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강해 4:여호와 로이 :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시 23:1-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9-15 12:41
조회
1470



하나님의 이름 강해 4
여호와 로이 :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시 23:1-6)
2019. 9. 15.


프롤로그

-요즘에는 주보를 교회에서 복사하지만, 예전에는 주보 원고를 인쇄소에 보냈다.
↳부목사 때 금요일 주요 일과 중의 하나가, 주보 교정보기 위해 인쇄소 가는 거였다.
↳오랫동안 어떤 교회의 주보를 담당했던 인쇄소의 집사님은, 주보 원고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항상 설교 제목이 길었는데, 이번 주에는 짧았던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목사님의 성향을 잘 아는 그 집사님은, 분명 설교 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모르니까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목사님, 설교 제목이 다른 때보다 짧아서 확인 차 전화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게 다입니까?”
↳목사님이 웃으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집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보 인쇄에 들어갔다.
↳목사님이 주일 아침에 일찍 나와서, 목양실에서 주보를 살펴보았다.
↳그리곤 눈물이 핑 돌았고, 설교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주보에 실린 설교 제목 때문이었다.
↳주보에 실린 설교 제목은 이랬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면, 그거로 충분하다.
↳거기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면 그거로 충분하다.
↳거기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충분합니다”가 돼야 한다.

-시 23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시 중에 하나이다.
↳이 시는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푸른 풀밭”이 나오고, “쉴 만한 물 가”가 나온다.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하늘 아래,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 잔잔한 시냇물이 흘러가고, 양떼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는 장면을 연상하게 만드는 목가적인 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을 생각하면, 우리가 빗나간 상상을 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초원이 아니라 광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목동들이 양떼를 치는 곳은, 푸른 풀밭보다는 광야이다.
↳모세가 양을 치던 곳이 광야였다.
↳다윗이 양을 치던 곳도 광야였다.

-‘광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광야는 메마르고 건조하며, 황량하고 거친, 그래서 살기 힘든 고통의 장소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을 치며 살아가던 곳은, 결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아니었다.

-광야는 불안정한 곳이다.
↳광야는 변화가 계속되는 자리이다.
↳비가 쏟아지면, 갑자기 길이 사라지는 곳이 광야다.
↳그 길은 곧 급류가 쏟아지는 계곡으로 변해버리곤 한다.
↳또 광야는 바람이 불면 있던 구릉이 없어지기도 하고, 또 없던 구릉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광야가 1년 내내 황무지인 것은 아니다.
↳광야에 비가 내리면, 순식간에 시냇물이 흐르고, 푸른 풀들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다.
↳비오기 전의 광야가 황무지라면, 비온 뒤의 광야는 눈부실 정도의 찬란한 초원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비가 그치고,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면, 풀과 꽃은 금방 시들어 버린다.

-이 광야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다.
↳시 23편도 자연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전원을 꿈꾸는 노래가 아닌, 인생을 노래한 것이다.
↳광야 같은 곳을 지내는 인생이, 목자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것을 노래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을 인생의 목자로 만났다.
↳이건 평범한 사건이 아니다.
↳인생 혁명, 그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잘 생각해 보라.
↳우리가 예수 밖에 있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우리는 인생이란 광야에서, 갈길 몰라 헤매던 양이었다.
↳어디론가 열심히 가기는 가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내 영혼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목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 뻔했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는 마귀의 먹잇감이 된 자신을 생각해 보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혹시 어떻게 죽음을 면했다고 해도, 하루도 한 나절도 한 시도 평안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늘 불안 속에서,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다.
↳하지만 태양이 이글이글 타고, 샘이란 샘은 다 말라 버려 마실 물조차 찾기 어려울 때는, 양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꼼짝없이 죽게 된다.
↳이게 인생의 목자가 없는 인생의 최후 운명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예수 믿은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럼 그것으로 다 된 건가?
↳우리는 목자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순전히 목자의 수고로, 우리는 이렇게 살게 되었다.

-그럼 전에 함께 길을 헤매던, 그 친구는 어떻게 되는가?
↳나라도 살았으면 됐지, 그 친구까지 걱정할 필요 없을까?
↳지금도 잃은 양으로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지 모르고, 어떤 바위틈에 끼어 있을 지도 모르는, 예수 밖의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어쩌면 그건 목자의 분노를 살 일이다.
↳만약 내가 친구 있는 곳을 알면서도, 그 친구가 죽도록 외면하고, 나 혼자 살겠다고 했던 것이 알려지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목자에게 꾸지람을 듣는 게 당연하다.

-잃어버린 양을 안고 있는 목자의 그림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자 품에 안겨 있는 양이 자기라고 생각한다.
↳그 양이 왜 목자에게 안겨있는가?
↳특별히 사랑스러워서인가?
↳아님 특별히 예뻐서인가?
↳아니다. 잃었다가 찾은 양이기 때문이다.
↳길 잃고 헤매다가 혹시 다쳤을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먹지 못하고 굶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많이 놀라서 안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 그 양이 언제까지 목자 품에 안겨 있을 거 같은가?
↳잃은 양이 생기면, 목자는 지금 안고 있는 양을 내려놓고, 잃은 양을 찾으러 갈 것이다.

-목자에게 안겨있는 것이 좋은 게 아니다.
↳그게 자랑스러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워 할 일이다.
↳다른 양들이 쳐다보며, 뭐라 할 거 같은가?

↳“와 정말 부럽다.”
↳“야, 나도 목자 품에 안기고 싶다.”
↳그럴 거 같은가?

↳“야, 너 목자 속 좀 썩이지 마라.”
↳“어, 너 때문에 목자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니?”
↳그럴 거 같은가?

-이해가 되는가?
↳그러니까 빨리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양들과 함께 어울려야 한다.
↳다시는 길을 잃어 목자의 품에 안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예수를 믿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목자에게 안겨있으면서 그것이 행복인 줄 안다면 철부지 양이다.
↳목자가 언제까지 자기만 안아주기를 바라고, 잃은 양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목자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양이다.

-안면도 어떤 교회에 목사님이 부임했다.
↳그런데 교인들이 목사님께, 이런 이색적인 요구를 했다고 한다.
↳“목사님, 우리한테 전도하라고 하지 마세요.”
↳예전 목사님이 하도 전도하라고 해서 데였는지...
↳아니면 자기들만 구원받겠다는 심보는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그들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상관없는 양들일 것이다.
↳그들이 그런 마음에서 돌이키지 않는 한 복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계속해서 그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그들은 정말 불행한 사람들이다.

-다윗은 시 23편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뿐 아니라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목자로, 사람을 양으로 비유하곤 했다.
↳그렇게 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목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알고 있고, 각각의 특성까지도 알고 있다.
↳다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지만, 목자는 한 마리 한 마리를 다 구별해 낸다.
↳목자는 어느 양이 배탈이 났는지, 어느 양이 상태가 안 좋은지, 척 보면 알았다.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냥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정을 통해 안다는 뜻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안다는 뜻이다.
↳강점과 약점, 장점과 단점까지도 속속들이 안다는 뜻이다.

-15절을 보면, 그 뜻이 보다 분명해진다.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성부가 성자를 알고, 성자가 성부를 아는 것처럼 안다고 했다.
↳100% 안다는 뜻이고, 완벽하게 안다는 뜻이다.
↳그럼 목자들만 양을 아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양들도 목자를 잘 안다. ,
↳양은 자기 목자가 아니면, 절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성경 연구차 팔레스타인에서 머물고 있던 한 신부님이, 양치기들의 삶과 양떼들의 생태를 알기 위해서, 한동안 그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런 기상 변화로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서, 양들을 동굴로 피신시켜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근에는 동굴이 하나밖에 없어서, 두 무리의 양떼가 한 동굴 안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 신부님은 비가 그치고 떠날 때, 어떻게 이 많은 양떼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자기 목자를 따라갈까 궁금해 했다.
↳그런데 이 의문은 너무도 쉽게 풀렸다.
↳폭풍우가 그치자, 양치기 한 사람이 먼저 일어나 나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한 무리의 양떼들만 일어나서 그 목자를 따라가고, 다른 양떼들은 그대로 동굴에 남아있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에 경탄한 그 신부님은 양치기에게 노래를 배워 양치기더러 숨어있으라고 하고,자기가 노래를 부르며 앞장서 걸어보았다.
↳결과는 아무 양도 자기를 따라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양들은 노래의 멜로디가 아닌,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양은 머리가 나빠서 길을 잘못 찾는다.
↳그런데도 목자의 음성만은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자기 목자의 음성만 들을 줄 안다.
↳그게 양의 생존 비결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양보다 모든 면에서 탁월한 우리는 어떤가?
↳주님의 음성만 듣는가?
↳주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가?
↳혹시 내 이익을 위해서, 주님의 음성을 무시할 때는 없는가?
↳당장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의 말씀에 잠깐 귀를 막을 때는 없는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혜는,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목자는 양을 인도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풀밭으로,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한다.
↳푸른 풀밭이 바로 앞에 있는 게 아니다.
↳쉴 만한 물 가가 바로 건너편에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깻묵을 보관하던 헛간에 불이 붙었다.
↳양떼들이 깻묵 타는 고소한 냄새를 맡고 달려와, 불타고 있는 깻묵더미 앞으로 자꾸만 가려고 했다.
↳이를 본 목자는 급히 양떼들을 불구덩이에서 떼어놓기 위해서, 막대기를 휘둘러 댔다.
↳한 무리를 떼어놓으면, 다른 무리가 불을 향해서 달려들고, 다른 무리를 떼어 놓으면, 또 다른 무리가 달려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다행히 불길이 잡혀서 양들이 살긴 했지만, 뜨거운 불기운의 영향 때문에 양들이 며칠을 고생했다.

-도대체 왜 양들이 불에 타 죽는 것도 모르고, 불길을 향해 돌진했을까?
↳자기 목자의 음성을 그토록 잘 알아듣는 양인데... 목자가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가로막는데도, 왜 불로 뛰어들려고 했을까?
↳그건 깻묵 때문이다.
↳양들은 고소한 깻묵 냄새만 맡을 줄 알았지, 뜨거운 불길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다.
↳깻묵에 집착해, 불길을 보지 못하고 달려드는 양과, 눈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우리와 흡사하다.
↳탐욕만큼 무서운 게 없다.
↳욕심은 모든 죄의 기본이다.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주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탐욕으로 인해, 영혼 구원을 뒤로 미루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눈앞의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상급인 복음을 전파에 무관심하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분명히 의의 길이지 편한 길이 아니다.
↳바른 길이지 안락한 길이 아니다.
↳의의 길은 지름길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좋은 길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넉넉잡아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무려 40년 동안 가게 하셨다.
↳모세가 길눈이 어두워 40년 걸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신 거였다.
↳징계도 포함되긴 했지만, 의의 길이 곧 지름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평탄한 길을 걷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달리 생각하신다.
↳좀 힘들더라도 의의 길을 걷길 원하시고, 좀 더디더라도 정도를 걷길 원하신다.
↳왜? 그게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 길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게 양이 목자에게 갖는 믿음이다.
↳양이 목자에게 갖는 믿음은, 절대적인 믿음이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절대 의탁의 믿음이다.
↳자신의 미래와 목숨까지도 맡기는, 절대 의존의 믿음이다.

-그럴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주저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건 절대적인 신뢰관계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따라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당장 자기에게 해가 미칠 수 있는데, 목자만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인생의 깊은 밤을 가리킨다.
↳그게 질병일 수도 있다.
↳그게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있다.
↳그게 외로움일 수도 있고, 배척당함일 수도 있다.

-우리가 예수 잘 믿는 것을,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예수 믿고 복받는 것을, 누구나 좋아할 거라고 보면 안 된다.
↳물론 박수쳐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비난하고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주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다.
↳양에게 가장 큰 고통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라, 목자가 없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예전에 많이 불렀던 찬양이 있다.

1. 주와 함께라면 가난해도 좋아
참 된 부요함이 내 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유혹하려고 세상 바람 휘몰아 쳐 와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어
자비로운 주의 음성을
결코 잊을 수 없어
자비로운 주의 음성을

2. 주와 함께라면 병들어도 좋아
참된 강건함이 내 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넘어뜨리며 거친 파도 휘몰아 쳐 와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어
따사로운 주의 손길을

-왜 요즘에는 잘 불려지지 않을까?
↳단순히 곡이 옛날 거여서 그럴까?
↳요즘 시대와 맞지 않아서 그렇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요즘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심성과 맞지 않아서 그렇다.
↳실제로 이런 고백을 하는 게 두려워서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서는,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 성인식을 치를 때가 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칠흑같이 어둔 밤 밀림 속으로 가서, 칼 한 자루만을 주고 돌아온다고 한다.
↳아들은 밀림 속에서 혼자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이다.
↳맹수들의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려움에 떨면서 뜬눈으로 긴긴 밤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밤이 가고, 어렴풋이 주위를 분간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가 완전무장을 하고,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 무서운 밤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아버지가 내 옆에 함께 있으면서 밤새 나를 돌보아주셨구나!’
↳그 후에 그 아이는 어디를 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비록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 가에서 항상 자기를 지켜봐 주고 돌봐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 아이의 아버지보다, 더 확실하고 믿음직한 아버지가 계신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늘 아버지, 곧 목자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생의 굽이굽이에서,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그분이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영원한 목자가 되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만나 행복하다.
↳그분은 원수의 목전에서 보란 듯이 상을 차려 주신다.
↳기름을 내 머리에 부어주신다.
↳그래서 내 인생의 잔을 넘치게 하신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내 잔이 넘치나이다!"

-목자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면, 우리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된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양은 목자를 끝까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된다.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을 만나서, 살아생전에는 여호와의 집인 교회에 거하고, 죽어서는 주님과 영원히 천국에 살게 된다.

-그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
↳우리가 목자로 사는 것입니다.
↳목자가 부담스럽다면, 목동으로 사는 것이다.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를 흉내라도 내는 것이다.
↳인생길 험하고 마음 지쳐, 살아갈 용기 없어하는 영혼들에게,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다.

-한 어린 아이가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선고받은 엄마는, 아들과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영어로 하면 "The Lord is my shepherd"
↳다섯 개 단어이다.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그 뜻을 설명해 주었다.
↳특별히 네 번째 손가락을 꼽을 때에는 힘을 주면서, “하나님이 너의 목자가 되시니, 너를 결코 버리시지 않을 거야.”
↳두 시간 후 이 아이는 눈을 감았다.
↳차디차게 식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들은 죽어가면서, 자기의 오른손으로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어린 아이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손을 꼭 잡고,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살러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