지금의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내 위치 파악을 제대로 하면 내일의 삶을 바르게 결단할 수 있다.

-가던 길을 잠깐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혜민 스님의 책 제목처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의 과거가 보이고, 나의 현재가 보이고, 나의 미래가 보인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작은 것들이 보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던 소소한 것들이 보인다.

-송년주일은 잠깐 멈춰 서는 주일이다.
↳바쁘게 달려가던 발걸음을 잠깐 멈추는 주일이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젖어보는 주일이다.

-바울은 자신에게 마지막이 이른 것을 직감하고 있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그는 전에도 로마에서 투옥된 적이 있다.
↳그게 사도행전 마지막 장에 나온다.
행 28: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그 때는 감옥이긴 하지만 가택연금 수준이었다.
↳2년 동안 집밖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게 바울의 1차 투옥이고, 이 무렵에 옥중서신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잠깐 석방이 되는데, 이 때 일명 4차 선교여행이라 불리는 선교여행을 떠난 것 같다.
↳바울이 땅 끝으로 여겼던 스페인 쪽으로 가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네로 때에 체포되어 2차로 투옥된다.
↳이 때는 1차 투옥 때와는 전혀 달라진 환경이었다.
↳들어가면 살아서 못나오는 감옥이었다.
↳바울은 끝내 그 감옥에서 순교를 당했다.

-여기서 전제와 같다는 말은, 바울이 순교의 제물이 될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길을 알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잠시도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온 바울이다.
↳엄청난 박해의 현장에서도, 굴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끊임없는 죽음의 파고를 헤쳐나온, 불사조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순교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네로에 의해 강제로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달려갈 길을 마쳤다.
↳인생의 완주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자연사를 할 수도 있고, 사고사를 할 수도 있다.
↳자연사를 하면 좋겠지만, 원치 않게도 사고사를 당할 수 있다.
↳자연사를 하면 인생의 완주를 한 것이다.
↳그럼 사고사를 하면?
↳역시 인생의 완주를 한 것이다.
↳그의 인생이 거기까지인 거고, 그러므로 완주한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장수하느냐 단명하느냐가 아니다.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7절의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앞뒤가 중요하다.
↳그게 바울이 어떻게 살았느냐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으니”
↳“선한 싸움을 싸우고”의 삶이라면 수명과 상관없이 잘 산 것이다.
↳“믿음을 지켰으니”의 삶이라면, 장수했느냐 단명했느냐와 상관없이 잘 산 것이다.

-바울이 그런 악조건 속에서 잘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예수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을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예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고백한다.
↳그 날에 자기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계신, 재판장으로 고백하고 있다.
↳더 나아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같은 면류관을 예비하고 계신 재판장으로 믿었다.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는 종교지도자들에게서 촉망받는 사람이었지만, 예수 믿은 후에는 면류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어떻게 그처럼 한결같이 달려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그 비결을 밝힌 것이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우리를 위하여도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라.
↳물론 예비되어 있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면류관을 받을 수 있게 살아야 받는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서, 우리 모두가 의의 면류관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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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자기와 함께 달려갔던 사람들 중, 몇몇 유형의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로, 믿음의 길을 잘 달리다가 어려움을 만나자 세상으로 되돌아가 버린 사람이 있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은 정한 이치다.
↳좋은 사람과는 헤어지기 싫다.
↳나쁜 사람과는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다.
↳언제까지 헤어지고 싶지 않아도, 하루 빨리 헤어지고 싶어도,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헤어질 날이 온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헤어지느냐이다.
↳만남도 중요하지만 헤어짐이 중요하다.
↳다시 볼 수 있도록 헤어져야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헤어지면, 다시 볼 때 힘들다.

-10절에 바울과 헤어진 세 사람이 나온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둘 다 목회를 위해서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데마는 조금 다르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 갔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는 믿음을 버렸다는 말이다.
↳데마는 믿음을 버리고,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린 것이다.

-앞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바울이 로마에서 1차 투옥 중에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썼다.
↳그 중에서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 데마란 이름이 나온다.
골 4: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몬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편지 말미에 동역자의 안부를 전할 때, 데마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음을 본다.
↳바울이 로마 1차 투옥 중에 있던 2년 동안, 데마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다.

-그러다 잠깐 바울이 석방되었다가, 바울이 2차로 투옥 되었을 때는 1차 때와는 달랐다.
↳네로에 의한 엄청난 박해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데마는, 그걸 피해 데살로니가로 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바울은 데마가 자신을 떠난 것도 섭섭했지만, 그보다는 그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것이 더 안타까웠다.

-그 전에도 복음을 전할 때 고난이 왜 없었겠는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죽을 정도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네로에 의한 박해는 순교를 각오해야 했다.
↳전도자의 대표인 바울이 투옥되는 상황을 보고, 데마는 세상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사람은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좀 불편해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면 주저한다.
↳데마가 바울을 떠난 것은 바울의 2차 투옥 때문이다.
↳앞으로 바울 없이 걸어가야 했기에, 그 길이 두렵고 떨렸고,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한 믿음이 되지 못했고, 그만한 신앙이 되지 못했기에, 도망치는 세상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데마는 평안할 때 잘 달리다가, 어려움이 오면 도망을 치고 마는 유형이다.
↳교회에 출석 잘 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뒷걸음친다.
↳예배 잘 참석하다가,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주춤한다.
↳예수 믿어서 형통해졌다, 그러면 교회 출석 잘할 수 있다.
↳예배 참석도 잘 할 수 있다.

-문제는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이다.
↳인생의 엔진이 고장났을 때이다.
↳오히려 예수 믿기 전보다 상황이 악화됐을 때이다.
↳그 때도 예수님을 붙드는 자, 그 때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자, 그가 데마를 뛰어 넘는 사람이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는 말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주요한 원동력은 믿음이다.”
↳믿음은 우리가 주님을 따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것도 극복하고 주님을 따를 수 있다.

-믿음 없으면 데마 같은 낙오자 될 수 있다.
↳중간 탈락자가 될 수 있다.
↳바울처럼 믿음을 지키자.
↳그래서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자.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우리 모두 의의 면류관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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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잘 달린 사람이 있다.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누가는 유대인이 아니다.
↳누가는 헬라인으로서 직업은 의사였다.
↳당시 의사의 신분은 높은 편이 아니었다.
↳누가는 다소에서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후 선교의 사명을 느끼고,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누가는 바울의 선교 여행에 항상 동행하였다.
↳의사로서 바울의 병약한 몸을 돌보아주는 주치의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단순한 주치의에 머문 것은 아니다.
↳그는 신앙적으로도 탁월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인 누가복음을 기록하였다.
↳바울과 동행하며 목격한 사실들을 토대로, 초대교회의 역사인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누가의 최고 장점은 그의 변함없는 태도이다.
↳누가는 바울과 동행한 이후 변함이 없었다.
↳바울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복음을 드러냈다.
↳바울의 말년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두가 바울을 떠났지만, 그만은 끝까지 바울과 함께 했다.
↳참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늘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다.
↳너무들 영악하다.
↳얼마나 계산에 빠른지 모른다.
↳소나무와 대나무처럼 절개를 지키는 사람이 드물다.
↳계산에 능하여 약삭 빠르면 자칫 양쪽에서 버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변함 없으신 분이다.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불변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이 변함 없는 사람을 좋아하실까?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을 좋아하실까?

-변덕이 심한 사람을 보면 일편단심이 아니다.
↳두 마음이다.
↳두 마음을 품으면 흔들리게 되어 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어려움을 맞는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친구로서도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에베소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첫 번째로 언급되었다.
↳여러 가지 칭찬을 받은 교회다.
↳그런데 결정적인 책망을 받았다.
계 3: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주님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호된 책망을 받았다.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했으니까, 처음 사랑이 있었다는 말이다.
↳처음 사랑은 뜨겁다.
↳순수하다. 계산적이지 않다.
↳희생적이다. 그가 좋으면 나도 좋다.
↳에베소 교회에 그런 처음 사랑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사랑이 식어지고 말았다.
↳주님의 사랑에 무감각하다.
↳교회가 냉랭하다.
↳성도들 간의 사랑이 차갑다.
↳영혼에 대한 열정도 없다.
↳사명에 대한 열심도 없다.

-우리의 믿음은 가만히 두면 점점 식어진다.
↳은혜의 자리로 자꾸 나아가야 한다.
↳믿음의 사람과 자주 교제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데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개인적 만남보다 공적인 만남, 공적인 소그룹 모임이 유익하다.
↳그곳에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유익이 더 크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하는 것이다.
↳공동체로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끝까지 달려갈 수 있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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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중간에 한번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 잘 달린 사람이 있다.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를 부른다.
↳자신의 인생을 마감해야 할 때가 이르렀음을 직감하고, 아들과 같은 디모데를 부르고 있다.
↳아마 편지로 못 다한 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대신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내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한테 특별한 부탁을 하고 있다.
↳자기에게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는 거였다.
↳마가가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오순절 성령강림의 장소인 다락방의 주인 아들이다.
↳후에 로마인들을 위한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기도 했다.

-바울과 마가가 처음 만난 것은,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때였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와 동행했다.
↳그러나 마가는 선교 여행 중 탈락하여, 고향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마 좋은 환경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란 까닭에, 선교 여행의 어려움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일이 원인이 되어, 제2차 선교여행을 앞두고,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었다.
↳보통 심하게 다툰 것이 아니었다.
↳관계중심형의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고, 일중심형 바울은 마가를 데려가 봤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웬만하면 바울이 져야 한다.
↳바울이 바나바한테 얼마나 신세를 많이 졌는가?
↳그런데 바울은 질 마음이 없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결별하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각각 선교 여행을 떠났다.

-마가는 바울에게 버림 받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후로 성경에서 마가의 소식이 중단된다.
↳그러다가 옥중서신을 통해서, 바울이 옥에 있을 때 마가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바울이 마가에 대해,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한다.
↳바울이 말한 나의 일이란 복음 전도이다.
↳1차 선교 여행을 망친 마가이다.
↳2차 선교 여행의 분위기를 깬 마가이다.
↳그런데 그가 언제부터인가 바울의 일에 유익한 자가 되어 있다.

-우리는 마가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재기하여, 바울의 일에 유익한 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나바와 함께 하면서, 회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가는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다.
↳베드로와 한동안 함께 지낸 것으로 보이는데, 베드로의 도움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마가가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의 실패 경험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상처 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치유 받은 자가 치유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마가의 재기를 돕고자, 베드로를 붙여주셨던 것이다.

-바울이나 누가는,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사람이다.
↳반면 마가에게는 묘한 친숙함이 느껴진다.
↳그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한 두 번씩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인생이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종종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패 때문에 버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베드로는 실패의 경험으로 실패자 마가를 회복시켰다.
↳마가는 상처 받은 치유자 베드로를 통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과거의 실패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
↳내 실패의 경험이, 다른 사람을 일으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

-예전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
↳내 받았던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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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여 예수를, 교회를 떠나지는 말라.
↳누가처럼 변함없는 예수님의 제자, 교회의 일꾼이 되라.
↳마가처럼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 복음 전도에 유익한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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