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노아) 강해 7:노아가 방주에서 나왔더라(창 8:13-2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1-26 12:54
조회
92



구약인물(노아) 강해 7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더라(창 8:13-22)
2020. 1. 26.


프롤로그

-깊은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려 쏟아져, 물이 온 땅을 덮었다.
↳그렇게 물이 땅에 150일 동안이나 가득 차 있었다.
↳이 엄청난 물이 빠지는데,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 어느 덧 해가 바뀌었다.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정월 초하루가 되었다.
↳노아는 방주 뚜껑을 제치고 확인하니 물이 지면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에서 바로 나오지 않았다.
↳얼마 동안 그대로 더 있었는가?
↳2달 정도이다.

-노아가 왜 그랬을까?
↳나오면 죽게 될까봐 그랬을 것 같은가?
↳아니면 방주 생활에 익숙해, 그곳이 더 좋게 느껴졌기 때문인가?
↳둘 다 아니다.
↳방주의 문을 닫으신 하나님이, 아직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까지, 노아가 기다린 것이다.

-노아는 객관적인 정황을 통하여, 홍수가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둘기를 통해서 이제 방주에서 나가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13절 말씀대로 방주의 뚜껑을 제치고, 밖의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전에는, 결코 방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건 노아가 자신의 판단이나 계획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 살았음을 말해준다.
↳이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우리가 가는 길을 지도해주신다.
↳우리 길을 지도하신다는 말은, 당신의 뜻을 보여주신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모호하다.
↳도대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닥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계속하여 말씀을 가까이 하면, 갑자기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노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답답한 방주 안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나타내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노아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그로부터 약 2달이 지난 2월 27일, 홍수가 난지 1년 10일 되던 날에, 하나님의 음성이 노아에게 들려왔다.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방주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너 스스로 문을 열고 방주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노아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방주가 왜 지어져야 하는지 모르고, 일단 순종부터 하고 봤다.
↳방주가 다 지어진 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가족과 동물들을 방주 안으로 들여보낼 때도, 노아는 순종부터 하고 봤다.
↳노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친히 방주의 문이 닫으셨다.
↳그리고 그 문을 하나님이 지키고 계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그렇다.
↳구원의 1단계인 칭의에서는, 우리의 노력이 전무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의 공로가 개입할 자리가 없다.
↳복음을 어린 아이 같이 믿기만 하면 된다.
↳나를 그분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구원의 2단계인 성화는 그렇지 않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의 변화가 있을 때는 놀라운 감격이 따르지만, 성화를 이루어 가는 삶은 감격보다는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아직도 우리 안에 옛사람의 모습이 남아 있다.
↳옛사람의 사고방식, 가치관, 세계관,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만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변화시키려는 하나님과, 변화되길 거부하는 나 사이에,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치열한 자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칭의의 구원은 받아들이면 되었다.
↳내가 의롭게된 것은, 그분의 일방적인 사역이다.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기를 원치 않는다.

-방주 안의 삶은 구원의 과정일 뿐 완성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주 안에서 영원히 살라고 하지 않으신다.
↳스스로 문을 열고, 방주 밖으로 나오라고 하신다.
↳이제는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것이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성화는 성령님의 사역이다.
↳그렇다고 성령님의 일방적인 사역인가? 아니다.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복종하여, 성령님과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너희 구원을 받으라 하지 않고,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신앙이 자라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있다.
↳칭의의 구원을 받은 것이, 구원의 전부인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게 당연하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왕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은 열정이, 당연히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을 부지런히 닮아가야 한다.
↳우리가 주님과 같아질 수는 없으나, 주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은, 얼마든지 기울일 수 있다.
↳물론 수많은 좌절과 희생이 따라야 하지만 말이다.

-그분이 관심을 가지셨던 것에 나도 관심을 갖고, 그분이 무관심해 하셨던 것에 나도 무관심해 하는 것이, 주님을 닮는 것이다.
↳그분이 열정을 가지셨던 일에 나도 열정을 갖고, 그분이 미련없이 포기하셨던 일에 나도 미련없이 포기하는 것이, 주님을 닮는 것이다.
↳우리가 그 동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기를 소원하면서도, 주님을 닮아 가는 일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하면 특별한 사람을 생각한다.
↳기도를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 사람, 기도할 때 특별한 은사가 나타나는 사람을 떠올린다.
↳아니면 금식기도를 자주하고, 40일금식기도도 해본 사람을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사람을 한 번도 거룩한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거룩한 사람은 주님을 닮은 사람이다.
↳계속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 이루어 가는 구원이다.
↳성화의 구원이다.
↳우리는 이미 칭의의 구원을 받았다.
↳그런 우리가 계속하여 이루어 가야할 구원이 성화이다.
↳끝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왜 노아와 그 가족과 짐승들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셨을까?
↳17절 마지막 부분을 보자.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이 말씀도 낯선 말씀이 아니다.
↳어디에 나오는가?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복의 메시지이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복을, 홍수가 끝난 후 다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셨지만, 심판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심판하시나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고난을 주셨다.

-도자기를 만들 때 과정을 생각해 보자.
↳고르게 빻아야 하고, 반죽을 해야 하고, 물레에 돌려 빚어야 한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고통은 지금부터이다.
↳불에 구워야 한다.
↳한 번만 굽는가?
↳몇 차례 불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이 과정을 잘 견디어야, 좋은 도자기가 된다.
↳우리가 현재 당하는 시련은, 복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빚어 가는 필수 과정임을 믿기 바란다.

-하나님의 음성이 있기 전까지 노아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노아는 즉각 순종했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골방에서 기도로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까지, 말씀을 붙들고 씨름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에는 즉시 순종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방주 밖으로 나왔을 때, 이들이 본 세상은 어떠했을 거 같은가?
↳1년간 물에 잠겼던 세상이, 물이 다 빠진 후에 어떤 모습이겠는가?
↳아마도 폐허 그 자체였을 것이다.
↳차라리 방주 안에 있는 게 나을 뻔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아와 식구들은 방주에서 나와야 했다.
↳비록 세상이 폐허 같을지라도 방주에서 나와야 했다.
↳어쩌면 세상이 폐허 같으니까 더욱 나와야 했을지 모른다.

-우리 역시 교회 안에서만 은혜 받았다고 큰소리 치지 말고, 세상에 나가 받은 은혜로 살아야 한다.
↳세상이 타락하고 죄가 가득해 있을수록, 세상에 나가서 받은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영적 전쟁을 치르다가, 부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 와서 치료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세상에 나가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세상에 파송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0절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 맨 처음 한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것이다.
↳폐허가 된 세상에 발을 내딛었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겠는가?
↳당장 먹고 살 것이 필요하고, 거처할 집도 있어야 하고, 가축의 축사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존을 위한 것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보다, 맨 먼저 하나님께 예배했다.

-이게 하나님 우선적인 신앙이다.
↳무엇이 남아서 드린 것이 아니다.
↳무엇이 풍족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넉넉해서 구제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단을 쌓아야 했다.
↳단을 쌓는 작업도,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을 주어오는 것도 그렇고, 주어온 돌을 깨끗이 씻는 작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일 년 동안 방주에서 정든 짐승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이 모든 것을 두 번째로 여겼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첫 번째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1순위를 두고 나면, 나머지 모든 것은 2순위로 밀려난다.
↳예배를 2순위에 두는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자투리 시간을 하나님께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남아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 24시간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바쁘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핑계다.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는, 결코 바쁘다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
↳연애하는 사람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돈 버는 일을 바쁘다며 마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쁘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마음이 없다는 것이요, 하나님께 삶의 1순위를 두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께 1순위를 두며 살고 싶은데,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순수한 신앙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청교도들이라 불린다.
↳이 청교도들이 조국을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죽을 고생을 하여 가까스로 신대륙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
↳있는 힘을 다해 건물을 지었다.
↳그게 무슨 건물이었는지 아는가?
↳자신들의 집이었는가?
↳아니면 농작물을 저장할 창고였는가?
↳자녀를 교육시킬 학교였는가?
↳병든 사람을 치료할 병원이었는가?
↳아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교회였다.

-그들은 자식들을 위한 학교보다도, 환자들을 위한 병원보다도, 심지어 자기들이 거처할 집보다도, 교회를 먼저 지었다.
↳청교도들은 예배를 신앙의 1순위가 아닌, 삶의 1순위로 삼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었다.

-지금 우리 삶의 최우선순위가 무엇인가?
↳지금껏 무엇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는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예배를 삶의 1순위로 삼기 바란다.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저 천국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 자기 관리를 잘 하기 바란다.
↳우리에게 있어 예배는 생명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한 주간을 예배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다.

“나에게 예배는 생명입니다.”

-노아는 예배의 비밀을 알았다.
↳예배를 자기 삶의 1순위로 두고 살았다.
↳당연히 자녀들도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신앙밖에 없다.
↳신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예배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주일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고, 주일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걸 부모의 사명으로, 이걸 집안 어른의 사명으로 알아야 한다.
↳자녀가 예배 생활을 잘할 때, 비로소 자녀교육에 성공한 것이다.

-노아가 예배를 잘 드렸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아주셨다.
↳그리고 노아 일행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고 다짐을 하신다.
↳홍수는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만 더욱 쓰라렸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홍수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 있었다.
↳그게 바로 노아가 드린 제사였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받으시고, 인간의 죄에 대한 생각을 바꾸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신 제사가 있다.
히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예수님이 친히 대제사장이 되어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린 제사였다.
↳예수님이 단번에 드린 제사가, 온 인류를 진노에서 용서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현대 교인들은 진노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저 사랑의 하나님일 뿐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전히 실수다.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착각을 하셨거나, 예수님이 정신나간 행동을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였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는 죄인들의 불쌍한 모습을 보셨기에,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다.
↳죄인들의 머리에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시고,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의 하나님을 말할 자격이 없다.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악한 일을 행할 때마다 심판을 하셨다면, 인간은 이미 멸절되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악하게 태어났다.
↳죄성을 몸에 지닌 채 태어났다.
↳죄에 오염된 상태로 출생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이다.

-범죄하기 전의 인간은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자였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였다.
↳그러나 범죄한 이후의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어야 했고, 결국은 죽어야 하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죄성은 물로 씻을 수가 없다.
↳그 무엇으로도 죄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
↳21절 끝부분의 말씀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수밖에 없다.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홍수 후에 지구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첫째 기후의 변화가 일어났다.
↳홍수 전에는 인간이 살기에 완벽한 조건이었다.
↳궁창 위의 물로 인해, 온실 기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추위에 떨 필요도 없었고, 더위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홍수로 인해 지각 변동이 일어남으로, 기후의 변화가 왔다.
↳극단적인 사계절이 생겼다.
↳남극과 북극이 생겼다.
↳그때부터 자연 재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환경 파괴로 인해, 폭설과 폭우와 폭염으로 해마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둘째 수명의 변화가 일어났다.
↳노아 홍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약 900살이었다.
↳그런데 홍수 이후 인간의 수명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갑자기 400대로 200대로 떨어졌다.
↳창세기 5장과 11장 10절 이하를 한 번 비교해 보라.
↳수명의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식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건 9장에 가서 살펴보겠지만, 홍수 이전의 인간의 식물은 채소였다.
↳그러나 홍수 이후에는 동물을 채소와 같이, 인간에게 주셨다.
↳아마도 추위와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 동물성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일 거 같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까지, 기다린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다.
↳하나님은 지체하실 수는 있어도, 반드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이제 순종해야 한다.
↳비록 폐허같은 세상으로 나가라는 명령일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폐허같은 세상에 나와도 그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한다.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예배이다.
↳예배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예배를 삶의 1순위에 놓기만 하면, 다른 모든 것은 2순위로 밀려난다.
↳그렇게 하면 신앙생활 하면서, 쓸데없는 것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알고 보면 위대한 일이다.
↳혁명가가 바꾸지 못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또 한 번 예배자로 서 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하나님의 마음에 전달되고 있는 거 같은가?
↳아니면 우리만의 종교집회로 끝나는 거 같은가?
↳우리가 매주 드리는 이 예배가 삶의 현장으로 연결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예배와 단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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