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2024):한 알의 밀알(요12:20-2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4-03-31 12:32
조회
28


부활절(2024)
한 알의 밀알(요12:20-26)
2024. 3. 31


프롤로그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놓았기에 소개한다.
① 첫 번째는 세계 모든 종교 교주들은 웅장한 무덤을 자랑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다.
② 두 번째는 당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이 5백명이나 되며, 11번 이상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시면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③ 세 번째는 예수 믿는 자들을 그토록 박해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하고, 국교로 받아들인 사실이다.
④ 네 번째는 2천여년간 지켜오던 유대인의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게 되었다.
⑤ 다섯 번째는 전 세계에 세워져 있는 1백여만개의 교회이다.

-부활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한 영웅이 있었다.
↳그는 기독교를 추종하는 자들이 수억에 이르는 것에 착안하여, 세계적으로 위대한 종교를 만들고 싶었다.
↳어느 날 한 성직자를 찾아가서, “선생님 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를 만들고 싶은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그 성직자는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예,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장군께서 직접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한 일주일 후에 다시 살아나십시오. 그러면 기독교보다 더 위대한 종교의 교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영웅은, 겸연쩍은 웃음을 짓더니,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부활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부활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은, 우리도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믿는다.
↳오늘 부활절에 예수님의 비유 중 한 알의 밀알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다.

-본문에 헬라인이 등장한다.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에, 헬라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순례자로 왔다.
↳이들은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온 이유는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들이 발걸음을 돌려,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사뭇 궁금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경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날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예루살렘에 올라와 보니, 예배하러 모인 무리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들어보니 예수란 분이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그분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졌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한 이유가, 어쩌면 호기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마 우리 중에도, 호기심 때문에 교회 나왔다가, 지금까지 다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호기심은 좋은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호기심이 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지적 호기심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깊고 묵직한 지식보다는, 얕은 지식, 가벼운 정보를 얻는데 그친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녹이 쓴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다.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를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이 이방종교에 실망하여 유대교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유대교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유대교가 그들 영혼의 굶주림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유대교가 그들 인생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지 못했다.

-즉 그들이 교회는 다녔으나,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구원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거듭남의 비밀도, 하늘의 신령한 은혜도 체험하지 못했다.
↳자기들의 신앙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실 자기 생활에 만족한 사람은, 예수님을 찾지 않는다.
↳자기가 그런대로 예수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법이다.
↳불신자들이 우리더러 예수는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믿는 것이라고 말해도, 그들을 향해 굳이 화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자기가 바본 줄 아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헬라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빌립을 찾아왔다.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은 헬라식 이름이다.
↳그래서 빌립은 헬라파 그리스도인 내지 헬라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자란 사람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빌립은 헬라말도 잘했을 것이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헬라인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과 말이 통해야 한다.
↳그들이 다가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놓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산다.
↳결코 세상에서 분리주의자도 아니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은둔주의자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함께 살되, 세상에 섞이지 않고,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사람이다.

-빌립이 자기에게 다가온 헬라인에 대해, 이방인이라며 터부시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헬라인들의 고백을 한 번 들어볼까?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그들 안에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거룩한 갈망이 있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배척을 받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헬라인들을 이방인이라 하여, 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조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꺾지 못했다.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날이다.
↳연중 부활절만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하는 날이 아니고, 매 주일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지켰다고 한다.

-그럼 주일을 지키며,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우리에게, 이 마음이 있는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는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주일 예배 때마다, 이런 열정이 있어야 한다.
↳주일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뜨거움이 있기를 바란다.

-예수를 뵈옵고자 하는 헬라인들의 소망을, 빌립과 안드레가 주님께 갖고 나갔다.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예수님이 안드레와 빌립의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조금은 알쏭달쏭한 대답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때”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때를 의미한다.
↳예수님 자신이 선한 목자로서,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할 때이다.
↳온 인류를 위한 구속자로서, 자기 생명을 버려야 할 때이다.
↳예수님께서 의미하는 영광은, 십자가 후에 오는 영광이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그림자와 같아서, 잡힐 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 허상이다.
↳고통이 없는 명예는 명예가 아니며, 수고하지 않고 생긴 돈은 돈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광을 생각할 때는, 그에 합당한 고난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그때가 결정적으로 당도했음을 27-28절에 보면 알 수 있다.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보겠다.
27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주소서.' 하고 기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그 때에 하늘에서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영어 성경에서는 “지금”이라는 낱말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
↳이 때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날 곧 D-day라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디데이에 맞춰진 하나님의 시나리오인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때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
↳“내일부터 하지 뭐.”
↳“나중에 하자.”

-나는 설교준비를 미리 하는 편이다.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자주 하는 편이다.
↳지금 레위기 강해가 6번 남았지만, 다음 강해에 대한 계획을 이미 세웠다.
↳나는 실력이 부족해서 시간을 길게 잡아 준비한다.
↳그래야 마음에 쫓기지 않는다.
↳참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여유는 할 일을 앞두고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일을 마치고 누리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비결이 따로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학교 수업시간에 잘 듣고, 집에 와서 학교에서 배운 것 복습하고, 다음에 배울 것 예습 잘하면 된다.
↳공부는 미루는 게 아니다.
↳평생 학습이란 말이 있지만, 배움도 때가 있다.

-사명을 미뤄가지고 좋을 일이 없다.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늦추어서, 우리에게 덕 될 것은 거의 없다.
↳“아직”이라고 하는 미래의 삶도 중요하지만, “바로 여기에”라는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다.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바로 여기에서, 내가 담당해야 할 몫의 십자가가 있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런 죽음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일까?
↳아니면 암으로 죽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백킬리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그가 미리 아는 죽음이다”

-내가 죽는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그때부터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몇 개월 밖에 못산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통보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3개월 정도 살 수 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니, 얼마나 초조해지겠는가?
↳그 날이 다가올수록, 얼마나 조급한 마음이 들겠는가?
↳초마다 목이 죄어져 오는 느낌으로 몸서리쳐질 것이다.

-예수님은 며칠 후면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도 잘 알고 계셨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신과, 지금은 자기를 열렬히 지지하던 민중들의 돌변도 마음에 두고 계셨다.
↳그러니 더 가슴이 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아셨다.
↳그게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인 줄 아셨다.

-누가는 예수의 내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사오니”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을 얻을 때가, 바로 십자가를 져야 할 때인 것이다.
↳더 나아가 십자가 뒤에 이어지는 부활의 때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십자가 이후의 부활을 못 본체, 당장의 십자가만 보고, 선뜻 그것을 짊어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혜안이 필요한 이유이다.

-주님은 자신의 종말에 대해 덤덤하게 말씀해 나가신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 말은 예수님이 중요한 가르침을 말씀하실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용어였다.
↳이 관용구 뒤에 오는 말씀은, 무조건 중요하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빨간 밑줄을 그어야 할 구절인 것이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말을 “정말 잘 들어 두어라”로 번역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원칙적으로 예수님 자신에게 해당한다.
↳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① 먼저 좋은 씨앗이어야 한다.
↳아무 씨나 땅에 떨어진다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니다.
↳좋지 않은 씨가 땅에 떨어진들,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골서 자라며 지켜본 기억으로는, 종자는 언제나 좋은 것으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야 말로, 온 인류를 대표할 좋은 종자였다.
↳흠 없는 씨앗이었다.
↳속죄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흠과 티가 없어야 했다.
↳첫 번째 아담이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아담이 와야 했다.
↳마지막 아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씨앗인가?’
↳‘나는 얼마나 좋은 씨앗인가?’
↳‘나는 종자로서 합당한 씨앗인가?’
↳‘나는 하나님의 밭에 종자로 뿌려질 만한가?’

② 땅에 떨어져서 묻혀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 속에서 질서를 존중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땅에 묻지 않고도 충분히 곡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걸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드실 능력이 있지만, 돌로 떡 만드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연계에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다.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주님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죽어 묻혔다.
↳그것도 가난하여 남의 무덤을 빌려야 했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의 삶을 살게 되었는가?

-저절로 열매 맺는 것이 아니다.
↳땅에 묻히고 죽어야, 싹이 나오고 꽃이 피며, 드디어 열매가 맺혀지는 것이다.
↳그런데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무슨 열매가 있겠는가?
↳꽃이 다 열매로 가지 않는다.
↳꽃으로 있다 떨어져 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진정으로 신앙의 열매를 맺고 싶다면, 땅속에 묻혀야 한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지내야 한다.

-죽어지내는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많다.
↳교회에서도 산 사람이 많은 기관에는 소란이 많다.
↳산 사람이 많은 교회는 심심하게 분란이 일어난다.

-성경은 우리를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죽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사신 것이다.
↳그러면 내 권리는 없는 것이다.
↳내 권리를 주님께 양도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③ 나는 땅에 떨어져 죽기만 하면 된다.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혼돈하면 안 된다.
↳열매 맺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나는 땅에 떨어져 죽는 것까지만 나의 일이다.
↳흔히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를 좀 알아달라고 한다.
↳열매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농부에게서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함께 있다.
↳희생 없이 되는 일이 없다.
↳내가 희생을 지불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여러분은 죽으면 무엇을 남기겠는가?

-나는 죽으면 사실 남길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몸뚱이라도 기증하기로 했다.
↳죽어서라도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주의 재림 때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부활을 미리 맛볼 수도 있겠다 싶다.
↳내 눈이 다른 사람에게 이식될 때, 내 장기가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될 때, 부활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다 싶다.
↳그것 생각하면, 내 눈을 조심해야 한다.
↳몸도 나중에 물려받을 사람을 위해 잘 써야 한다.

-예수님이 희생을 구체적으로 해설해 주신다.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얼핏 보면 자기 생명을 미워한다는 말이, ‘자기 비하’나 ‘자기 학대’의 의미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기 사랑은 현재적인 것으로, 현재적인 자기 사랑에 빠지면, 미래적인 생명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현재 순간적으로 좋은 일을 하다가,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오늘의 자기 안일, 자기 사랑에 빠지면, 미래는 암담해질 수 있다.
↳현재의 자기 육체를 사랑하면, 영적으로는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기 생명에 연연하는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리석은 부자와 젊은 율법사가 그들이다.

-먼저 어리석은 부자이다.
↳그는 많은 곡식과 물건을 곡간에 가득 채워 넣고는,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했다.
↳이것이 할 말인가?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소리이다.
↳이 부자는 자기가 부자가 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사랑이 아니라 자기 파멸이었다.

-다음은 젊은 율법사이다.
↳그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영생의 길을 묻고는, 힘없이 돌아갔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노라 자부하는 그였기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기가 꺾였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진짜 영생의 길을 알려주신 것이다.
↳하지만 세속적 생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심히 근심하는 낯빛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생명은 구하면서도, 그 생명을 위하여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영생에 대한 값을 치를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나만을 위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일이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말의 원뜻은 덜 사랑한다는 말이다.
↳나를 덜 사랑해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나를 덜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여력이 있다.
↳내가 순교할 시간에, 나를 사랑한다면 죽을 수 있겠는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아야 한 순간에, 나를 사랑한다면 희생할 수 있겠는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대로 실천에 옮기셨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철학이 아니고 이념도 아니다.
↳자신의 삶과 직접 연관되어져 있다.
↳실제로 삶과 무관한 사상이나 종교는, 무가치한 것이다.
↳기독교는 현실도피적인 종교가 아니다.
↳현실을 개혁해 나가고, 황무지를 개척해 나가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피가 있었다.

-언젠가 비행기가 추락하였는데,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행히 강에 떨어졌다.
↳비행기 문이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떴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날은 저물고 겨울이어서 몸은 자꾸 얼어간다.
↳헬리콥터가 불과 십여 명을 구출하고, 무려 80여명 가량이 그 자리에서 죽은 참사였다.

-그 현장에 있던 헬리콥터 조종사가, 이런 간증을 했다.
↳헬기에서 밧줄을 내리자, 한 젊은 사람이 헤엄을 쳐서 밧줄을 잡았다.
↳밧줄을 잡고 그대로 있으면 살텐데, 잡고는 옆에서 허우적거리는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끌어올린다.
↳두 번째 밧줄도 또 그 젊은이가 잡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이렇게 하여, 다섯 사람을 살리고는, 자신은 가라앉아 다시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자신은 죽은 것이다.

-밧줄은 내가 잡았다.
↳잡고만 있으면 사는 것이다.
↳그 밧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죽어간, 이 크리스천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야 말로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이었던 것이다.

-이기심과 탐욕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핍박과 고난이 불가피하게 수반된다.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주의 말씀을 따라 살면, 자신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을 영생에로 인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를 믿는 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 믿는 것이, 감상의 문제만도 아니다.
↳예수님 계신 그 현장에, 내가 있어야 한다.

-찬송 작사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묻고 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나무 위에 달릴 때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무덤 속에 뉘일 때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무덤에서 나올 때

-예수님 계신 곳에 내가 있고, 예수님 죽으신 곳에서 내가 죽어야, 예수님 계신 하늘나라에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철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시기를 바라지 말자.
↳주님께서 내 뜻에 동의해 주기를 바라지 말자.
↳내가 주님 계신 곳으로 가야 한다.
↳내가 주님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님이 계신 곳이, 결코 안락한 곳만은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십자가를 우리도 져야만 한다.
↳십자가의 끝은 죽음이다.
↳하지만 부활의 영광을 보장하는 죽음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피하지 말자.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