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강해 11:엘 칸나 :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신 6:4-15)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1-10 14:42
조회
1097



하나님의 이름 강해 11
엘 칸나 :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신 6:4-15)
2019. 11. 10.


프롤로그

-하나님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을 살펴보았다.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 :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살롬 :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로이 : 목자이신 하나님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 : 여기에 계신 하나님
여호와 치드케누 : 의이신 하나님
여호와 체바오트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카데쉬 : 거룩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은 11번째 시간으로 엘 칸나에 대해 살펴보겠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셨다.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에 대해 이보다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자신이 섬기는 신을 사랑으로 정의하는 종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섬기는 신 하나님은 특별한 분이시다.
↳여기서 특별하다는 말은 유일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세도 하나님의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세상에 신이란 존재는 수없이 존재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만 해도, 신의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 역시 별의별 잡신을 다 섬겨왔다.

-종교학대사전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가정 내의 수호신이나 성주의 지배하에 있어서 형벌을 집행하는 젊은 여성 신이 있었는데, 그 신이 바로 변소 신이라는 것이다.
↳옛 어른들이 변소를 사용할 때 헛기침을 했다.
↳그 이유가 변소 신(神)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도록, 헛기침을 해서 ‘저 들어갑니다’ 알리는 거라고 한다.

-이렇게 웃지 못할 신(神)까지 섬기고 살던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
↳선교사들을 보내주셨고,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성경부터 들어오게 하셨다.
↳지금도 샤머니즘이 아주 사라지지 않았고, 민간 신앙으로 전통 문화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음을 볼 때, 샤머니즘이 어지간히 질기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샤머니즘에 사로잡혀 지낼 뻔하였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할 일인지 모른다.

-유일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신(神)을 지성을 다해 섬긴다고 생각해보라.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우상과 잡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말씀하셨다.
고전 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우리는 유일한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과 바알 아세라를 기웃거리면 안 된다.
↳하나님께 한 발, 세상에 한 발을 딛고, 줄타기 곡예를 부리면 안 된다.
↳그건 너무나 위험한 줄타기 신앙이다.
↳우리는 견고한 반석 신앙이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이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어야 한다.

-신명기는 가나안이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광야 2세대들에게 한 설교이다.
↳비록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지만, 머잖아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광야 2세대를 보니,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후 당부하는 심정으로 설교한 것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오직 유일한 여호와라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아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님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하라고 했는가?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뜻을, 너의 최선의 힘을 가지고 사랑하라’이다.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세 가지 표현을 중복시켜, 인간이 하나님 을 사랑하는 태도와 그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매우 강렬하게 말씀하고 있음을 본다.

-공동번역성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여기에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자기 마음에 새겨야 한다.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자!”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고 하니까, 일회적 행위로 들리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말씀을 한 번 듣는다고 바로 새겨지는가?
↳반복적으로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한다.
↳그래서 말씀이 내 마음 곧 인격에 영향을 주고 다스리게 해야 한다.
↳그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한을 통해 확인해 주셨다.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녀에게 말씀을 강론해야 한다.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자녀에게 말씀을 강론하자!”

-자녀에게 말씀을 강론하라는 말은, 당대만 잘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믿음의 계승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내 자신이 말씀대로 사는 것도 힘들다.
↳자식까지 믿음으로 살게 하는 건 정말이지 힘들다.

-잘 믿는 자녀를 둔 목사님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자녀들이 나보다 더 잘 믿게 해달라고, 기도는 열심히 한다.
↳하지만 기도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부담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애들만 해도, 내가 붙들고 입으로 교육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예수 잘 믿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말씀대로 잘 사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대를 이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문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말씀을 가까이 두자!”

-예전에는 말씀이 귀했다.
↳종교지도자들이나 말씀을 접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평신도들은 성경을 갖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 흔해서 문제다.
↳말씀의 홍수 가운데 살아서, 말씀이 귀한 줄 몰라서 문제다.
↳그래서 오히려 말씀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는다.
↳말씀이 너무 흔해서, 말씀의 홍수 가운데 살아서, 말씀을 멀리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교단도 주제를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로 정하고,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새로워지고자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말씀으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말씀 운동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말씀 운동은 말씀을 가까이 두는 것부터 시작된다.
↳일찍이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목적에 두고, ‘그곳에 들어가면 재미있고 흥미있는 것이 많이 있을텐데...그 때 그것에 빠지면 안 된다. 어떻게든 말씀을 가까이 두라’고 신신당부한 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측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나와 말씀의 거리가 곧 나와 하나님의 거리다.
↳내가 말씀과 가까운 만큼, 딱 그 정도 하나님과 가까운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과 경고가 있다.
↳10-11절에 먼저 약속이 나온다.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한 마디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떠돌이 백성이 아닌, 정착민으로 살게 될 거라는 약속이다.
↳갖은 설움을 겪으면서 셋방살이를 떠돌다가, 어엿한 자기 집을 장만하여 들어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날 밤 잠이 오겠는가?
↳애굽에서 종살이 430년에, 광야생활 40년, 도합 470년을 떠돌이 백성으로 살다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다.

-그때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12-14절에 경고하신다.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어려울 때는, 하나님 잊어버리지 말라고 경고할 필요가 없다.
↳인생이 힘겨울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려야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아니까...

-그런데 잘 될 때는 다르다.
↳자기가 잘해서 잘된 줄 안다.
↳자기가 잘 살아서 복을 받은 줄 안다.
↳자기가 잘 믿어서 하나님께 복 받은 줄 안다.

-거기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고, 모세는 천국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모세가 보기에 광야 2세대는, 아직 어리기만 하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릴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하나님 여호와만 경외하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 섬기라.”
↳“가나안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한다.
15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질투하시는 하나님 : ‘엘 칸나’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왠지 잘 안 어울리는 거 같다.
↳그럼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표현이, 성경 이곳에만 나올까?
↳그렇지 않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수 24: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표현한 구절이, 생각보다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질투하는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인 게 맞다.
↳질투도 그냥 질투가 아닌 불같은 질투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질투” 그러면, 시기와 함께 부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신성한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는지 궁금할 수 있다.

-질투의 국어사전적인 정의는 이렇다.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이다.
↳즉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질투할 리가 없다.
↳하나님을 질투하는 분으로 표현한 것은, 그분이 우리를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말이다.
↳그 질투가 얼마나 강렬하냐면, 그 질투 때문에 독생자를 죽는데 내어주실 정도였다.

-사실 쉽기는 죄를 범한 인류, 타락한 인간을 사단에게 내어주면 된다.
↳그건 포기다.
↳포기하는 것은 이처럼 쉽다.
↳하나님은 보다 쉬운 포기를 선택하지 않고,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질투하는 하나님을 잘 아는,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질투는 열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질투는 헬라어로 젤로스이다.
↳젤로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질투라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열심, 열정이라는 의미이다.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그의 책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일본 여성을 소개한다.
↳아라카와라는 60대 여성인데, 한 건강식품회사의 세일즈 매니저로 근무하는 여성이다.
↳수만 명의 세일즈맨을 제치고 늘 좋은 성과를 거두는 이 여인은 놀랍게도 맹인이다.
↳그녀는 하루 660㎞, 한 달 평균 2만㎞를 달린다고 한다.
↳주문을 받기 위해 왕복 7시간 거리도 기쁘게 달려간다.
↳이것은 택시기사의 운행 거리를 훨씬 넘는 수준인데, 아들이 운전을 대신 해준다고 해도 고령의 맹인 여성이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이다.

-실제보다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 이 여성을 향해 윤 회장이 세일즈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대답이 걸작이다.
↳“가슴과 사랑으로 팔았지요!”
↳가슴과 사랑은 다른 말로 열정이다.

-가수 비가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저는 모든 사물을 보면 저것을 춤으로 출 수 없을까 생각해요.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들고 가시면, 지팡이로 출 수 있는 춤을 만들 수 없을까? 차를 탈 때도, 차타는 방법으로 무언가 춤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해요.”
↳가수 비한테는 모든 것이 춤으로 연결된다.
↳그게 비가 가진 열정이다.

-세일즈를 하든지, 춤을 추든지, 무엇을 하든지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무엇에나 열정이 담기면 감동이 있다.
↳그런데 열정이 빠지면 생명력이 사라진진다.
↳열정이 빠진 세일즈가 돈벌이에 불과하듯, 열정이 빠진 신앙은 종교생활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감동을 한다.
↳그분의 생명을 바친 열정적인 사랑 때문이다.
↳한때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질투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은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과 목숨을 기꺼이 맞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느니 사느니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조언한다.
↳“야야, 세상에 여자는 쌨고 쌨어.”
↳“지구 위에 반이 여자야.”
↳“꼭 그 남자여야만 해?”
↳“그 남자와 인연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런 소리가 그 사람 귀에 들어올까?
↳“나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나는 그 사람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이게 열병을 앓는 사랑이다.
↳이게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다.
↳질투라고 하면, ‘오직 못 났으면 질투를 해’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질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추한 모습이 나올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질투의 동기는 정당한 것이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고, 남편이 질투하는 게 속좁은 마음이어서인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기로 했어’ 한다면, 그걸 정상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는가?
↳부부에게 질투는 당연한 것이다.
↳결혼한 순간부터, 부부에게는 질투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한 순간,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 신랑만 사랑해야 한다.

-애가 과자 준다고, 아무 아저씨나 따라가면 되겠는가?
↳예쁜 여배우한테 멋진 남배우한테 마음을 빼앗겨, 잠꼬대를 하면서 그 배우 이름을 부르면 되겠는가?

-사랑은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가 엄마를 50% 사랑하고, 아빠를 50% 사랑하는가?
↳엄마를 사랑할 때 100%로 하고, 아빠를 사랑할 때 100%로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50% 사랑하고, 세상을 50% 사랑할 수 있다? 없다?

-사랑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나눌 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아끼고 더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지 우상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성경이 뭐라고 했는가?
약 4:4 간음한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니라
↳영적 간음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도 보자.
약 4: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떼어 세상에 한눈을 파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질투가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주범은, 큰 게 아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뭔가 끼어드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다.
↳부부 사이에 뭔가 끼어들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긴다.
↳부부 사이에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녀도 끼어들면 안 된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틈새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틈새를 마귀가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엡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혹시 우리 중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틈새가 생겨서, 마귀에게 틈을 주고 있는 분은 없는가?
↳하나님의 불같은 질투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엘 칸나 : 그분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버리신 하나님을 사랑하자,
↳마귀가 질투할 정도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