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노아) 강해 3: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창 6:13-2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2-15 13:23
조회
88



구약인물(노아) 강해 3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창 6:13-22)
2019. 12. 15.


프롤로그

-지나간 세기의 유명한 무신론자 중에, 로버트 잉거솔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무신론 강의 도중, 탁상에 시계를 꺼내 놓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하나님께 5분의 시간을 주겠다. 내가 5분 동안 하나님을 저주할 터인데, 그 동안에 나를 죽이기를 바란다. 내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거나 있어도 실패자에 불과하다.”

-침묵의 5분이 지났다.
↳학생들도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5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승리자요 신은 실패자라고 외쳤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데오도르 파커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런 흥미로운 말을 했다.
↳“과연 하나님이 실패한 것일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5분으로 단축시켜 보려고 한, 잉거솔의 무모하고 의미 없는 시도가 실패한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짧다.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해선 안 된다.

-그러다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하나님의 인내도 끝날 날이 있다.
↳하나님께서 참았던 분노를 폭발하실 때가 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 영원히 참으시는 분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인내가 끝났을 때, 그분은 그동안 허락한 것을 다 거두어 가신다.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기 전에, 빨리 돌아와야 한다.
↳회개도 때가 있다.
↳돌아오는 데도 타이밍이 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회개의 가장 적합한 때가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내가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는 지금이 회개의 가장 적합한 때다.
↳다른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다가올지 불분명하다.
↳오직 오늘이라 하는 날에 회개하는 자가 사는 것이다.

-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세상을 살리실 계획도 세우신다.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인간의 범죄가 분명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구원선을 예비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된 생활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으심을 볼 수 있다.
↳방주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 앞에, “너를 위하여”라는 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방주를,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만들라고 하지 않고, 노아 너를 위하여 만들라고 했다.
↳하나님은 방주에 들어갈 사람들이, 노아의 가족밖에 없을 것을, 이미 아셨던 것이다.

-교회는 엄밀히 말하면, 택한 백성을 위하여 지어진 집이다.
↳교회는 문이 항상 개방되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누구든지 오라고 초청한다.
↳그러나 아무나 오지 않는다.
↳택한 백성만 온다.
↳구원받기로 예비된 백성만 오는 것이다.

행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만 믿었다지 않는가...

-문제는 누가 구원받기로 예비된 자인지, 누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교회로 초청하여 복음을 듣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기로 예비된 자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저 네 나름대로 상식을 가지고 방주를 한 척 만들라’고 하지 않았다.
↳노아가 그렇게 만든 배로는 일 년 동안의 홍수를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가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모양의 배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방주였다.
↳그러니까 방주의 설계자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어느 날 노아를 불러놓고, 방주의 청사진을 보여주시고, 꼭 이대로 만들라고 하신 것이다.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구원이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완성되었듯이, 방주 역시 하나님의 아이디어로 계획되었다.
↳방주의 크기를, 우리들이 쓰는 미터법으로 환산해 보면, 대략 이렇다.
↳길이가 135미터 정도이다.
↳폭이 22.5미터 정도이다.
↳높이가 13.5미터 정도이다.

-방주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배’형태가 아닌 ‘박스’ 형태로 되어 있다.
↳방주의 원어가 ‘테바’인데, 출애굽기 2장 3절에 나와 있는 모세를 담은 갈대 상자를 ‘테바’라고 했다.
↳학자들에 의하면, 박스 형태로 생긴 배로는 전혀 속력을 낼 수 없다.

-사실 방주는 뱃머리도, 배꼬리도 없다.
↳또한 엔진이 없다.
↳엔진은 고사하고 노도 없다.
↳돛도 없고, 닻도 없다.
↳방향키도 없다.

-그렇다고 노아가 무슨 나침반을 가진 것도 아니다.
↳방주가 항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물 위에 안전하게 떠 있기만 하면 되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가르쳐 주신 방주의 크기와 양식은, 세상에서는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모양의 배였으나, 노아는 그대로 순종했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따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순종이다.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이상한 말을 하면, 굳이 순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강단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에 근거하여 말할 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말할 때, 자기 생각하고 조금 맞지 않더라도, 자기 경험한 바와 일치되지 않더라도,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과 어긋나더라도, 순종해야 한다.
↳그게 참된 순종이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나름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부교역자로 있을 때의 장로님 한 분은, 당시 모 중학교 교감이었다.
↳교회 와서도, 학교에서 교사에게 대하듯 부교역자를 대했다.
↳내가 교회 안에서 만난 분 중, 가장 피곤한 사람이었다.
↳그 교회 있는 동안, 그가 한 번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군인은 군대식으로, 의사는 병원식으로, 사장은 회사식으로 교회를 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올바른 봉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식으로 하는 것이 교회의 봉사다.
↳힘의 방식이 아닌 섬김의 방식으로 해야 참된 교회 봉사다.

-그 큰 방주에 창은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그 하나의 창은 공기와 햇빛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하나님께만 시선을 집중하도록 고안된 것일 것이다.
↳이것은 밖을 보지 않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리스도인 역시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 두면, 타락하든지 절망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정도를 걸어가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한다.

-여호사밧의 기도처럼 오직 주님만 바라봐야 한다.
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신앙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좁혀야 한다.
↳아니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돼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사람을 사건을 봐야 한다.

-노아의 방주생활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방주에서 나올 때까지 일 년 동안 계속 되었다.
↳일 년 동안 그들은 방주 안에서 꼬박 갇혀 살아야 했다.
↳이 생활은 정말 답답했을 것이다.
↳우리는 창문이라도 있어서 밖이라도 내다 볼 수 있다면, 덜 답답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설계에서 창문을 넣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아마 그들이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다면, 그들은 절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이 창을 열고 볼 수 있는 것은,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는 사람의 시체와 죽은 동물뿐이다.
↳그것을 보면, 탄식하고 절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밖을 보는 것을 차단하였던 것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세밀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가톨릭은 자유로운데 개신교는 금하는 것이 많다고 불평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지, 교회가 무슨 덕 보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말씀을 우리의 삶을 제한시키는 것으로 보기 시작하면 피곤하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면 편하다.
↳말씀을 벗어나면 자유로울 것 같은데, 실제로는 말씀 안에 있을 때 자유함이 있다.
↳말씀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은 언약이다.
↳언약을 하고 난 후, 언약을 지킬 때 자유로운가, 언약을 깨뜨릴 때 자유로운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였다.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7-18절에서 중요한 단어는󰡐언약󰡑이다.
↳집 주인이 그냥 집을 쓰라고 하면 사실은 불안하다.
↳언제 나가라고 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계약서를 쓰고 계약을 하면, 그 계약 기간 동안은 주인도 함부로 나가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노아와 계약을 세우실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노아와 계약을 세우심은 스스로를 제한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계약 내용이 무엇인가?
↳‘이 방주 안에 들어가면 내가 너희 모든 삶을 책임지겠다.’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방주 속에 있는 모든 생명을 지켜주셔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하신다면,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신 것이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언약하시는 분으로 나온다.
↳그리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구원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다.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 구원을 받게 된다.
↳언약이기 때문이다.

-방주 안에 있는 호랑이와 방주 밖에 있는 호랑이가, 다른들 얼마나 다르겠는가?
↳방주 안의 호랑이는 더 온순하고, 방주 밖의 호랑이는 더 사나운 게 아니다.
↳다 같은 호랑이다.
↳하지만 결과는 극과 극이다.
↳방주 안과 밖은 삶과 죽음을 가른다.
↳방주 안에 있느냐 방주 밖에 있느냐의 차이가, 생사를 결정한다.
↳예수 믿는 것과 예수 믿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날에는 영생과 영벌의 차이다.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갈라놓는 차이다.

-홍수 심판에서 구원의 길이 무엇인가?
↳방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방주가 아니다.
↳아무 배나 들어간다고 사는 것이 아니다.
↳18절 끝부분, ‘그 방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 방주’, 하나님이 지정하신 ‘그 방주’로 들어가야 한다.

- ↳그 방주의 출입구가 몇 개인가?
↳하나뿐이다.
↳요즘 배처럼, 승선하는 문이 따로 있고 하선하는 문이 따로 있지 않다.
↳각층마다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주적인 복음으로 알려진 요한복음도, 구원에 대해서만큼은 유일성을 말한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타종교에서는, 기독교의 구원관이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배타적이고 편협하다고 비판한다.
↳어째서 구원의 길이 예수밖에 없냐고 항의한다.
↳맞다. 인정한다.
↳그 점에 대해 변명할 수 없다.

-그런데 구원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구원을 주시는 분이 ‘그렇다’고 하니 할 수 없다.
↳고아원의 아이를 양자로 입적(入籍)한 분에게, 다른 아이가 달려가 분개하며 “왜 하필 그 친구입니까? 내가 그 애보다는 모든 면에서 월등한데...” 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구원의 유일성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구원의 문이 하나라도 열려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심판을 받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살 길을 하나라도 마련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래도 그렇게 따지고 시비를 걸어온 사람은, 구원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영혼을 위해, 실제로 기도하기 바란다.

-먼저 구원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하나님께서 장차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경고했을 것이다.
↳창세기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노아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벧후 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노아가 “오직 의”를 전파했다고 한다.
↳노아가 오직 방주에 들어와야 살 수 있다고 외쳤듯이, 우리도 오직 예수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전해야 한다.

-전도의 열정에 대해서는 바울을 능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딤후 4: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우리는 흔히 2절 앞부분의 말씀만 따로 떼어 생각하는데, 사실 1절 때문에 2절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세우셨다.
↳그러니까 홍수 심판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다.

-예수님의 재림도 그렇다.
↳주님의 재림 목적은, 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새롭게 하는 것은 질적인 변화를 말한다.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심판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판의 목적은, 멸망시킴이 아니라 생명 보존 즉 구원하심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한 사람을 택하셨다.
↳그 사람이 바로 노아이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
↳물로 심판하는 중에 생명을 보전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생명이 보존된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생명을 보존할 수는 없다.
↳최소한 가족의 생명이 나와 같이 보존되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가족 구원을 기본으로 친다.
19B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나와 함께 생명이 보존되어야 할 사람을 찾으셨는가?
↳그 사람을 위해 열심히 중보기도하기 바란다.
↳아직 못 찾으셨는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보기 바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인척일 수 있다.
↳가까이 있는 이웃일 수 있다.
↳대상자를 찾았으면 그 영혼을 위해, 내 영혼의 문제인 것처럼 기도하기 바란다.

-더 나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연만물의 청지기로서, 이 하나밖에 없는 초록별 지구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맑은 물, 푸른 나무, 아름다운 꽃을 물려주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실 물, 먹을 식량, 숨 쉴 공기가 언제까지나 넉넉하리라 믿었는데, 지금은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크게 보면 모든 피조물의 회복을 위해서이다.

-성경은 구원에 있어 일방적이지 않다.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심판으로부터 직접적인 구원은 누구의 소관인가?
↳하나님의 소관이다.
↳그런데 노아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모든 먹을 모든 양식을 가져다가 저축하는 것이었다.
↳방주에 타고 있어도 먹거리가 없으면 완전한 구원이 되지 못한다.

-이건 모든 면에서 그렇다.
↳우리에게 물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물을 아껴 쓰고, 댐을 만들어 저축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건강을 관리하고, 몸을 돌보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달란트를 잘 활용하여, 장사하여 갑절로 남기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실제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얻고 찾고 열리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의 하실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겨드리고, 내가 할 일은 내가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혼돈하면 안 된다.
↳노아가 그걸 잘한 사람이다.

-노아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다.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그는 순종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순종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심판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순종은 믿음의 문제이다.
↳믿음이 순종의 삶을 낳는다.
↳믿음이 노아의 삶의 방식을 말씀 중심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 말씀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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