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강해 7:여호와 치드케누 : 하나님이 나의 의이십니다.(렘 23:1-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0-06 12:59
조회
43



하나님의 이름 강해 7
여호와 치드케누 : 하나님이 나의 의이십니다.(렘 23:1-8)
2019. 10. 6.


프롤로그

-어느 마을 한 영감님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꿩알을 주웠다.
↳나무도 하고 꿩알도 주운 영감님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한 청년을 만났다.
↳청년이 물었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세요?”
↳“꿩알이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시냐구요?”
↳“열 두 개다.”

-그러자 청년이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아니,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시냐구요?”
↳“이놈아, 그런다고 내가 안 먹고 너 줄 것 같으냐?”

-영감님과 동네 청년의 문제가 무엇인가?
↳소통이 안 된 것이다.

-직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수많은 장애물 때문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넘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재선까지 성공했었다.
↳그건 그가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초기, 민주당은 이라크 전쟁 문제로 찬반이 나눠져 있었다.

-오바마는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 민주당에는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라크 전을 반대하는 애국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 전을 찬성하는 애국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했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안았다.
↳그들을 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동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소통이 역사를 만든 것이다.

-두 사람이 카페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핸드폰에 손이 간다.
↳쉴 새 없이 연락이 오는 메신저로 댓글을 단다.
↳SNS에 지금 어느 카페에 왔는지, 누구와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올리느라 바쁘다.
↳잠시 뒤에 올린 글들에 대한, 댓글이 온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알림이 울어댄다.
↳그렇게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 핸드폰만 보다가 간다.

-미국 MIT대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이런 모습을 이렇게 정의했다.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고독이다.’

-A. W 토저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소통의 수단은 점점 발달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계의 깊이는 점점 얕아져만 간다.”

-소통이 중요하다.
↳서로 말이 통해야 숨 쉴 수 있다.
↳한 집에 살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가정의 문제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그 중의 가장 큰 문제는 의사소통의 장애다.
↳부모와 자식이 말이 안 통하고, 부부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럼 천국 가정은 아니다.

-주일에 교회는 나온다.
↳정기적으로 예배는 드린다.
↳귀를 기울여 설교는 듣는다.
↳그런데 하나님과 소통은 단절되어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신앙의 초점이 나한테 맞춰져 있어서다.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어서 그렇다.
↳일방적인 신앙이요, 제 나름대로의 신앙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그런데 성전은 멀쩡히 있다.
↳여전히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지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의 영혼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악을 고발하면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였다.

-특히 지도자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만 놓고 보면, 지도자들에게만 화를 선포하는 거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성들 역시 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공박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말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절대로 안전할 것이다.”
↳여전히 죄의 자리에 있으면서,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에 귀를 막고 있으면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예레미야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의 외침이, 오늘날엔 사라졌을까?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회중의 귀에 거슬려도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데, 강단에서 그런 메시지가 사라져 가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를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점점 밀려나고,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회개” “거룩” “의”란 단어가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겠는가?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우리가 먼저 복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회개 없는 복이 있을까?
↳거룩한 삶이 없는 복이 있을 수 있을까?
↳의가 빠진 복은 진정한 복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진짜 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신령한 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하늘에 속한 복을 받아야 한다.

-어떤 중년부인이 지하철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자리가 나니까, 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서 기도를 했다.
↳그걸 지켜본 한 신사가, 그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 기도하시는 것 같던데, 뭐라고 기도하셨습니까?"
↳그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뭐라고 기도하긴요. 하나님, 자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했죠."
↳신사는 그 말을 듣고서 신앙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을 헤집고 잽싸게 지하철 빈자리를 차지할 정도면, 노약자도 아니고 허약자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인의 바른 자세일까?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빈자리가 났을 때,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양보하고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 아닐까?
↳“주님, 제게 서서 갈만한 건강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님, 양보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의 마음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일 때만 있다.
↳신앙조차 자기중심적인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기적인 생각이 배어 있다.
↳이기적인 신앙에서 좀체 벗어나지를 못한다.
↳나를 중심에 놓고, 하나님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생각해서다.

-하나님이 중심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어야 한다.
↳우리는 삶의 근간을 하나님의 말씀에 둬야 한다.
↳우리는 부단히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의로운 삶을 요구하셨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가 유다 왕으로 있을 때 활동을 시작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요시야가 유다 왕위에 오르기 100년 전에, 앗수르에 의해 이미 망했다.
↳그때 하나님은 남 왕국 유다가 각성하기를 바라셨다.
↳아니 그들만이라도 말씀대로 살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망한 북 왕국 이스라엘 못지않았다.

대하 36:15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16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성전을 아끼셨다.
↳그래서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비웃고 욕했다.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거부했다.

-그 무렵 요시야가 남 왕국 유다의 왕위에 올랐다.
↳요시야는 유다에 하나님의 의를 일으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우상을 제거하고, 악을 도말했다.
↳다시 율법을 지켰고, 사회를 정화시켰다.
↳사람들의 대화가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초점이 맞춰졌다.
↳히스기야에 이어 유다에 다시 한 번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요시야의 부흥의 불꽃은 오래가지 못했다.
↳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지, 진심으로 하는 회개가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애굽의 바로느고를 막다가 죽자, 개혁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부흥의 불꽃은 금방 식고 말았다.
↳남 왕국 유다는 다시 요시야 이전 우상숭배의 자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자 유다가 급격히 쇠해졌고, 얼마 후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만다.

-유다가 망하는 과정이다.
대하 36: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20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게 하나님의 의다.
↳이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치두케누”는 ‘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 중에서, 기초가 되고 기반이 된다.
↳흔히 하나님의 속성하면, 전지전능, 무소부재, 사랑, 거룩, 불변 등이 있는데, 이 속성에서 하나님의 의가 빠지면 하나님의 절대 권위는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의 권위가 무너지면, 하나님이 통치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에 불복종하게 되고, 진리를 거리낌 없이 거스를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랑만을 강조하면 사랑은 식는다. 사랑은 의가 없으면 번영하지 않는다. 의가 없는 사랑은 햇빛이 없는 습기와 같다. 결국 곰팡이가 나고 나무를 썩게 한다. 만일 하나님이 사랑의 성품만 소유하시고 의가 없으시다면, 우리는 벌써 멸망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만일 기독교가 사랑만을 가르치고 의에 대해서 잠잠했다면, 사회에 수없는 악을 끼쳤을 것이다.”
↳정확한 통찰이다.

-시편의 시인도 이렇게 고백했다.
시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하나님의 의에서 강조되는 것이 심판일 수밖에 없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재판장이 되신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 속성 상 잘못된 것을 그냥 놔두실 수가 없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신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시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불순종하였다.
↳어쩌다 한 번 한 것이 아니다.
↳계속하여 순종치 않았다.
↳자신의 그런 행동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덮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은혜로 봐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말씀에 불순종하여, 니느웨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타고 도망칠 때, 하나님이 그를 물고기 밥이 되게 하셨다.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회개한 후에야,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끝끝내 회개하지 않았다면, 물고기 뱃속에서 영영 못 나왔을 것이다.

-택한 나라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남과 북으로 찢어지는 심판을 받았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그치지 않자, 어떻게 하셨는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 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각각 망하게 하셨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망했고, 남 왕국 유다는 70년간 포로생활을 했다.

-그들이 불순종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믿음 성장을 위해서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불순종한 대가는 괜한 것이다.
↳괜히 고생만 하고 얻는 건 별로 없다.
↳몸만 축나고 재물만 날리지, 아무 보람도 없다.

-불순종한 대가에서, 이거 하나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모든 일에 허허실실하고 그냥 넘어가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정말이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 첫째가 헬라적 역사관이다.
↳역사를 하나의 사이클로 보는 것이다.
↳윤회적 사관이다.
↳헬라의 대표적인 철학자 플라톤은, “역사는 끊임없이 돌고 돈다”고 했다.

-역사를 보는 방법, 둘째가 히브리적 역사관이다.
↳역사를 일직선으로 보는 것이다.
↳반복이 아니고 앞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종말에 이르게 되는 역사관이다.
↳역사의 종말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크게는 우주적 종말이 있다.
↳우주는 종말을 향하여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태양도 수명이 있다지 않는가?
↳태양이 영원히 불탈 것 같지만, 차갑게 식을 때가 온다.

-또한 개인의 종말이 있다.
↳우리 개인 역시도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늘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언젠가 죽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실로암 망대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18명이 압사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를, ‘그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저런 저주를 당하나’ 했다.

-그때 주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눅 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회개를 강조하면, 율법주의 신앙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주님이 회개를 강조하셨다.
↳주님의 공생애 최초의 일성이 무엇이었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였다.
↳그분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입을 뗀 첫 마디가 무엇이었는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였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오니까, 지금의 불의한 삶을 청산하라는 것이다.
↳죄인으로서 다가오는 하나님나라를 맞기 위해서는,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
↳울어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되며, 참아도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여호와의 의가 누구를 통해 임한다고 했는가?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가 임한다.

-여호와의 의가 언제 임한다고 했는가?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방법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의를 받아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의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누구보다 구약에 능통했던 바울이, 하나님의 의에 대해 언급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예수 때문에 얻는 의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불의한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의 한 의를 준비하셨다.

-그 준비하신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가?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피에 나타났다.
↳십자가 위에서 드린 화목제물에 나타났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도 의로우신 분이시고, 예수 믿는 사람도 의로운 자가 되었다.

-고대 말크스의 프루투스 왕이 있었다.
↳그는 사회가 너무나 문란하고 기강이 해이해지자, 이런 법령을 제정해서 공포했다.
↳“범법자는 두 눈을 뽑겠다.”
↳그런데 최초의 범법자가 왕의 아들이었다.
↳그의 신하들은 폐하의 아들만큼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거듭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프루투스 왕은, 이런 말로 완강히 거절했다.
↳“법은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 국법대로 처벌하라.”
↳순간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왕은 보좌에서 내려오더니 말했다.
↳“내 눈 하나와 아들의 눈 하나를 빼라.”
↳왕으로서의 권위와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함께 실천에 옮긴 것이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다.
↳골고다의 언덕에 우뚝 세워진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시지만 구원하시는 분이다.
↳예레미야의 메시지 안에 회복이 담겨 있음을 본다.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는, 흥분을 감출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로 예배하고, 사랑으로 헌신할 수밖에 없다.

-10대 소녀가 친구들과 놀다가, 그만 너무 늦고 말았다.
↳친구 중에 하나가 “밤을 새자”고 제안을 했다.
↳그 때 “나는 10시까지 집에 꼭 가야 돼”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왜?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니?” 하고 물었다.
↳그 말에 소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지.”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서여야 한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서여야 한다.
↳우리가 영혼 구원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서여야 한다.

-“여호와 치드케누”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다.
↳그럼에도 상한 갈대도 쉽게 꺾지 못하시는, 마음 약하신 분이다.
↳꺼져가는 심지도 끄기를, 몇 번이고 망설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소통하기를 힘쓰라.
↳하나님과의 소통은, 나를 비우고 예수 영으로 충만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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