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노아) 강해 2: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5-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2-08 13:09
조회
11
구약인물(노아) 강해 2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5-12)
2019. 12. 8.


프롤로그

-세상에 사람이 번성해지면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2절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다.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 곧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 곧 가인의 후손들을 아내로 삼았다는 거 아닌가?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이 없는 세상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예배 공동체인 셋 자손과 힘의 공동체인 가인 자손이, 섞이고 만 것이다.
↳그래서 용사인 네피림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받아드리실 수 없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긍휼을 베푸셨다.
↳아담에게도,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도 긍휼을 베푸셨다.
↳사람을 죽이고 소년을 죽인 라멕에게도 긍휼을 베푸셨다.
↳당장에 심판하실 수도 있었는데도, 긍휼로 오래 참으셨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우심을 악용했다.
↳그래서 세상을 죄로 가득 채웠다.
↳죄악이 온 세상에 퍼져 있었다.

-암세포도 어느 한 부위에만 있을 땐, 그 부위를 수술하여 절개해내면 된다.
↳하지만 암세포가 전이 되어, 몸 전체에 퍼져버리면, 치료가 불가능해진다.
↳노아 당시의 시대 상황이, 죄악이라고 하는 암세포가, 이미 몸 전체에 퍼져버려서,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상이 이 정도가 되면, 어떤 악도 수용되는 분위기가 된다.
↳마음이 악에 전염되면, 다른 건 볼 것도 없다.
↳5절 뒷부분을 보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마음이 악하면, 생각하는 것도 악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악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악한 일을 한 번 꾸미는 것이 아니다.
↳실수로 악을 한두 번 행하는 정도가 아니다.
↳생각했다 하면 악이다.
↳계획을 세웠다 하면 악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마음이 오염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주의 재림이 가까워진, 오늘 이 시대는 어떤가?
↳홍수 심판을 앞둔, 그 때보다 상태가 나을까?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아 보인다.
↳불 심판을 앞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시대를 예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신다.
↳마음에 근심하신다.

-“한탄하다”는 말의 원뜻은, ‘신음하다’ ‘숨이 차다’이다.
↳즉 자신 또는 타인의 아픈 현실로 인해, 고통 가운데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비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한다.

-“근심하다”는 말의 원뜻은, ‘심령이 찢어지다’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으로 짓눌리다’이다.
↳즉 죄악으로 온 세상이 가득한, 이 비극적 현실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찢어질 듯한 마음의 고통을 받으셨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심판을 좋아하시는 분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심판 이전에, 하나님의 찢어질듯 한 아픔과 비통의 눈물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지만, 사람들을 향한 애정 때문에, 그토록 고통 중에 한탄하시고 근심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닌가?
↳신앙인들마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분은 묵묵히 참고 기다리신다.
↳그리스도인마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데도, 그분은 스스로 괴로워하고 아픔을 감내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참으시는 데는 선수다.
↳그분만큼 잘 참으시고, 그분만큼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은 없다.
↳그렇다고 그분의 인내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해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내만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인내를 끝내시는 순간이 온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다.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오래 참으시던 하나님은, 결국 심판을 선언하셨다.
↳“쓸어버리다”는 말은 ‘씻다’ ‘빨다’ ‘닦다’는 뜻이다.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는 말은, 물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이다.

-심판의 대상도 밝히고 있다.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심판은 다 함께 당하게 된다.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의 대표성이, 누구에게 있다는 말인가?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다.
↳사람과 자연은 따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해준다.
↳사람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눈여겨보면,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체 중에 심판의 대상에서 빠진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물고기다.
↳노아가 배에 암수 한 쌍씩 데리고 들어갈 때도, 물고기는 빠졌다.
↳그래서 물고기는 후에 구원을 상징하는 생명체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꼭 한 번쯤은 봐야 할 영화 중에 <쿼바디스>라는 영화가 있다.
↳쿼바디스는 로마 황제 네로의 핍박 아래 있는 교회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인상 깊은 영화 장면 중에 하나가, 땅에 물고기 그림을 그리고는 얼른 지워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기독교임을 나타내고, 상대가 기독교인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물고기를 그리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그 의미만 살려서, 기독서점에 가보면 물고기에 이상한 글씨가 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고기 스티커를 차량 뒤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 글씨가 헬라어로 ‘익투스’라는 단어인데, 뜻은 물고기이다.
↳원뜻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이시다’ 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죄에 대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애정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주 버릴 수 없으셨다.
↳차마 전멸시킬 수는 없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하실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누군가?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였다.
↳노아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노아에게는 죄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는 죄가 있다는데 있지 않다.
↳노아가 한 치의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완벽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 그 시대 사람들과 노아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냐의 여부이다.

-그럼 다시 한 번 은혜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지는 호의를 말한다.
↳은혜의 반대 개념이 무엇인가?
↳심판이다.
↳심판이란 마땅히 받아야 할 응분의 대가를 받는 것이다.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에게, 심판이 아닌 호의가 베풀어지는 것이 바로 은혜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① 그들이 지은 죄 때문이다.
② 그들이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답은 ②번이다.

-미국 서부 개척 당시에 텍사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텍사스에서는 살인이 하도 많이 일어나서,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령을 제정했다.
↳어느 날 한 술집에서 청년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청년이 말다툼 끝에 권총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쏴 죽였다.

-그런데 이 청년이 평소에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언제나 이웃에게 칭찬을 받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청년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구명 운동을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간곡한 바람이 담긴 연판장을, 주지사에게 제출했다.
↳탄원서를 읽은 주지사는, 자신이 직접 그 청년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런데 청년은 죄를 짓고 나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
↳자포자기하여 비뚤어진 생각에, 난폭한 행동까지 거침이 없었다.
↳주지사가 사면장을 들고 그를 면회하려 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다.
↳여러 사람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으나, 그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가 죽은 것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장차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기보다는, 죄인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에 영벌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사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자신 있게 설 사람이 있겠는가?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의인이 나온다.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바로 노아이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이 말은 충격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시대상황이, 물로 심판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너무도 타락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을 때, 혼자만 죄를 짓지 않기는 어렵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시대에, 세상에 물들지 않게 산다는 것은 순교적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에게는 많은 어려움과 고독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별나게 믿는다고 핀잔을 받았을 것이고, 나중엔 왕따를 당했을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을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전혀 욕을 먹지 않고 살고 있다면, 우리가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잘 살아도, 결정적으로는 그들과 다르다.
↳그들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그들과 세계관이 다르고, 그들과 가치관이 다르다.

-오늘날 비극이 무엇인가?
↳교회와 세상이,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동일하게, 화내고, 욕하고,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돈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아니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아는 세상과 차별화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렇다고 노아가 의로운 자였다는 것이, 한 번도 죄의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노아 역시 죄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노아도 사람인 이상, 죄에 대한 충동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 역시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노아를 가리켜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표현했다.
↳그 당시에 상대적으로 완전한 자라는 의미로 보인다.

-노아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이 점이 그가 의인이란 칭호를 얻는 것과 관련이 있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제사다.
↳노아의 삶에는 희생 제사가 있었다.
↳모든 경건한 후손들은 포기했지만, 노아만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 곧 예배를 생명줄로 붙들고 있었다.

-그가 의인이 된 것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다.
↳노아는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이 세상에서 죄 짓지 않고 살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곤란한 인간관계에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했다.

-죄악된 세상에서, 의인으로 사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죄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싶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여주동행(與主同行), 곧 주님과 동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출발이 무엇인가? 예배이다.
↳물론 예배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의 전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예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출발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다.
↳예배를 잘 드린 사람이, 교회 밖에 나가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예배 생활을 게을리 하는 사람이, 교회 밖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자를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주간 동안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다.

-하나님과의 동행 여부는,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이다.
↳노아가 의인이었음을, 우리가 객관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노아가 당세에 완전한 자라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120년 후에나 올 심판을 대비해, 산 위에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두말 않고 순종하는데서 알 수 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증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 남은 삶을 전부 이 심판을 대비하는데 사용했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노아가 무슨 특별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을 위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도 아니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았다.
↳그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한 아내와 동거하고, 자식들을 낳고 오순도순하게 살았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족 모두가 신앙으로 하나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산수 공부 좀 하겠다.
↳노아가 최초의 심판을 들을 때가 몇 세였는가?

-그럼 노아가 몇 세에 홍수가 났는가?
↳ㅎㅎ 오늘 본문에는 없다.
↳오픈북... 7:6이다.
창 7: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몇 세였는가? 600세였다.

-노아가 심판의 말씀을 들은 후, 몇 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는가?
↳이건 오늘 본문에 있다. 120년이다.
↳600에서 120을 빼면 480이다.

-그럼 노아가 최초의 심판 소식을 들을 때의 나이가 몇 세란 말인가?
↳480세다.

-그럼 노아가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을 때 나이가 몇 세였는가?
↳ㅎㅎ 오늘 본문에 없다.
↳오픈북...창 5:32이다.
창 5: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500세 된 후였다.

-그럼 노아가 심판 소식을 듣기 전인가? 들은 후인가?
↳들은 후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방주를 만들면서도, 밤에 아내와 동거하여 자식 낳았다는 말이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간 것이다.
↳주님의 재림이 내일일지라도, 농부는 논밭을 둘러보러 나가야 하고, 과원지기는 과수를 돌보아야 하고, 직장인들은 출근해야 하고, 자영업자들은 자기 일을 하고, 애를 둔 엄마는 육아를 해야 하고, 전업주부는 집안 살림을 살아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신앙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마지막 시대에는 결혼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생겨날 거라고 했다.
딤전 4: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했는가?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후일이다.
↳나중에 라는 말이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졌을 때를 말한다.
↳그 때는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 활발하다.
↳가정을 파괴하는 이단이 극성을 부릴 것을 내다본 말씀이다.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예로 드는 구절이 있다.
눅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이 말씀이 진짜 그런 뜻인가?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 자체는, 분명히 복이다.
↳그것을 하나님보다 우위에 두는 게 문제다.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게 문제다.
↳결혼하기 전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게 문제다.
↳거기에 더해,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혼하고 재혼하기를 반복하는 게 문제다.

-사람들의 죄가 최고조의 상태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했다지 않는가.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지 않는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을, 하나님이 보셨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한 마디로 ‘죄를 권하는 사회’였다.
↳죄에 묻혀 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이 죄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죄짓는 것이 일상이요, 죄된 생활이 문화였던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우리가 사회 구조악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
↳개인의 회개 운동과 사회의 도덕성 회복 운동은 꼭 같이 가야 한다.
↳국가나 사회의 타락지수는, 종교의 타락지수와 거의 비례한다.
↳물론 거기에는 교회도 포함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인의 자손 때문에 심판하신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셋 자손 때문에 심판하셨다.
↳셋 자손이 가인의 자손과 섞였기 때문에 심판하셨다.
↳셋 자손은 예배 공동체로서, 그들과 확연히 구별되게 살았어야 했다.
↳하나님의 희망은 셋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사명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자신들이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았다.
↳결국 셋 자손도 가인의 자손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타락한 사회 때문에 심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교회 때문에 심판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의 희망은 교회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통로는 교회 뿐이다.
↳그러니까 교회마저 무너지면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교회는 안전할까?
↳교회의 지체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정말 안전할까?

-그날에 우리 교회는 심판과 무관할까?
↳그날에 교회 구성원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심판과 상관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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