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3: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창 23:1-2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9-06 12:22
조회
633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3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창 23:1-20)
2020. 9. 6.


프롤로그

-생명을 가진 자는 반드시 죽는다.
↳한 번 태어난 생명이 한 번 죽는다는 것처럼 확실한 사실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엄연한 법칙을 거스르려고 한다.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억지스런 소망이다.
↳죽음의 사자가 문 앞에 이르렀을 때에, 선뜻 따라 나서는 이는 별로 없고, 단 며칠이라도 생을 연장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한 사람은 없고, 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죽음의 천사는 그냥 되돌아가는 법이 없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본문은 사라가 죽었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아브라함보다 열 살 아래인 사라가 먼저 죽었다.
↳평균 수명으로 보아, 남자가 더 빨리 죽는다는 통례를 깨고, 사라가 먼저 죽은 것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다.
↳꼭 나이가 많다고 빨리 죽고, 나이가 어리다고 늦게 죽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 중에서 누가 먼저 죽게 될 지, 누구도 알 수 없고, 하나님만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대비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는 날은 없다.
↳우리가 헛되게 보내도 괜찮은 날은 없다.
↳우리가 불성실하게 살아도 될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사라는 127세를 살았다.
↳이 나이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성경에서 사라의 나이를 밝혀놓은 것은, 사람이 장수했느냐 단명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오래 산다는 말을 하고자 함도 아니고, 예수를 잘 믿으면 장수한다는 말을 하고자 함도 아니다.
↳성경은 영생을 얻는 방법을 말하지, 장수하는 방법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사는냐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장수한 것을 자랑할 수 없다.
↳사람의 수명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젊어서 요절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는 빨리 죽고 싶어도 백수를 넘기는 사람이 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얼마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아도...
↳어떤 사람은 단명했지만, 의미 있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장수했지만, 별 의미 없이 살다가 죽었다.
↳우리는 단 하루를 살아도 바르게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단 며칠을 살아도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라의 죽음 앞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가?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언제까지나 자기와 함께 할 것 같았던 사라가, 먼저 세상을 하직한 것에 대해,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가?
↳화장실에 가서 씩~ 웃었는가?
↳하긴 요즘은 남편들이 아내가 죽어도 잘 울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들 역시 남편이 죽으면 ‘잘 됐다’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한다.
↳아브라함이 애통했다는 말은, 창세기에 처음 나온다.
↳사실 아브라함의 인생 여정에서 애통할 일이 꽤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조카 롯이 함께 고향을 떠나와서, 홀로 소돔성으로 떠나갈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아렸을 것이다.
↳서자이긴 해도, 엄연히 장자인 이스마엘을 쫓아내야 할 때, 그의 마음은 찢어졌을 것이다.
↳100세에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그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버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애통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 슬퍼하며 애통했다.
↳약 80-90년을 살을 맞대며 함께 살아온, 그간의 정 때문이었을까?
↳그 동안 사라와 함께 했던 기쁘고 좋았던 일들, 눈물 없이 지날 수 없었던 어려웠던 시기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위기의 순간들이, 기록 필름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사라를 처음에 신부로 맞았을 때의 그 감격이 생생하게 그려졌고, 힘들었지만 함께 손을 잡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오던 시절이 생각났을 것이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영~ 아님을 보고 실망하며 지었던 그 표정, 애굽의 바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여 바로의 아내가 되기 위해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가며 지었던 안타까운 표정도 떠올랐을 것이다.
↳이스마엘 때문에 자신에게 앙칼지게 대들던 모습과, 이삭이 태어났을 때 웃기보다는 그동안의 설움으로 인해 엉엉 울어버렸던 모습도 떠올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늘그막하게 낳아 기른 이삭이, 결혼하는 것도 못 보고 떠나간 것이, 여간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되면서, 아브라함의 흐느끼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우리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 슬픈 감정을 감출 필요는 없다.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상을 당했을 때, 슬퍼하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여기는데,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왜 우느냐가 중요하긴 해도, 눈물을 흘리는 행위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주님도 사랑하는 자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요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정을 주셔서,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슬픔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슬픔의 감정에 빠져있어도 역시 좋지 않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시신 앞에서, 언제까지 슬퍼하고 있지는 않았다.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났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그 일을 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할 줄 알았고, 울어야 할 때 울 줄 알았으며,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날 줄 알았다.
↳그는 사라의 죽음에 슬퍼했지만, 슬픔에 빠져 있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래서 슬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슬픔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이런 슬픔 앞에서,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죽은 사람만 붙들고 슬퍼한다고, 뭐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죽음이 불러온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당장 사라를 묻을 곳이 없었다.
↳아브라함에게 땅 한 평도 없기 때문이다.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받았으나, 정말 필요할 때 그에게는 아내를 묻을 땅도 없었다.
↳이쯤 되면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말이라도, ‘하나님, 이게 뭡니까’ 하고, 원망 섞인 말을 할만도 하다.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이 큰 시험에 들 만한 일을, 지금 당한 것 아닌가?
↳그러나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께 불평의 말을 늘어놓고나, 원망을 하지 않았다.
↳모리산에 다녀온 아브라함이, 믿음의 정상에 굳건하게 서 있음을 본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매장지를 사려고 나갔다.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헷 족속들을 찾아가서 죽은 아내의 매장지를 팔라고 요청한다.
↳이방인에게 팔기 때문인지, 아니면 땅의 매매를 위해서는 씨족회의를 거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헷 족속이 다 모였다.

-이 자리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가리켜 뭐라고 하는가?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몇 년 동안 살았는가?
↳아브라함의 지금 나이가 137세이고,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이니까 62년이다.
↳60년이 넘은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고향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담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가나안에서,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단 말이 된다.

-여기에서 그가 땅을 소유하지 않았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한 평생 ‘나그네 의식’을 갖고 살았기에, 소유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나그네는 많이 소유하는 것을 꺼려한다.
↳언제라도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브라함만 나그네라고 말하지 않는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모든 인생을 나그네라고 한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살이이다.
↳하늘을 본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나그네 인생이다.

-그런데 그게 말뿐일 때가 많다.
↳우리가 정말 하늘을 본향으로 삼고,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기 위해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 그렇게 살고 있는가?
↳말로는 나그네로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우리에게도 사라처럼 인생의 마지막이 온다.
↳그 날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올 수도 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요즘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보면서, 더욱 그분의 삶이 그리워진다.
↳그는 생전에 매일 40여 명을 무료로 진료하셨다고 한다.

-그의 이런 삶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살도록 합니까?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때 장기려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그가 한국의 슈바이처로 살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말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나그네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과욕 부리지 않고 살 수 있다
↳자신이 순례자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본향을 바라며 살 수 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할 땅을 사겠다고 하자, 헷 족속은 우호적으로 나왔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아브라함에 대해 어떻게 호칭하는지에 잘 나타나 있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내 주여 들으소서”
↳이건 상대방에 대한 최상의 존칭이다.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이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그곳에서 잠깐 머무르다 갈 나그네이기 때문에, 대충대충 산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최선의 삶을 살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정도로, 이웃을 돌아보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 대해,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불렀다.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은 틀림없는 그리스도인이오” “당신은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줄 믿는다.

-또 우리가 죽고 나서, 장례식에 참여한 조객들로부터, ‘그는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헛되게 살지 않은 것이다.
↳이게 신앙인으로서 성공한 삶인 것이다.

-헷 족속의 말은, 아브라함의 삶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지 사람의 시체를 자기 땅에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그래서 죽으면 자기 고향으로 간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는 달랐다.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장차 자기가 죽어 들어가기 위해서 미리 파놓은 묘실을, 아브라함에게 주겠다는 것 아닌가?
↳이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어느 정도로 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불신자들 앞에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아브라함을 통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의 호의를 사양했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아브라함은 일어나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혔다.
↳자기를 하나님의 방백으로 높여준 그들에게, 몸을 굽혀 고맙다는 표시를 한 것이다.
↳그 땅 백성을 향하여 몸을 굽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겸손한 인격을 보게 된다.
↳칭찬할 때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를 칭찬해보라는 말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이나 좋은 곳을 택하라는 말에, 아브라함은 미리 마음에 두고 있는 땅이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에브론이라는 사람의 소유인 ‘막벨라 굴’이었다.
↳막벨라 굴은 가족 무덤으로 쓰기에 적격이었다.
↳아브라함이 자기 묏자리를 미리 봐두었다는 말은, 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해왔기에, 배우자의 죽음 앞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땅 임자가 말했다.
10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막벨라 굴뿐만 아니라 그 밭까지도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동족 앞에서 약속을 하며 거듭 주겠다고 한다.
↳뒤이어 나오는 아브라함의 말로 볼 때, 그걸 다 무상으로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기꺼이 주겠다고 하니, 너무나 고마운 일 아닌가?
↳그야말로 여호와 이레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아브라함은 땅 주인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언뜻 아브라함을 이해할 수 없다.
↳무상으로 주겠다고 하는데도, 굳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매입하겠다며 한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에브론의 제안이 충동적인 것으로 보았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든지, 아니면 소문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충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충동적인 사람은 기분이 좋을 때는 뭐든지 다 주겠다고 하고, 30분만 지나면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자기 머리를 쥐 박으며, ‘내가 미쳤지, ‘내가 아까 왜 그랬을까’ 고민하다, 머쓱한 얼굴로 무르겠다고 찾아온다.
↳“아까는 그랬는데... 상황이 상황이라서……죄송해요.”
↳이렇게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확실하게 값을 치르고자 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확실하게 공증을 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 무엇이든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공짜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신세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만약 그 땅을 공짜로 받은 후에, 에브론이 나중에 어떤 불의한 요구를 해온다면 곤란해진다.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막말로 사라의 시신을 옮기라고 하면, 그 때 어떻게 하는가?
↳만약을 대비하는 아브라함의 철저한 삶의 태도를 본다.

-셋째 후손을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나중에 후손이 가나안을 차지할 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며, ‘은혜를 원수로 갚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역시 한 민족의 시조답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에브론의 본심이 드러난다.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방금 전까지도 막벨라 굴과 밭을 그냥 주겠다던 그의 말이, 본심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제값을 치르고 사겠다는 아브라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은 400세겔이라는 땅 값을 부르고 있다.
↳한 번 무상으로 주겠다고 했으면, 끝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도 자기가 한 말에 머쓱했던지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한다.
↳은 400세겔이 당시 시세인지, 아니면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부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거기서 단 한 푼도 에누리하지 않고, 그대로 지불했다.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아브라함이 왜 그랬을까?
↳그가 돈 자랑을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야 하니까, 바가지인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렇게 한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살아도 가나안에서 살아야 하고, 죽어도 가나안에서 죽어야 하고, 묻혀도 가나안에 묻혀야 한다고 믿었다.

-아브라함인들 왜 고향에 묻히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고향 선산에 묻히는 것보다 중요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비전이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사라의 시체를 들고, 고향 갈대아 우르로 돌아가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의 한 모퉁이를 산 것이다.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중요한 것에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바가지를 썼다고 할지 몰라도, 아브라함에게는 이 무덤이야말로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에 살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그 땅을 사야 했던 것이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을 잘해야 한다.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희생해야 할 때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영혼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눈먼 돈이 굴러올 때 피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돈을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치고, 좋은 것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구원이 중요하다면, 천국을 위해서 마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신앙생활이 중요하다면, 신앙생활을 위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예배를 위해서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지낸다.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 문제로 헷 사람들의 도움을 구했다.
↳그가 막벨라 굴과 밭을 산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한 발 들여놓은 것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에 한 발 가까이 가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작은 씨를 뿌린 것이다.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우리는 요즘 어떤 씨앗을 뿌리는데 열심인가?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날 그 분 앞에서,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해야 할 것이다.