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2024):사명에 헌신하자(눅19:28-4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4-03-24 12:19
조회
28


종려주일(2024)
사명에 헌신하자(눅19:28-40)
2024. 3. 24.


프롤로그

-미국에 햄크스라는 광부가 광산에서 일하다가 부상을 당하여, 두 눈이 멀고 두 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매우 절망하여 자살을 계획했다.
↳그러던 때에 예일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설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들으러 갔다.

-그 설교자가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그는 교수를 만나 물었다.
↳“나같이 눈도 없고 손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교수가 말했다.
↳“당신에게는 아직 입과 귀와 발이 있지 않습니까? 눈과 손은 없을지라도,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햄크스는 이 말에 희망을 갖게 되었고, 스탠포드대학에서 공부하여 미국의 유명한 강연자가 되었다.

-사명이 햄크스를 살게 했다.
↳사명은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사명이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살다가, 사명이 끝나면 죽을 사람이다.

-예수님은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셨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고 계셨다.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수차례 예고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메시야 왕국의 환상에 빠져 있어서 그랬다.
↳예수님이 메시야 왕국을 이루면, 자기들도 한 자리 차지할 거란 생각에 들떠 있어서였다.
↳예루살렘이 가까워질수록, 자기들의 환상은 점차 현실화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들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예수님은 죽음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신다.
↳죽음의 현실 너머에 있는, 부활의 이상을 믿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현실이 전부인줄 아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은 이상주의자로 보인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 중에,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상을 따라 살되,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현실 속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삶이다.
↳세속이란 현실에서, 거룩이란 이상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 땅이란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란 이상을 추구하는 삶이다.

-사명자는 앞서서 가는 사람이다.
↳사명자의 모본이신 예수님은 앞서서 가셨다.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주님은 그들 앞서서 묵묵히 걸으셨다.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앞서서 오르셨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 때문이다.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사명의 삶이었다.
↳예수님의 삶은 사명을 따라 산 삶이었다.
↳예수님의 삶은 삶의 방향을 사명에 맞추어 산 삶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종교 심리학자 위더헤드는, 이렇게 고백했다.
↳“삶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움직여 나가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 외의 다른 길은 결국에는 절벽으로 떨어질 뿐입니다. 부서지고 멍이 들어 환멸을 느끼고,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우리 속에는 끝없는 절망의 지옥 외에는,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벗어나서는 죽음뿐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을 읽는 모든 사람이, 수많은 고난을 겪은 뒤에, 비로소 깨닫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를 향하는 길로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방향이 있을 뿐이다.
↳그건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선두에 서려고 하면서, 교회에서는 일부러 뒤쳐지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
↳뒤에서 팔짱끼고 우두커니 지켜보는, 구경꾼의 자리에 서 있는 분들이 있다.
↳우리 모두가 사명자가 되어 교회에서 세상에서 선두에 서기 바란다.

-예수님의 일행이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였다.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더니, 제자 중에 둘을 지목하셨다.
↳두 제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되, 사안으로 볼 때, 가장 믿을만한 제자였을 것이다.
↳그 두 제자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이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냐가 중요하다.
↳‘너라면 이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야’ 라고, 주님이 위임할 만한 인물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어떤 일을 맡겼는가?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건너편 마을에 가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는 것이다.
↳순간 두 제자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그래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이 두 제자라면 어떠했을 것 같은가?
↳“예, 알았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고 뛰어갔을 것 같은가?
↳“예수님, 그 주인 잘 아는 사람이예요? 나귀 주인한테 미리 말씀해 놓으셨어요?” 하고 되물었을 것 같은가?
↳특별한 언급이 없는 걸로 보면, 두 제자는 순종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이 비록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기꺼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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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자가 어떻게 헌신했는가?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첫째, 말씀하신 대로 헌신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소수이다.
↳소수의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말씀하신 대로 헌신하지는 않는다.
↳그냥 헌신하면 되는 거지, 꼭 말씀대로 헌신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이왕 헌신하려면 말씀하신 대로 헌신해야 한다.

-두 제자는 건너편 마을로 갔다.
↳그들은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끌고 왔다.
↳그들은 매여 있는 나귀새끼를 풀어서 끌고 왔다.
↳그들은 나귀새끼 주인에게 “주께서 쓰시겠다”고 대답했다.
↳제멋대로 하는 헌신은 진정한 의미의 헌신이 아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는 헌신을 주님이 기뻐하신다.

-말씀하신 대로 헌신하기를 바란다.

-둘째, 이름 없이 헌신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쉬고 있었다.
↳그 때 두 제자가 특별히 부름을 받아, 그 일을 감당했다.
↳그랬으면 이름을 밝혀질 만도 한데, 그냥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라고 했다.
↳성경에 보면 헌신함으로 이름을 낸 사람들이 나온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는 대단하다.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그렇다고 헌신한 모든 사람이 이름을 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헌신하여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헌신한 사람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헌신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헌신했으면, 하나님만 알아주시면 된다.
↳교회에서 헌신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할 때가 있다.
↳주님께 헌신했다면, 교인들에게 섭섭하게 느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란 말이 아니다.
↳그들의 헌신을 인정해 주고, 그들의 노고를 알아줘야 한다.

-이름 내기 위해서 헌신한다면 아니함만 못한다.
↳헌신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바에는, 역시 아니함 만 못하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우리는 이 고백이 주님 앞에서 거짓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름 없이 헌신하기를 바란다.

-셋째,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그들은 나귀새끼의 등에, 안장 대신 자기들의 겉옷을 깔았다.
↳누구도 그들에게 겉옷을 벗어서, 나귀새끼 위에 걸치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원해서 그렇게 했다.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귀의 등에 아무 것도 깔지 않으면 안 된다.

-자발적인 헌신을 했을 때, 자기에게 뭔가 득이 된다면, 누구나 할 것이다.
↳서로 경쟁적으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헌신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자신을 살라 없애는 것이다.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다.

-세계 제2차대전 때, 독일 어느 시골에 있는 교회가 폭격을 맞아서, 예배당이 다 무너졌다.
↳그리고 그 뜰에 있던 예수님의 동상이 쓰러져서 땅에 묻혔다.
↳전쟁이 끝난 후 피난 갔던 교인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예배당을 지었다.
↳그리고는 땅에 묻힌 동상을 꺼냈는데, 손목이 잘려져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그 손을 찾을 수가 없어서, 교인들이 의논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전의 손과 똑같이 만들어 붙이자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그 동상을 녹여서 새로 만들자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세우자는 의견을 냈다.
↳나중에는 그대로 세우자는 의견이 많아서, 그대로 세웠는데 예수님의 손이 없지 않는가?

-그리고 그 동상의 밑에, 이런 글귀를 새겨 넣었다.
↳“주님, 주님의 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손이 누구의 손인가?
↳바로 예수님의 앞에 선 사람의 손이다.
↳예수님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의 손이다.

-자발적으로 헌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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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두 제자의 헌신이 있었다고 해도, 나귀 주인의 헌신이 없으면 안 되었다.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나귀 주인은 낯선 사람들이 와서, 자기 나귀새끼를 풀 때 이상히 여겼다.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그러자 나귀새끼를 풀다 말고 대답를 했다.
“주께서 쓰시겠다”

-주인이 그들의 말에 뭐라고 반응했는지는 생략되었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다.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에 항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요.’
↳‘나귀새끼의 주인은 바로 나란 말이요.’
↳‘도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주가 누구요?’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말없이 허락해줬다.
↳자기에게 있는 물질로 헌신한 것이다.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자신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어리고 앳된 젊은이였을 때까지만 해도, 교회를 잘 다녔다.
↳그러다가 돈 벌기 시작하자 돈독이 오르면서, 교회를 멀리하며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나이 50을 넘기자, 허탈감에 빠지고, 우울증이 심해지고, 끼니를 거르며,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교회에 나갔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그 후 건강이 회복되어, 교육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학교를 짓는 일에는 열심히 동참했다.
↳이 사람이 직접 세운 학교가, 미국에 있는 시카고 대학이다.
↳그리고 건축에 어려움을 겪는 교회가 있으면 도와주었고, 이분이 직접 세운 교회가 미국 맨해튼(Manhattan)에 있다.
↳또 병원을 짓고 자선사업을 했다.
↳그는 50대에 죽을 사람이 90을 넘겼다.

-그는 돈을 잘 써서 장수한 사람이다.

-돈이라는 것은, 첫째 벌기가 힘들고, 둘째 모으기 힘들고, 셋째 잘 쓰는 것은 더 어렵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돈 씀씀이에 따라서, 그 사람 인생의 성패가 갈라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다.
↳그럼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유를 붙이지 않을까?
↳아니면 생색을 내지 않을까?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속으로는 빼앗기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부자관계이다.
↳그러니 우리가 필요할 때 아버지께 구할 수 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 우리에게 구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필요로 하신다면,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드리겠다는 신앙의 고백이다.

-미국인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지폐에, 이런 글을 써넣었다.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들은 돈을 쓰면서, “우리는 돈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돈 때문에 행복한 적이 있었는가?
↳돈 때문에 불행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돈 때문에 행복하고 돈 때문에 불행하다면, 돈이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말다.
↳돈을 의지해서는 안 된단 말이다.
↳돈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단 말이다.

-존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한도에서, 돈을 벌어라.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모두 쓰라.”

-물질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이다.
↳결코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다.
↳그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악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물질은 달란트이고, 재물은 은사이다.
↳그러므로 선하게 써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감추어 두어서는 안 된다.
↳한 므나를 받은 종처럼 수건에 싸서 보관해두어서도 안 된다.

-재물은 하늘에 쌓은 것만 남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물질을, 하늘에 쌓는 게 지혜이다.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헌금하기 바란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 바란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데는, 두 제자의 헌신이 있었다.
↳나귀 주인의 헌신이 있었다.

-또 하나의 헌신이 있었다.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바로 나귀 새끼의 헌신이다.
↳나귀 새끼는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받았다.
↳그는 주의 일을 위해 선택받았다.
↳예루살렘 근처에 나귀 새끼가 한 두 마리였겠는가?
↳모든 나귀가 복을 받은 게 아니다.
↳아무도 타보지 않은 그 나귀 새끼에게 헌신의 기회가 주어진다.

-사무엘상 6장에 보면 법궤를 옮길 때, 어떤 소가 쓰임 받았는지가 나온다.
삼상6: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어떤 소가 쓰임 받았는가?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이다.
↳멍에를 메어보지 아니했다는 말은, 일해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일해 본 소는 해당되지 않았다.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는, 아직 어려서 때 묻지 않았고, 불의한 곳에 사용된 적이 없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주님이 어떤 사람을 사용하는지를, 그릇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딤후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그릇 중에는 귀히 쓰이는 그릇도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다.
↳그 중에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있다.
↳그건 깨끗한 그릇이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을 쓰신다.
↳여기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의 원 뜻은, '죄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죄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영혼이 오염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아무리 재능이 특출나도, 인간성이 괜찮아도, 영혼이 깨끗해야 한다.
↳거룩한 영혼이어야 쓰임 받는다.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라고 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거룩”이란 단어는, 구약 시대의 정결한 제물과 관계된 말이다.
↳자신을 구별시켜 하나님께 온전하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순수한 동기의 헌신과, 온전한 마음의 헌신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조건이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김동호 목사님이 높은뜻숭의교회에 시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 교회 교인 중에 김천에 사시는 분이 있었다.
↳매 주일 부인과 아이들 셋이 함께 올라온다.
↳듣자하니 그 집사님은 김천에서 설렁탕 장사를 한다고 했다.

-목사님이 김천에 집회 차 가셨다가, 일부러 그 식당에 들렀다.
↳꼭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시죠. 여기서 어떻게 매주일 서울로 올라오시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당부하리라 결심하고 찾아갔지만,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부인 집사님의 말 때문이었다.
↳“목사님, 제가 비록 설렁탕 한 그릇을 끓여 파는 사람이지만, 설렁탕 한 그릇을 끓여도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끓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대접을 해도, 부끄러움이 없는 설렁탕을 끓이려고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최고의 재료만 사용했다.
↳뼈와 고기도 제일 비싸고 좋은 것으로 산다.
↳김치를 담가도 제일 좋은 재료를 쓴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뼈를 끓이는데, 거래처에서 뼈를 잘못 보냈는지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게 아니라, 누런 국물이 나왔다.
↳24시간 동안 끓여야 하는데 야단났다 싶어, 거래처에 급히 전화를 하자, 뼈가 바뀐 것 같다고 죄송하다면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
↳“사장님, 오늘만 커피 프림을 타시죠. 낮은 품질의 뼈를 사다가, 커피 프림을 타서 내놓는 설렁탕 집이 있거든요.”

-그 말을 들은 집사님 내외분은 끓이던 설렁탕 국물을, 죄다 버렸다고 한다.
↳그날 장사를 하지 않고, 식당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게 앞에다, 이런 글을 써 붙였다.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않아 장사를 못합니다.”
↳그날 이후 그 설렁탕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분들이 장사 잘 되게 할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설렁탕을 끓이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정직하게 경영하는 것은 사람 몫이다.
↳정직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마음이 깨끗한 자를 형통케 하신다.
↳하나님은 순수한 동기로 헌신하는 자를 잘되게 하신다.

-무리가 큰 소리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면서 노래했다.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한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불만을 표출한다.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는가?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침묵하면"과 "돌들이"라는 말 사이에, 이 단어를 넣으면 보다 뜻이 분명해진다.
↳‘대신’이란 단어이다.

-주님은 당신의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는 분이다.
↳만약 내가 주님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 대신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신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하기 싫었는데, 그럼 잘된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아주 잘된 일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면, 우리에게 주시려고 했던 복이 지나가버리게 된다.
↳그럼 눈앞에서 하나님의 복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맺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다.
↳두 제자처럼 말씀하신 대로, 이름없이, 자발적으로 헌신하기 바란다.
↳나귀 주인처럼 말없이 헌신하기 바란다.
↳나귀처럼 깨끗한 맘으로, 순수한 동기로 헌신하기 바란다.
↳그래서 사명자에게 주시는 복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